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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극 체제로 바뀌는 중동의 지정학

3극 체제로 바뀌는 중동의 지정학

군사적으로는 미국, 외교적으로는 러시아, 경제적으로는 중국이 새로운 중동의 질서 구축한다
지난 10월 20일 시리아 북부에서 이라크로 철수하는 미군. 터키와 쿠르드 민병대 간 휴전이 불안하게 유지되는 상황에서 쿠르드 민병대는 터키-시리아 국경 요충지에서 퇴각했다. / 사진:AFP/YONHAP
미군의 시리아 동북부 철수는 단순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돌연하고 변덕스러운 결정에 따른 것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그보다는 중동 전역의 지정학적 역학에서 일어나는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힘의 균형 변동이 빚어낸 산물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특히 러시아와 중국이 중동 지역에서 새로운 주도자 역할을 자임하고 나서면서 그 힘의 균형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지난 10월 9일 터키는 자국에 안보 위협이 되는 쿠르드 민병대의 격퇴를 명분으로 시리아 북동부 지역으로 진격해 ‘평화의 샘’으로 불리는 군사작전을 개시했다. 그곳에 주둔하던 미군은 터키군의 시리아 진격 이후 철수를 시작해 시리아 남부와 이라크 등으로 이동했다. 그러자 러시아는 미군이 떠난 곳에서 터키와 시리아 정부·쿠르드 간 협상의 중재자 역할을 수행하며 입지를 넓혀간다. 특히 러시아군은 시리아 북부 도시 만비즈로도 진입해 터키군과 시리아 정부군·쿠르드 간 군사 충돌을 차단하기 위한 순찰 활동을 벌이고 있다.

미군이 떠난 만비즈의 기지에 러시아군이 대신 들어섰다는 사실은 이런 힘의 균형 변동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10월 중순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를 방문해 환대받았다. 그처럼 미국의 중동 맹방이었던 두 나라도 갈수록 이 지역에서 러시아의 존재감을 더 크게 인식하고 변화를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또 러시아의 이런 움직임은 중동 분쟁 개입을 ‘최악의 실수’라고 비판하며 고립주의를 내세워 이 지역에서 발을 빼려는 트럼프 정부의 행보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미국의 중재로 터키군이 크루드 민병대를 상대로 하는 군사작전을 중지하기로 합의한 5일간의 기한이 종료되는 날인 10월 22일, 러시아가 다시 중재에 나섰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남부 소치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회담을 갖고 터키 접경의 시리아 내 ‘안전지대’에서 쿠르드 민병대의 퇴각과 러시아-터키 양국군의 공동 순찰에 합의했다.러시아 외교협회의 중동 전문가로 모스크바 국립국제관계대학 교수인 막심 수츠코프는 뉴스위크와 가진 인터뷰에서 러시아의 중재자 역할을 두고 “중동 지정학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러시아는 중동에서 새로운 역외 균형자이자 파워 브로커로 자리매김하면서 시리아에서 높은 수익성이 기대되는 기회를 얻었다. 그런 기회를 앞으로 잘 활용해야 한다.”

지난 9월 터키 앙카라에서 시리아 문제를 논의하는 회담을 가진 로하니 이란 대통령,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부터). / 사진:AP/YONHAP
러시아가 2015년 가을 시리아 내전에 개입한 것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전략적이었다. 우선 러시아는 급진 이슬람주의 단체를 주축으로 하는 반군에 밀리는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정부와 이란의 도움으로 동원된 민병대를 적시에 지원할 수 있었다. 또 그때는 미국이 이슬람주의 단체를 주축으로 하는 반군에 대한 지원을 보류하고, 이슬람국가(IS)와 싸우기 위해 쿠르드 인민수비대(YPG)가 주축인 시리아민주군과 손잡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러시아는 그보다 훨씬 전부터 미국의 시리아 정책에 회의를 표했다. 시리아는 2011년 민주화를 요구한 ‘아랍의 봄’ 시위가 정부의 강경 진압에 부닥쳐 곧바로 내전으로 비화한 두 나라 중 하나였다. 그 첫 나라는 리비아였다. 리비아의 최고지도자 무아마르 카다피는 시리아의 아사드 대통령처럼 전쟁범죄 혐의로 서방의 비난을 샀다. 미국은 리비아에서 반군을 지원하기 위해 설정한 비행금지구역을 단속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다국적군에 합류했고, 결국 카다피가 포함된 차량 행렬을 공습했다. 카다피는 공습에선 가까스로 살아남았지만 곧 리비아 반군에게 붙잡혀 처형됐다. 그러면서 지도자 없는 리비아는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싸우는 군벌들에 의해 사분오열됐다.

러시아는 리비아 문제에 관한 유엔 안보리 결의안 표결에서 기권했다. 또 카다피의 몰락으로 리비아가 붕괴되는 상황에 충격받은 러시아는 시리아에서 아사드 대통령을 보호하려고 나섰다. 시리아는 옛 소련의 파트너로서 지금도 지중해 연안에 러시아 군사기지 최소한 두 곳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러시아군의 시리아 내전 개입으로 전세가 바뀌자 나토 회원국이던 터키도 반군의 입지 강화를 위해 친아사드 노선을 견지하는 러시아·이란과 함께 리비아 반군과 정부군 사이의 3자 평화협상에 합류했다. 미국은 그 협상을 보이콧했다. 무엇보다 미국은 시리아의 아사드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았고, 이란과 적대적인 관계였기 때문이다.

이제 러시아군이 시리아에서 버려진 미군 기지를 차지하고 있고, 푸틴 대통령이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을 포함해 중동의 여러 지도자와 마주 앉아 서로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중동 문제에선 러시아가 완전히 주도권을 장악한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그러나 국제정세 전문가들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수츠코프 교수는 “러시아로서는 중동을 ‘소유할’ 의사가 없으며, 그런 목적을 추구할 만한 경제적인 여력도 없다”고 논평했다. “러시아의 전략은 중동에서 미국이 유일한 패권국이 되는 일극 체제가 아니라 비(非)서방 국가들도 일정한 역할을 하는 ‘다극화된 세계질서’를 구축하는 것이다. 최근 중동에서 일어나는 사태 발전이 그 목표를 여실히 드러낸다. 그러나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전술적인 차원에선 러시아가 중동에서 독자적인 계획에 따라 움직인다. 경제적인 투자와 무기 판매, 외교적 중재자 역할을 통한 입지 강화가 그 목적이다.”영국 옥스퍼드대학 박사 과정 연구원인 새뮤얼 라마니도 수츠코프 교수의 분석에 동의했다. 그는 뉴스위크와 가진 인터뷰에서 “흔히 러시아가 중동에서 미국 대신 패권국이 되겠다는 야심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오해”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세계경찰 같은 ‘안전 보장자’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중동이 점차 3극 체제로 변하는 모습이다. 미국은 군사적인 측면의 안전 보장자이고, 중국은 주요 경제 강국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러시아는 중동의 긴장을 완화하는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다. 러시아는 중국과 경제적으로 동등하게 되려는 엄두를 낼 처지도 아니며, 미국과 군사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저력도 없다. 따라서 러시아로서는 위기 외교의 틈새를 파고드는 것이 최선이다.”

시리아 칸셰이쿤 마을에서 경계 근무 중인 러시아와 시리아 군경찰관 / 사진:AP/YONHAP
러시아는 아사드 정부를 도울 목적으로 시리아 내전에 개입한 이래 거의 모든 주요 관련국과 공개적으로 접촉한다. 시리아 정부를 지지하는 이란과 반군을 지지하는 이스라엘·사우디가 거기에 포함된다. 이스라엘과 사우디는 이란의 역내 숙적이기도 하다.

러시아는 시리아 반군을 지원하는 터키와 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하는 이란을 끌어들인 평화협상인 ‘아스타나 프로세스’(카자흐스탄 수도 아스타나에서 회담이 시작되면서 그런 명칭으로 불린다)를 통해 시리아 내전 해결의 주도적인 중재자 입지를 굳혔다. 쿠르드 민병대인 시리아민주군은 새로운 시리아 헌법 제정을 위해 유엔이 중재하는 회담에서 배제됐지만 러시아는 그들과 별도의 관계를 구축하고, 그들과 시리아 정부 사이의 협상을 중재해왔다. 라마니 연구원은 “모든 관계 당사자와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가 러시아”라고 평가했다. “러시아는 이스라엘, 이란, 시리아민주군, 시리아 정부군과 활발히 접촉하면서 그들을 한 방에 불러 모은다. 또 서로 숙적인 사우디와 이란 사이의 중재를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으며 리비아와 예멘이 겪는 위기로까지 역할을 확대할 수 있다.”

사우디를 포함한 아라비아 반도의 수니파 무슬림 왕국들은 오랫동안 미국 외교 정책에 긴밀히 협조하는 파트너였다. 따라서 그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반(反)이란 메시지를 거리낌 없이 받아들였다. 그러나 유조선과 사우디 석유 시설을 표적으로 삼은 공격으로 페르시아만 지역의 전쟁 위험 수위가 높아지면서 러시아가 선호되는 잠재적 중재자로 비치게 됐다고 라마니 연구원은 설명했다. “러시아는 소프트파워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면서 아랍 국가들의 지도자와 국민 모두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있다. 러시아는 (미국과 달리) 이들 나라의 인권 문제와 독재 통치를 지적하지 않고 내정에도 간섭하지 않는다.”

22개국으로 이뤄진 아랍연맹에서 시리아의 회원국 자격은 2011년 정지됐다. 아사드 대통령의 정부군이 개혁을 촉구하는 시위대를 유혈 진압한 것이 인권 유린에 해당한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러시아는 그 결정을 되돌리도록 아랍연맹에 압력을 가한다. 라마니 연구원은 러시아가 시리아 문제에서 비(非)아랍권 국가인 이란과 터키를 견제할 대비책으로 아랍 국가들을 끌어들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중국은 중동의 지정학적 역학 변동에서 훨씬 더 조용한 파트너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아시아-아프리카-유럽의 교차로인 중동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야심적인 육·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 ‘일대일로’ 구상에서 매우 중요한 길목이다. 시 주석은 중동을 통해 대륙과 대륙을 잇는 거대한 유라시아 인프라 네트워크를 구축하려고 한다.

그와 관련해 중국은 시리아의 전후 재건에 참여하면 자국의 투자를 중동 전체로 확대할 중요한 기회가 될 것으로 본다. 시리아 항구인 타르투스와 라타키아에는 현재 러시아 군사 시설이 들어서 있지만 머지않아 그곳에도 중국의 대규모 투자가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또 레바논의 작은 항구도시 트리폴리를 인수하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으며, 그보다 훨씬 더 남쪽에 위치한 이스라엘의 지중해 항구 하이파에도 투자했다.‘일대일로’의 공식 웹사이트에 따르면 138개국이 이 프로젝트에 어떤 형태로든 참여하거나 협력하기로 했다. 미국은 이 프로젝트를 자국의 세계경제 주도권에 중대한 위협이 된다고 판단한다. 현재 미국과 중국이 보복 관세를 무기로 무역전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중국의 ‘일대일로’에 대한 미국의 경계심이 더 높아지고 있다.

지난 6월 중국 베이징에서 회담을 가진 왕이 중국 외교부장(오른쪽)과 왈리드 무알렘 시리아 외무장관. 중국은 정치적·경제적으로 시리아를 지원했다. / 사진:AP/YONHAP
또 중국은 사우디·아랍에미리트와 수십억 달러 거래를 성사시키는 성과를 올렸다. 중국은 그들의 라이벌인 이란의 최대 무역 파트너로서 미국의 대이란 제재에 반기를 들고 있다. 아울러 중국은 러시아의 역내 안보 프레임워크 설치 촉구를 환영했다. 이란의 ‘희망의 동맹’이라는 구호가 담긴 ‘호르무즈 평화 구상’과 비슷한 기구다. 이란과 이웃 아랍 국가들의 협력을 도모하고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해상 원유 수송로 관문인 호르무즈 해협 주변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구상이다. 이원유 수송로는 중국 경제의 생명선과 같다.

러시아와 중국은 역사적으로 적대적인 관계에 있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경쟁보다는 협력을 더 자주 추구하는 편이다. 적어도 지금의 양국 관계를 보면 확실히 그렇다. 현재 중국과 러시아는 서로의 관계를 두고 “사상 최고 수준”이라고 말한다. 인도양에서 러시아-중국-이란의 합동 해군 훈련이 실시될 것이라는 보도도 나왔다(그러나 실제로 이뤄질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다른 한편으로 중국은 러시아와 합동 군사훈련을 전례 없는 규모로 실시했다. 러시아는 옛 소련권 경제공동체 유라시아경제연합(EAEU)을 통해 경제적 영향력을 강화하려고 애쓴다. EAEU는 지난해 이란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앞선 임시 협정을 체결했다. 여러 차원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서로 얽혀 있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거의 20년에 걸친 중동의 ‘끝없는 전쟁’을 두고 미국의 피로증을 몸소 드러내 보였다. 그는 지난 10월 14일 미군 병력의 시리아 철수와 관련해 누가 쿠르드족을 돕든 상관없다며 불쑥 나폴레옹 보나 파르트의 이름까지 들먹였다. 그는 이날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IS를 격퇴한 후에 나는 대체로 우리의 병력을 시리아 밖으로 철수시켰다”며 “시리아와 아사드로 하여금 쿠르드를 보호하고 그들 자신의 영토를 위해 터키와 싸우도록 하라”고 말했다. “나는 나의 장군들에게 왜 우리가 적의 영토를 지키기 위해, 시리아와 아사드를 위해 싸워야 하느냐고 말했다.” 미국이 터키가 쿠르드 민병대를 겨냥해 공격 작전을 개시한 시리아 동북부 지방에서 미군 병력을 역내 다른 나라 등으로 철수시키는 작업에 착수하자 쿠르드족이 시리아 아사드 정권과 손잡은 상황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쿠르드를 보호하는 데 있어 시리아를 지원하길 원하는 자가 러시아든 중국이든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든 누구든 나는 괜찮다”면서 “나는 그들이 모두 잘 해내 길 바란다. 우리는 7000마일이나 떨어져 있다!”라고 말했다. 미국은 발을 빼겠으니 어느 세력이 쿠르드족 보호를 위해 시리아를 돕더라도 상관하지 않겠다는 것을 강조하는 차원에서 나폴레옹까지 거론한 것이다.

그러나 오래전 세상을 떠난 나폴레옹은 제쳐두고 미국이 발을 빼는 중동에서 새로 떠오르는 양대 강대국인 러시아와 중국이 성공할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 톰 오코너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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