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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리스크에 속타는 기업 총수들] 지주사는 오너 일가 계열사는 전문경영인에게?

[자녀 리스크에 속타는 기업 총수들] 지주사는 오너 일가 계열사는 전문경영인에게?

SPC·대한항공·한화그룹 등 3세의 갑질·일탈 줄 이어...재벌가 가족헌장 도입할 만
허영인 SPC그룹 회장의 차남인 허희수 전 부사장이 회사 경영에서 물러났다. 허 전 부사장은 지난 8월 7일 대마 밀수 및 흡연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그는 대만 등 해외에서 액상으로 된 대마를 몰래 들여와 흡입한 것으로 밝혀졌다. 대마초의 진액 형태인 액상 대마는 특유의 냄새는 나지 않는 대신 환각성은 2∼3배 더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허 전 부사장은 2007년 파리크라상 상무로 입사해 파리크라상 마케팅본부장, SPC그룹 전략기획실 미래사업부문장 등을 거쳤다. 2016년에는 미국 유명 햄버거 브랜드 ‘쉐이크쉑버거’를 국내에 들여온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는 능력을 인정받아 그해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번 사건이 터지자마자 SPC그룹은 법과 윤리,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허 전 부사장을 경영에서 아예 손을 떼도록 했다고 발표했다.
 SPC그룹 허희수 부사장, 경영에서 물러나
재계 3세가 일으킨 사회적 물의는 이뿐만 아니다. 대표적인 곳이 한진그룹이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장녀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차녀인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 겸 전 진에어 부사장은 갑질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조현아 전 부사장은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으로 징역 1년을 살기도 했다. 2014년 12월 미국 뉴욕 JFK국제공항에서 땅콩 서비스를 문제 삼아 항공기를 램프리턴(항공기를 탑승 게이트로 되돌리는 것)을 하도록 지시하고 사무장을 강제로 내리게 한 혐의다.

최근에는 2013년부터 올해까지 관세를 내지 않고 해외에서 구매한 의류 등 개인 물품 6억여 원어치를 대한항공 항공기 등을 이용해 국내에 몰래 들여온 혐의로 밀수와 탈세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검찰은 7월 관세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기각됐다. 조현민 전 전무는 3월 홍보대행사 직원에게 음료수를 뿌리고 물컵을 던진 이른바 ‘물벼락 갑질’로 경찰수사를 받았다. 이들의 갑질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조양호 회장은 두 딸의 그룹 내 모든 직책을 박탈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셋째 아들 김동선 전 한화건설 차장도 재벌 3세 갑질 논란에 곧잘 등장하는 인물이다. 김 전 차장은 지난해 1월 서울 청담동 주점에서 종업원을 폭행한 혐의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80시간을 선고받았다. 그는 집행유예 기간에도 대형 로펌의 신입 변호사들과 술자리를 하던 중 변호사들에게 행패를 부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았다. 해당 사건은 본인이 사과하고, 피해자들이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불구속 입건으로 일단락됐다. 이들뿐 아니라 현대가(家) 3세인 정일선 현대BNG스틸 사장과 대림가(家) 3세인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은 운전기사에게 폭언과 폭행을 일삼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기도 했다.

재계 3세들의 사건·사고는 소속 기업에 고스란히 악영향을 미친다. SPC그룹의 유일한 상장사 SPC삼립 주가는 허 전 부사장 구속 소식 후 이틀 동안 4% 가까이 하락했다. 진에어도 조 전 전무의 물벼락 갑질 논란이 있던 4월 이후부터 현재까지 주가가 35% 떨어졌다. 실적 부진도 이어지고 있다. 진에어의 올 2분기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18.4% 증가한 2265억원을 기록했으나, 영업이익은 62억원으로 50% 감소했다. 이는 시장 기대치(134억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당기순이익도 87.8% 감소한 9억9400만원이었다. 진에어 측은 “전통적으로 2분기가 항공 업계 비수기인 데다 최근 지속적인 국제 유가 상승으로 유류비가 많이 올랐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조 전 전무의 갑질과 불법 등기이사 논란 이후 불매운동에 따른 탑승객 감소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두 딸의 갑질 논란은 한진그룹 전체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지면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대한항공 및 진에어 불매운동’와 관련된 청원이 올라왔다.
 오너가 리스크에 주가·실적도 주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지난해 8개 기업집단 31개 상장계열회사를 분석한 ‘오너 리스크가 기업 가치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갑질에 따른 오너 리스크 사건 발생 이후 5일 후부터 주가가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너 리스크가 발생한 기업은 사건이 뉴스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알려진 이후 공통적으로 주가 하락 현상을 겪었다는 것이다. 임현일 한국기업지배구조원 부연구위원은 “오너와 오너 일가의 사회적 문제와 관련된 이슈는 기업 주가의 단기 수익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면서 “이런 현상은 소액주주를 포함한 일반 투자자에게 부정적인 영향과 피해를 줬다”고 말했다.

회사 경영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도 있다. 특히 진에어는 면허취소 위기를 가까스로 넘겼다. 조 전 전무가 미국 국적를 가지고 있는 데도 진에어 등기 이사를 6년 간 맡았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면허취소 논란이 벌어졌다. 국내 항공법상 외국인은 국가 안보 등을 이유로 국내 항공사 등기이사가 될 수 없다. 다만 국토부는 진에어의 면허를 취소할 경우 초래될 수 있는 근로자 고용 불안정, 소액주주 피해, 예약객 불편 등 부정적 파급효과가 더 크다고 판단해 진에어 면허 유지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진에어에 대해 일정 기간 신규 노선 허가를 제한하고 신규 항공기 등록 및 부정기편 운항 허가를 제한하는 등 제재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진에어는 3분기에 성장성과 수익성을 극대화를 위해 공격적인 신규 기재 도입(B737 2대, B777 1대)을 계획했지만, 면허취소 논란으로 신규 기재 등록도 미뤄졌다. 류제현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하반기에도 신규 기재 도입이 무산되면서 실적 기대감이 낮아지고 있다”면서 “최근 반등 기조에 있던 시장점유율도 정체 내지 하락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미래에셋대우는 목표주가를 기존 3만5000원에서 3만2000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전문가들은 재벌가 3세의 갑질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원인으로 책임감 부재를 꼽는다. 특권의식에 젖어 대기업 오너로서의 책임감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는 뉴욕타임스가 조현민 전 전무의 ‘갑질(Gapjil)’ 기사를 보도하며, 중세 봉건 귀족의 못난 행태에 비유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그들의 특권의식은 비서나 운전기사 등 자신을 가까이에서 ‘모시는’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는 태도로 나타나곤 한다.

지난 4월 조현민 전 전무의 갑질 논란이 불거졌을 당시 JTBC [썰전]에서도 해당 내용을 다뤘다. 당시 박형준 동아대 사회학과 교수는 “재벌1세는 자수성가형이 많아 강한 기업가 정신을 갖고 있고, 2세는 재벌 1세의 아들이라는 것 때문에 더 키워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사업가 정신이 있다”면서 “그러나 재벌 3세는 온실에서 자라다 보니 전투력과 기업가 정신이 약해지게 마련”이라고 재벌 3세들의 문제점을 언급했다.

실제로 재벌 3세들은 보통 해외에서 대학이나 MBA(경영학석사) 과정을 마치고 부모 회사에 입사한다. 입사 후 보통 7~8년 후 임원이 된다. 이들이 경영수업을 받는 동안 기업에서는 자녀들에게 넘겨줄 경영권 승계작업을 준비한다. 이 과정에서 차명 재산 상속, 일감 몰아주기 같은 불법과 편법이 동원되기도 한다. 올해 초 공정거래위원회가 아모레퍼시픽그룹이 서경배 회장의 장녀 민정씨가 주요 주주로 있는 이니스프리에 일감 몰아주기를 했다는 의혹을 조사했던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이런 구조 탓에 재벌 3세들의 윤리도덕성은 물론, 경영능력도 제대로 검증하기 어렵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최근 한진그룹 자녀 사태로 기업들도 이번 일을 반면교사 삼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시대가 변하는 만큼 기업가 정신는 물론 사태에 따른 해결책이 나와야한다”라고 말했다. 기업가 정신을 키우려면 재벌 3세도 해외 기업처럼 엄정한 경영능력 검증 시스템을 거쳐야 할 필요가 있다. 스웨덴 국내총생산(GDP)의 30%를 차지하고 있는 발렌베리그룹은 가족기업의 성공적인 모델 중 하나다. 발렌베리그룹은 현재 항공기와 통신기기, 가전제품과 대형트럭 등 100여 개의 계열사를 가지고 있으며, 6대 세습을 눈앞에 두고 있다. 우리나라의 재벌처럼 수많은 계열사를 보유하며 세습경영도 이어가고 있지만 사회적 존경도 받고 있다. 가업을 넘기기 전에 자녀의 능력을 검증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발렌베리가에서 후계자가 되려면 까다로운 조건을 맞춰야 한다. 먼저 자신의 능력으로 명문대를 졸업해야 하고,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해 정신력을 길러야 한다. 부모 도움 없이 세계적 금융 중심지에 진출해 실무 경험을 쌓고 금융 흐름을 익혀야 한다. 이 평가는 10년 정도 걸리며 견제와 균형을 위해 각 세대에 2명의 경영자를 뽑는다.
 기업가 정신, 윤리의식 철저히 검증해야
물론 재계 3세의 일탈행위기 이어진다고 그들을 기업 경영에서 배제하고 전문경영인 체제로 바꾸는 것이 최선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남는다. 윤창현 교수는 “가족·오너 경영은 위기 순간에 대응이 빠르고 장기적 안목에서 사업을 추진하는 장점이 있다”며 “지주사를 오너가 책임지고 계열사를 전문경영인이 맡는 분업 체계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총수 일가의 갑질에 따른 오너 리스크로 기업 가치가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가족헌장’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가족헌장은 가문의 철학·원칙·정책 등을 명명백백히 밝혀 둔 문서다. 법적 구속력을 갖지 않지만 가족 간 이견이나 갈등이 발생했을 때 문제를 해결하는 가이드라인으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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