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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없이 몸을 병들게 하는 ‘경피독’] 발암물질·환경호르몬이 내 피부로…

[소리 없이 몸을 병들게 하는 ‘경피독’] 발암물질·환경호르몬이 내 피부로…

피부 각질층 얇고 모세혈관 가까운 곳일수록 흡수도 높아
생리대 유해성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피부로 흡수되는 독성인 ‘경피독’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최근 생리대 유해성 논란이 뜨겁다. 소비자의 불안감이 커지고 안전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번 사태는 생리대 부작용에 국한되지 않는다. 핵심은 피부로 흡수되는 독성인 ‘경피독’에 대한 경고다. 흡입·섭취하는 독성에 비해 경피독의 경로와 위험성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번 사태로 인한 사회적 충격이 큰 것도 이 때문이다. 경피독은 신체 부위와 조건에 따라 위험성이 달라진다.

피부를 독성의 유입 경로로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피부 자체가 단단한 방어막이라는 인식이 강해서다. 실제로 겹겹이 쌓인 피부 장벽은 유해 물질을 막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모두 막진 못한다. 유해 물질이 표피를 뚫거나 세포 사이의 틈으로 들어온 후 지방층에 쌓이고 혈액 속으로 흘러들어가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경피독에 따른 피해가 단순히 피부 증상에 국한되지 않는 이유다. 충북대 수의과대학 최경철 교수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 많은 유해 물질이 피부를 통해 들어온다”며 “코와 입에 비해 피부의 체내 흡수율이 상대적으로 낮지만 다른 경로와 함께 동시다발적으로 유입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피부 장벽 뚫거나 세포 사이로 유입
경피독이 체내로 들어올 때는 여러 요소의 영향을 받는다. ‘피부학 연구 저널(Journal of Investigative Dermatology)’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신체 부위에 따라 피부의 물질 흡수도가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실험은 탄소 동위원소인 ‘14C’를 포함한 히드로코르티손을 피부에 도포한 후 소변으로 검출된 양을 분석한 결과다.

결과는 흥미로웠다. 팔 안쪽을 1로 봤을 때 발바닥은 0.14배, 손바닥은 0.83배로 낮았지만, 등 1.7배, 두피 3.5배, 겨드랑이 3.6배, 이마 6배, 턱 뼈 끝 부분 13배로 높았다. 특히 생식기(남성의 음낭)는 42배에 달했다.

모낭·기름샘(피지선)이 크고 부위가 넓거나, 피부 각질층이 얇고 모세혈관이 가까운 곳일수록 흡수도가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두피에는 크기가 큰 모낭이 빽빽하고 이마에는 얼굴에서 기름샘이 가장 넓고 많다. 반면 턱 뼈의 끝 부분은 모세혈관이 가까워 체내 침투가 쉽다. 발바닥은 각질층이 두꺼워 거의 흡수되지 않았고, 42배가 검출된 남성의 생식기는 피부가 장벽이 되지 않았다.

피부의 온도와 상태에 따라서도 흡수도가 다르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경피 흡수’ 보고서에 따르면 따뜻한 피부일수록 물질의 전달 속도가 빨라져 경피 흡수가 빨라진다. 건선·아토피 환자의 피부에서도 빨리 침투한다. 피부 장벽이 파괴돼 방어 기능을 못하는 탓이다. 최 교수는 “경피 흡수도는 피부 자체의 특성뿐 아니라 유입하는 물질의 특성에도 영향을 받는다”며 “분자 크기가 작을수록, 물에 잘 녹는 성분일수록 흡수가 잘 되고, 같은 물질이라도 어떤 용매에 희석했는지에 따라 다르다”고 설명했다.

체내로 들어온 유해 물질은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호르몬의 기능을 마비시키고 신경·피부뿐 아니라 생식·발달에도 반응을 일으켜 암을 유발할 수 있다. 신경계에 이상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물질은 카드뮴·납·수은 같은 중금속이다. 신경 세포에 달라 붙어 빈혈과 경련을 일으키고 암을 유발한다. 중독으로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다. 이런 중금속은 우리 생활 곳곳에 퍼져 있다.

최근 어린이집의 벽지와 페인트, 시중에서 판매하는 휴대폰 케이스에서 기준치를 초과한 납과 카드뮴이 검출된 바 있다. 인하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임종한 교수는 “면역력이 약한 어린이의 피부나 입을 통해 중금속이 흡수돼 쌓이면 뇌 발달 장애 같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며 “몸은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신경조직이 뻗어 있어 더욱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성인이라고 안전지대는 아니다. 최근 이슈가 된 생리대 접착제로 쓰인 스티렌은 피부에 잘 흡수되는 성분으로 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2급 발암물질이다. 물집이나 탈모를 일으킬 수도 있다. 인조 손톱에서 검출된 클로로포름과 톨루엔은 각각 태아를 사망케 하고 정자 수를 감소시키는 생식 독성 물질이다. 담배의 니코틴 성분은 반복적으로 피부에 접촉했을 때 알레르기성 피부염을 일으킨다. 구토·설사·경련을 유발하고 심할 경우 심근 부정맥으로 사망할 수도 있다.
 접촉 줄이고 체내에 머무는 시간 최소화해야
내분비계를 교란시키는 환경호르몬의 유해성도 심각하다. 다이옥신·프탈레이트·DDE(살충제 성분인 DDT의 분해물) 등이 대표적이다. 생리 주기를 단축시키고 남성 호르몬의 기능을 봉쇄하는 등 다양한 호르몬 문제를 일으킨다. 경북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이덕희 교수는 “환경호르몬은 사망을 일으키는 등의 강한 독성은 없지만 낮은 농도에서 어떤 유해성을 보일지 연구가 부족해 예측이 어렵다”며 “허용된 수치 이하에서도 다양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어 피부 등 접촉에 유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부가 각종 유해 물질의 유입 경로로 확인된 만큼 주의가 필요하다. 가급적 피부 접촉을 최소화하는 것이 상책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독성정보제공시스템(www.toxinfo.or.kr)을 통해 개별 물질에 대한 독성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궁금한 물질을 검색하면 독성 및 발암물질 여부를 알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 경피독을 의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가령 헤어 스프레이를 뿌릴 때 얼굴을 가리는 데 그치지 말고 두피를 통한 유입을 고려해 사용을 자제하거나 사용량을 줄이는 식이다. 경피 흡수도를 높이는 피부 염증이나 아토피 증상이 있다면 더욱 조심해야 한다. 합성화합물질이 들어간 생활 용품의 사용도 가능한 줄인다. 코코넛·야자 오일에서 얻은 천연 계면활성제가 들어간 용품으로 대체하는 것도 방법이다.

유해 물질을 몸 밖으로 배출하는 것도 중요하다. 식이섬유가 많은 음식을 먹는 게 좋다. 다이옥신이나 DDT처럼 독성이 강한 물질은 담즙으로 둘러싸인 후 대변을 통해 몸 밖으로 나간다. 식이섬유는 이런 유해 물질을 붙잡아 함께 배출한다. 식이섬유는 아스파라거스·키위 같은 음식에 많다. 규칙적인 운동은 혈액과 림프의 순환을 원활하게 한다는 점에서 도움이 된다.

유해 물질을 대·소변으로 배출하려면 먼저 신장이나 간·장으로 보내야 하는데 이때 혈액과 림프가 운반자 역할을 한다. 이 교수는 “경피독을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유해 물질이 체내에 들어왔을 때 머무는 시간을 최소화 시켜야 한다"며 “독성 물질을 배출시키는 음식을 먹고 운동을 하는 등 디톡스 생활 습관을 갖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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