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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드라마가 너무 복잡해졌어!

TV 드라마가 너무 복잡해졌어!

줄거리가 비교적 단순한 수사물이나 의학물보다 얽히고설킨 반이상향 수수께기 풀기식 작품 쏟아져
놀런 감독은 2010년 영화 ‘인셉션’으로 복잡한 스토리텔링의 수준을 한 단계 더 끌어올렸다. / 사진:COURTESY OF LEGENDARY PICTURES
요즘은 예측 가능하고 구성이 단순한 TV 드라마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현상은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대표작 ‘다크 나이트’) 탓이 크다.

놀런 감독이 2000년 선보인 영화 ‘메멘토’는 플롯이 너무 복잡해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다. 심리 스릴러인 이 영화는 동생 조너선 놀런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놀런이 직접 대본을 쓰고 감독을 맡았다. 사고로 머리를 다친 레너드(가이 피어스)는 자신의 아내를 살해한 범인을 찾는다. 하지만 그는 머리 부상으로 전향성 기억상실에 시달린다. 매 5분마다 단기 기억상실이 일어나 새로운 기억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놀런 감독은 주인공의 이런 심한 혼란 상태를 장면 분할로 시각화했다. 레너드가 미스터리를 풀려고 하는 과정(실제 영화의 진행)을 보여주는 컬러 장면은 시간의 역순으로, 과거를 회상하는 흑백 장면은 시간 순서대로 제시된다. 이처럼 고도로 복잡하고 비선형적인 진행에 영화 팬들과 비평가들이 매료되면서 이 영화는 흥행 성공에 이어 아카데미 최우수 대본상을 포함해 2개 부문에 후보로 지명됐다. 또 놀런은 이 작품을 계기로 우리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영화감독 중 한 명으로 부상했다.

놀런 감독의 영향은 TV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드라마 ‘트윈 픽스’가 이런 복잡한 모델을 개척한 뒤 20년이 지난 시점에 놀런 감독은 캐릭터 발전이나 논리보다 기발한 구조와 미로처럼 복잡한 수수께끼 풀기를 앞세우는 스토리텔링이 시청자를 사로잡는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그에 따라 ‘메멘토’ 이후 제작된 TV 드라마 다수는 의도적으로 혼란을 조장하며 끊임없는 설명을 요구한다. ‘로 앤 오더’ 같은 수사물처럼 단순한 줄거리가 아니라 복잡하게 얽힌 플롯을 가진 드라마라야 성공한다는 뜻이다.

2004년 시작된 드라마 ‘로스트’는 그런 발상을 바탕으로 미래 상상과 과거 회상,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단서가 뒤섞인 줄거리에 수많은 캐릭터를 더하면서 시즌6까지 이어졌다. 러시아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플롯 속에 작은 플롯이 이어지는 이 드라마는 TV의 작은 화면으로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규모가 컸다. 플롯과 캐릭터를 둘러싼 수수께끼를 풀려는 팬들에게 단서를 제공하는 책과 해설 웹사이트까지 등장했다.

이 드라마가 성공하면서 모방 작품도 쏟아졌다. 이 작품은 인터넷 시대의 이상적인 스토리텔링 방식이었다. 과거의 드라마 팬들은 사무실에 출근해서 전날 본 드라마의 주요 장면을 이야기하고 의견을 교환했지만 지금은 온라인 포럼에서 그런 분석이 하루 24시간 가능하다. 해설이 실제 드라마보다 더 복잡한 경우도 있다. 대본 작가도 예전과 달리 팬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놀런 감독은 2010년 영화 ‘인셉션’으로 복잡한 스토리텔링의 수준을 한 단계 더 끌어올렸다. 호평을 받은 이 작품은 플롯이 너무 복잡해 몇 번을 봐야 겨우 이해가 갈 정도였다. 다른 사람의 잠재의식 속에 들어가 정보를 훔친다는 이 영화의 전제는 또 다른 복잡한 구성의 TV 드라마에 영향을 미쳤다.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거장 J. J. 에이브럼스와 조너선 놀런이 공동 제작을 맡은 HBO의 ‘웨스트월드’였다.

1973년 제작된 동명의 영화를 바탕으로 한 이 드라마는 테마 공원 웨스트월드에서 인간의 노리개로 쓰이던 안드로이드 로봇들이 각성하면서 반란을 일으키는 이야기다. 2016년 시작된 이 드라마는 오는 4월 22일부터 시즌 2가 방영될 예정이다.

진지한 사고를 유발하는 놀런 형제 특유의 비유가 녹아 있는 이 작품은 HBO 사상 첫 시즌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연예잡지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의 TV 비평가 제프 젠슨은 이렇게 평했다. “‘웨스트월드’의 깊이는 기억이나 자유의지, 또는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것에 관한 질문에 있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가 스스로 허용하는 것보다 더 인간적이 될 수 있는지, 또는 우리의 이야기가 문화적으로 허용되는 것보다 더 풍요롭고 의미가 있는지를 묻는 데서 비롯된다.”

머리를 써야 하는 복잡한 오락물이 상업적으로 성공한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그런 작품이 많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요즘 나오는 그런 작품들을 보면 특히 놀런 감독의 영향력이 역력하다(놀런 자신은 리들리 스콧 감독의 1982년 작품 ‘블레이드 러너’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가장 최근 나온 난해한 드라마 4편을 소개한다.
 ‘바빌론 베를린’(넷플릭스)
사진:FREDERIC BATIER/X FILME 2017
폴커 쿠트셔의 소설을 바탕으로 하고 톰 티크베르(‘롤라런’)가 대본과 감독에 참여한 이 작품은 제작 비용(4000만 달러)이 가장 많이 든 비영어권(독일) TV 드라마다. 볼거리가 풍성하고 화려한 이 16편짜리 스릴러의 배경은 1929년 베를린이다. 경제가 어렵고 창의력이 만발하던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섹스와 마약, 범죄에서 무엇이든 허용되던 때였다(브라이언 페리가 가학피학성애 클럽에서 밤무대 가수로 깜짝 등장한다). 범죄 드라마로 분류되지만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 민족의 지도자로 부상한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여기 소개된 작품 중 가장 단순하지만 복잡한 플롯 반전과 19명 이상의 캐릭터가 등장해 상당한 주의집중을 요구한다.
 ‘카운터파트’(스타즈)
사진:COURTESY OF STARZ ENTERTAINMENT
배우 J. K. 시먼스(‘위플래시’)를 좋아한다면 저스틴 마크스가 제작한 이 미래형 스릴러를 더욱 즐길 수 있다. 이 드라마 역시 베를린이 무대지만 시점은 현재다(아니면 우리가 그냥 그렇다고 생각하는 걸까?). 여기에 나오는 베를린은 장벽이 아니라 30년 전 실험이 잘못되면서 만들어진 ‘평행세계’에 의해 분리됐다. 그 결과 한쪽 세계의 모두는 다른 쪽 세계에 유전적으로 똑같은 카운터파트를 갖고 있다(따라서 시먼스도 2명이 된다). 하지만 양쪽 세계의 소수만이 그런 사실을 안다. 혼란스럽지만 기발하고 분위기 있으며 긴박감이 넘친다. 첩보소설의 대가 존르 카레의 영향도 많이 받은 작품이다.
 ‘다크’ (넷플릭스)
사진:JULIA TERJUNG/NETFLIX
얽히고설킨 플롯과 독일 사이에 뭔가가 있는 걸까? 넷플릭스의 첫 독일어 드라마인 ‘다크’의 무대 역시 독일이다. 베를린이 아닌 작은 시골 마을에서 일어난 아이의 실종 사건을 계기로 평범했던 네 가족의 삶이 뒤틀어진다. 바란 보 도다르가 연출을 맡고 얀티에 프리제가 대본을 쓴 이 드라마는 유럽판 ‘기묘한 이야기’(넷플릭스의 인기 드라마)라고 표현할 수도 있지만 1980년대의 대중문화보다는 시간을 조정하는 음울한 내용이다(이야기는 2019년과 1985년, 1953년을 오간다). 이 분위기 있는 미스터리는 시즌 1의 마지막에 놀라운 반전을 연출한다(현재 제작 중인 시즌 2에서 그 문제가 다뤄진다).
 ‘얼터드 카본’ (넷플릭스)
사진:KATIE YU/NETFLIX
10편으로 제작된 이 드라마의 복잡한 플롯을 헷갈리지 않고 따라가려면 공책이 반드시 필요하다. 리처드 K. 모건의 2002년 사이버펑크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350년 후 신기술로 의식을 저장하고 육체를 교환할 수 있는 미래를 배경으로 언보이 족의 마지막 생존자 타케시 코바치가 억만장자 반크로프트의 자살 사건을 수사하면서 겪는 이야기다. SF 미스터리 누아르 장르로 한 육신이 죽으면 그냥 ‘시신’이 아니라 ‘슬리브’ 상태가 된다. 당연히 돈 많은 사람은 좋은 육신(슬리브)을 선택하고, 거기에 자신의 메모리가 저장된 ‘스택’만 삽입해 계속 살아가려고 한다. 진실을 파헤칠수록 복잡한 과거가 뒤엉켜 얼터드 카본의 세계를 혼란 상태로 만든다. 폭력적이고 선정적이며 전하고자 하는 주제가 매우 복잡하다.

- 메리 케이 실링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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