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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윤 교수의 ‘중소기업 강국으로 가는 길’(7)] 우물 안 중소기업 뼛속까지 글로벌화해야

[오동윤 교수의 ‘중소기업 강국으로 가는 길’(7)] 우물 안 중소기업 뼛속까지 글로벌화해야

대기업 의존적인 성장전략은 한계... 실패한 ‘히든 챔피언’ 정책 반면교사 삼아야
사진. 중앙포토
한국의 전체 사업체 중 중소기업 비중은 99%다. 그러나 중소기업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7%(2015년)로 낮은 편이다. 이는 한국의 성장 전략과 관련이 있다. 한국의 전통적인 주요 수출 품목은 중화학공업 제품이었다. 중화학공업 제품은 여러 개 부품(중간재)이 모여 하나의 최종재가 된다. 정부는 전략을 세웠다. 대기업이 최종재를 만들고, 중소기업이 중간재를 대기업에 납품하는 전략이다. 이를 수직적 계열화라고 한다. 1975년 ‘중소기업계열화촉진법’까지 제정했다. ‘수출 증가 → 대기업 매출 증가 → 중소기업 매출 증가 → 중소기업 종사자 임금 증가’가 발생하는 구조다. 이를 흔히 경제의 ‘낙수효과’라 한다. 물이 아래로 떨어지는 효과다.
 혁신보다 대기업과 인연에 목 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보면 그림이 달라진다. ‘수출이 막히면’이라는 가정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가격 경쟁은 치열하다. 그럴수록 대기업은 가격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은 중간재를 공급하는 중소기업을 압박하는 것이다. 중소기업은 매출이 거기서 나오므로 응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점은 또 있다. 바로 기업의 존재 가치인 혁신을 더디게 한다는 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CED)에 따르면 제조 중소기업의 제품·공정·마케팅·조직 ‘4대 혁신율’은 14.8%다. 전체 32개국 중 28위다. 부문별로 공정과 마케팅은 이보다 더 낮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이 정해준 규격에 근거해 납품한다. 가격도 정해져 있다. 따라서 납품계약을 맺었다면 굳이 혁신할 필요가 없다. 공정 혁신을 통해 원가를 절감한다 해도 납품가격에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케팅은 무의미하다. 대기업의 ‘김 이사님’과 맺어온 인연이 더 중요하다. 그러다 보니, 공정 혁신과 마케팅 혁신은 뒷전이다.

중소기업의 글로벌 경쟁력도 그리 높지 않다. 세계 최고 수준을 100으로 가정했을 때 중소기업은 75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매년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어디까지나 설문조사에 기초한 통계다. 주장하건대, 한국 중소기업의 경쟁력은 분명히 높다. 삼성의 갤럭시, 현대의 소나타에 들어간 중소기업의 부품이 경쟁력이 없다면 스마트폰과 자동차가 글로벌 시장을 주름잡고 있을까 싶다. 경쟁력은 충분하다. 다만 글로벌 시장에서 직접 경쟁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자신의 경쟁력을 잘 모른다.

그래서 중소기업은 글로벌 시장을 두려워한다. 도전적인 기업가정신이 없다고 탓할 수만 없다.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바이어를 만나고, 신뢰를 쌓고, 협상하고, 제품을 선적하고, 대금을 받기까지 적어도 몇 년이 걸린다. 여기에 환율, 현지 시장 등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변수가 많다. 선뜻 글로벌 시장으로 달려가기 어려운 이유다.

결국, 사람이 답이다. 자유무역협정(FTA)만 봐도 그렇다. 정부는 FTA로 관세가 없어졌으니 수출이 늘어날 것이라고 홍보했다. 기존 수출기업은 그 효과를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새롭게 시장에 진입하려 하는 기업은 다르다. 관세 3% 철폐가 수출 증가로 바로 연결되지 않는다. 시장조사, 거래처 발굴, 통관, 홍보 및 판매, 사후관리 등 손이 갈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이 모든 과정은 사람이 해야 한다. 정부가 해줄 수 없는 노릇이다. 거시경제 현황이야 정보로 줄 수 있다. 시장조사는 기업이 직접 해야 한다. 그러나 중소기업은 이를 전담할 인력이 절대 부족하다. 사장님 혼자 납품만 해왔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의 청년들은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갖췄다. 글로벌 역량도 예외가 아니다. 어학, 여행, 인턴 등 방법도 다양하다. 그러나 글로벌 역량을 갖춘 청년은 중소기업 취업을 기피한다. 그런 역량을 갖추기까지 더 큰 비용을 지불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역할이 바로 여기에 있다. 19대 대통령 선거에 나선 유력 후보들은 중소기업에 취업하는 청년에게 지원을 약속했다. 이를 하나로 묶으면 쉽다. 글로벌 인재의 중소기업 취업을 유도하고, 이들을 지원을 하는 것이다.
 ‘히든 챔피언’ 전략의 두 가지 실수
2008년에 ‘히든 챔피언’이 한국에 소개됐다. 광풍에 가까웠다. ‘히든 챔피언’은 인지도는 낮지만, 세계시장 점유율 3위 이내(또는 대륙 점유율 1위), 매출액이 40억 달러 이하(대부분 10억 달러 이하)인 기업을 일컫는다. 전세계에서 모두 2700여 개 ‘히든 챔피언’이 나왔다. 개 목줄, 병원 침대 바퀴, 스키 헬멧 등 제품은 다양하다. ‘히든 챔피언’의 절반이 독일 기업이다. 한국은 서른 개 남짓이다. 관련 기관이 일제히 ‘히든 챔피언’ 만들기에 나섰다. 중앙정부는 물론 한국수출입은행, 한국거래소까지 지원을 시작했다.

우리는 두 가지 실수를 범했다. 첫째, 독일 기업은 태생적 글로벌(Born Global)이라는 사실을 간과했다. 프로스포츠에 저니맨(journey man)이라는 용어가 있다. 팀을 자주 옮겨 다니는 선수를 말한다. 주전급 실력은 아니지만, 긴요한 전력으로 쓸만한 선수들이다. 독일은 마이스터(Meister)가 유명하다. 역사가 꽤 오래됐다. 당시 사람들은 마이스터 집에서 허드렛일까지 하며 어깨너머로 기술을 배웠다. 더 배울 기술이 없을 때 마이스터는 떠나는 것을 허락한다. 그렇다고 그 기술을 마이스터가 사는 동네(당시 영주)에서 써먹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봇짐을 지고 여기저기 옮겨 다녔다. 그런 사람을 저니맨이라고 한다. 요약하면, 독일의 ‘히든 챔피언’은 태어나면서부터 글로벌화를 해야 했다는 점이다. 한국처럼 정책에 의해 납품으로 성장한 실정에는 맞지 않는다.

둘째, ‘히든 챔피언’을 만들고자 돈만 잔뜩 퍼부었다. 정부의 중소기업 수출 관련 사업은 66개다. 마케팅(해외 전시회 파견 등)과 금융 관련 사업이 50개나 된다. 정작 중요한 인력 육성 사업은 7개뿐이다. 이마저도 교육 중심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사업과 예산을 늘렸다. 기존의 마케팅 지원 기관의 인식도 바뀌지 않았다. 아프리카에 뻥튀기 기계를 수출하려는 기업은 푸대접하고 번듯한 반도체나 자동차만 팔려고 한다. 마케팅 지원은 서비스의 개념인 금융 지원과 다르다. 복수의 기관이 경쟁하면서 서비스의 질을 높여야 한다.

다음 정부의 중소기업 정책은 재벌 개혁과 ‘중소기업부’로 정리할 수 있다. 대통령 선거에 나온 누구도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에 대한 공약이 없다.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는 중소기업 수출 및 판로예산을 5%까지 올리겠다고 공약을 제시했다. 불행히도 잘 실행되지 않았다. 재벌을 개혁해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도 중요하다. ‘중소기업부’도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성장의 전략으로 수출과 글로벌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필자는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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