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산업 이종 경쟁 격화] 삼성전자는 비메모리, 인텔은 메모리에 집중
[반도체 산업 이종 경쟁 격화] 삼성전자는 비메모리, 인텔은 메모리에 집중
인텔, 한국서 차세대 메모리 선전포고… 삼성전자, NPU·GPU에 투자 집중키로 “메모리·스토리지 계층 구조의 최첨단 혁신을 추진할 것이다.” 롭 크룩 인텔 수석 부사장은 9월 26일 JW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서울에서 열린 ‘메모리&스토리지 데이 2019’에서 차세대 메모리반도체 ‘옵테인DCPM’(이하 옵테인)을 발표하며 이렇게 밝혔다. 옵테인은 D램과 낸드플래시의 장점을 합친 제품으로 전력이 차단돼도 데이터가 날아가지 않고, 가격도 저렴하다. 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한국에서 신제품을 내놓으며 일종의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반도체 시장에 커다란 변화의 파도가 일고 있다. 25년간 비메모리 반도체 왕좌를 지킨 인텔이 메모리반도체 분야에 뛰어들며 시장을 흔들고 있다. 메모리반도체 1위 삼성전자는 시스템반도체와 파운드리(수탁생산)로 영토 확장에 나섰다. 5세대(5G) 이동통신 도입, 자율주행차 기술 발전 등으로 메모리·비메모리 간의 격벽이 얇아진 결과다. 다른 생태계에서 살던 반도체 공룡 간 혈전이 불가피해졌다. 메모리반도체에 가장 많은 공을 들이는 비메모리반도체 회사는 인텔이다. 서버 스토리지가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에서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로 넘어가며 시작한 2015년께부터 메모리반도체 시장을 넘보기 시작했다. 3D 크로스포인트 기술에 기반을 둔 ‘옵테인SSD’를 내놓는 등 메모리반도체 판매에 힘을 쏟고 있다. 다만 인텔의 올 1분기 낸드 시장점유율은 6%에 그치는 등 아직 성과는 미미하다. 그러나 인텔이 이번에 출시한 옵테인은 메모리반도체 시장을 흔들 수 있는 제품이란 평가를 받는다. D램보다는 속도가 느리지만, 데이터 휘발성이 낮아 SSD처럼 저장할 수 있어서다. 이미 미국 오라클과 중국 바이두 등이 옵테인을 도입하기로 했다.
인텔은 그간 D램 기술 부족으로 메모리반도체 시장 진출을 꺼려왔다. 인텔은 1970년대 세계 D램 등 메모리반도체 시장을 이끌었지만 1980년대 일본 NEC·히타치·후지츠에 밀려 결국 1985년 철수했다. 2015년 옵테인 SSD를 내놓기 전까지 31년간 D램 시장과는 벽을 쌓고 지냈다. 그러다 일종의 P램(상변화 메모리)인 옵테인을 앞세워 시장 전환을 노리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당장은 옵테인이 SSD와 D램 사이의 데이터 병목현상을 풀어주는 역할을 하겠지만, 인텔의 메모리반도체 시장 확대의 발판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인텔은 옵테인이 자사 중앙처리장치(CPU)와의 호환성·안전성이 뛰어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컴퓨팅은 SSD에 기록된 데이터를 D램이 읽어 CPU나 그래픽처리장치(GPU)에 전달하고, 여기서 계산된 데이터는 다시 D램을 거쳐 SSD에 저장된다. 메모리반도체와 비메모리반도체 간 호환성이 높으면 적은 전력으로도 많은 데이터를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할 수 있다. 인텔은 세계 CPU 시장을 장악하고 있어 고객사 요구에 따른 패키지 형태의 제품·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이주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의 경우도 속도나 전력 손실 등에서 하나의 칩세트를 장착하는 것이 바람직해 하나로 구성된 제품을 납품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며 “메모리반도체와 비메모리반도체의 경계가 무너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미 현대자동차·네이버·넷마블 등은 인텔 옵테인을 도입하기로 했거나 도입을 검토 중이다. 현대차는 옵테인을 자율주행·커넥티드카에, 네이버는 인텔 2세대 제온 프로세서와 함께 클라우드 경쟁력 강화에 쓸 것으로 보인다. 인텔은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의 TSMC에 생산을 맡기고 있어 양산 경쟁도 걸어볼 만한 입장이다. TSMC는 삼성전자와 더불어 글로벌 파운더리 중 극자외선(EUV)을 이용한 6나노 공정을 도입한 유이한 회사다.
삼성전자는 그간 상대적으로 약했던 시스템반도체에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해 8월 연구·개발(R&D)과 생산시설 확충에 133조원을 투자해 2030년 시스템반도체 분야 세계 1위에 오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삼성전자가 시스템반도체 분야 1위 목표를 불과 10년 뒤로 잡은 것은 비메모리반도체 시장이 급변하고 있어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메모리반도체 시장을 공략 중인 인텔은 비메모리반도체에서는 AMD에도 쫓기는 입장이다. AMD의 PC용 CPU인 라이젠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에서 인텔 CPU를 앞서기 시작했다. 서버용 CPU 역시 인텔의 불안정한 공급을 문제 삼아 AMD나 IBM으로 선회하는 경우도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이에 삼성전자는 6월 AMD와 손잡고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AMD의 초저전력·고성능 그래픽 설계자산(IP)을 활용하기로 했다.
더불어 삼성전자는 지난 4일 CPU 코어 개발에서 손을 떼는 대신 인공지능(AI) 시대 핵심 부품으로 꼽히는 신경망처리장치(NPU)와 그래픽처리장치(GPU)에 자원을 더 집중하기로 했다. CPU 코어는 저전력 모바일 프로세서 설계 강자인 영국 암(ARM)과 손잡을 것으로 보인다. NPU는 수천개 병렬 컴퓨팅이 필요한 딥러닝 알고리즘 연산에 최적화된 프로세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클라우드와 AI 등 신기술 등장으로 서버·반도체 시장이 크게 변했다”며 “오라클은 잊힌 하드웨어 기술을 꺼내 클라우드 서비스에 나섰고, 인텔은 크로스포인트(메모리반도체의 일종)의 실패와 AMD와의 경쟁으로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기술 발전으로 CPU만으로는 높은 컴퓨팅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며, 세계적으로 인텔과 반인텔 전선이 명확히 그려졌다”며 “비메모리반도체 클러스터링이 더욱 심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전자로서는 다행스러운 상황이다. 현재 글로벌 협력사들과 메모리·비메모리반도체 칩셋 모듈화 등 다수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크로소프트(MS)도 서피스 신제품에서 AMD·퀄컴과 손잡기로 했다. 이런 가운데 삼성전자가 올 3분기 세계 파운드리 시장점유율을 18.5%로 끌어올린 점도 고무적이다. IBM(서버용 CPU)·엔비디아(GPU)·퀄컴(AP) 등을 주요 고객사로 확보했다. 글로벌 연대 체제에서 비메모리반도체의 경쟁력을 끌어올릴 바탕을 마련한 셈이다. 이주완 연구위원은 “반도체 시장 전체가 하나의 영역으로 바뀌어 이합집산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며 “한국은 국제 표준에서 입김을 행사할 능력과 위상이 있으며 특히 비메모리반도체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주장했다.
-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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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시장에 커다란 변화의 파도가 일고 있다. 25년간 비메모리 반도체 왕좌를 지킨 인텔이 메모리반도체 분야에 뛰어들며 시장을 흔들고 있다. 메모리반도체 1위 삼성전자는 시스템반도체와 파운드리(수탁생산)로 영토 확장에 나섰다. 5세대(5G) 이동통신 도입, 자율주행차 기술 발전 등으로 메모리·비메모리 간의 격벽이 얇아진 결과다. 다른 생태계에서 살던 반도체 공룡 간 혈전이 불가피해졌다.
메모리·비메모리 경계 무의미, 모듈·시스템화
인텔은 그간 D램 기술 부족으로 메모리반도체 시장 진출을 꺼려왔다. 인텔은 1970년대 세계 D램 등 메모리반도체 시장을 이끌었지만 1980년대 일본 NEC·히타치·후지츠에 밀려 결국 1985년 철수했다. 2015년 옵테인 SSD를 내놓기 전까지 31년간 D램 시장과는 벽을 쌓고 지냈다. 그러다 일종의 P램(상변화 메모리)인 옵테인을 앞세워 시장 전환을 노리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당장은 옵테인이 SSD와 D램 사이의 데이터 병목현상을 풀어주는 역할을 하겠지만, 인텔의 메모리반도체 시장 확대의 발판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인텔은 옵테인이 자사 중앙처리장치(CPU)와의 호환성·안전성이 뛰어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컴퓨팅은 SSD에 기록된 데이터를 D램이 읽어 CPU나 그래픽처리장치(GPU)에 전달하고, 여기서 계산된 데이터는 다시 D램을 거쳐 SSD에 저장된다. 메모리반도체와 비메모리반도체 간 호환성이 높으면 적은 전력으로도 많은 데이터를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할 수 있다. 인텔은 세계 CPU 시장을 장악하고 있어 고객사 요구에 따른 패키지 형태의 제품·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이주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의 경우도 속도나 전력 손실 등에서 하나의 칩세트를 장착하는 것이 바람직해 하나로 구성된 제품을 납품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며 “메모리반도체와 비메모리반도체의 경계가 무너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미 현대자동차·네이버·넷마블 등은 인텔 옵테인을 도입하기로 했거나 도입을 검토 중이다. 현대차는 옵테인을 자율주행·커넥티드카에, 네이버는 인텔 2세대 제온 프로세서와 함께 클라우드 경쟁력 강화에 쓸 것으로 보인다. 인텔은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의 TSMC에 생산을 맡기고 있어 양산 경쟁도 걸어볼 만한 입장이다. TSMC는 삼성전자와 더불어 글로벌 파운더리 중 극자외선(EUV)을 이용한 6나노 공정을 도입한 유이한 회사다.
삼성전자는 그간 상대적으로 약했던 시스템반도체에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해 8월 연구·개발(R&D)과 생산시설 확충에 133조원을 투자해 2030년 시스템반도체 분야 세계 1위에 오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삼성전자가 시스템반도체 분야 1위 목표를 불과 10년 뒤로 잡은 것은 비메모리반도체 시장이 급변하고 있어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메모리반도체 시장을 공략 중인 인텔은 비메모리반도체에서는 AMD에도 쫓기는 입장이다. AMD의 PC용 CPU인 라이젠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에서 인텔 CPU를 앞서기 시작했다. 서버용 CPU 역시 인텔의 불안정한 공급을 문제 삼아 AMD나 IBM으로 선회하는 경우도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이에 삼성전자는 6월 AMD와 손잡고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AMD의 초저전력·고성능 그래픽 설계자산(IP)을 활용하기로 했다.
더불어 삼성전자는 지난 4일 CPU 코어 개발에서 손을 떼는 대신 인공지능(AI) 시대 핵심 부품으로 꼽히는 신경망처리장치(NPU)와 그래픽처리장치(GPU)에 자원을 더 집중하기로 했다. CPU 코어는 저전력 모바일 프로세서 설계 강자인 영국 암(ARM)과 손잡을 것으로 보인다. NPU는 수천개 병렬 컴퓨팅이 필요한 딥러닝 알고리즘 연산에 최적화된 프로세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클라우드와 AI 등 신기술 등장으로 서버·반도체 시장이 크게 변했다”며 “오라클은 잊힌 하드웨어 기술을 꺼내 클라우드 서비스에 나섰고, 인텔은 크로스포인트(메모리반도체의 일종)의 실패와 AMD와의 경쟁으로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기술 발전으로 CPU만으로는 높은 컴퓨팅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며, 세계적으로 인텔과 반인텔 전선이 명확히 그려졌다”며 “비메모리반도체 클러스터링이 더욱 심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전자로서는 다행스러운 상황이다. 현재 글로벌 협력사들과 메모리·비메모리반도체 칩셋 모듈화 등 다수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크로소프트(MS)도 서피스 신제품에서 AMD·퀄컴과 손잡기로 했다.
비메모리반도체는 선택 아닌 필수
-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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