print

진실과 허구를 구별 못하는 지도자

진실과 허구를 구별 못하는 지도자

트럼프는 과거의 숱한 위증에 이어 대통령 취임 후에도 뻔한 거짓말 너무 많이 해
트럼프는 지난해 11월 대선 때 일반투표에서 자신의 득표수가 클린턴 민주당 후보에게 뒤진 것으로 집계되자 부정선거를 주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이래 몇 차례 서명한 행정명령보다 더 중요한 사안이 있다. 그의 행정부 각료 임명보다도, 심지어 대법관 임명이나 오바마케어(건강보험개혁법) 폐지 여부보다도 더 중요하다.

요즘 미국 언론의 주요 기사에서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없다.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이 현실(진실)과 단절됐다는 사실을 말한다. 무엇이 진실이고 또 무엇이 진실이길 바라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태라는 뜻이다. 지난해 8월 미국 언론 대부분은 트럼프 후보의 언급 중 다수를 두고 ‘거짓말’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했다. 하지만 그로써 결코 충분치 않았다. 이제 기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자신의 언급이 진실이라고 진짜 믿는지, 또 왜 그렇게 믿는지 설명하라고 압박을 가해야 할 판이다. 수많은 정치인이 유권자를 기만하지만 ‘진실과 허구를 구별할 수 없는’ 정치인은 아주 위험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20일 취임했다. 그 행사를 지켜본 언론은 과거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취임식과 비교하며 트럼프 취임식의 참석자가 25만 명 정도에 불과했다고 보도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날 션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에게 취임행사 참석자 규모가 역대 최대였다고 발표하도록 지시했다. 스파이서 대변인은 백악관 출입기자단 앞에서 “언론이 취임식 인파를 의도적으로 줄여 보도했다”며 “이번 취임식에는 역대 가장 많은 인파가 모였다”고 말했다. 또 “취임식장 주변의 잔디 보호를 위해 처음으로 바닥에 깔개를 덮은 바람에 사람들이 적어 보였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언론이 2009년 1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 때 사진과 트럼프 취임식 사진을 증거로 제시하며 스파이서 대변인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거짓 발언이라고 반박하자 백악관은 사진기자들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보이도록 사진을 찍었다고 맞섰다.

같은 날 트럼프 대통령은 ‘박수부대’를 동원하고 중앙정보국(CIA)의 메모리얼 홀을 방문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곳에서 연설하며 자신의 자랑을 늘어놓자 그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올렸다. 임무 수행 중 목숨을 잃은 요원 117명을 기리는 그 신성한 장소를 모독하는 처사였다. 그의 자랑은 터무니없는 허풍이었다.

우선 그는 시사주간지 타임의 표지에 자신이 누구보다도 더 많이 실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건 사실이 아니다. 예를 들면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55차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경우 2008년에만 12차례나 타임 표지를 장식했지만 그는 11차례 표지에 올랐을 뿐이다. 또 그는 하늘에서 신이 내려다보면서 자신이 취임연설을 할 때는 비가 그치도록 보살펴줬다고 떠벌였다. 하지만 비는 조금씩이나마 계속 내렸다. 게다가 그는 또 다시 취임식 인파 규모가 역대 최대였다고 주장했다.

다음날 백악관 선임고문인 켈리앤 콘웨이는 NBC TV의 ‘언론과의 만남(Meet the Press)’ 프로그램에서 진행자로부터 “스파이서 대변인이 왜 첫 브리핑부터 취임식 인파 규모에 관해 잘못된 내용을 말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자 “당신은 그것이 잘못된 내용이라고 말하지만, 스파이서 대변인은 대체 사실(alternative facts)을 말한 것”이라고 답했다. 사람의 인지 과정을 왜곡시켜 가상 세계의 경험을 실제인 것처럼 인식하게 하는 기술이나 서비스를 말하는 대체 현실(alternative reality)과 다른 점이 뭔지 어리둥절케 하는 답변이었다.

그 다음 트럼프 대통령은 한술 더 떴다. 의회 지도자들과 비공개적으로 만난 자리에서 취임식 참석 인파 규모와 관련해 언론 보도를 두고 계속 불평을 늘어놨다. 더구나 지난해 11월 대선 때 일반투표에서 자신의 득표수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에게 뒤졌다는 것을 부인하려는 의도에서(실제로 그는 약 300만 표 적게 얻었다) 약 500만 명의 불법 체류자가 투표하도록 동원됐다며 장장 10분에 걸쳐 불평을 계속했다. 자신이 거짓말을 했다는 비난이 쏟아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이틀 뒤 국고를 지원해 국가 차원에서 부정선거를 수사하겠다고 발표했다.
2009년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 당시 워싱턴 내셔널 몰(위)과 트럼프 취임식 당시 같은 장소의 사진. 트럼프는 사진이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그 다음주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허풍이 잇따랐다. 가장 당혹스런 순간은 그가 1월 27일 이민 규제 행정명령을 발동한 직후에 찾아왔다. 이슬람 7개국(이란·이라크·시리아·수단·소말리아·리비아·예멘) 국민의 미국 비자 발급과 입국을 90일간 중단하며 모든 난민 수용을 120일간 중단한다는 내용이다. 그러자 당황한 이민국 관리들은 유효한 비자를 가진 합법적인 여행자들을 억류했다. 구글 같은 대기업은 해외출장 중인 그들 나라 출신 임원들에게 즉시 미국으로 돌아오라는 긴급 지시를 내렸다. 또 그런 조치에 반발하는 시위대가 미국 전역의 공항으로 몰려들었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이민 규제 행정명령이 ‘순조롭게 이행되고 있다’는 트윗을 날렸다.

트럼프 대통령의 많은 언급은 놀라울 정도로 비합리적이다. 부정선거 주장을 예로 들어보자. 정부 자료에 따르면 미국에 있는 불법 체류자는 약 1100만 명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대로 약 500만 명이 불법으로 투표했다면 그들의 투표율이 거의 50%에 이르며, 그들 거의 전부가 클린턴 후보를 찍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전체 유권자의 투표율도 57%에 불과했다. 따라서 트럼프의 세계에선 미국에 있는 모든 불법 이민자의 절반 가까이가 적발돼 추방되는 위험을 무릅쓰고 투표소를 찾아갔다는 뜻이다. 또 그들의 투표율이 위험이라곤 투표하느라 식사 약속 시간이 조금 늦어지는 것뿐인 합법적인 미국 시민권자들의 투표율과 거의 같다는 뜻이다.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두 가지 가능성이 남는다. 하나는 트럼프 대통령이 뻔히 드러날 거짓말을 의도적으로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진실과 자신이 진실이기를 바라는 허구를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다. 후자가 더 위험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ABC 뉴스 기자에게 오바마 전 대통령이 시카고에서 퇴임 연설을 하는 동안 시민 2명이 총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카고 트리뷴 신문은 그런 사건이 없었다는 것을 입증했다.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거짓말을 한 경우도 있다. 지난해 12월 12일 그는 트윗에서 자신이 선거에서 승리하기 전엔 아무도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의혹을 제기하지 않은 이유가 뭔지 따져 물었다. 그러나 그 이전 54일 동안 그는 정보당국의 러시아 해킹 주장을 공개적으로 일축했다. 그가 알면서도 거짓말을 한 것일까? 아니면 기억력이 좋지 않아 자신이 한 말을 까마득히 잊은 것일까? 미국이 외국 해커들의 사이버 공격을 받고 있는지에 관한 논의가 그토록 뜨거웠는데도 잊을 수 있을까? 아니면 자신이 한 말과 트윗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아예 몰랐을까?

선거운동 기간에 뉴스위크는 트럼프 후보가 셀 수 없을 정도로 위증을 많이 했다고 보도했다. 그건 중요한 사실이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외도를 숨기기 위해 단 한 차례 위증했다는 이유로 탄핵됐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의 위증 사례는 수없이 많다. 대부분은 단지 자신의 행동이나 업적을 부풀리기 위해서였다. 그는 1993년 의회에서 아메리칸 원주민 카지노 사업자와 거래한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뉴스위크는 그가 위증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통화 기록과 메모, 진술서를 입수했다.

또 그는 선서 진술서에서 단 한 차례의 연설 사례비로 100만 달러를 받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실제로 받은 사례비는 40만 달러였다. 그런 사실을 언론이 따져 묻자 그는 연설 전의 홍보 효과가 60만 달러의 가치가 있었다고 둘러댔다. 또 그는 2004년 도이체방크에 대출을 신청할 때 자신의 재산이 수십억 달러라고 말했다. 하지만 은행 측은 트럼프의 주장이 거짓이라고 결론짓고 실제 그의 재산을 7억8800만 달러로 평가했다.

트럼프가 이전에 지어낸 많은 이야기 중에서 특히 그의 사고방식을 잘 보여주는 것이 두 가지다. 그는 한 부동산 개발사업에서 자신의 지분이 30%인데도 50%라고 주장했다. 증언대에서 왜 그런 차이가 나느냐고 묻자 그는 실수라고 말하지 않고 “난 언제나 내가 50%를 소유한다고 느꼈다”고 대답했다.
이민 규제 행정명령에 반대하는 시위가 미국의 주요 공항에서 벌어졌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조치가 순조롭다”고 말했다.
또 한번은 그가 어떤 기자로부터 자신의 재산에 관해 공개적으로 질문당한 뒤 사업에 타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자신의 재산이 밝혀지자 기업들이 자신에게 사업 제안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증언대에서 그는 어떤 기업이 그랬느냐는 질문을 받자 어느 회사도 자신에게 그런 말을 직접 한 적이 없어 알 수 없다며 기업들이 자신을 무시했다는 것을 그냥 느낌으로 안다고 말했다.

미국 대통령이 증언대에 서서 다른 사람들이 자신과 사업하기를 거부했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들이 누군지는 모르며, 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근거도 없고, 어떤 사업에서 그랬는지 설명할 수도 없다고 주장한다고 한번 생각해보라. 또 그가 계약서에 명시된 사업체 지분 30%가 실제로는 50%이며 그건 자신이 그렇게 느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생각해보라.

이건 정상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 지어낸 이야기는 거짓말의 동기와 방법에 관한 과학적인 연구 결과와도 일치하지 않는다. 메릴랜드대학의 데일 햄플 교수는 1980년 연구에서 “사람들은 자신에게 소중한 목표를 확실히 달성할 수 있어야 거짓말을 한다”고 설명했다. “사람들은 거짓말을 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반드시 보상이 크고 확실할 때만 거짓말을 한다.”

버락 오바마, 힐러리 클린턴, 로널드 레이건,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를 포함해 거의 모든 정치인은 특정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거나 허풍을 쳤다. 그러나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지어낸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자신에게 이득이 될 게 전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해가 될 뿐이다.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트럼프의 취임행사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참석했는지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또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미국 역사에서 가장 믿을 수 없는 부정선거가 최근 벌어졌으며 불법 체류자 수백만 명이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찍었다고 믿지 않는다. 이번 선거에서 공화당이 상원의 주요 선거전 대부분에서 승리했고 하원의 지배권도 유지했는데 대통령 선거에서만 그런 부정이 있었다는 게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식 인파 규모나 일반투표의 부정선거에 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면 그를 나쁘게 생각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만약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고 그렇게 말했다면 그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을 뿐 아니라 시답잖은 사안을 두고 거짓말을 일삼는다는 평판으로 자신에게 오히려 해를 끼치게 된다. 따라서 그가 자신이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미시간주립대학 커뮤니케이션 교수로 2010년 거짓말에 관한 연구 논문을 공동 집필한 티머시 R. 리바인 박사는 “거의 모든 사람이 남을 속일 수 있지만 기만은 최후의 전술적·전략적 수단으로 사용된다”고 설명했다. “정신이상이 아니라면 진실을 말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땐 구태여 남을 속이지 않는다.”

- 커트 아이첸월드 뉴스위크 기자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삼성전자 노사 임금협상 파행...노조, 기자회견 예고

2쿠팡 PB 상품 우선 노출했나...공정위 심의 하루 앞으로

3일동제약 우울장애 치료제 '둘록사'...불순물 초과로 회수 조치

4‘오일 머니’ 청신호 켠 카카오모빌리티…사우디 인공지능청 방문

5‘레녹스 합작법인’ 세우는 삼성전자가 노리는 것

6고령화에 日 기업 결단...줄줄이 '직책 정년' 폐지

7여름 아직인데 벌써 덥다...덩달아 바빠진 유통업계

8 민주유공자법 등 4개 법안 본회의 통과…野 단독처리

9SM엔터 ‘고점’ 왔나…하이브, 223억원 손해에도 ‘블록딜’

실시간 뉴스

1삼성전자 노사 임금협상 파행...노조, 기자회견 예고

2쿠팡 PB 상품 우선 노출했나...공정위 심의 하루 앞으로

3일동제약 우울장애 치료제 '둘록사'...불순물 초과로 회수 조치

4‘오일 머니’ 청신호 켠 카카오모빌리티…사우디 인공지능청 방문

5‘레녹스 합작법인’ 세우는 삼성전자가 노리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