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브리그’와 ‘미생’
‘스토브리그’와 ‘미생’
“직장은 사람 사귀거나 꿈과 비전을 실현하는 곳이 아니다. 다른 사람과의 협업을 통해 성과를 내는 곳이다.”
어떤 조직이든 나름의 슈퍼스타가 있다. 아마도 요즘 젊은 사원을 바라보는 기성세대는 직원을 프로야구단의 선수처럼 생각할지도 모른다. 단장과 감독은 과감하게 기대하는 팀워크 조성과 협업에 미달하는 선수를 방출하고 팀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선수를 스카웃해 온다.
SBS 금토 드라마 [스토브리그]가 최고시청률 16.5%(닐슨코리아)를 기록하여 시선을 끌었다. 스토브리그는 팬들의 눈물마저 말라버린 꼴찌 팀에 새로 부임한 단장이 남다른 시즌을 준비하는 뜨거운 겨울 이야기를 그린, 이를테면 ‘야구 경영드라마’이다.
화려한 그라운드 뒤편에서 선수만큼 격렬하게 전략을 짜고, 눈물과 땀이 뒤섞인 일상을 사는 프런트(Front)가 있다. 프로축구나 프로야구 등에서 구단의 행정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다. 그 프런트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신선한 소재가 시청자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것일까.
스토브리그(Stove league)란 시즌 종료 후 기간이다. 이 비시즌 기간에 선수들의 이적 동향과 다음 시즌에 대한 예측 등 야구팬 사이에서 오가는 이야기를 총칭한다. 그들만의 ‘겨울 이야기’ 즉 윈터리그(Winter League)라고도 부르는 이 용어는 정규시즌이 끝난 겨울의 대회전이다. 각 구단이 팀 전력을 강화하기 위해 선수 영입과 연봉 협상에 나서는 시기에 경기장을 찾을 일 없는 야구팬들이 난로(Stove) 주위에 모여 선수에 관한 정보를 주고받는 데서 유래했다.
프로야구단의 프런트들은 그라운드 뒤에서 묵묵히 일하며 선수보다 더 치열하고 격동적인 일상을 산다. 그들에겐 정규리그가 끝나도 더욱 치열한 리그가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시즌이 끝난 뒤 각 팀은 선수 보강이나 연봉 협상 등 다음 시즌에 대비해야 한다.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역시 KBO리그 출신의 MLB 도전과 관련된 소식일 것이다. 스토브리그 기간엔 주로 다음 시즌 경기력 강화를 위한 선수들의 재계약-FA(자유계약 선수), 트레이드 등 사실상 팀의 재구성이 이뤄지게 된다. 여기에 야구판을 빗댄 여러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가 더해지면서 ‘다음 판’을 준비하는 여러 가지 뒷얘기가 휴머니즘 드라마로 펼쳐진다.
드라마 스토브리그는 꼴찌 팀의 오명을 벗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성장기(成長記)이다. 최하위의 야구팀에 새로 부임한 단장이 새로운 시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땀과 눈물이 함께 얼룩진, 전쟁만큼 치열한 야구팀의 일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성적이 부진한 야구팀을 우승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다시 팀을 꾸려가지만 단장은 ‘야구 문외한’이고 운영팀장은 프로다. 과연 그들의 꿈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
최하위 프로야구팀 ‘드림즈’의 신임 단장은 씨름단, 하키팀, 핸드볼팀을 맡아왔지만 야구는 사실상 문외한이다. 오로지 ‘강해야 이긴다’는 신념만 머릿속 깊이 박혀있는 강인한 승부욕의 소유자다. 지금껏 그의 손을 거친 팀은 늘 환골탈태의 과정을 거쳐 우승이라는 값진 결과를 거머쥐었다. 하지만 그는 비인기 종목에서 활동했고, 게다가 가난한 모기업을 둔 탓에 우승에도 불구하고 늘 팀 해체를 걱정해야 했다. 그에게 프로야군단이라니, 새로운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국내 프로야구단 가운데 유일하게 최연소 여성 운영팀장이 새 단장과 의기투합했다. 그러나 이곳 역시 모기업의 후원이 줄고 선수들의 패배의식은 날로 깊어만 갔다. 그녀가 운영팀장이 된 지도 어언 10년이 다 돼가지만 딱 한 번의 준우승을 제외하고는 더는 가을야구가 없었다. 열악한 모기업의 지원을 핑계 삼지 않고 이를 악물며 일했던 그녀는 이루지 못했던 드림즈의 열망이 성공적으로 이뤄지기를 기대하며 다시 한번 재기를 다짐한다. 앞만 보며 달리는 신임 단장이 어려운 문제를 냉철한 이성으로 해결해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서로가 더욱 필요한 존재임을 확인한다. 그러나 힘을 가진 모기업의 입김에 또 한 번 좌절을 맛본다.
다시 신임 단장. 그는 대한민국 스포츠 판에서 가장 큰 돈이 오가는 곳, 프로야구에서 마지막 전력투구를 시작한다. 그런데 하필 그가 찾은 팀은 경기장에서 코치들끼리 멱살잡기는 다반사고, 지명을 받은 신인선수가 합류를 거부하는 일이 낯설지 않은 팀이다.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는 유연함이나 융통성이라곤 없는 신임 단장, 그는 한 번 타협하면 편해지는 것을 알지만 한 번 굽히면 평생 굽혀야 하는 것을 더 잘 알고 있었다.
“난 효율성을 중시하는 사람, 구단주 조카가 아닌 구단주라고 생각하세요.”
드림즈 운영을 손에 쥔 모기업 상무이자 실세는 애당초 신임 단장을 그의 꼭두각시로 쓰려고 영입했으나 예상과는 달리 만만치가 않다. 신임 단장의 행보가 그의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음을 알고 당황한다. 패배에 익숙했던 선수들과 구단 사람들이 누구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우승이라는 꿈에 다가가기 위한 변화를 체감한다. 게다가 변화의 중심에는 신임 단장이 있음을 확인하면서 상무의 태도도 서서히 바뀌어 간다.
‘극적(Dramatic)’이란 말이 있지만, 실제로는 삶이 드라마보다 훨씬 더 극적인 경우가 많다. 드라마 제작진은 드라마의 귀결과는 상관이 없이 “제목만 보고는 단순한 야구 드라마일 거라는 편견을 가질 시청자가 있어 ‘스토브리그 단어장’까지 준비하면서 프런트 등 야구 비시즌 현장의 치열한 이야기를 담았다”라며 “스토브리그는 야구판을 배경으로 한 ‘미생’들의 고군분투 성장기를 재현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생(未生)이란 ‘직장인들의 교과서’로 불리며 화제를 모았던 웹툰의 이름이다. 비정규직과 인턴 등 초보 사원들의 처지를 대마의 삶이 결정되지 않은 상태인 바둑용어 ‘미생’에 빗대어 표현했다. 바둑만을 세상의 전부로 생각한 주인공 ‘장그래’가 프로 입단에 실패하고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면서 겪는 희로애락을 그렸고, 드라마로도 크게 인기를 얻었다.
드라마 속이든 현실이든 우리는 스토브리그에서 치열한 삶의 현장을 목격한다.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재원이나 인력, 시간이 여의치 않을 때는 리더십과 팀워크, 인적 쇄신이 답이다. 치열한 프로야구 현장도 결국 인간사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
- 정영수 칼럼니스트(전 중앙일보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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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조직이든 나름의 슈퍼스타가 있다. 아마도 요즘 젊은 사원을 바라보는 기성세대는 직원을 프로야구단의 선수처럼 생각할지도 모른다. 단장과 감독은 과감하게 기대하는 팀워크 조성과 협업에 미달하는 선수를 방출하고 팀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선수를 스카웃해 온다.
SBS 금토 드라마 [스토브리그]가 최고시청률 16.5%(닐슨코리아)를 기록하여 시선을 끌었다. 스토브리그는 팬들의 눈물마저 말라버린 꼴찌 팀에 새로 부임한 단장이 남다른 시즌을 준비하는 뜨거운 겨울 이야기를 그린, 이를테면 ‘야구 경영드라마’이다.
화려한 그라운드 뒤편에서 선수만큼 격렬하게 전략을 짜고, 눈물과 땀이 뒤섞인 일상을 사는 프런트(Front)가 있다. 프로축구나 프로야구 등에서 구단의 행정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다. 그 프런트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신선한 소재가 시청자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것일까.
스토브리그(Stove league)란 시즌 종료 후 기간이다. 이 비시즌 기간에 선수들의 이적 동향과 다음 시즌에 대한 예측 등 야구팬 사이에서 오가는 이야기를 총칭한다. 그들만의 ‘겨울 이야기’ 즉 윈터리그(Winter League)라고도 부르는 이 용어는 정규시즌이 끝난 겨울의 대회전이다. 각 구단이 팀 전력을 강화하기 위해 선수 영입과 연봉 협상에 나서는 시기에 경기장을 찾을 일 없는 야구팬들이 난로(Stove) 주위에 모여 선수에 관한 정보를 주고받는 데서 유래했다.
프로야구단의 프런트들은 그라운드 뒤에서 묵묵히 일하며 선수보다 더 치열하고 격동적인 일상을 산다. 그들에겐 정규리그가 끝나도 더욱 치열한 리그가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시즌이 끝난 뒤 각 팀은 선수 보강이나 연봉 협상 등 다음 시즌에 대비해야 한다.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역시 KBO리그 출신의 MLB 도전과 관련된 소식일 것이다. 스토브리그 기간엔 주로 다음 시즌 경기력 강화를 위한 선수들의 재계약-FA(자유계약 선수), 트레이드 등 사실상 팀의 재구성이 이뤄지게 된다. 여기에 야구판을 빗댄 여러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가 더해지면서 ‘다음 판’을 준비하는 여러 가지 뒷얘기가 휴머니즘 드라마로 펼쳐진다.
드라마 스토브리그는 꼴찌 팀의 오명을 벗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성장기(成長記)이다. 최하위의 야구팀에 새로 부임한 단장이 새로운 시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땀과 눈물이 함께 얼룩진, 전쟁만큼 치열한 야구팀의 일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성적이 부진한 야구팀을 우승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다시 팀을 꾸려가지만 단장은 ‘야구 문외한’이고 운영팀장은 프로다. 과연 그들의 꿈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
최하위 프로야구팀 ‘드림즈’의 신임 단장은 씨름단, 하키팀, 핸드볼팀을 맡아왔지만 야구는 사실상 문외한이다. 오로지 ‘강해야 이긴다’는 신념만 머릿속 깊이 박혀있는 강인한 승부욕의 소유자다. 지금껏 그의 손을 거친 팀은 늘 환골탈태의 과정을 거쳐 우승이라는 값진 결과를 거머쥐었다. 하지만 그는 비인기 종목에서 활동했고, 게다가 가난한 모기업을 둔 탓에 우승에도 불구하고 늘 팀 해체를 걱정해야 했다. 그에게 프로야군단이라니, 새로운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국내 프로야구단 가운데 유일하게 최연소 여성 운영팀장이 새 단장과 의기투합했다. 그러나 이곳 역시 모기업의 후원이 줄고 선수들의 패배의식은 날로 깊어만 갔다. 그녀가 운영팀장이 된 지도 어언 10년이 다 돼가지만 딱 한 번의 준우승을 제외하고는 더는 가을야구가 없었다. 열악한 모기업의 지원을 핑계 삼지 않고 이를 악물며 일했던 그녀는 이루지 못했던 드림즈의 열망이 성공적으로 이뤄지기를 기대하며 다시 한번 재기를 다짐한다. 앞만 보며 달리는 신임 단장이 어려운 문제를 냉철한 이성으로 해결해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서로가 더욱 필요한 존재임을 확인한다. 그러나 힘을 가진 모기업의 입김에 또 한 번 좌절을 맛본다.
다시 신임 단장. 그는 대한민국 스포츠 판에서 가장 큰 돈이 오가는 곳, 프로야구에서 마지막 전력투구를 시작한다. 그런데 하필 그가 찾은 팀은 경기장에서 코치들끼리 멱살잡기는 다반사고, 지명을 받은 신인선수가 합류를 거부하는 일이 낯설지 않은 팀이다.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는 유연함이나 융통성이라곤 없는 신임 단장, 그는 한 번 타협하면 편해지는 것을 알지만 한 번 굽히면 평생 굽혀야 하는 것을 더 잘 알고 있었다.
“난 효율성을 중시하는 사람, 구단주 조카가 아닌 구단주라고 생각하세요.”
드림즈 운영을 손에 쥔 모기업 상무이자 실세는 애당초 신임 단장을 그의 꼭두각시로 쓰려고 영입했으나 예상과는 달리 만만치가 않다. 신임 단장의 행보가 그의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음을 알고 당황한다. 패배에 익숙했던 선수들과 구단 사람들이 누구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우승이라는 꿈에 다가가기 위한 변화를 체감한다. 게다가 변화의 중심에는 신임 단장이 있음을 확인하면서 상무의 태도도 서서히 바뀌어 간다.
‘극적(Dramatic)’이란 말이 있지만, 실제로는 삶이 드라마보다 훨씬 더 극적인 경우가 많다. 드라마 제작진은 드라마의 귀결과는 상관이 없이 “제목만 보고는 단순한 야구 드라마일 거라는 편견을 가질 시청자가 있어 ‘스토브리그 단어장’까지 준비하면서 프런트 등 야구 비시즌 현장의 치열한 이야기를 담았다”라며 “스토브리그는 야구판을 배경으로 한 ‘미생’들의 고군분투 성장기를 재현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생(未生)이란 ‘직장인들의 교과서’로 불리며 화제를 모았던 웹툰의 이름이다. 비정규직과 인턴 등 초보 사원들의 처지를 대마의 삶이 결정되지 않은 상태인 바둑용어 ‘미생’에 빗대어 표현했다. 바둑만을 세상의 전부로 생각한 주인공 ‘장그래’가 프로 입단에 실패하고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면서 겪는 희로애락을 그렸고, 드라마로도 크게 인기를 얻었다.
드라마 속이든 현실이든 우리는 스토브리그에서 치열한 삶의 현장을 목격한다.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재원이나 인력, 시간이 여의치 않을 때는 리더십과 팀워크, 인적 쇄신이 답이다. 치열한 프로야구 현장도 결국 인간사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
- 정영수 칼럼니스트(전 중앙일보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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