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오아후의 파도타기부터 에베레스트의 베이스캠프까지 스포츠 버킷 리스트 8선어느 스포츠팬은 이렇게 말했다. “인생은 우리가 숨쉬는 횟수가 아니라 숨을 죽일 정도로 멋진 장소와 순간으로 평가된다.” 사실 그렇게 말한 사람이 확실히 스포츠팬인지 나도 모른다. 하지만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역사적인 경기를 관람하거나 유서 깊은 경기장을 방문하는 스릴이 인생의 의미에 가까울 수 있다는 사실은 확실히 안다.
우리 같은 스포츠팬은 스릴을 즐긴다. 또 우린 추억를 수집한다. 아니 추억을 비축한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우리가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스포츠 행사나 경기장을 적은 ‘버킷 리스트’를 하나씩 체크해가는 동안 그 체크는 우리의 소중한 기념품이 된다. 그리고 우리의 개인적인 스포츠 버킷 리스트는 ‘더 늦기 전에 서두르라’며 조바심을 부추긴다.
지난 몇 년에 걸쳐 미국 스포츠의 슈퍼스타였던 데릭 지터(프로야구 뉴욕 양키스)와 코비 브라이언트(프로농구 LA 레이커스)가 은퇴했고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던’ 세기의 복서 무함마드 알리와 아이스하키의 전설 고디 하우가 이 세상과 작별했다.
그런 사실을 생각하면 스포츠팬들에겐 ‘인내심 갖고 기다리는 게 상책’이라는 옛 속담이 반드시 최선의 조언은 아닌 것 같다. 스포츠 버킷 리스트에 적힌 것을 하루 빨리 전부 다 해봐야 한다는 조바심은 우리의 나이만이 아니라 팀이나 경기장, 또는 선수 경력이 언제든 해체되고 재건축되며 끝날 수 있다는 사실에서도 비롯된다.
좋아하는 선수와 경기장을 전부 구경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물론 직접 찾아가는 것이지만 세계를 순식간에 둘러보는 이 같은 가상 여행도 사진과 간단한 설명으로 구미가 당기며 우리를 유혹한다. 아직 시간이 남아 있겠지만 우리 시계는 끊임없이 째깍째깍 돌아가니 아무래도 서두르는 게 좋을 듯 싶다. 다음은 롭 플레더와 스티브 호프먼이 저술한 책 ‘스포츠 버킷리스트: 모든 스포츠팬이 늦기 전에 반드시 봐야 할 101군데 명소(The Sports Bucket List: 101 Sights Every Sports Fan Should See Before the Clock Runs Out by Rob Fleder and Steve Hoffman, 하퍼콜린스 펴냄)’에서 발췌했다.
━
○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 | 오라클 아레나(미국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
사진 : EZRA SHAW/GETTY아무도 기대하지 않는 형편없는 농구 구단을 최고의 쇼단으로 만드는 방법이 뭘까? 어떻게 하면 홈에서든 원정 경기에서든 가는 곳마다 관중석을 가득 메우는 팀으로 만들 수 있을까? 별로 어렵지 않다. 현재의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 구단주가 2010년에 그랬듯이 4억5000만 달러를 주고 그 팀을 인수하라. 그 다음 3점 슛이 미국 프로농구(NBA)에서 아주 보기 드문 무기였다는 확신을 갖고 그런 무기를 가진 선수로 진용을 짜라.
스티븐 커리, 클레이 톰슨, 드레이먼드 그린을 영입해 그들의 이점을 최대한 살리고 장거리 화력의 취약점을 최소화하라. 거기다 몇 가지만 보완하면 멋진 팀이 만들어진다. 그 결과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는 2015년 우승팀이 됐고 지난해엔 시즌 기록 73승이라는 신기록을 세우며 챔피언 결정전에 올랐다. 이번 시즌엔 세계 톱5에 드는 케빈 듀란트까지 팀에 합류했다. 보라,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은가?
━
○ 에디 | 와이메아 베이(미국 하와이 주 오아후)
사진 : SPORTS STUDIO PHOTOS/GETTY에디는 가장 오래된 대형 파도타기 대회지만 최고의 권위를 가진 위험한 대회다. 하와이의 서퍼 전설 에디 아이카우의 이름을 땄다. 그는 와이메아 해변의 첫 공식 인명구조대원으로 아무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곳까지 파도를 타고 나가 구조활동을 폈다. 그를 기리는 이 대회는 파고가 약 6m 이상으로 높아져야 열린다는 점에서 다른 프로 대회와 차별된다. 세계 최고의 서퍼들이 참가하는 이 대회에선 대개 파도가 ‘승자’다. 거대한 파도가 서퍼들을 하나씩 차례로 넘어뜨린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적시에 파도의 입술을 잡아채 구비치는 파도의 터널 속에서도 계속 질주하다가 하얀 물보라 속으로 사라진다. 잠시 후 그가 당당하게 헤엄쳐 나온다. 바로 우승자다.
━
○ 럭비 월드컵 | 요코하마(일본, 2019 결승전 개최지)
사진 : MARK RUNNACLES/GETTY스크럼과 몰(공을 가진 선수 주위에 한 명 이상의 양 팀 선수가 선 채 몸을 밀착시킨 상태)을 구분 못해도 럭비를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둔탁하게 몸을 부딪히는 이 거친 게임은 프로 미식축구를 좋아한다면 규칙을 몰라도 열렬한 팬이 될 수 있다. 그 게임의 꽃이 20개국 대표팀이 참가해 4년마다 겨루는 럭비 월드컵이다.
럭비는 원래 남반구가 강하다. 지금까지 개최된 8회의 월드컵 대회 중 7회에서 그곳 국가들이 우승했다(호주 3회, 뉴질랜드 2회, 남아공 2회). 운이 좋다면 하카 춤 공연도 볼 수 있다. 원래는 마오리족 전사들이 전쟁터에 나가기 전에 추는 춤으로 럭비(아니 모든 스포츠라고 해도 무방하다)의 진수를 잘 보여준다. ‘올블랙스’로 불리는 뉴질랜드 대표팀이 전통적으로 경기 전에 치르는 의식으로 자리 잡았다. 그들은 상대팀 앞에서 허리는 곧게 펴고, 살짝 굽힌 무릎을 손바닥으로 때린다. 눈은 크게 부릅뜨고 혀를 쏙 내밀며 소리를 지른다. 상대팀을 제압하는 시늉이다. 지구 반바퀴를 돌아도 진짜 가볼 만한 구경거리다.
━
○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 네팔(28°0’26” N, 86°51’34” E)
사진 : FRANK BIENEWALD/GETTY실제로 에베레스트 산을 등반하지 않고서 그 산에 오르는 체험을 즐길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이다. 그렇다고 공원 산책 정도로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물론 네팔의 사가르마타 국립공원을 통과하지만 말이다. 먼저 비행기로 네팔 수도 카트만두로 가야 한다. 그 다음 소형 비행기를 타고 산악지대를 통과해 루클라에 간 다음 거기서 트레킹을 시작한다. 약 2주에 걸쳐 셰르파의 안내를 받아 극한의 고도로 오른다. 고도에 적응하기 위해 자주 휴식을 취해야 한다. 그 베이스캠프에서 산악인들은 에베레스트 정상으로 가는 마지막 등반을 시작한다. 그처럼 오르기 힘든 곳에 왜 가냐고? 산이 그곳에 있고 우리는 여기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
○ 프랑스 오픈 | 스타드 롤랑 가로(파리)
사진 : JULIAN FINNEY/GETTY테니스 그랜드 슬램의 두 번째 대회로 파리 시내 롤랑 가로의 붉은 코트에서 열린다. 세계 최고의 클레이 코트 토너먼트다. 잔디 코트나 합성수지 하드 코트는 강한 서브가 무기인 선수에게 유리하지만 흙으로 만들어진 롤랑 가로의 클레이 코트에선 공이 코트 표면에 닿으면 속도가 느려지기 때문에 뛰어다녀야 하는 거리가 많아져 체력이 강한 선수가 유리하며 랠리(네트를 사이에 두고 공이 오고가는 동작)가 좀 더 오래 지속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경기가 우아할 뿐 아니라 더 복잡하고 미묘해진다.
피트 샘프라스는 대포알 서브로 그랜드 슬램 타이틀을 14개나 거머쥐었지만 프랑스 오픈에선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다. 반면 클레이 코트에서 뛰어난 기량을 보이는 라파엘 나달은 베이스라인에 서서 넘어오는 거의 모든 샷을 받아넘기며 프랑스 오픈에서 9차례나 우승했다. 모든 게임에서 힘이 넘치는 세레나 윌리엄스는 그랜드 슬램 싱글 타이틀을 16개나 차지했지만 프랑스 오픈 우승에서 딴 것은 3개 뿐이다. 롤랑 가로에선 스타일이 파워를 능가한다는 뜻이다. 얼마나 프랑스다운가!
게다가 롤랑 가로는 지하철로 쉽게 갈 수 있으며 음식도 맛이나 가격에서 기대보다 낫다는 매력도 있다. 그래도 마음에 차지 않는다면 ‘초여름의 파리’가 약속하는 낭만만해도 충분히 가볼 만하지 않을까?
━
○ 그린 몬스터 | 보스턴(미국 매사추세츠 주)
사진 : JOE ROBBINS/GETTY보스턴 레드삭스의 홈구장인 펜웨이 파크는 미국 프로야구에서 가장 오래됐고(1912년 건설) 가장 작은(3만7673석) 구장이다. 하지만 그 구장의 왼쪽 외야 펜스는 높이가 11.3m로 어느 구장보다 높은 것으로 악명 높아 ‘그린 몬스터’로 불린다. 펜웨이 파크에선 2002년부터 8회 말 공격을 앞두고 팬들이 ‘스위트 캐롤라인’을 다같이 따라 부르는 것이 전통으로 굳어져 유명해졌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 구장의 상징은 ‘그린 몬스터’다.
펜웨이 파크의 왼쪽 외야 펜스는 이 구장이 처음 지어질 때부터 있었다. 왼쪽에서 중앙까지 길이 약 70m에 이르는 이 담장은 원래는 랜스다운 스트리트에서 경기를 구경하는 ‘공짜 손님’을 막기 위해서 그처럼 높이 세워졌다.
처음엔 나무 담장이었지만 1934년 콘크리트와 주석 담장으로 다시 지었다. 그때 ‘더피의 절벽(Duffy’s Cliff, 보스턴 레드삭스의 좌익수였던 더피 루이스가 이 지점에서의 수비를 기가 막히게 해냈기 때문에 붙혀진 이름으로 3m 정도의 경사진 부분)’이 제거됐고, 손으로 작동하는 유명한 구식 스코어보드가 설치됐다(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1947년 펜웨이 파크 외야 펜스에서 광고물이 모두 제거되고 녹색 페인트로 칠해지면서 ‘그린 몬스터’란 애칭이 붙었다.
처음부터 ‘그린 몬스터’는 선수들에게 유리하기도 하고 불리하기도 했다. 공간이 넓은 구장에선 쉽게 잡을 수 있는 플라이볼이 이곳에선 높은 담장에 맞고 튀어나가 2루타가 되거나 때론 펜스를 살짝 넘어가 어이없는 홈런이 되기도 한다(1978년 경기에서 뉴욕 양키스의 9번 타자 버키 덴트는 어설픈 스윙으로 공을 쳐 평범한 플라이아웃처럼 보였지만 그 공이 운좋게 ‘그린 몬스터’를 간신히 넘겨 홈런이 되면서 양키스가 역전승을 거뒀다). 한편 다른 구장에선 홈런이 될 수 있는 강한 타구도 이곳에선 ‘그린 몬스터’에 가로막혀 2루타나 1루타에 머물기도 한다. 이처럼 말 그대로 ‘보스턴에선 모든 플라이볼이 모험’이다.
━
○ 켄터키 더비 | 루이빌(미국 켄터키 주)
사진 : CHRIS GRAYTHEN/GETTY미국 켄터키 주 루이빌에 있는 처칠다운스 경마장의 2㎞ 트랙에서 세 살짜리 명마의 운명은 또래들과 영원히 달라진다. 그 경기에서 우승하면 두둑한 상금으로 다양하고 활동적인 ‘애정 생활’을 포함해 모든 것을 일류로 대접받을 뿐 아니라 경마 연보에서 모두가 탐내는 자리를 차지한다. 이처럼 말에게 하늘과 땅의 차이가 날 수 있는 대회이기 때문에 켄터키 더비는 오랫동안 ‘스포츠에서 가장 짜릿한 2분’으로 불렸다.
그렇다면 더비 데이에 20명의 기수와 판돈 몇 억 달러 외에 정확히 무엇이 의미가 있을까? 무엇보다 역사다. 모든 경주가 그렇듯이 그 역사는 혈통에 크게 의존한다. 1872년 메리웨더 루이스 클라크(유명한 탐험가 윌리엄 클라크의 손자)는 영국의 엠섬 더비와 프랑스의 파리 롱샹 경마를 구경하고 미국으로 돌아온 뒤 그와 비슷한 미국 경마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는 처칠이라고 불리는 두 삼촌을 졸라 땅을 얻어내 트랙을 만들었고 루이빌 자키 클럽을 결성해 팬들을 모집했다. 2년 후인 1875년 5월 17일, 드디어 경마장이 개장했다. 이 첫 켄터키 더비에서 명마 15필이 경주했고, 팬 1만여 명이 환호성을 올렸다. 우승마는 애러스 타이디즈였다.
그 후 그곳에서 매년 경마가 열리면서 켄터키 더비는 설립자 클라크가 상상하지도 못할 수준으로 발전했다. 2015년 더비 데이엔 무려 17만513명이 처칠다운스에 몰렸다. 그들은 민트 줄렙 칵테일을 연거푸 들이키며 ‘그리운 켄터키 옛 집’을 목청껏 불렀다. 일부는 그 노래를 부르며 눈물도 흘렸다. 노예에 관한 노래라는 사실도 의식하지 못한 채 말이다. 그러다가 경마 출발문이 활짝 열리고 세계 최고의 세 살짜리 명마들이 ‘누가 영원히 기억될지’를 두고 2분 동안 사력을 다해 달리는 것을 지켜보며 모두가 열광했다.
━
○ 샤이엔 프런티어 데이 | 미국 와이오밍 주 샤이엔
사진 : MICHAEL SMITH/GETTY매년 7월 말 열리는 이 미국 서부 축제의 특징은 커다란 카우보이 모자와 거대한 황소다. 열흘 동안 먹고 마시고 춤추며 즐기는 프로 로데오 경기가 그 핵심이다.
이 축제는 1897년 옛날식 소떼 몰기로 시작됐다. 일종의 카우보이 일자리 박람회였다. 당시 샤이엔은 급성장하던 소떼 사업의 중심지였다. 카우보이들이 시내로 나와 야생마를 길들이고 황소를 로프로 잡는 장기를 뽐냈다. 곧 그 행사가 로데오 대회를 중심으로 하는 프런티어 데이로 발전했다.
요즘은 축제 동안 미국 공군 선더버드의 에어쇼도 펼쳐진다. 무료 아침 식사로 제공되는 팬케이크를 맛본 후 그랜드 퍼레이드, 말 농장, 카우보이와 지붕 있는 마차를 구경할 수 있다. 축제 열흘 동안 매일 로데오 경기가 벌어진다. 야생마 타기, 황소 싸움, 황소 타기, 로프로 황소 잡기 등이 흥을 돋운다.
대형 공연장에서 펼쳐지는 컨트리-웨스턴 뮤지션들의 콘서트도 볼만하다. 그러나 달리는 말에서 카우보이가 뛰어내려 맨손으로 황소를 넘어뜨려 잡는 것만큼 흥미진진한 구경거리는 없는 듯하다.
- 롭 플레더
[ 필자는 주간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의 편집장을 지냈다. Copyright @ 2017 by Low Gear & Minus Inc. and Apartment 8H Inc. Published by Harper Design, an imprint of HarperCollins Publishers.]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브랜드 미디어
브랜드 미디어
삼성전자, 테슬라 이어 애플과도 계약…‘7만전자’ 회복[특징주]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
일간스포츠
'LA 이적' 손흥민, SNS서 토트넘 지워…왜?
대한민국 스포츠·연예의 살아있는 역사 일간스포츠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트럼프, 반도체 제품에 100% 관세 예고…삼성·SK하이닉스 영향은?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마켓인]애경산업 이달 본입찰…‘큰손’ 태광산업에 쏠리는 눈
성공 투자의 동반자마켓인
마켓인
마켓인
대규모 기술수출에도 주가 원점 바이오벤처들…왜?
바이오 성공 투자, 1%를 위한 길라잡이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