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자칫하면 자본과 두뇌 다 잃는다”
“홍콩, 자칫하면 자본과 두뇌 다 잃는다”
도심에서 대규모 시위가 3개월 넘게 이어지면서 관광객 급감하고 내수 위축도 뚜렷이 나타나 홍콩의 집단 시위는 시작된 지 3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논란 많은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로 시작된 시위가 홍콩의 사회적·정치적 자유를 지키려는 더 넓은 시민 운동으로 확산되면서 이젠 총파업과 학생들의 동맹휴업 등 집단행동으로 격화하고 있다. 지난 9월 4일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이 송환법을 공식 철회한다고 발표하며 한발 물러섰지만 홍콩 주민의 깊은 분노와 냉소주의는 계속되고 있다.
오랫동안 홍콩에서 일하고, 가르친 경영학 교수로서 나는 이번 시위가 진행되는 과정을 관심 있게 지켜봤다. 또 나는 1989년 톈안먼 광장 시위에도 개인적으로 휩쓸린 경험으로 지난 30년 동안 그 여파를 추적했다.
현재 홍콩에서 벌어지는 시위의 영향은 상당히 오래 지속될 것이다. 그 영향의 대부분은 예상하기 힘들지만 일부 경제적 타격은 이미 피부로 느껴지고 있으며, 홍콩의 번영에 장기적으로 어려움을 더해줄 것이다. 특히 도심에서 대규모 시위가 3개월 넘게 이어지면서 중국 본토와 외국인 관광객이 급감한 가운데 홍콩 주민의 소비 위축 현상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최근 홍콩 정부는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을 당초 ‘2∼3%’에서 ‘0∼1%’로 대폭 하향 조정하면서, 191억 홍콩달러(약 3조원) 규모의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발표했다. 홍콩 시위의 경제적 파급 효과를 좀 더 깊이 살펴본다. 홍콩 시위에서 특이한 점은 그 깊이와 폭이다. 홍콩 시위대에는 남녀노소와 가족이 포함됐다. 학자들의 조사에 따르면 시위대의 약 60%가 30세 미만이지만 45세 이상도 약 5분의 1을 차지한다. 시위 도중 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와 택시 운전기사 등도 거리에서 시위자들에게 생수를 나눠주고 심지어 금전적인 기부도 하면서 시위대를 지지한다는 보도도 나왔다.
지난 8월 18일엔 시위 주최 측 추산으로 170만 명이 폭우를 무릅쓰고 시위행진에 참가했다. 홍콩 인구의 4분의 1에 가까운 주민이 시위에 합류했다는 뜻이다. 가끔 폭력 사태도 벌어졌다. 일부 시위대가 입법원을 점거하고 기물을 파손했으며, 공항을 마비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대부분의 시위가 평화롭게 진행됐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시위대의 규모와 갈등의 성격을 고려할 때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시위가 지속되면서 홍콩 주민의 경제적인 피해가 커지기 시작했다. 가장 뚜렷한 피해 중 하나가 생필품이 아닌 일반 상품에 대한 소비자의 지출이 급감했다는 사실이다. 지난 7~8월의 여름철 소매 매출이 1년 전보다 10% 이상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시위대가 홍콩 국제공항을 약 이틀 동안 폐쇄한 것도 상당한 피해를 가져왔다. 항공산업 전문가들은 항공편 취소로 홍콩이 미화 7600만 달러(약 916억5600만원)의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한다. 공항이 홍콩 국내총생산(GDP)에 약 5%를 기여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항공편 운항 차질로 올해 홍콩의 경제 성장은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미중 무역전쟁으로 이미 홍콩 경제는 상당한 피해를 보고 있다). 좀 더 넓게 보면 홍콩 시위가 대규모로 장기화하면서 관광객과 사업 출장자가 줄어든다(최소 22개국이 홍콩 여행 경보를 발령했다). 홍콩 시위와 그에 대한 중국의 대응이 경제에 미칠 장기적인 영향은 수량화하기가 훨씬 더 어렵다. 그중 하나는 중국이나 아시아 지역에서 사업하려는 다국적 기업들의 중심지로서 갖는 홍콩의 지위와 관련 있다. 지난해 홍콩 정부의 통계에 따르면 외국 기업 1530개가 홍콩에 지사를 갖고 있었다. 그중 290개가 미국 회사였다.
다국적 기업들은 오래전부터 홍콩에 지사를 설립하고 싶어 했다. 전략적인 가치가 높은 지리적 위치, 그리고 특히 중국과 비교할 때 법치가 보장되는 안전한 곳으로 사업 여건이 양호하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중국의 경제력이 급속히 강해지면서 지사를 홍콩에서 중국 본토로 옮기는 외국 기업이 점차 늘었다. 만약 중국이 홍콩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함으로써 시위를 진압하려 한다면 외국 기업이 홍콩을 지역 거점으로 삼을 이유가 더 적어질 것이다. 법치가 보장된다는 홍콩의 매력이 그만큼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앞으로 홍콩을 떠나는 외국 기업이 급속히 늘어날 수 있다. 그와 함께 고임금 일자리도 썰물처럼 빠져나갈 것이다.
그 외 다른 장기적인 우려는 홍콩 시위가 중국과 여타 세계 사이의 관계에 미치는 영향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을 향해 무역전쟁을 끝내는 합의를 원한다면 홍콩 시위에 “인도적으로” 대처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무역협상을 시위 대응과 연계하겠다는 뜻이다. 만약 중국이 강압적으로 물리적인 힘을 동원해 홍콩 시위를 진압한다면 다른 세계 지도자들도 중국과 홍콩을 대하는 방식을 달리할 가능성이 크다. 시위는 여러 가지 형태를 취할 수 있다. 예를 들어 2011년 미국 뉴욕 맨해튼 남단의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는 빈부 격차 심화와 금융기관의 부도덕성에 반발하면서 단 두 달 동안 지속됐지만 폭넓은 반주류 운동이 됐다. 핵심은 ‘최고 부자 1%에 저항하는 99% 미국인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구호에 있었다. 시위대의 직접적인 불만은 빈부격차로, 1 대 99라는 자극적인 구도가 등장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누적된 상대적 박탈감에 기초했다. 그러나 그 시위에 따른 경제적 타격은 무시할 만했다.
프랑스에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봄까지 매 주말 이어진 ‘노란 조끼’ 시위는 처음엔 유류세 인상에 반대하는 운동이었지만 나중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 반대하는 정치색을 띤 시위로 진화했다. 이 시위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참가자는 약 30만 명이었다. 이 시위는 거의 40주 동안 계속됐지만 이젠 활력 대부분을 잃었다. 한 추정에 따르면 ‘노란 조끼’ 시위의 경제적 피해는 약 55억 달러(약 6조6330억원)다.
그러나 홍콩에서 벌어지는 시위는 프랑스와 뉴욕의 시위보다 훨씬 규모가 크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어떤 형태로 진화할지 추측하기는 아직 이르다. 홍콩만이 아니라 중국과 그 너머까지 미치는 경제적인 영향도 예측하기 어렵다.
시위가 어떤 결과로 이어지든 홍콩은 장기적인 자본과 두뇌 유출의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 자본과 두뇌 유출은 경제 성공의 핵심 요소 두 가지다. 예를 들어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신문은 지난 9월 4일자 보도에서 시위 사태에 불안감을 느낀 홍콩 부자들의 영국행이 줄을 잇고 있다고 전했다. SCMP에 따르면 올해 2분기 ‘황금 비자(golden visas)’로 불리는 영국의 1등급 투자비자 신청자 중 10%를 홍콩인이 차지했다. 올해 1분기보다 홍콩인의 비중이 두 배로 높아졌다. 이 추세대로라면 3분기 영국 투자비자 신청자 중 홍콩인의 비중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 앨런 모리슨
※ [필자는 미국 애리조나주립대학 선더버드 글로벌 경영대학원 교수다. 이 글은 온라인 매체 컨버세이션에 먼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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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홍콩에서 일하고, 가르친 경영학 교수로서 나는 이번 시위가 진행되는 과정을 관심 있게 지켜봤다. 또 나는 1989년 톈안먼 광장 시위에도 개인적으로 휩쓸린 경험으로 지난 30년 동안 그 여파를 추적했다.
현재 홍콩에서 벌어지는 시위의 영향은 상당히 오래 지속될 것이다. 그 영향의 대부분은 예상하기 힘들지만 일부 경제적 타격은 이미 피부로 느껴지고 있으며, 홍콩의 번영에 장기적으로 어려움을 더해줄 것이다. 특히 도심에서 대규모 시위가 3개월 넘게 이어지면서 중국 본토와 외국인 관광객이 급감한 가운데 홍콩 주민의 소비 위축 현상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최근 홍콩 정부는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을 당초 ‘2∼3%’에서 ‘0∼1%’로 대폭 하향 조정하면서, 191억 홍콩달러(약 3조원) 규모의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발표했다. 홍콩 시위의 경제적 파급 효과를 좀 더 깊이 살펴본다.
시위의 깊이와 폭
지난 8월 18일엔 시위 주최 측 추산으로 170만 명이 폭우를 무릅쓰고 시위행진에 참가했다. 홍콩 인구의 4분의 1에 가까운 주민이 시위에 합류했다는 뜻이다. 가끔 폭력 사태도 벌어졌다. 일부 시위대가 입법원을 점거하고 기물을 파손했으며, 공항을 마비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대부분의 시위가 평화롭게 진행됐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시위대의 규모와 갈등의 성격을 고려할 때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단기적인 타격
시위대가 홍콩 국제공항을 약 이틀 동안 폐쇄한 것도 상당한 피해를 가져왔다. 항공산업 전문가들은 항공편 취소로 홍콩이 미화 7600만 달러(약 916억5600만원)의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한다. 공항이 홍콩 국내총생산(GDP)에 약 5%를 기여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항공편 운항 차질로 올해 홍콩의 경제 성장은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미중 무역전쟁으로 이미 홍콩 경제는 상당한 피해를 보고 있다). 좀 더 넓게 보면 홍콩 시위가 대규모로 장기화하면서 관광객과 사업 출장자가 줄어든다(최소 22개국이 홍콩 여행 경보를 발령했다).
장기적인 피해
다국적 기업들은 오래전부터 홍콩에 지사를 설립하고 싶어 했다. 전략적인 가치가 높은 지리적 위치, 그리고 특히 중국과 비교할 때 법치가 보장되는 안전한 곳으로 사업 여건이 양호하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중국의 경제력이 급속히 강해지면서 지사를 홍콩에서 중국 본토로 옮기는 외국 기업이 점차 늘었다. 만약 중국이 홍콩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함으로써 시위를 진압하려 한다면 외국 기업이 홍콩을 지역 거점으로 삼을 이유가 더 적어질 것이다. 법치가 보장된다는 홍콩의 매력이 그만큼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앞으로 홍콩을 떠나는 외국 기업이 급속히 늘어날 수 있다. 그와 함께 고임금 일자리도 썰물처럼 빠져나갈 것이다.
그 외 다른 장기적인 우려는 홍콩 시위가 중국과 여타 세계 사이의 관계에 미치는 영향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을 향해 무역전쟁을 끝내는 합의를 원한다면 홍콩 시위에 “인도적으로” 대처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무역협상을 시위 대응과 연계하겠다는 뜻이다. 만약 중국이 강압적으로 물리적인 힘을 동원해 홍콩 시위를 진압한다면 다른 세계 지도자들도 중국과 홍콩을 대하는 방식을 달리할 가능성이 크다.
시위의 진화
프랑스에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봄까지 매 주말 이어진 ‘노란 조끼’ 시위는 처음엔 유류세 인상에 반대하는 운동이었지만 나중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 반대하는 정치색을 띤 시위로 진화했다. 이 시위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참가자는 약 30만 명이었다. 이 시위는 거의 40주 동안 계속됐지만 이젠 활력 대부분을 잃었다. 한 추정에 따르면 ‘노란 조끼’ 시위의 경제적 피해는 약 55억 달러(약 6조6330억원)다.
그러나 홍콩에서 벌어지는 시위는 프랑스와 뉴욕의 시위보다 훨씬 규모가 크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어떤 형태로 진화할지 추측하기는 아직 이르다. 홍콩만이 아니라 중국과 그 너머까지 미치는 경제적인 영향도 예측하기 어렵다.
시위가 어떤 결과로 이어지든 홍콩은 장기적인 자본과 두뇌 유출의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 자본과 두뇌 유출은 경제 성공의 핵심 요소 두 가지다. 예를 들어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신문은 지난 9월 4일자 보도에서 시위 사태에 불안감을 느낀 홍콩 부자들의 영국행이 줄을 잇고 있다고 전했다. SCMP에 따르면 올해 2분기 ‘황금 비자(golden visas)’로 불리는 영국의 1등급 투자비자 신청자 중 10%를 홍콩인이 차지했다. 올해 1분기보다 홍콩인의 비중이 두 배로 높아졌다. 이 추세대로라면 3분기 영국 투자비자 신청자 중 홍콩인의 비중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 앨런 모리슨
※ [필자는 미국 애리조나주립대학 선더버드 글로벌 경영대학원 교수다. 이 글은 온라인 매체 컨버세이션에 먼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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