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균의 증시로 본 ‘결정적 순간’(1)] 한국 경제 저성장 신호탄 ‘차·화·정’의 몰락
[김학균의 증시로 본 ‘결정적 순간’(1)] 한국 경제 저성장 신호탄 ‘차·화·정’의 몰락
중국 경기 부양 힘입어 특수 누려…공급 과잉으로 이어져 실적·주가 급락 차화정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으신가?. 여성의 이름 같지만 자동차(車)·화학(化)·정유(精)주식을 일컫는 말이다. 차·화·정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였던 2009~2011년의 강세장을 풍미했던 주도주였다. 2011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차·화·정 종목들의 강세는 거침이 없었다.
차를 대표하는 현대차 주가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의 저점 대비 6배 상승했고, 기아차는 13배, 화의 대표주자인 롯데케미칼은 10배, LG화학은 7배, 정의 대표선수인 SK이노베이션과 S-Oil은 3배씩 올랐다. 2009년 초부터 2011년 상반기까지 채 3년이 안 되는 동안에 나타났던 급등세였다. 같은 기간 동안 종합주가지수(KOSPI)가 1000포인트 수준에서 2200포인트까지 2.2배로 올랐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시 차·화·정 종목들의 뜀박질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다. 이들 주가가 급등했던 배후에는 ‘중국’이 있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중국은 세계 경제의 구세주였다. 2008년 9월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촉발됐던 글로벌 금융위기는 1929년 대공황 이후 가장 큰 경제위기로 평가받았다. 실제로 당시 주식시장의 변동성은 대공황 이후 최고 수준까지 치솟았다. 대공황의 여파가 10년 정도 지속됐기 때문에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에도 경기 침체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위기는 빠르게 봉합됐다. 두 가지 정책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금융 측면에서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중앙은행의 양적완화가, 실물 측면에서는 중국의 공격적인 경기 부양책이다. 현 시점에서 복기해 보면 중앙은행의 저금리 정책이 더 중요했다는 해석을 내리고 싶지만 당시만 해도 중국의 경기 부양책을 더 높게 평가하는 의견이 훨씬 우세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를 비롯한 서구 중앙은행이 돈을 풀어봐야 일본식의 유동성 함정에 빠질 것이라는 비관론이 많았다. 또 미국식 신자유주의의 몰락과 달러 시대의 종결을 점치는 주장도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왔다. 씅홍빈이 쓴 [화폐전쟁]은 미국의 몰락을 예견한 대표적 책인데,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한국에서 베스트 셀러가 되기도 했다. 아무래도 글로벌 금융위기를 일으켰던 미국에 대한 신뢰는 높지 않았다.
이와 달리 중국은 떠오르는 기대주였다. 중국 당국은 4조 위안 규모의 공격적인 경기 부양책을 발표하면서 기대에 부응했다. 4조 위안은 당시 중국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10%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였다. 경기 부양책으로 중국의 수요는 대폭발했다. 한국처럼 중국 경제 의존도가 높은 국가의 대중 수출은 급증했고, 원자재 가격도 급등했다.
1980년대 후반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 직후 나온 ‘자본주의가 중국을 구했다’는 평가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국이 자본주의를 구했다’는 해석으로 바뀌었다. 2010년 중국의 GDP는 일본을 뛰어 넘어 세계 2위로 부상했고, 주요 2개국(G2)이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회자되기 시작했다.
한국의 차·화·정은 중국 특수를 대표하는 종목군이었다. 2011년까지만 해도 중국은 한없이 성장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고, 이에 편승해 한국의 이들 주식에 대한 낙관론도 꺾이지 않았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중국의 성장은 벽에 부딛히기 시작했고, 이들 주식도 급락했다. 주식시장의 주도 종목은 늘 바뀌게 마련이지만, 2011년 이들 종목의 몰락은 큰 상징성을 가진 사건이었다. 차·화·정의 몰락은 중국 특수가 차이나 리스크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고, 한국 경제의 만성적 저성장과 주식시장의 장기 횡보라는 과거에 경험해 보지 못했던 현상의 출발점이었다.
중국의 성장 둔화, 특히 투자를 중심으로 이뤄졌던 성장 모델의 한계가 드러나는 시점에서 차·화·정 주가는 정점을 찍었다. 2011년까지 나타났던 중국의 성장은 건설 투자와 중후장대형 산업에서 이뤄진 과잉 투자에 의한 성장이었고, 중국의 과잉 투자는 중국 특수의 최대 수혜 국가였던 한국에도 부담을 주기 시작했다. 중국의 투자는 더 이상 주변 국가에게 기회가 아니었고, 더 큰 공급 과잉을 만드는 위험한 행위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중국 고성장의 최대 수혜 업종이었던 한국의 조선과 철강은 진작에 중국발 공급과잉이라는 파도에 휩쓸려 버렸다. 최근에는 디스플레이가 중국의 늪에 빠져버렸다.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반도체 경기 정점 논란에도 중국 기업의 반도체 양산이 언제 본격화될 것인가라는 이슈가 잠재돼 있다.
2011년 이후에도 중국 특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화장품을 비롯한 일부 소비재 기업들은 중국 소비 성장의 덕을 봤다. 그렇지만 중국이 투자 중심으로 고성장을 할 때 한국 경제가 포괄적으로 누렸던 수혜에 비하면 중국 소비 성장으로부터 받는 기회의 정도는 미미했다. 2011년부터 한국 경제의 성장 속도는 빠르게 둔화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한국 경제의 성장률은 실질 기준 5%대였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전반적인 성장률이 낮아졌지만, 그래도 2010년에는 4조 위안에 달했던 중국 경기 부양책의 수혜를 받으며 6%대의 고성장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1년 이후 3% 내외의 성장이 고착화되고 있다. 경제의 규모가 커질수록 성장률 둔화를 불가피하게 받아들여야 할 측면이 있기도 하지만 한국은 하강 속도가 너무 빨랐다. 한국 경제는 5%대 성장에서 4%대 성장과 3% 중후반대 성장의 시대가 생략된 채 곧바로 3% 내외의 저성장 국면으로 추락했기 때문이다. 차·화·정의 몰락은 한국 경제의 고성장 시대가 종결됐다는 점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차·화·정 주가가 정점을 친 이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도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2010년 말 이후 한국 주식의 성과 부진이 장기화되고 있다는 점도 저성장의 산물이라고 본다. 코스피가 요즘과 같은 방식으로 산정되기 시작한 1980년 이후 2018년 8월말까지 코스피의 연평균 등락률은 8.3%였다. 1980년 이후 저성장 본격화 직전인 2010년까지의 연율화 등락률은 10.2%였다. 그러나 2010년 말 이후의 연평균 수익률은 1.4%에 불과하다. 1998년 주식시장 완전 개방 이후 미국 증시와의 동조화 현상이 장기간 나타났지만 요즘 한·미 증시는 전혀 다른 궤적을 그리고 있다. 미국 증시의 잇단 사상 최고가 경신 뉴스는 딴 세상 이야기 같다.
이미 우리는 과거에 경험해 보지 못했던 코스피I의 이례적 사이클을 목도한 바 있다. 2011년 6월부터 2016년 2월까지 경험했던 장기 박스권 장세가 그것이다. 코스피는 1850!~2200 포인트의 박스권에서 장기간 벗어나지 못했다. 과거 한국 증시는 높은 변동성을 상징하는 시장이었다. 오르지 않으면 떨어졌다. 엉거주춤한 장기 횡보장세는 익숙하지 않은 경험이었다. 높은 변동성은 한편으로는 위험이지만, 다른 관점에서는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주기적으로 생겼다고 볼 수도 있다. 주가지수의 진폭이 매우 축소된 횡보장세는 어쩌면 한국 경제의 역동성 상실이 반영된 결과일지도 모른다.
코스피의 고점이 추세적으로 높아지는 시장도 아니고, 코스피의 변동성 축소로 마켓타이밍을 통한 수익률 제고도 여의치 않다면 한국 증시에 내재돼 있었던 매력은 점차 약화될 수밖에 없다. 글로벌 투자의 관점에서 안정성을 찾는 투자자는 구미권 증시로 갈 것이고, 높은 위험을 감수하는 투자자는 인도네시아나 베트남 등과 같은 더 ‘날것’의 신흥시장으로 갈 것이다.
한국 자산의 투자 메리트 약화와 관련된 상징적 사건은 채권시장에서도 나타났다. 올해 초부터 한국 금리가 미국보다 낮아진 것이다. 중앙은행의 정책금리는 한국 1.5%, 미국 2.25%로 이미 역전됐고, 연말로 갈수록 금리 격차는 더 커질 것이다. 미국의 연내 추가 1회 금리 인상은 기정사실이 되고 있지만, 한국은 한 번의 금리 인상도 쉽지 않아 보인다. 경제의 장기적 성장 잠재력이 반영되는 장기 금리도 이미 큰 격차를 나타내고 있다. 미국의 10년 만기 국채수익률은 3%를 넘나들고 있지만, 한국은 2.3%대에 머고 있다. 경제의 총체적인 성장성에 대한 기대는 주식보다 채권가격에 더 정확히 반영되게 마련인데, 한·미 금리 역전은 한국 경제의 성장 둔화를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차·화·정 주가의 급락이 한국 경제의 저성장으로 이어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두 사건은 인과관계가 아니라, 선 후관계 정도로 봐야 한다. 차·화·정의 몰락은 한국 경제 고성장 시대의 종결을 의미하는 상징적 사건이고, 그 이후 만성적인 저성장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차·화·정의 몰락이 직접적인 영향을 준 분야가 있다. 바로 한국 기관투자가의 위축이다. 투자자들의 행동은 과거의 경험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이 서울의 부동산에 그렇게 집착하는 이유도 복잡한 분석을 떠나 서울에 집을 사서 가지고 있으면 그 가치가 올라갔기 때문이다. 학습효과는 투자자들의 행동을 규정한다. 지금까지 한국의 주식에 장기간 투자했다면 크게 낭패를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코스피는 1980년 이후 연 평균 8.3%의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는데, 배당을 감안하면 장기 투자자는 연간 10% 가까운 수익률을 얻었을 것이다. 이 글에서 논하고 있는 2011년 이후의 성과는 매우 부진하지만, 역시 배당을 감안하면 연 3% 정도의 수익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 증시를 대표하는 코스피를 기준으로 보면 2011년 이후도 주식투자로 별 재미를 못봤을 따름이지, 큰 손해를 본 것은 아니다.
문제는 한국의 투자자들의 투자 패턴에는 극심한 쏠림이 반복됐다는 점이다. 저축하듯이 나누어서 투자하는 적립식 투자 문화보다는 일거에 목돈을 주식시장에 넣는 경우가 많았다. 안타깝게도 주식시장의 순환적 사이클의 고점 부근에서 투자 자금이 몰리면서 어려움을 겪곤 했다. 2000년 전후의 바이 코리아 펀드 열풍, 2007년 전후 한국 주식형 펀드와 중국 펀드 붐이 분 다음에는 시장이 급격한 조정을 받았고, 투자자들은 큰 손실을 봤다. 집단적 경험이라는 점에서 보면 한국의 대중들이 주식 투자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가지기 힘든 상황이다.
한국 투자자들의 마지막 쏠림이 있었던 시기가 2010~2011년 차·화·정 전성기였다. 당시는 자문형 랩이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던 시기였다. 대부분 자산운용사에서 가장 유능했던 펀드매니저들이 독립해 투자자문사를 차렸고, 이들이 운용하는 자문형 랩으로 뭉치돈이 몰렸다. 자문형 랩은 이른바 ‘되는 종목’에 집중 투자해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는 형식으로 운영됐는데, 이들의 자금이 몰린 종목군이 차·화·정이었다. 중국의 성장은 끝 모르게 지속될 것 같았고, 차·화·정 주가도 계속 그 수혜를 받을 것으로 보였고, 이런 기대는 자문사들의 매수를 통해 주식시장에서 현실화됐다. 이번에도 결과는 안 좋았다. 특히 차·화·정에 집중 투자했기에 이들 종목이 무너지면서 자문형 랩이 받은 충격은 매우 컸다. 차·화·정의 몰락 이후 좀처럼 주식형 펀드나 랩 상품으로 자금이 들어오지 않는다. 과거에는 주가가 오르면 후행적으로 시중자금이 유입되고는 했는데, 이것도 옛말이 돼 버렸다. 2011년 하반기부터 7년째 지속되고 있는 주식시장의 돈 가뭄은 과거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일이다. 외국인이야 한국 주식을 샀다 팔았다 하지만 적어도 국내 유동성은 요지부동, 계속 주식시장을 외면하고 있다. 투자자들의 극심한 쏠림과 운용자들의 특정 종목군 집중투자라는 조합으로 이뤄졌던 자문형 랩의 실패는 긴 후유증을 남기고 있다.
주식시장은 어떤 식으로든 경제의 성장 둔화를 반영하게 마련이다. 앞으로도 시장 자체에 투자해서는 높은 수익률을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나름의 틈새 시세를 잘 찾아야 할텐데, 일차적으로 배당을 많이 주는 주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배당은 자극적인 개념이 아니다. 배당수익률 3% 정도만 돼도 훌륭한 투자 대상이 될 수 있는데, 배당은 대박을 추구하는 투자가 아니다. 다만 장기 박스권이 지속되면서, 시장 대표 지수의 기대 수익률이 낮아지고 있는 상황이라면 매년 배당수익을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형태의 투자가 장기적인 승률을 높일 수 있다. 2011년 이후 코스피가 연평균 1.4%의 수익을 돌려줘다는 점을 감안하면 3%대 배당 투자가 가진 위력을 알 수 있다.
또 배당투자는 저성장 국면에서 더 빛을 발할 수 있다. 경제가 고성장하는 국면에서는 투자를 해서 돈을 벌 기회가 많다. 이때는 배당을 통해 경제적 자원을 사외로 유출시키는 것보다는 수익성 높은 분야에 투자해 파이를 늘리는 행위가 투자자들의 장기적인 이해관계에 부합한다. 마땅한 투자거리를 찾기 힘든 저성장 국면에서는 자금을 기업에 유보해 놓을 명분이 없다. 배당을 통해 주주들에게 부를 나눠져야 하고, 배당을 통해 자기자본을 줄이는 것도 기업의 적정 이익률(ROE) 유지를 위해 필요한 일이다. 글로벌 투자 확대도 불가피해 보인다. 이미 한국 주식의 장기 성과가 부진하고, 금리 경쟁력도 낮아지면서 자생적인 해외 투자 확대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수년 간 붐이 일었던 브라질 채권, 중국 주식, 베트남 주식, 미국 기술주 매수 붐은 한국에서 충족되기 힘든 성장에 대한 욕구가 해외 자산을 통해 발현된 결과로 봐야 한다. 한국 가계의 해외 주식 보유금액은 2014년 3분기 말 1조4000억원에서 지난 3월 말 9조2000억원으로 급증했다. 그럼에도 한국 가계의 해외 자산 보유 비중은 아직도 매우 낮다. 한국 금융자산 중 투자자산(금융자산에서 예금과 보험 제외)에서 해외 주식형 펀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2.8%, 해외 주식 직접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1.0%에 불과하다. 어느 나라 투자자나 자국 자산에 대한 투자비중이 높은 자국자산 선호(Home bias) 현상이 나타나지만 한국은 그 정도가 심한 편이다. 문제는 해외 자산에 대한 축적된 지식과 정보가 부족하다는 점인데, 이는 제도권 금융사의 노력으로 극복해 나가야 한다. 한국의 가계금융자산은 3000조원이 넘는다. 명목GDP 1500조원보다 훨씬 크다. 국부를 키운다는 관점에서도 금융자산의 수익률 제고에 힘을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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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대표하는 현대차 주가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의 저점 대비 6배 상승했고, 기아차는 13배, 화의 대표주자인 롯데케미칼은 10배, LG화학은 7배, 정의 대표선수인 SK이노베이션과 S-Oil은 3배씩 올랐다. 2009년 초부터 2011년 상반기까지 채 3년이 안 되는 동안에 나타났던 급등세였다. 같은 기간 동안 종합주가지수(KOSPI)가 1000포인트 수준에서 2200포인트까지 2.2배로 올랐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시 차·화·정 종목들의 뜀박질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다.
코스피 수익률의 2.2배 수준 기록
그러나 위기는 빠르게 봉합됐다. 두 가지 정책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금융 측면에서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중앙은행의 양적완화가, 실물 측면에서는 중국의 공격적인 경기 부양책이다. 현 시점에서 복기해 보면 중앙은행의 저금리 정책이 더 중요했다는 해석을 내리고 싶지만 당시만 해도 중국의 경기 부양책을 더 높게 평가하는 의견이 훨씬 우세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를 비롯한 서구 중앙은행이 돈을 풀어봐야 일본식의 유동성 함정에 빠질 것이라는 비관론이 많았다. 또 미국식 신자유주의의 몰락과 달러 시대의 종결을 점치는 주장도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왔다. 씅홍빈이 쓴 [화폐전쟁]은 미국의 몰락을 예견한 대표적 책인데,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한국에서 베스트 셀러가 되기도 했다. 아무래도 글로벌 금융위기를 일으켰던 미국에 대한 신뢰는 높지 않았다.
이와 달리 중국은 떠오르는 기대주였다. 중국 당국은 4조 위안 규모의 공격적인 경기 부양책을 발표하면서 기대에 부응했다. 4조 위안은 당시 중국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10%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였다. 경기 부양책으로 중국의 수요는 대폭발했다. 한국처럼 중국 경제 의존도가 높은 국가의 대중 수출은 급증했고, 원자재 가격도 급등했다.
1980년대 후반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 직후 나온 ‘자본주의가 중국을 구했다’는 평가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국이 자본주의를 구했다’는 해석으로 바뀌었다. 2010년 중국의 GDP는 일본을 뛰어 넘어 세계 2위로 부상했고, 주요 2개국(G2)이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회자되기 시작했다.
한국의 차·화·정은 중국 특수를 대표하는 종목군이었다. 2011년까지만 해도 중국은 한없이 성장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고, 이에 편승해 한국의 이들 주식에 대한 낙관론도 꺾이지 않았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중국의 성장은 벽에 부딛히기 시작했고, 이들 주식도 급락했다. 주식시장의 주도 종목은 늘 바뀌게 마련이지만, 2011년 이들 종목의 몰락은 큰 상징성을 가진 사건이었다. 차·화·정의 몰락은 중국 특수가 차이나 리스크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고, 한국 경제의 만성적 저성장과 주식시장의 장기 횡보라는 과거에 경험해 보지 못했던 현상의 출발점이었다.
중국의 성장 둔화, 특히 투자를 중심으로 이뤄졌던 성장 모델의 한계가 드러나는 시점에서 차·화·정 주가는 정점을 찍었다. 2011년까지 나타났던 중국의 성장은 건설 투자와 중후장대형 산업에서 이뤄진 과잉 투자에 의한 성장이었고, 중국의 과잉 투자는 중국 특수의 최대 수혜 국가였던 한국에도 부담을 주기 시작했다. 중국의 투자는 더 이상 주변 국가에게 기회가 아니었고, 더 큰 공급 과잉을 만드는 위험한 행위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중국 고성장의 최대 수혜 업종이었던 한국의 조선과 철강은 진작에 중국발 공급과잉이라는 파도에 휩쓸려 버렸다. 최근에는 디스플레이가 중국의 늪에 빠져버렸다.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반도체 경기 정점 논란에도 중국 기업의 반도체 양산이 언제 본격화될 것인가라는 이슈가 잠재돼 있다.
2011년 이후에도 중국 특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화장품을 비롯한 일부 소비재 기업들은 중국 소비 성장의 덕을 봤다. 그렇지만 중국이 투자 중심으로 고성장을 할 때 한국 경제가 포괄적으로 누렸던 수혜에 비하면 중국 소비 성장으로부터 받는 기회의 정도는 미미했다.
한국 성장률, 주식·채권 수익률 급격히 둔화
2010년 말 이후 한국 주식의 성과 부진이 장기화되고 있다는 점도 저성장의 산물이라고 본다. 코스피가 요즘과 같은 방식으로 산정되기 시작한 1980년 이후 2018년 8월말까지 코스피의 연평균 등락률은 8.3%였다. 1980년 이후 저성장 본격화 직전인 2010년까지의 연율화 등락률은 10.2%였다. 그러나 2010년 말 이후의 연평균 수익률은 1.4%에 불과하다. 1998년 주식시장 완전 개방 이후 미국 증시와의 동조화 현상이 장기간 나타났지만 요즘 한·미 증시는 전혀 다른 궤적을 그리고 있다. 미국 증시의 잇단 사상 최고가 경신 뉴스는 딴 세상 이야기 같다.
이미 우리는 과거에 경험해 보지 못했던 코스피I의 이례적 사이클을 목도한 바 있다. 2011년 6월부터 2016년 2월까지 경험했던 장기 박스권 장세가 그것이다. 코스피는 1850!~2200 포인트의 박스권에서 장기간 벗어나지 못했다. 과거 한국 증시는 높은 변동성을 상징하는 시장이었다. 오르지 않으면 떨어졌다. 엉거주춤한 장기 횡보장세는 익숙하지 않은 경험이었다. 높은 변동성은 한편으로는 위험이지만, 다른 관점에서는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주기적으로 생겼다고 볼 수도 있다. 주가지수의 진폭이 매우 축소된 횡보장세는 어쩌면 한국 경제의 역동성 상실이 반영된 결과일지도 모른다.
코스피의 고점이 추세적으로 높아지는 시장도 아니고, 코스피의 변동성 축소로 마켓타이밍을 통한 수익률 제고도 여의치 않다면 한국 증시에 내재돼 있었던 매력은 점차 약화될 수밖에 없다. 글로벌 투자의 관점에서 안정성을 찾는 투자자는 구미권 증시로 갈 것이고, 높은 위험을 감수하는 투자자는 인도네시아나 베트남 등과 같은 더 ‘날것’의 신흥시장으로 갈 것이다.
한국 자산의 투자 메리트 약화와 관련된 상징적 사건은 채권시장에서도 나타났다. 올해 초부터 한국 금리가 미국보다 낮아진 것이다. 중앙은행의 정책금리는 한국 1.5%, 미국 2.25%로 이미 역전됐고, 연말로 갈수록 금리 격차는 더 커질 것이다. 미국의 연내 추가 1회 금리 인상은 기정사실이 되고 있지만, 한국은 한 번의 금리 인상도 쉽지 않아 보인다. 경제의 장기적 성장 잠재력이 반영되는 장기 금리도 이미 큰 격차를 나타내고 있다. 미국의 10년 만기 국채수익률은 3%를 넘나들고 있지만, 한국은 2.3%대에 머고 있다. 경제의 총체적인 성장성에 대한 기대는 주식보다 채권가격에 더 정확히 반영되게 마련인데, 한·미 금리 역전은 한국 경제의 성장 둔화를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차·화·정 주가의 급락이 한국 경제의 저성장으로 이어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두 사건은 인과관계가 아니라, 선 후관계 정도로 봐야 한다. 차·화·정의 몰락은 한국 경제 고성장 시대의 종결을 의미하는 상징적 사건이고, 그 이후 만성적인 저성장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차·화·정의 몰락이 직접적인 영향을 준 분야가 있다. 바로 한국 기관투자가의 위축이다. 투자자들의 행동은 과거의 경험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이 서울의 부동산에 그렇게 집착하는 이유도 복잡한 분석을 떠나 서울에 집을 사서 가지고 있으면 그 가치가 올라갔기 때문이다. 학습효과는 투자자들의 행동을 규정한다. 지금까지 한국의 주식에 장기간 투자했다면 크게 낭패를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코스피는 1980년 이후 연 평균 8.3%의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는데, 배당을 감안하면 장기 투자자는 연간 10% 가까운 수익률을 얻었을 것이다. 이 글에서 논하고 있는 2011년 이후의 성과는 매우 부진하지만, 역시 배당을 감안하면 연 3% 정도의 수익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 증시를 대표하는 코스피를 기준으로 보면 2011년 이후도 주식투자로 별 재미를 못봤을 따름이지, 큰 손해를 본 것은 아니다.
문제는 한국의 투자자들의 투자 패턴에는 극심한 쏠림이 반복됐다는 점이다. 저축하듯이 나누어서 투자하는 적립식 투자 문화보다는 일거에 목돈을 주식시장에 넣는 경우가 많았다. 안타깝게도 주식시장의 순환적 사이클의 고점 부근에서 투자 자금이 몰리면서 어려움을 겪곤 했다. 2000년 전후의 바이 코리아 펀드 열풍, 2007년 전후 한국 주식형 펀드와 중국 펀드 붐이 분 다음에는 시장이 급격한 조정을 받았고, 투자자들은 큰 손실을 봤다. 집단적 경험이라는 점에서 보면 한국의 대중들이 주식 투자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가지기 힘든 상황이다.
한국 투자자들의 마지막 쏠림이 있었던 시기가 2010~2011년 차·화·정 전성기였다. 당시는 자문형 랩이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던 시기였다. 대부분 자산운용사에서 가장 유능했던 펀드매니저들이 독립해 투자자문사를 차렸고, 이들이 운용하는 자문형 랩으로 뭉치돈이 몰렸다. 자문형 랩은 이른바 ‘되는 종목’에 집중 투자해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는 형식으로 운영됐는데, 이들의 자금이 몰린 종목군이 차·화·정이었다.
차·화·정 이끌던 자문형 랩 몰락으로 기관투자자 위축
주식시장은 어떤 식으로든 경제의 성장 둔화를 반영하게 마련이다. 앞으로도 시장 자체에 투자해서는 높은 수익률을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나름의 틈새 시세를 잘 찾아야 할텐데, 일차적으로 배당을 많이 주는 주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배당은 자극적인 개념이 아니다. 배당수익률 3% 정도만 돼도 훌륭한 투자 대상이 될 수 있는데, 배당은 대박을 추구하는 투자가 아니다. 다만 장기 박스권이 지속되면서, 시장 대표 지수의 기대 수익률이 낮아지고 있는 상황이라면 매년 배당수익을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형태의 투자가 장기적인 승률을 높일 수 있다. 2011년 이후 코스피가 연평균 1.4%의 수익을 돌려줘다는 점을 감안하면 3%대 배당 투자가 가진 위력을 알 수 있다.
또 배당투자는 저성장 국면에서 더 빛을 발할 수 있다. 경제가 고성장하는 국면에서는 투자를 해서 돈을 벌 기회가 많다. 이때는 배당을 통해 경제적 자원을 사외로 유출시키는 것보다는 수익성 높은 분야에 투자해 파이를 늘리는 행위가 투자자들의 장기적인 이해관계에 부합한다. 마땅한 투자거리를 찾기 힘든 저성장 국면에서는 자금을 기업에 유보해 놓을 명분이 없다. 배당을 통해 주주들에게 부를 나눠져야 하고, 배당을 통해 자기자본을 줄이는 것도 기업의 적정 이익률(ROE) 유지를 위해 필요한 일이다. 글로벌 투자 확대도 불가피해 보인다. 이미 한국 주식의 장기 성과가 부진하고, 금리 경쟁력도 낮아지면서 자생적인 해외 투자 확대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수년 간 붐이 일었던 브라질 채권, 중국 주식, 베트남 주식, 미국 기술주 매수 붐은 한국에서 충족되기 힘든 성장에 대한 욕구가 해외 자산을 통해 발현된 결과로 봐야 한다.
저성장 시대에는 배당주와 해외 투자에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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