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국양제 홍콩의 불안한 미래] 중국의 사회 통제로 경제 활력 떨어지나
[일국양제 홍콩의 불안한 미래] 중국의 사회 통제로 경제 활력 떨어지나
‘도망자 조례’ 둘러싸고 홍콩 주민 반발 격화… 민주파 총력전에 중국 대응 주목 홍콩에서 6월 9일부터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것은 겉으로는 홍콩 정부가 추진하는 ‘범죄인 인도 법안’에 대한 홍콩 입법회(의회)의 12일 심의에 반대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영국 식민지였던 홍콩이 1997년 중국에 회귀할 당시 중국이 했던 ‘일국양제(一國兩制)’ 약속을 지키지 않고 홍콩을 중국화한다는 불안이 도사리고 있다.
우선 문제의 법안부터 따져보자. 이 법안은 홍콩이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나 지역에도 경우에 따라 범죄인들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에는 중국과 대만·마카오가 포함됐다. 홍콩에 거주하는 민주인사들이 중국의 요구에 따라 송환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홍콩인들이 불안해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6월 9일의 이 송환법안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홍콩에서 벌어져 주최 측 추산 103만명, 경찰 추산 24만 명이 참가해 온 거리를 가득 채우며 시위를 벌였다.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돌아간 후 벌어진 시위로는 최대 규모다. 홍콩의 역대 시위 중에는 1989년 천안문 사건 당시 150만 명이 몰려 벌였던 동조 시위 이후 가장 크다. 지난 6월 4일 홍콩에서 벌어졌던 6·4 천안문 민주항쟁 30주년 추모 촛불집회에 천안문 관련 집회 사상 최대 규모인 18만 명이 몰렸던 것과 비교하면 홍콩인의 이 법안에 대한 거부감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중국 정부가 30년 전 중국 본토인 베이징에서 벌였던 천안문 사건에 대한 추모 열기보다 당장 중국이 홍콩 당국에 가하고 있는 정치적 압력, 중국에 송환될 수도 있다는 공포, 홍콩의 민주주의와 인권이 침해 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홍콩인을 더욱 자극한 셈이다.
더욱 큰 문제는 홍콩인들이 중국의 일국양제 약속을 근본적으로 불신한다는 점이다. 일국양제는 중국이 사회주의 정치체제 안에서 홍콩과 마카오에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체제를 한시적으로 허용하는 것을 말한다. 1997년 포르투갈과 영국으로부터 마카오와 홍콩을 돌려받을 때 중국이 현지 주민과 서방권을 안심시키기 위해 내놓은 논리다. 개혁개방의 설계자인 덩샤오핑(鄧小平)이 제시한 개념이다. 중국은 대만에 대해서도 일국양제로 통일하자고 요구해왔다. 일국양제는 중국의 공식 통일방안인 셈이다.
그런데 그런 일국양제에 대한 홍콩인들의 불만이 이번 시위에서 고스란히 나타났다. 홍콩인들은 시위에서 일국양제와 함께 ‘홍콩인은 홍콩인이 통치한다(香人治香)’ ‘고도자치(高度自治)’의 3대 원칙을 요구했다. 중국이 홍콩 회귀 당시 약속했던 내용이기도 하다. 단순한 법안 하나만 손본다고 홍콩 주민들이 누그러질 태세가 아닌 셈이다.
홍콩에서 일국양제를 둘러싸고 대규모 항의 시위와 시민 불복종 운동이 벌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2014년 7월 행정장관 선거의 민주화를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당시 주최 측은 51만 명, 경찰은 9만8600명이 참가했다고 주장했다. 홍콩 기본법에 따르면 정부수반인 행정장관은 선거위원회가 간접제한선거를 통해 선출하고 중국 국무원 총리가 임명한다. 국민이 직접 뽑는 지도자가 아닌 것이다. 홍콩 주민은 주민 직접선거를 통한 선출을 요구하지만 중국 당국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이럴 경우 홍콩이 준독립국이 될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정식 명칭이 ‘홍콩 특별행정구 행정장관’인 행정장관은 홍콩의 정부수반이다. 그렇게 높은 자리임에도 현재 주민의 직접 선거가 아닌 간접선거를 통해 뽑는다. 입법회 의원, 구의회 의원, 홍콩에서 선출해 베이징에 보낸 전국인민대표자대회(전인대) 대표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대표, 38개 직능별 선거위원회에서 선출한 사람 등 1200명으로 이뤄진 선거인단에서 선출한다. 가장 많은 선거인단을 차지하는 직능대표는 친중국계가 대부분이어서 대표 선거가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평가가 많다. 선거인단은 처음 400명으로 시작해 1998년부터 800명으로 늘었다. 그런데 2007년 중국 전인대는 2012년 행정장관 선거부터 간접선거 선거인단을 1200명으로 늘리고, 2017년부터는 직선제를 할 수도 있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그런데 2014년 8월 31일 전인대 상무위원회는 2017년 홍콩 행정장관 선거 직선제 전환과 관련해 1200명 안팎으로 이뤄진 ‘행정장관 후보 추천위원회’에서 50% 이상이 지지한 사람만 행정장관으로 입후보할 수 있도록 제한했다. 추천위라는 장치를 통해 사실상 친중파 인사 2~3명만 입후보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앞서 전인대는 “홍콩 행정장관은 반드시 애국 인사가 맡아야 한다”며 친중인사만 행정장관이 되어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압박했다. 시민들은 반발했다. 간선제 시절에도 선거위원 8분의 1 이상의 추천을 받으면 후보로 등록할 수 있었는데 말만 직선제이지 후보 등록부터 제한해 주민의 의사가 더욱 반영되기 힘들게 된다는 항의가 빗발쳤다. 이에 따라 그해 9~12월 청년들을 중심으로 행정장관 선거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규모 거리 시위와 도로를 점거하는 연좌 시위가 벌어졌다. 이는 시민 불복종운동과 수업거부운동으로 번졌다. 비오는 중에도 우산을 받쳐 들고 시위를 벌였다고 해서 ‘2014년 우산혁명’으로 부른다. 그 결과 홍콩 입법회는 2015년 6월 15일 선거제도 개편안을 8대 28로 거부해 선거제는 간선제로 남게 됐다. 중국은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는 홍콩인들에게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후보 추천’이라는 지뢰를 숨긴 제도를 제안하면서 생색만 낸 셈이다. 2017년 7월에는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홍콩을 방문해 일국양제에서 ‘일국’을 강조해 일국양제에 대한 홍콩인의 회의를 더했다. 홍콩 입법기관인 입법회 선출 방식도 문제로 지적된다. 현재 지역구 35석, 직능대표 35석으로 모두 70석으로 구성된다. 지역구 의원은 홍콩 유권자들의 직접 선거로 선출한다. 하지만 직능대표 30석은 기업을 비롯한 각종 직능단체 회원들이, 나머지 5석은 구의회에서 선출한다. 직능대표는 친중파가 장악하고 있으며 지역구도 현재 친중파 18석, 민주파 16석, 공석 1석의 분포다. 중국이 형식적으로 불가능한 홍콩 내정에 대한 간섭을 실질적으로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사실 이 엄청난 정치 사태의 발단은 치정 살인 사건이다. 지난해 2월 17일 대만에서 홍콩인 학생 찬퉁카이(陳同佳·20)가 임신한 여자친구 판샤오잉(潘曉穎·사망 당시 20세)을 치정 문제로 살해하고 암매장한 후 홍콩으로 도주한 사건이다. 판샤오잉의 부친이 딸이 귀가하지 않는다고 신고하자 수사에 들어간 대만 경찰은 CCTV를 통해 찬퉁카이의 범행을 확인했다. 이에 대만 사법당국은 찬퉁카이를 인도 받아 살인죄로 처벌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홍콩은 대만과 범죄인 인도 조약을 맺지 않아 그를 보낼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홍콩 형법은 ‘장소적 적용범위’ 조항에서 속지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홍콩 영역 안에서 죄를 범한 내국인과 외국인에게만 법을 적용한다는 이야기다. 실행이나 결과 중 어느 하나라도 영역 안에서 발생하면 형법을 적용하지만 판샤오잉 피살 사건은 여기에 모두 해당하지 않는다. 홍콩 당국이 그를 살인범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대만 사법당국의 연락을 받은 홍콩 당국은 3월 13일 찬퉁카이를 체포해 살인과 암매장 장소를 자백 받았다. 그럼에도 홍콩 당국이 그에게 적용할 수 있었던 혐의는 고작 여자친구의 돈을 훔친 절도와 장물처리 혐의뿐이었다. 홍콩 당국이 수사 과정에서 찬퉁카이가 홍콩으로 도주한 후 판샤오잉의 현금카드로 돈을 인출해 사용한 것을 발견해 이에 대해서만 처벌할 수 있었다. 재판 막바지에 그에게 중범죄에 해당하는 돈세탁방지법 위반 혐의를 적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재판 결과 그에게는 29개월의 징역형이 선고됐을 뿐이다. 그러자 홍콩과 대만 모두에서 ‘살인 자백하고도 무죄인가’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대만 검찰은 찬퉁카이를 살인죄로 기소했으며 지난헤 12월 3일에는 그를 대상으로 최장 시효 37년6개월짜리 지명수배령을 내렸다. 끝까지 기다려 그가 송환되면 대만에서 재판을 하고 단죄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다. 이에 따라 홍콩 당국은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나 지역에도 범죄인을 인도할 수 있도록 올해 3월 29일 ‘범죄인 인도 법안’을 마련하고 4월 3일 입법회 본회의에서 1차 심의를 했다. 공식명칭이 ‘2019년 도주범과 형사사무 상호법률협조(수정) 조례초안인이 법안은 줄여서 도법조례 수정초안으로 불리지만 미디어와 일반인들은 보는 시각에 따라 도주범조례·인도조례·중국송환조례 등으로 각각 부른다.
‘중국송환조례’라는 축약어는 홍콩인들이 이 법안으로 인한 민주인사들의 중국 송환과 처벌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실제로 홍콩의 민주파와 시민들은 이 법안에 필사적으로 반대해왔다. 중국 정부가 이 법을 악용해 홍콩에 거주하는 중국은 물론 홍콩의 반중국 인사나 인권운동가를 중국 본토로 잡아가면서 홍콩의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것으로 우려한다. 사형제도가 유지되고, 영장이나 법원 판결 없이도 사람을 잡아가서 가두거나 가택연금을 하는 중국을 믿을 수 없다는 ‘두려움’의 표현이기도 하다. 더구나 이번 송환법안이 통과될 경우 홍콩의 민주화 지수도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이 국제 NGO 등의 조사를 바탕으로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법의 지배’ 항목에서 중국은 126개 국가·지역 중 82위, 홍콩은 16위를 차지하고, ‘부패대책’ 부문에선 중국이 180개 국가·지역 중 87위, 홍콩이 14위다. ‘보도 자유 보장’ 분야에선 중국이 180개 국가·지역에서 177위, 홍콩이 73위, ‘민주주의가 실천되고 있는가’ 항목에선 중국이 167개 국가·지역에서 130위, 홍콩이 73위다. 중국의 낮은 순위, 중국과 홍콩의 격차도 문제지만, 홍콩이 언론과 민주주의 부문에서 상당히 저조한 것으로 나타난 것도 문제다. 홍콩인들이 일국양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중국의 입김이 강해지고 있다고 느끼는 방증이라고 할 수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자유방임형 경제체제를 바탕으로 엄청난 경제 성장을 이룬 홍콩이 정치적·사회적 비민주화와 불안정, 그리고 중국의 간섭으로 성장동력을 잃는 일이다. 사실 홍콩은 오랫동안 중화권의 경제수도이자 글로벌 기업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센터 역할을 맡아왔다. 국제통화기금(IMF) 통계에 따르면 2018년 홍콩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구매력 기준(PPP)으로 6만4216달러에 이른다. 부자 나라의 대명사인 미국(6만2606달러)이나 스위스(6만4216달러)와 비슷하다. 카타르(13만475달러), 마카오(11만6808달러), 룩셈부르크(10만6705달러), 싱가포르(10만345달러), 브루나이(7만9530달러), 아일랜드(7만8795달러), 노르웨이(7만3456달러), 아랍에미리트(6만9383달러), 쿠웨이트(6만7000달러) 다음이다. 홍콩은 마카오와 마찬가지로 중국의 특별자치구로 주권국가가 아니라 공식순위에선 빠지지만, 비공식으로 따지면 세계 11위의 부자에 해당한다. 명목 금액으로 따져도 4만8517달러로 독일(4만8256달러), 프랑스(4만2878달러), 영국(4만2558달러), 일본(3만9306달러)보다 많다. 경쟁 대상인 싱가포르에 많이 추월당하고 일부 항목에선 밀렸어도 여전히 중국과 아시아의 경제 엔진이다.
홍콩이 이렇게 풍요를 누리는 가장 큰 이유는 사업하기 좋은 기회의 땅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정부의 간섭과 규제가 거의 없다. 홍콩 당국은 경제 문제에선 수동적이다. 일손을 놓고 있는 게 아니라 일부러 민간에 맡기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자유방임형 경제체제는 홍콩의 특징이자 강점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 경제학자 밀튼 프리드먼(1912~2006)은 홍콩을 ‘자유방임형 자본주의의 세계적인 실험장’이라고 칭찬했다. 자유주의적 사상을 전파하는 미국의 카토 연구소도 홍콩을 자유방임형 경제정책의 모범으로 제시했다. 정부의 간섭이 거의 없는 자유방임형 경제체제는 낮은 세금 및 자유무역과 함께 홍콩의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기본 요소다. 홍콩이 세계적인 국제금융센터로 성장한 원동력이기도 하다.
자유방임형 경제정책은 정부가 규제, 과세, 기부금 등 민간 영역에 대한 간섭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재산권 보호에만 주력하는 경제 환경을 조성하는 정책이다. 이를 통해 민간의 창의성과 활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자는 의도다. 정부가 무책임하게 방임하는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자유주의적 환경을 만들어준다는 의미에서 적극적인 불개입주의라고도 한다. 물론 주식시장 같은 경제조직을 만들고 관리하는 정도는 개입한다. 홍콩은 이런 정책을 바탕으로 경제자유도 지수에서 1995년부터 2018년까지 25년간 세계 1위 자리를 줄곧 유지해왔다. 미국 해리티지 재단과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발표하는 경제자유도지수(Index of Economic Freedom)는 영업, 교역, 투자, 금융, 재산권, 노동, 부패영향, 정부 규모와 통화 관리 등 183개 부분을 꼼꼼하게 살펴 정한다. 특히 2018년 지수에서 홍콩은 100점 만점에 90.2점을 기록해 90점 이상을 기록한 전 세계 유일한 나라다. 싱가포르(88.8), 뉴질랜드(84.2), 스위스(81.7), 호주(80.9)가 뒤를 잇고 있다. 한국은 73.8로 29위, 일본은 72.3으로 30위를 각각 차지했다. 국제금융센터는 물론 세계적인 기업의 아시아태평양 지역본부가 상당수 홍콩에 위치한 것도 이런 경제 자유의 힘일 것이다. 이는 홍콩이 기업하기 좋은 기회의 땅으로 자리 잡은 가장 큰 이유다.
홍콩으로선 경제에 타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시위 사태를 어떻게든 진정시키려고 할 것이다. 이에 따라 홍콩 정부는 인도 대상이 살인·밀수·탈세 등 강력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국한될 것이라고 설득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에선 사형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에 따라 홍콩인의 거부감은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그럼에도 홍콩 정부 수반인 캐리람(林鄭月娥) 행정장관과 정부, 그리고 친중파 의원들은 홍콩 사법체계의 허점을 방치해선 안된다는 명분으로 이 법안을 계속 밀어붙여왔다. 시민들의 거센 항의 앞에 이들이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더구나 중국은 미국과 나라의 명운을 걸고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중국에 민주주의와 인권과 관련한 가치관에 관한 문제제기를 계속 해온 대표적인 나라다. 홍콩 사태가 미중 대결의 한 부분으로 녹아들어갈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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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문제의 법안부터 따져보자. 이 법안은 홍콩이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나 지역에도 경우에 따라 범죄인들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에는 중국과 대만·마카오가 포함됐다. 홍콩에 거주하는 민주인사들이 중국의 요구에 따라 송환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홍콩인들이 불안해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6월 9일의 이 송환법안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홍콩에서 벌어져 주최 측 추산 103만명, 경찰 추산 24만 명이 참가해 온 거리를 가득 채우며 시위를 벌였다.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돌아간 후 벌어진 시위로는 최대 규모다. 홍콩의 역대 시위 중에는 1989년 천안문 사건 당시 150만 명이 몰려 벌였던 동조 시위 이후 가장 크다.
2014년 민주화 요구한 50만 시위 이후 최대 규모
더욱 큰 문제는 홍콩인들이 중국의 일국양제 약속을 근본적으로 불신한다는 점이다. 일국양제는 중국이 사회주의 정치체제 안에서 홍콩과 마카오에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체제를 한시적으로 허용하는 것을 말한다. 1997년 포르투갈과 영국으로부터 마카오와 홍콩을 돌려받을 때 중국이 현지 주민과 서방권을 안심시키기 위해 내놓은 논리다. 개혁개방의 설계자인 덩샤오핑(鄧小平)이 제시한 개념이다. 중국은 대만에 대해서도 일국양제로 통일하자고 요구해왔다. 일국양제는 중국의 공식 통일방안인 셈이다.
그런데 그런 일국양제에 대한 홍콩인들의 불만이 이번 시위에서 고스란히 나타났다. 홍콩인들은 시위에서 일국양제와 함께 ‘홍콩인은 홍콩인이 통치한다(香人治香)’ ‘고도자치(高度自治)’의 3대 원칙을 요구했다. 중국이 홍콩 회귀 당시 약속했던 내용이기도 하다. 단순한 법안 하나만 손본다고 홍콩 주민들이 누그러질 태세가 아닌 셈이다.
홍콩에서 일국양제를 둘러싸고 대규모 항의 시위와 시민 불복종 운동이 벌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2014년 7월 행정장관 선거의 민주화를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당시 주최 측은 51만 명, 경찰은 9만8600명이 참가했다고 주장했다. 홍콩 기본법에 따르면 정부수반인 행정장관은 선거위원회가 간접제한선거를 통해 선출하고 중국 국무원 총리가 임명한다. 국민이 직접 뽑는 지도자가 아닌 것이다. 홍콩 주민은 주민 직접선거를 통한 선출을 요구하지만 중국 당국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이럴 경우 홍콩이 준독립국이 될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정식 명칭이 ‘홍콩 특별행정구 행정장관’인 행정장관은 홍콩의 정부수반이다. 그렇게 높은 자리임에도 현재 주민의 직접 선거가 아닌 간접선거를 통해 뽑는다. 입법회 의원, 구의회 의원, 홍콩에서 선출해 베이징에 보낸 전국인민대표자대회(전인대) 대표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대표, 38개 직능별 선거위원회에서 선출한 사람 등 1200명으로 이뤄진 선거인단에서 선출한다. 가장 많은 선거인단을 차지하는 직능대표는 친중국계가 대부분이어서 대표 선거가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평가가 많다. 선거인단은 처음 400명으로 시작해 1998년부터 800명으로 늘었다. 그런데 2007년 중국 전인대는 2012년 행정장관 선거부터 간접선거 선거인단을 1200명으로 늘리고, 2017년부터는 직선제를 할 수도 있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그런데 2014년 8월 31일 전인대 상무위원회는 2017년 홍콩 행정장관 선거 직선제 전환과 관련해 1200명 안팎으로 이뤄진 ‘행정장관 후보 추천위원회’에서 50% 이상이 지지한 사람만 행정장관으로 입후보할 수 있도록 제한했다. 추천위라는 장치를 통해 사실상 친중파 인사 2~3명만 입후보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앞서 전인대는 “홍콩 행정장관은 반드시 애국 인사가 맡아야 한다”며 친중인사만 행정장관이 되어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압박했다. 시민들은 반발했다. 간선제 시절에도 선거위원 8분의 1 이상의 추천을 받으면 후보로 등록할 수 있었는데 말만 직선제이지 후보 등록부터 제한해 주민의 의사가 더욱 반영되기 힘들게 된다는 항의가 빗발쳤다. 이에 따라 그해 9~12월 청년들을 중심으로 행정장관 선거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규모 거리 시위와 도로를 점거하는 연좌 시위가 벌어졌다. 이는 시민 불복종운동과 수업거부운동으로 번졌다. 비오는 중에도 우산을 받쳐 들고 시위를 벌였다고 해서 ‘2014년 우산혁명’으로 부른다. 그 결과 홍콩 입법회는 2015년 6월 15일 선거제도 개편안을 8대 28로 거부해 선거제는 간선제로 남게 됐다. 중국은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는 홍콩인들에게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후보 추천’이라는 지뢰를 숨긴 제도를 제안하면서 생색만 낸 셈이다.
일국양제는 중국의 홍콩·대만 통인 방안
사실 이 엄청난 정치 사태의 발단은 치정 살인 사건이다. 지난해 2월 17일 대만에서 홍콩인 학생 찬퉁카이(陳同佳·20)가 임신한 여자친구 판샤오잉(潘曉穎·사망 당시 20세)을 치정 문제로 살해하고 암매장한 후 홍콩으로 도주한 사건이다. 판샤오잉의 부친이 딸이 귀가하지 않는다고 신고하자 수사에 들어간 대만 경찰은 CCTV를 통해 찬퉁카이의 범행을 확인했다. 이에 대만 사법당국은 찬퉁카이를 인도 받아 살인죄로 처벌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홍콩은 대만과 범죄인 인도 조약을 맺지 않아 그를 보낼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홍콩 형법은 ‘장소적 적용범위’ 조항에서 속지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홍콩 영역 안에서 죄를 범한 내국인과 외국인에게만 법을 적용한다는 이야기다. 실행이나 결과 중 어느 하나라도 영역 안에서 발생하면 형법을 적용하지만 판샤오잉 피살 사건은 여기에 모두 해당하지 않는다. 홍콩 당국이 그를 살인범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대만 사법당국의 연락을 받은 홍콩 당국은 3월 13일 찬퉁카이를 체포해 살인과 암매장 장소를 자백 받았다. 그럼에도 홍콩 당국이 그에게 적용할 수 있었던 혐의는 고작 여자친구의 돈을 훔친 절도와 장물처리 혐의뿐이었다. 홍콩 당국이 수사 과정에서 찬퉁카이가 홍콩으로 도주한 후 판샤오잉의 현금카드로 돈을 인출해 사용한 것을 발견해 이에 대해서만 처벌할 수 있었다. 재판 막바지에 그에게 중범죄에 해당하는 돈세탁방지법 위반 혐의를 적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재판 결과 그에게는 29개월의 징역형이 선고됐을 뿐이다. 그러자 홍콩과 대만 모두에서 ‘살인 자백하고도 무죄인가’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대만 검찰은 찬퉁카이를 살인죄로 기소했으며 지난헤 12월 3일에는 그를 대상으로 최장 시효 37년6개월짜리 지명수배령을 내렸다. 끝까지 기다려 그가 송환되면 대만에서 재판을 하고 단죄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다. 이에 따라 홍콩 당국은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나 지역에도 범죄인을 인도할 수 있도록 올해 3월 29일 ‘범죄인 인도 법안’을 마련하고 4월 3일 입법회 본회의에서 1차 심의를 했다. 공식명칭이 ‘2019년 도주범과 형사사무 상호법률협조(수정) 조례초안인이 법안은 줄여서 도법조례 수정초안으로 불리지만 미디어와 일반인들은 보는 시각에 따라 도주범조례·인도조례·중국송환조례 등으로 각각 부른다.
‘중국송환조례’라는 축약어는 홍콩인들이 이 법안으로 인한 민주인사들의 중국 송환과 처벌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실제로 홍콩의 민주파와 시민들은 이 법안에 필사적으로 반대해왔다. 중국 정부가 이 법을 악용해 홍콩에 거주하는 중국은 물론 홍콩의 반중국 인사나 인권운동가를 중국 본토로 잡아가면서 홍콩의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것으로 우려한다. 사형제도가 유지되고, 영장이나 법원 판결 없이도 사람을 잡아가서 가두거나 가택연금을 하는 중국을 믿을 수 없다는 ‘두려움’의 표현이기도 하다.
홍콩인 학생 찬퉁카이 치정 살인 사건이 발단
최악의 시나리오는 자유방임형 경제체제를 바탕으로 엄청난 경제 성장을 이룬 홍콩이 정치적·사회적 비민주화와 불안정, 그리고 중국의 간섭으로 성장동력을 잃는 일이다. 사실 홍콩은 오랫동안 중화권의 경제수도이자 글로벌 기업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센터 역할을 맡아왔다. 국제통화기금(IMF) 통계에 따르면 2018년 홍콩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구매력 기준(PPP)으로 6만4216달러에 이른다. 부자 나라의 대명사인 미국(6만2606달러)이나 스위스(6만4216달러)와 비슷하다. 카타르(13만475달러), 마카오(11만6808달러), 룩셈부르크(10만6705달러), 싱가포르(10만345달러), 브루나이(7만9530달러), 아일랜드(7만8795달러), 노르웨이(7만3456달러), 아랍에미리트(6만9383달러), 쿠웨이트(6만7000달러) 다음이다. 홍콩은 마카오와 마찬가지로 중국의 특별자치구로 주권국가가 아니라 공식순위에선 빠지지만, 비공식으로 따지면 세계 11위의 부자에 해당한다. 명목 금액으로 따져도 4만8517달러로 독일(4만8256달러), 프랑스(4만2878달러), 영국(4만2558달러), 일본(3만9306달러)보다 많다. 경쟁 대상인 싱가포르에 많이 추월당하고 일부 항목에선 밀렸어도 여전히 중국과 아시아의 경제 엔진이다.
홍콩이 이렇게 풍요를 누리는 가장 큰 이유는 사업하기 좋은 기회의 땅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정부의 간섭과 규제가 거의 없다. 홍콩 당국은 경제 문제에선 수동적이다. 일손을 놓고 있는 게 아니라 일부러 민간에 맡기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자유방임형 경제체제는 홍콩의 특징이자 강점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 경제학자 밀튼 프리드먼(1912~2006)은 홍콩을 ‘자유방임형 자본주의의 세계적인 실험장’이라고 칭찬했다. 자유주의적 사상을 전파하는 미국의 카토 연구소도 홍콩을 자유방임형 경제정책의 모범으로 제시했다. 정부의 간섭이 거의 없는 자유방임형 경제체제는 낮은 세금 및 자유무역과 함께 홍콩의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기본 요소다. 홍콩이 세계적인 국제금융센터로 성장한 원동력이기도 하다.
자유방임형 경제정책은 정부가 규제, 과세, 기부금 등 민간 영역에 대한 간섭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재산권 보호에만 주력하는 경제 환경을 조성하는 정책이다. 이를 통해 민간의 창의성과 활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자는 의도다. 정부가 무책임하게 방임하는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자유주의적 환경을 만들어준다는 의미에서 적극적인 불개입주의라고도 한다. 물론 주식시장 같은 경제조직을 만들고 관리하는 정도는 개입한다.
홍콩은 ‘자유방임형 자본주의 실험장’
홍콩으로선 경제에 타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시위 사태를 어떻게든 진정시키려고 할 것이다. 이에 따라 홍콩 정부는 인도 대상이 살인·밀수·탈세 등 강력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국한될 것이라고 설득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에선 사형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에 따라 홍콩인의 거부감은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그럼에도 홍콩 정부 수반인 캐리람(林鄭月娥) 행정장관과 정부, 그리고 친중파 의원들은 홍콩 사법체계의 허점을 방치해선 안된다는 명분으로 이 법안을 계속 밀어붙여왔다. 시민들의 거센 항의 앞에 이들이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더구나 중국은 미국과 나라의 명운을 걸고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중국에 민주주의와 인권과 관련한 가치관에 관한 문제제기를 계속 해온 대표적인 나라다. 홍콩 사태가 미중 대결의 한 부분으로 녹아들어갈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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