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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세난 속에 급감한 월세] 전세 넘치는데 왜 비싼 월세 찾나

[역전세난 속에 급감한 월세] 전세 넘치는데 왜 비싼 월세 찾나

앞으로 1~2년은 전세 전성시대…장기적으로는 전세제도 사라질 것
서울에서 자영업을 하는 최영섭(가명·61)씨는 요즘 한숨이 가득하다. 아파트 월세를 받아 노후 생활비를 마련하려는 계획에 차질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최씨는 지난 2월 입주를 시작한 서초구의 전용면적 84㎡형 아파트를 애초 월세 놓을 계획이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월세가 보증금 1억원에 320만원을 호가했다. 하지만 전셋값이 약세를 보이면서 월셋값도 1억원에 200만원으로 뚝 떨어졌지만, 그나마 세입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 최씨는 “당초 월 300만원 이상을 받아 노후생활비로 사용할 계획이었지만 어렵게 됐다”며 “잔금 연체 이자를 계속 물 수 없어 일단 입주하고 2년 후 다시 월세로 내놓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가속화하던 ‘전세의 월세화’ 현상이 주춤하고 있다. 전세 물건이 넘쳐나면서 수요자들이 값 비싼 월세 찾기를 꺼리고 있는 영향이다. 아파트 단지마다 월세 물건이 쌓이고, 시세도 약세를 보인다. 저금리와 전세난 속에 진행되던 주택의 ‘월세화 현상’도 주춤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월 전국의 월세(6만6282건) 거래량은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13% 감소했다. 같은 기간 전세 거래량 감소분 (3.1%)보다 훨씬 많이 줄어든 것이다. 전체 임대 시장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도 줄어들고 있다. 지난 1~2월 누계 전월세 거래량 중 월세 비중은 41.4%로 같은 기간 보다 2.1%포인트 떨어졌다. 이처럼 월세시장이 침체하고 있는 것은 수급에 미스매칭(불일치)이 생겼고, 그 정도가 갈수록 심해지고 때문이다.
 2월 월세 거래량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 감소
부동산정보회사인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전국의 새 아파트 입주 물량은 총 44만여 가구에 이른다. 이는 2000년 이후 입주 물량을 집계한 이래 최대 물량이다. 이는 ‘하우스푸어 사태’가 일어났던 2012년 전국 아파트 입주 물량보다 6000가구 이상 많은 것이다. 재고 물량 대비 입주 물량으로 따져보면 실감이 난다. 충북은 재고 아파트에 7.44% 물량인 2만2488가구가 입주할 예정이며, 이어 경남 6.39%, 경기 6.22% 정도다. 올해는 주택 공급 과잉의 첫해다. 입주 물량 과다에 따른 후유증이 본격화하고 있다. 그 영향이 바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전월세 시장이다. 전월세 시장은 현재 시점의 수요와 공급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매 시장은 현재~미래 전체 구간의 수급을 반영한다. 즉, 매매 시장은 미래의 가격이 오른다는 기대가 있다면 현재 시점에서 가격은 떨어지지 않는다. 입주 물량이 많은 곳에서 전월세 가격이 급락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세입자들이 전세보다 월세를 꺼리니 월세 매물이 더 적체되고 가격도 빠지는 것이다.

집주인 입장에서도 월세의 매력이 줄고 있다. 아파트 전월세 전환율(전세를 월세로 전환했을 때의 연 환산이율)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 1월 당시 만에도 수도권 아파트 전월세 전환율은 5.52%에 달했지만, 지난 3월에는 5%대가 붕괴(4.95%)됐다. 서울도 같은 기간 4.88%에서 4.24%로 떨어졌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에덴공인 김치순 사장은 “월세 물건이 늘다보니 전세를 월세로 바꿀 때 적용되는 이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기도 용인의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도 “기본적으로 월세시장은 전세와는 달리 세입자 우위인 상품”이라며 “주변 지역에 아파트 전세 물량이 넘치다보니 월세 집주인이 더욱 교섭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은 전국 어디를 가나 비슷하다. 다만 현상은 비슷하지만 원인은 각각 다르다. 지방과 수도권은 주로 공급 과잉에 따른 영향이 강하다. 하지만 입주 물량이 많지 않은 서울은 공급 과잉보다는 수요와 공급의 미스매칭에 그 원인이 있는 것 같다. 즉, 전세 수요자들이 매수세로 돌아서면서 일시적 전세 수요 공백이 발생한 것이다. 애초 전세로 더 거주하려고 했던 세입자들이 집값이 더 오를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커지자 군집행동식으로 매수로 돌아선 것이다. 매수세에 가담한 사람들은 고소득 자영업자, 전문직 종사자, 회사원 등 구매력을 갖춘 세입자들인 것으로 분석된다. 전셋값이 집값의 70%에 육박해 전세 거주자들이 시장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매수세로 돌변, 시장 불안의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서울 전세 거주자의 수도권 이동도 한 요인이다. 발달된 교통수단을 활용해 수도권 지역의 싼 신규 아파트로 전세를 찾아 이동하는 ‘탈 서울현상’도 한몫했다는 얘기다. 이는 강남 재건축 철거 이주 수요의 증가에도 강남권 전세시장의 약세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봄 전월세 시장이 이상신호가 켜진 것은 겨울방학 이사철 특수 실종에 따른 매물 적체도 한 요인이다. 다시 말해 한해 최대 이사철인 겨울방학 특수가 없었고, 그때 소화되지 못한 물량이 여전히 적체돼 있다 보니 전셋값이 빠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전월세시장은 봄 이사철이 되어도 물량이 넉넉하기 때문에 당분간 안정세는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요즘 입주 물량이 넘치면서 주택시장에서는 집주인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역(逆)전세난이 일고 있다. 공급 쇼크로 전월세 시장에 소화불량과 동맥경화증이 심각해져 생긴 현상이다. 역전세난은 심각한 정도가 문제지, 경기 남부는 물론 서울 한복판에서도 나타난다. 특히 신규 입주 단지에서는 물량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역전세난이 심한 상황이다. 전셋값을 받아서 잔금을 치를 계획이었던 분양 계약자들이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는 데다 전셋값이 하락하면서 이중고를 겪고 있다. 신규 입주 단지에선 입주율이 떨어지면서 ‘불 꺼진 아파트’까지 속출하고 있다.
 아파트 전월세 전환율 5%대 붕괴
전세시장은 물건이 넉넉하기 때문에 안정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추세는 1~2년 더 이어질 가능성 크다. 일각에서는 집값 하락 기대심리로 집을 사지 않고 전세로 눌러앉는 수요가 많아지면 전셋값이 오를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입주 물량이 올해는 물론 내년에도 많기 때문에 전월세시장은 안정될 가능성이 더 크다. 특히 상당수 분양 계약자들이 잔금을 치르기 위해 싼 전세를 지속적으로 공급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그동안의 주택시장의 월세화 현상이 주춤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세 공급이 많아 일시적으로 전세 종말보다 반짝 전세 부활시대가 이어질 것이란 얘기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후진국형 임대차 제도인 전세는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당분간 전세 거래가 늘면서 전성시대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전세 공급 확대는 세입자 입장에서는 그만큼 저렴한 값으로 거주를 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주택을 통해 월세 수입을 챙기려고 했던 은퇴자들에겐 비상이 걸린 셈이다. 결국 주택을 통해 월세를 놓으려면 세입자들이 선호하는 핵심 지역으로 압축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계속 월세 놓으려면 입지 좋아야
안정적인 월세 수입을 올리기 위해서는 입지와 상품 측면에서 가치가 있는 아파트를 골라야 낭패를 당하지 않는다. 우선 주거지로서 입지 경쟁력이다. 주거지 경쟁력이 높다는 것은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라는 뜻이다. 이른바 주거 프리미엄이 형성된 곳이다. 이런 곳은 교통(역세권 특히 더블 역세권), 교육(학원·학군), 편의시설(쇼핑)이라는 명품 주거지 3박자를 갖춘 곳이다. 이런 곳이 바로 현대판 명당으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라. 이런 조건을 갖춘 아파트는 가격이 너무 비싸 ‘그림의 떡’이 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투자 금액 한도 내에서 조건에 최대한 부합하는 지역을 선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상품의 경쟁력도 따져야 한다. 월세가 잘 나가려면 지역도 잘 골라야하지만 상품도 잘 선택해야 할 것이다. 월세를 받으려면 무엇보다 세입자가 좋아하는 상품이어야 할 것이다. ‘신축 10년 이내+소형+중저가’ 조건을 맞출 경우 공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 월세 200만원을 넘어서는 고가 월세나 중대형 아파트는 부유층 밀집지역이 아니면 세입자를 찾기 어렵다. 투자금액 한도 내에서 월세 수입 목적으로 아파트를 매입한다면 근거리에 저가 소형 여러 채가 낫다. 월세 살이 수요는 중장년층보다는 젊은 층인데 빈약한 급여로서는 비싼 월세를 감당하기 어렵다. 월세 부담을 낮추려면 아파트값이 일단 싸야 한다. 요컨대 월세가 잘 나가려면 입지, 상품 등에서 우월적 지위에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투자처를 고를 때 월세가 상승하는 지역이 어딘지 항상 눈여겨보라. 다리품을 팔아 그런 곳을 찾아내는 게 실패하지 않은 부동산 투자법이 아닌가 싶다.
 [박스기사] 전세의 역사는 ... 광복 이후 도시·산업화로 빠르게 확산
전세제도에 대해 적고 있는 관습조사보고서. / 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세는 오래 전부터 관행처럼 행해져 정확한 기원을 알 수는 없다. 역사학계에서는 조선시대 전당(典當)이라는 제도가 전세로 발전했다고 보고 있다. 전당은 논밭을 담보로 돈을 융통하던 제도로 조선시대 후기엔 가옥에도 적용됐다. 전세는 이런 가사전당(家舍典當) 방식이 공증제도의 변천에 따라 발전한 것으로 여겨진다. 전세와 관련된 공식적인 자료로 가장 이른 것은 1910년 조선총독부가 만든 ‘관습조사보고서(慣習調査報告書)’다. 이 보고서는 “전세란 조선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가옥 임대차 방법”이라며 “차주가 일정한 금액(가옥 가격의 반액 내지 7·8할)을 소유자에게 기탁하면 별도의 차임을 지불하지 않고 반환 시 기탁금을 돌려받는다”고 적고 있다.

관습적으로 이뤄지던 전세 거래는 이후 점차 법적 제도로 인정받게 된다. 완전히 제도화된 건 미 군정기 직후인 1949년이다. 경기개발연구원에 따르면 당시 미 군정의 법률자문관이던 찰스 로빈기어는 한국민법전초안(韓國民法典草案)에서 전세를 서구의 모기지(mortgage)와 유사한 제도로 인식해 한국의 전세권을 인정했다. 관습으로 성행하던 전세권이 민법제정으로 물건(物件)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이후 도시·산업화로 전세는 빠르게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당시 시대 상황상 전세는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에게 이득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은 빠른 경제성장으로 집을 살 여력이 커지면서 집값이 급등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집을 사기 위해 은행에서 돈을 빌리지 못했다. 정부가 산업 발전에 재정을 투입하기 위해 개인 대출을 억제한 반면 저축을 장려하기 위해 예금에 높은 이자를 줬다. 이런 상황에서 전세는 집주인이 집을 살 때 모자란 목돈을 보충하는 통로였다. 전셋값이 지금의 주택담보대출 역할을 한 것이다.

또 전셋값은 불확실한 세입자의 신원을 보증하는 역할을 했고, 집주인은 매달 월세를 걷는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었다. 세입자도 매달 월세를 내는 것보다 목돈을 맡겨두는 게 편했다. 목돈을 강제로 저축하게 해서 향후 집을 사게 하는 ‘징검다리’ 역할도 했다. 물론 긍정적인 면만 있었던 건 아니다. 전셋값을 두고 세입자와 집주인 간 다툼이 빈번히 발생했고, 최근 몇 년처럼 수요 공급의 미스매칭으로 전셋값이 급등하거나 급락해 세입자의 고충이 컸다. -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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