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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뺀질이 윌리’의 수난시대

‘뺀질이 윌리’의 수난시대

미국의 성추행 과거 청산 속도 내면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행적 다시 도마에 올라
오늘날의 젊은 민주당 지지자 다수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업적을 비판한다. / 사진:AP-NEWSIS
지금까지 미국 대통령은 모두 남자였다. 그중 다수는 ‘행실’이 좋지 않았다. 한 추정에 따르면 백악관을 차지했던 45명 중 14명은 중학교 사회 교과서에 차마 실을 수 없는 수준의 엽색 행각으로 악명을 떨쳤거나 강한 의혹을 샀다.

예를 들어 제21대 대통령 체스터 A 아서는 홀아비로서 정부(情婦)와 밀애를 즐긴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그러자 그는 “아니, 이건 암살보다 더 하잖아!”라고 불평을 터뜨렸다(그는 1880년 J A 가필드의 러닝메이트로 부통령에 당선된 후 이듬해 가필드 대통령이 암살당하자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그때만해도 인터넷이 등장하기 오래전이었다.

제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바람기도 유명했다. 대단했던 인기에 비해 그가 남긴 업적이 변변찮은 듯하다면 그가 두 명의 여자 비서와 놀아나는 데 허비한 시간이 많았다는 사실로 부분적인 설명이 가능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제42대 대통령 빌 클린턴은 어떤가? ‘뺀질이 윌리(Slick Willie)’라는 별명을 가진 그는 대통령 후보였던 1992년 6월 ‘아세니오 홀 쇼’에 출연해 색소폰을 불었다. 1994년 대통령 재임 당시 MTV가 주최한 타운홀 미팅에 참석했을 땐 한 방청객으로부터 “삼각 또는 사각팬티 중 어느 것을 좋아하나?”라는 질문을 받고는 솔직하게 “대체로 삼각”이라고 답했다.

클린턴은 흑인 여성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토니 모리슨으로부터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1998년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와 클린턴 대통령 사이의 섹스 스캔들에 대한 조사가 한장 진행 중일 때였다. 물론 그 평가는 그가 흑인사회에서 인기가 높다는 뜻이지만 모리슨은 클린턴 대통령의 “제어되지 않는 바람기”를 암시하며 “그는 흑인의 거의 모든 비유를 상징한다”고 표현했다. 클린턴 주변에선 싸구려 향수 같은 불륜의 냄새가 진동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르윈스키와의 성관계에 관해 대배심에서 위증했다. 그로써 그는 탄핵의 도마에 올랐다(하원에서 그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됐지만 상원이 부결시켰다). 따라서 클린턴의 복잡한 문화적 성향에 관한 모리슨의 선견지명은 상당히 때늦은 듯했다. 모리슨의 그런 표현은 오히려 변명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클린턴은 그의 어떤 후임자보다도 정책을 더 훤히 꿰뚫었다. 또 그는 유권자들이 정강정책을 보고 표를 주진 않는다는 점도 정확히 알았다. 유권자들은 마음에 드는 ‘스토리’에 투표한다. 클린턴의 ‘미국 스토리’는 냉전에서 승리한 번창하는 초강대국으로 부흥한 나라였다.

1992년 미국 유권자들은 그의 비전과 스토리를 믿었다. 1996년에도 또 믿고 클린턴을 재선시켰다. 그들은 그의 아내 힐러리를 상원의원으로 만들었고, 그녀는 다시 국무장관이 됐다. 그들은 힐러리 클린턴도 대통령으로 거의 만들 뻔했다. 그녀의 선거운동에 클린턴 전 대통령이 적극 개입했더라면 지금 백악관엔 그녀가 앉아 있을지 모른다.

결국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탄핵을 용케 피해나갔고 자진 사퇴 하지도 않았으며, 그를 상대로 성추행 소송을 제기했던 여성들도 모두 합의금을 받고 소송을 취하했다. 그러나 올해 할리우드 거물 하비 웨인스타인의 성추행 파문이 지구촌을 강타한 직후인 지금 ‘뺀질이 윌리’도 그리 뺀질하진 못한 듯하다. 지난 11월 클린턴 부부의 도움을 많이 받았던 커스틴 질리브랜드 상원의원은 뉴욕타임스 기자로부터 클린턴이 르윈스키 스캔들로 대통령직을 사임했어야 했는지 질문 받고 이렇게 답했다. “그렇다. 그게 적절한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극우 노선의 뉴스 전문채널 폭스 뉴스에서 발사된 또 다른 ‘독설의 미사일’이 아니라 민주당의 보루 내부에서 감행된 공격이었다. 더구나 그 말은 2020년 대선 출마를 진지하게 고려하는 여성 상원의원의 입에서 나왔다. 힐러리 클린턴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초대 국무장관으로 발탁된 뒤 질리브랜드는 그 후임으로 2009년 뉴욕주 상원의원에 지명돼 주목받았다. 질리브랜드 상원의원은 힐러리 클린턴을 역할모델로 언급하며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였던 그녀를 열성적으로 지지했다. 클린턴 부부의 지지자들은 당연히 격분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성폭행당했다고 주장하는 후아니타 브로드릭(가운데). / 사진:AP-NEWSIS
곧바로 힐러리의 보좌관을 지낸 최측근 필립 레인스는 클린턴의 여성 편력을 아무 상관 없는 흘러간 옛 이야기로 취급해야지 만약 그렇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민주당원들에게 똑똑히 보여줬다. 그는 트위터를 통해 이렇게 맹비난했다. “클린턴의 섹스 스캔들을 수사한 케네스 스타 특별검사는 합의 아래 이뤄진 유사 성행위를 조사하느라 7000만 달러를 낭비했다. 하지만 상원은 클린턴 대통령 탄핵안을 부결시켰다. 그런데도 질리브랜드 상원의원, 당신은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당신은 지난 20년 동안 클린턴 부부의 정신적, 물질적 지원을 받았고 그들 덕분에 의원직도 얻지 않았는가? 위선자!”

사실 질리브랜드 상원의원은 많은 사람이 입 다물기로 합의한 진실을 말했을 뿐이다. 이제 그 진실이 발설된 만큼 민주당은 마침내 클린턴의 유산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고 또 해야 마땅하다. 그런 논의가 소모적이라거나 사기를 떨어뜨린다거나 트럼프 대통령이 터무니없는 트윗을 띄웠다고 해서 덮어둘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의 젊은 민주당 지지자 다수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업적을 비판 못할 정도로 신성하게 여기지 않는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비서실 차장이었던 앨리사 마스트로모나코는 “질리브랜드 상원의원은 받은 질문에 솔직하게 답했을 뿐”이라고 그녀를 항변했다. “난 그녀를 지지한다. 내년 빌 클린턴 탄핵 20주년을 맞으면 르윈스키가 그에게서 어떤 수모를 겪었는지 정확히 이해할 수 있기 바란다.”

청소년 잡지 틴 보그의 진보 성향 칼럼니스트 로렌 듀카는 한술 더 떴다. “빌 클린턴의 탄핵은 노골적으로 공화당의 정치적인 동기에서 이뤄졌다. 그 결과 그는 가장 진보적인 대화에서도 자동적으로 보호 받았기 때문에 문제 많은 자신의 과거를 감출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은 그가 사임했어야 마땅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성적 약탈자를 권력에서 몰아내는 문제에선 정치적 이념이 문제가 돼선 안 된다.”

그럼에도 빌 클린턴은 여전히 민주당 내부에서 막강한 존재로 남아 있다. 그는 오바마 전 대통령보다 오바마케어(전 국민의 건강보험 가입을 의무화한 법)를 미국민에게 훨씬 더 잘 설명했다. 오바마도 그런 그를 두고 “나의 정책 설명 장관”이라고 농담했다.

빌 클린턴은 오바마는 절대 할 수 없는 방식으로 피부에 와닿게 경제 문제를 논했다. 머리가 비상한 친구가 맥주 한잔을 마시며 하는 이야기와 같았다. 빌 클린턴은 오바마와 학력은 비슷하지만(클린턴은 예일 로스쿨, 오바마는 하버드 로스쿨을 나왔다) 학자 같은 고상한 수사를 사용하지 않고 쉽게 다가올 수 있게 말한다. 그러면서도 오바마가 결코 해낼 수 없었던 일을 했다. 예를 들어 빌 클린턴은 자신의 매력을 활용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화해를 중재했다. 또 그는 자신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백악관 인턴이던 르윈스키를 유혹해 집무실로 끌어들이는데도 바로 그 매력을 이용했다.

만약 민주당이 빌 클린턴의 그런 어두운 면을 거론하지 않는다면 공화당이 쾌재를 부르며 대신 공격에 나설 것이다. 실제로 공화당은 최근 그런 의지를 분명히 보였다.

지난해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는 힐러리 클린턴 후보와 맞붙은 토론에 여러 여성을 게스트로 초대했다. 그 여성들은 그 자리에서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남편인 빌 클린턴이 자신을 성적으로 공격했거나 희롱했다고 비난했다. 트럼프 후보는 그들의 주장으로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당혹스럽게 만들 순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던 듯하다. 힐러리 클린턴은 2000년대 들어서도 남편의 행동에 관한 소문을 계속 들었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더 큰 목적은 민주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에게 빌 클린턴의 ‘원죄’를 상기시키는 것이었다. 그 전술은 트럼프 자신이 받고 있는 숱한 성추행 의혹(10여 명의 여성이 그에게서 성적 부당행위를 당했다고 주장했다)으로부터 주의를 다른 쪽으로 돌리는 효과도 있었다.

나는 트럼프가 초청한 여성 중 한명인 후아니타 브로드릭과 연락했다. 브로드릭은 1978년 아칸소 주 리틀록의 한 호텔방에서 빌 클린턴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오랫동안 주장했다(클린턴은 여러 차례 그런 적이 없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그녀는 질리브랜드 상원의원의 발언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지금 목격하는 우리 사회의 도덕적 부패는 그들(클린턴 부부를 가리킨다)이 권력을 가졌던 시절에서 직접적으로 비롯됐다. 빌 클린턴은 ‘내 행동은 잘못이었고 앞으로도 용서 받지 못할 것’이라며 대통령직을 사임했어야 마땅하다.”
빌 클린턴의 성추문을 조사한 케네스 스타 특별검사가 옳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클린턴의 성범죄에 대한 진보진영의 관대한 대응이 결국 20년 뒤 하비 웨인스타인이라는 자연스러운 결과로 이어졌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과거 진보진영은 대부분 브로드릭을 비롯한 빌 클린턴 고발자들의 주장을 일축하거나 오히려 그들을 비방했다. 평소 여성과 인권 등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결정적 순간에는 원칙을 버리고 당파적 선택을 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미셸 골드버그는 최근 ‘난 후아니타의 말을 믿는다’는 제목을 글을 썼다. 며칠 뒤 뉴욕타임스의 보수 성향 칼럼니스트 로스 두댓도 ‘만약 케네스 스타 특검이 옳았다면?’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그와 비슷한 주장을 폈다.

이처럼 지금은 ‘빌 클린턴 때리기’에 아주 편리한 시점이다. 하지만 사실 그러기에 적합한 시점이기도 하다. 약 반세기 전의 2차 여권운동 이래 지금처럼 남성이 여성을 대하는 방식이 엄밀한 평가를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클린턴 부부는 ‘우익의 거대한 음모’가 빌 클린턴의 대통령직 유산을 음해하려 하며 그를 비난하는 여성들은 그 전쟁을 치르기 위해 동원된 전투원들이라는 비난 뒤에 숨을 수 있었다.

그러나 두 가지 상반되는 주장 모두 옳을 수 있다. 그렇다. 보수파는 빌 클린턴을 무너뜨리려고 안달한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성적 약탈을 약간이라도 자제했다면 그렇게 하기가 훨씬 더 어려울 것이다.

이처럼 빌 클린턴의 과거 행실이 다시금 조명 받는 것이 마찬가지로 성추행 의혹으로 비난 받는 대통령(트럼프)이 미국을 이끌고 있는 시점이라는 사실이 아이러니다. 얼마 전 트럼프 대통령은 앨라배마주 연방 상원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로이 무어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무어 후보는 성추행 전력으로 논란을 일으킨 인물이다(피해자 중에 미성년자도 있다는 의혹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어 후보에 대해 “그는 그런 적이 없다고 전면 부인한다”고 말했다. 물론 그럴 것이다. 빌 클린턴도 얼굴에 철판을 깔고 부인하지 않았는가?

도나 브라질은 1992년 빌 클린턴 캠프에서 일했다. 24년 뒤인 지난해 힐러리 클린턴이 대선 후보로 선거운동을 하는 동안 브라질은 민주당 전국위원회(DNC) 임시의장을 지냈다. 나는 그녀에게 빌 클린턴에게 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성들과 트럼프·무어의 피해자들이 어떻게 다른지 물었다. “클린턴은 탄핵당했다는 것이 차이”라고 브라질이 답했다. “반면 트럼프는 대통령에 선출됐고, 무어는 상원의원이 되려 한다.” 다시 말해 빌 클린턴은 죗값을 치렀지만 공화당 인사들은 아직 처벌 받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럴지 모른다. 그러나 탄핵은 빌 클린턴의 르윈스키에 관한 위증에 책임을 물은 것이지 그녀와 가진 성관계를 문제 삼은 건 아니었다. 그 이래 그는 법률가다운 궤변으로 죄를 ‘뉘우쳤을’ 뿐이다. 2004년 그는 르윈스키 스캔들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가장 나쁜 이유로 일을 저질렀다. 내가 그럴 수 있었다는 게 그 이유다.” 게다가 그는 워싱턴에 오기 전의 더 심각한 의혹들에 대해선 전면 부인했다.

빌 클린턴이 두 차례의 대통령 임기를 끝내고 퇴임한 이래 그의 유산은 놀라울 정도로 위축됐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까지 불렸던 빌 클린턴은 2008년 대선 후보를 선출하는 민주당 경선 당시 오바마 후보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 공격을 두고 “내가 들은 가장 큰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그로써 흑인 사회에서 그의 이미지는 퇴색했다.

8년 뒤 아내가 민주당 후보로 지명돼 대통령에 출마했을 때 빌 클린턴은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를 이끄는 운동가들로부터 비난 받았다. 그들은 그가 1994년 도입한 ‘삼진아웃제’를 비판했다. [연방 형법으로 제정된 삼진아웃제는 마약범죄 등 강력범죄로 세 번 유죄 판결을 받으면 무기징역에 처하도록 한 제도다. 이 법은 범죄율을 낮추기는 했지만, 빈곤을 부채질하고 오히려 범죄자들이 수감되는 비율을 역대 최고 수준으로 높였다. 특히 흑인들이 불균형적으로 피해를 당한 악법으로 클린턴 시대의 가장 잘못된 정책 중 하나에 꼽힌다.] 그러나 빌 클린턴은 “열세 살짜리를 마약에 취하게 만든 갱단 두목들” 등을 비난하며 장황한 설명으로 변명했다.

섹스 문제를 제쳐놓더라도 빌 클린턴의 대통령 재임 8년의 업적은 서서히 빛을 잃어갔다. 도널드 트럼프의 선거운동은 한마디로 자유무역과 경제 규제완화에 대한 심판이었다. 빌 클린턴이 그 두 가지를 만들어낸 건 물론 아니다. 그러나 그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체결했다. 또 그는 투자은행을 상업은행에서 분리하도록 한 금융규제법인 글라스 스티걸법(Glass-Steagall Act)을 폐지했다. 1933년 제정된 그 법은 수십 년 동안 은행이 복잡한 금융공학을 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그런 금융공학이 2008년 세계적인 금융붕괴를 불렀다. 게다가 중국은 빌 클린턴의 도움이 없었으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2012년 한 비판자는 빌 클린턴을 두고 “아웃소싱 최고 사령관”이라고 불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 그 모든 것을 되돌려 놓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은 남편의 엽색 행각을 변호하느라 수십 년을 보냈다. 또 지난해엔 인종차별주의와 글로벌리즘을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은 그를 옹호했다. 다른 경우였다면 아내가 남편의 결점에 대한 해명을 강요당하는 것이 터무니없이 불공정하다는 맹비난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클린턴 부부의 경우 유권자들은 그 두 사람이 서로 단점을 보완해주는 명콤비라는 사실을 알고 그들을 지지했다. 미국프로농구(NBA)에서 LA 레이커스를 챔피언 결정전 3연패로 이끌었던 섀킬 오닐-코비 브라이언트 콤비처럼 말이다. 클린턴은 언제나 부부로 일컬어진다. 케네디 형제나 부시 부자처럼 단수가 아니라 복수로 불린다. 그렇다면 2024년 미국 대선에선 클린턴 부부의 딸 첼시가 나서면 어떨까? 두고 볼 일이다.

- 알렉산더 나자리언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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