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 미국 대통령에 도전하는 인간 바이든] 트럼프의 ‘반대말’ 바이든
[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 미국 대통령에 도전하는 인간 바이든] 트럼프의 ‘반대말’ 바이든
트럼프는 압박·제재 휘두른 검투사… 바이든은 외교·합의 내두른 협상가 11월 3일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의 조 바이든(77)이 당선권에 진입하면서 그가 어떤 인물인지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바이든에 대한 궁금증을 선거캠프 공식 홈페이지(joebiden.com)와 미국과 여러 나라의 보도를 바탕으로 풀어본다.
그는 2009년부터 2017년까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임기동안 부통령을 맡았다. 1973년에서 2009년까지 36년간은 델라웨어 주 연방상원의원을 지냈다. 내리 7선을 했다. 외교 위원장과 법사위원장을 지냈다. 젊어서 델라웨어 주 뉴케슬카운티 의원을 지냈다. 풀뿌리 정치인 출신인 셈이다.
바이든의 성장과정을 보면 자수성가형이다. 숱한 고난을 헤치고 잡초처럼 건강하고 강인하게 자랐다. 부모의 부동산 사업을 물려받아 승승장구한 부잣집 자식 트럼프와 대조된다. 바이든은 1942년 미국 동부 펜실베이니아 주 스크랜튼에서 태어났다. 그는 대선 당일 스크랜튼의 옛 고향집을 방문해 주민들에 둘러싸여 소형 확성기를 손에 들고 인사를 했다. 펜실베이니아 주는 미국 중서부와 북동부의 쇠락한 공업지대를 가리키는 ‘러스트 벨트’의 동쪽 끝에 해당한다. 자동차공업 등 제조업의 쇠퇴로 일자리와 활기를 잃은 이 지역 백인 유권자들은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의 승리를 견인했다. 하지만 올해는 러스트 벨트 북부에 해당하는 위스콘신, 미시간이 개표 초반 트럼프가 우세했지만 후반에 우편투표가 개봉되면서 바이든에게 넘어왔다. 4년 전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줬던 러스트 벨트, 제조업 종사자들 상당수가 트럼프에 등을 돌린 셈이다.
트럼프의 경제 성적은 나쁘지 않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봉쇄와 경기침체로 일자리시장이 위축되면서 노동자들이 등을 돌린 셈이다. 트럼프는 대통령에 취임한 뒤 2017년 2.22%(전년 대비 0.65%포인트 성장), 2018년 3.18%(0.97%포인트 성장), 2019년 2.33%(-0.85%포인트 하락) 등으로 나쁘지 않은 경제 성적표를 받았다. 하지만 올해 트럼프의 미숙한 코로나19 대응으로 경기가 악화하면서 러스트 벨트는 바이든의 승리를 견인한 주요 지역으로 변했다. 바이든은 이곳에서 중고자동차 영업사원인 아버지와 전업주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노동자가정 출신이다. 바이든은 10살 때 실직한 아버지가 일자리를 찾아 이웃 델라웨어 주로 이주하면서 함께 옮겼다. 2007년 펴낸 [지켜야 할 약속들: 인생과 정치에서(Promises to Keep: On Life and Politics)]라는 자서전에서 그는 “다니던 학교에 다시는 가지 못하고 친구들과도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며 당시의 괴로운 심정을 회고했다.
어린이가 감당하기 쉽지 않을 정도로 힘들고 쓰라렸던 어린시절의 경험은 훗날 정치인 바이든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줬으며 정치적인 자양분이 됐다. 개인의 경험과 시대정신을 바탕으로 바이든은 안정적인 직장과 수입을 가진 중산층이 미국의 튼튼한 허리라고 굳게 믿게 됐다. 이런 중산층이 많아야 미국 경제에 활력을 주고 사회에 안정을 가져온다는 신념이다. 그는 이런 믿음을 바탕으로 정치활동을 하면서 고용안정을 위한 정책 마련을 위해 노력했다.
바이든은 선거 유세에서 자신을 ‘중산층 조’라고 불렀다. 이번 대선에선 트럼프가 미국의 가치와 명예를 실추했다고 강조하며 이에 대항하기 위해 ‘미국의 영혼을 부활하자(Restore the soul of America)’는 구호를 들고 나왔지만 상원의원 시절에는 더욱 현실적인 ‘중산층 부활’을 선거구호로 많이 내세웠다.
트럼프가 부유한 부동산업자의 자식으로 가업을 물려받아 키운 고용주 출신이라면 바이든은 피고용인 가정 출신의 피고용주 정치인인 셈이다. 한국에서 유행하는 말로 트럼프는 금수저, 바이든은 흙수저 출신인 셈이다.
바이든에 대해 주목할 또 다른 점은 아일랜드계 가톨릭 신자라는 정체성이다. 바이든은 카프카스계 미국인(백인)이지만 아일랜드계 가톨릭 신자라는 점에서 비주류로 볼 수도 있다. 트럼프까지 45대에 이르는 역대 미국 대통령 중 아일랜드계 가톨릭 신자는 35대 존 F 케네디가 유일하다. 제40대 로널드 레이건은 아일랜드 가톨릭 이민자의 후손이지만 자신은 개신교도였다. 바이든이 대통령에 취임하면 아일랜드계 가톨릭 신자로는 케네디 이후 처음이며, 아일랜드계로는 레이건 다음이다.
센서스 등에 따르면 미국은 인종적으로 76.5% 백인, 11.4% 흑인, 5.9% 아시아계 등으로 이뤄졌다. 종교적으로는 개신교 48.5%, 가톨릭 22.7%, 유대교 2.1%, 몰몬교 1.8%, 이슬람 0.8%의 분포다. 그런 점에서 바이든은 트럼프보다 종교·핏줄 상으로는 선거에서 불리한 셈이었다. 트럼프는 독일계 이민 2세 아버지와 스코틀랜드계 이민 1세 어머니를 두고 개신교인 장로교회를 어려서부터 다녀왔다. 바이든은 제2의 고향인 델라웨어에서 델라웨어 대학을 마치고 이웃 뉴욕 주에 있는 시라큐스 법대 졸업 후 1969년 변호사가 됐다. 바이든은 1970~1972년 군의원에 해당하는 뉴캐슬카운티 의원으로 일하며 환경문제에 관심을 보였다. 1972년 29세 나이에 델라웨어 주 연방상원의원에 당선한 뒤 내리 7선을 기록하며 36년간 연방상원의원으로 활동했다. 풀뿌리 정치인에서 워싱턴의 주류 정치인이 됐다.
워싱턴 정계에서 44년간 상원의원과 부통령으로 활동한 바이든은 정치적 약점도 적지 않다.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이 변호사인 차남 헌터(50)다. 변호사 겸 로비스트(미국에선 절차만 제대로 밟으면 합법이다)로 활동하던 헌터는 2014~2019년 우크라이나 가스회사 부리스마의 이사로 활동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이를 두고 정치적인 배경이 있다는 음모이론을 퍼뜨려왔다.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정부에 이를 조사해달라고 압력을 넣다가 지난해 9월 탄핵사태로까지 번졌다. 트럼프 탄핵안은 연방하원에선 통과됐지만 연방상원에서 부결됐다. 연방상원은 공화당이 53석, 민주당계가 47석으로 공화당이 우위에 있다. 트럼프가 바이든을 잠정적인 경쟁자로 보고 타격을 입히려 한 셈이다.
바이든은 아들을 비롯한 가족에게 애틋할 수밖에 없는 사연을 가진 인물이다.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한 직후인 1972년 12월 18일 첫 부인 네일리아와 딸 나오미가 교통사고로 숨졌다. 바이든은 5년 뒤 질 제이콥스와 재혼하기 전까지 장남 보와 차남 헌터를 키웠다. 재혼 뒤 딸 애슐리를 얻었다.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변호사로 델라웨어 주 법무장관을 지낸 장남 보가 2015년 뇌종양으로 46세에 세상을 떠났다. 바이든은 견디기 쉽지 않은 어려움을 극복하며 살아왔다. 그런 과정에서 고통 받는 타인에 대한 연대감을 보여왔다. 고통과 불행이 그를 인간적으로 성숙시킨 셈이다. 바이든은 평생 2남 2녀를 뒀지만 그 중 장남과 장녀 1남 1녀를 하늘나라로 먼저 보냈다. 그는 대선을 맞아 고향에 있는 장남의 묘지를 찾기도 했다. 자식에 대한 애절한 사랑의 표시다. 5명의 손주까지 둔 할아버지인 바이든은 전형적인 ‘패밀리맨’이다. 이는 아일랜드계의 전통이기도 하다.
바이든의 건강, 특히 인지장애를 문제로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다. 바이든은 1988년 뇌동맥류 파열에 의한 지주막하 출혈로 13시간 동안 수술을 받았으며, 몇 달 뒤 두 번째 수술까지 받았지만 후유증 없이 회복했다. 잦은 말실수는 이로인한 뇌혈류 문제가 원인이라는 주장과 그 정도 나이면 흔히 있을 수 있는 ‘애교있는’ 실수라는 주장이 교차한다.
실제로 바이든은 잦은 말실수로 자주 구설에 올랐다. 영국의 여성 총리인 마가렛 대처와 테리사 메이를 헛갈리기도 했으며, 이미 1997년 세상을 떠난 중국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을 2016년 파리기후협정에서 만났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미 민주당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연방하원을 다음 선거에서 되찾겠다는 말실수도 했다.
하지만 선거 과정, 특히 토론회에서 보인 바이든은 트럼프 못지 않은 기억력과 활기로 정확하게 현안을 다루고 상대의 허점을 지적했다. 두 차례 토론회에서 바이든은 합격점을 받았다. 더 이상 인지장애를 거론하기 힘든 상황이다. 바이든이 가진 가장 큰 미덕은 소통과 단합의 리더십으로 보인다. 트럼프에 대항할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계속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보이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5월 25일 경찰 폭력에 숨진 조지 플로이드의 가족을 6월 8일 1시간 이상 만나 대화하며 위로한 것이 대표적이다. 유족측 변호사인 벤저민 크럼프는 트윗에서 “서로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이 미국을 치료하는 시작이 될 것”이라며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조지 플로이드의 가족과 한 시간 넘게 함께한 이유”라고 적었다. 정치인 바이든과 함께 인간 바이든의 모습을 생생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바이든은 정치인으로서 전공이 두 가지다. 바이든은 상원에서 법률가 경력을 살려 1987~95년 상원 법사위원장을 지냈지만 외교위원회로 옮겨 2000년대에 세 차례에 걸쳐 미국 정계의 노른자위인 상원 외교위원장을 지냈다.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소련과 러시아, 유럽 국가들을 상대하면서 그는 풍부한 외교경험을 쌓았다. 러시아와 전략핵무기 감축협정(SALT2)도 주도했다. 버락 오바마가 오랫동안 공을 들여 바이든을 러닝메이트로 삼은 것도 자신에게 부족한 외교정책 분야에서 바이든의 경력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상원 외교위원장을 맡으면서 바이든은 특유의 인간적인 친화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인권을 무시하는 독재국가에 대해서는 단호한 자세를 보여왔다.
바이든은 동맹·중국·북한·기후온난화·국제협력 등 외교 안보와 국제관계에서 트럼프와 시각차가 극명하다. 대북정책에서 바이든은 트럼프와 대놓고 대립각을 세워왔다. 미국의소리(VOA) 방송은 바이든이 지난해 중순 선거 유세에서 “우리가 블라디미르 푸틴이나 김정은 같은 독재자와 폭군을 포용하는 국민이냐”며 트럼프의 정상외교를 비판했음을 지적했다.
라디오자유아시아(RFA)는 바이든이 트럼프와 김 위원장 간에 이뤄진 어떤 합의도 신뢰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북 접근방식에서도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열며 극적 타결을 노려왔던 트럼프와 달리, 바이든은 국무부 관리를 앞세워 실무협상을 계속하는 전통적인 외교방식으로 비핵화를 추구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은 선거캠프에 ‘2021 민주당’이라는 이름의 외교안보팀을 가동하고 있다. 크리스 머피 연방 상원의원과 국무부 출신의 토니 블링큰 부장관과 니컬러스 번스 전 정무차관 등이 외교안보분야 자문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든은 한미동맹,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미일동맹 등 동맹 강화를 중시한다. 나토 회원국들과는 방위비 지출 의무비율(국내총생산(GDP)의 2%) 준수 여부를 두고 갈등하고, 한국과 일본에는 미군 주둔비의 과도한 인상을 요구해온 트럼프와는 사뭇 다른 길을 추구한다. 군사력 투입에 대해서는 미국의 사활이 걸린 사안에 대해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정 국가의 체제 전환을 위해 군사력을 사용하는 데는 반대 입장이다. 바이든의 중국 정책은 동맹국과 베트남을 비롯한 협력국가들과 공동전선을 구축해 대처한다는 입장이다. 중국에 인권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야 한다는 면에서는 트럼프와 차이가 없지만 바이든은 외교와 협상을 앞세운 반면 트럼프는 압박과 무역제재를 무기로 삼는 전략이다.
바이든이 트럼프와 상반된 입장을 보이는 대표적인 분야가 국제협력이다. 하지만 환경이나 보건 분야에서는 미국이 국제협력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트럼프가 파리 기후변화협정에서 탈퇴하고 세계보건기구(WHO)에 대한 재정지원을 중단한 것과 대조적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대에 나온 이란핵합의에 대해서도 바이든은 트럼프와 상반된 입장이다. 트럼프는 이란핵합의에서 탈퇴하고 경제제재를 부활했지만 바이든은 오히려 합의를 확대하고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런 정책을 펼 경우 한국이 맡고 있는 이란 석유수출대금 70억 달러를 순차적으로 이란으로 송금하는 길이 트일 수도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은 이란과 경제 관계를 돈독히 하고 기회를 열어갈 수 있다. 건설 수주를 하려고 해도 금융 제재로 어려운 상황이다. 바이든이 한국에 기회를 줄 수도 있다.
인간적인 친화력과 가족 중시의 바이든이 미국을 맡으면 그의 인간적인 매력이 더욱 돋보일 전망이다. 트럼프와는 사뭇 다른 대통령상을 보일 수밖에 없다. 바이든의 인간성과 ‘트럼프 빼고 무엇이든(Anything But Trump)’ 정책이 결합하는 미국은 새로운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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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2009년부터 2017년까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임기동안 부통령을 맡았다. 1973년에서 2009년까지 36년간은 델라웨어 주 연방상원의원을 지냈다. 내리 7선을 했다. 외교 위원장과 법사위원장을 지냈다. 젊어서 델라웨어 주 뉴케슬카운티 의원을 지냈다. 풀뿌리 정치인 출신인 셈이다.
바이든의 성장과정을 보면 자수성가형이다. 숱한 고난을 헤치고 잡초처럼 건강하고 강인하게 자랐다. 부모의 부동산 사업을 물려받아 승승장구한 부잣집 자식 트럼프와 대조된다. 바이든은 1942년 미국 동부 펜실베이니아 주 스크랜튼에서 태어났다. 그는 대선 당일 스크랜튼의 옛 고향집을 방문해 주민들에 둘러싸여 소형 확성기를 손에 들고 인사를 했다. 펜실베이니아 주는 미국 중서부와 북동부의 쇠락한 공업지대를 가리키는 ‘러스트 벨트’의 동쪽 끝에 해당한다. 자동차공업 등 제조업의 쇠퇴로 일자리와 활기를 잃은 이 지역 백인 유권자들은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의 승리를 견인했다. 하지만 올해는 러스트 벨트 북부에 해당하는 위스콘신, 미시간이 개표 초반 트럼프가 우세했지만 후반에 우편투표가 개봉되면서 바이든에게 넘어왔다. 4년 전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줬던 러스트 벨트, 제조업 종사자들 상당수가 트럼프에 등을 돌린 셈이다.
트럼프의 경제 성적은 나쁘지 않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봉쇄와 경기침체로 일자리시장이 위축되면서 노동자들이 등을 돌린 셈이다. 트럼프는 대통령에 취임한 뒤 2017년 2.22%(전년 대비 0.65%포인트 성장), 2018년 3.18%(0.97%포인트 성장), 2019년 2.33%(-0.85%포인트 하락) 등으로 나쁘지 않은 경제 성적표를 받았다. 하지만 올해 트럼프의 미숙한 코로나19 대응으로 경기가 악화하면서 러스트 벨트는 바이든의 승리를 견인한 주요 지역으로 변했다.
노동자가정 출신 경험이 중산층 중시 정책으로 이어져
어린이가 감당하기 쉽지 않을 정도로 힘들고 쓰라렸던 어린시절의 경험은 훗날 정치인 바이든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줬으며 정치적인 자양분이 됐다. 개인의 경험과 시대정신을 바탕으로 바이든은 안정적인 직장과 수입을 가진 중산층이 미국의 튼튼한 허리라고 굳게 믿게 됐다. 이런 중산층이 많아야 미국 경제에 활력을 주고 사회에 안정을 가져온다는 신념이다. 그는 이런 믿음을 바탕으로 정치활동을 하면서 고용안정을 위한 정책 마련을 위해 노력했다.
바이든은 선거 유세에서 자신을 ‘중산층 조’라고 불렀다. 이번 대선에선 트럼프가 미국의 가치와 명예를 실추했다고 강조하며 이에 대항하기 위해 ‘미국의 영혼을 부활하자(Restore the soul of America)’는 구호를 들고 나왔지만 상원의원 시절에는 더욱 현실적인 ‘중산층 부활’을 선거구호로 많이 내세웠다.
트럼프가 부유한 부동산업자의 자식으로 가업을 물려받아 키운 고용주 출신이라면 바이든은 피고용인 가정 출신의 피고용주 정치인인 셈이다. 한국에서 유행하는 말로 트럼프는 금수저, 바이든은 흙수저 출신인 셈이다.
바이든에 대해 주목할 또 다른 점은 아일랜드계 가톨릭 신자라는 정체성이다. 바이든은 카프카스계 미국인(백인)이지만 아일랜드계 가톨릭 신자라는 점에서 비주류로 볼 수도 있다. 트럼프까지 45대에 이르는 역대 미국 대통령 중 아일랜드계 가톨릭 신자는 35대 존 F 케네디가 유일하다. 제40대 로널드 레이건은 아일랜드 가톨릭 이민자의 후손이지만 자신은 개신교도였다. 바이든이 대통령에 취임하면 아일랜드계 가톨릭 신자로는 케네디 이후 처음이며, 아일랜드계로는 레이건 다음이다.
센서스 등에 따르면 미국은 인종적으로 76.5% 백인, 11.4% 흑인, 5.9% 아시아계 등으로 이뤄졌다. 종교적으로는 개신교 48.5%, 가톨릭 22.7%, 유대교 2.1%, 몰몬교 1.8%, 이슬람 0.8%의 분포다. 그런 점에서 바이든은 트럼프보다 종교·핏줄 상으로는 선거에서 불리한 셈이었다. 트럼프는 독일계 이민 2세 아버지와 스코틀랜드계 이민 1세 어머니를 두고 개신교인 장로교회를 어려서부터 다녀왔다.
가족 잃은 아픔이 고통 받는 타인과 연대감 형성 이뤄
워싱턴 정계에서 44년간 상원의원과 부통령으로 활동한 바이든은 정치적 약점도 적지 않다.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이 변호사인 차남 헌터(50)다. 변호사 겸 로비스트(미국에선 절차만 제대로 밟으면 합법이다)로 활동하던 헌터는 2014~2019년 우크라이나 가스회사 부리스마의 이사로 활동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이를 두고 정치적인 배경이 있다는 음모이론을 퍼뜨려왔다.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정부에 이를 조사해달라고 압력을 넣다가 지난해 9월 탄핵사태로까지 번졌다. 트럼프 탄핵안은 연방하원에선 통과됐지만 연방상원에서 부결됐다. 연방상원은 공화당이 53석, 민주당계가 47석으로 공화당이 우위에 있다. 트럼프가 바이든을 잠정적인 경쟁자로 보고 타격을 입히려 한 셈이다.
바이든은 아들을 비롯한 가족에게 애틋할 수밖에 없는 사연을 가진 인물이다.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한 직후인 1972년 12월 18일 첫 부인 네일리아와 딸 나오미가 교통사고로 숨졌다. 바이든은 5년 뒤 질 제이콥스와 재혼하기 전까지 장남 보와 차남 헌터를 키웠다. 재혼 뒤 딸 애슐리를 얻었다.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변호사로 델라웨어 주 법무장관을 지낸 장남 보가 2015년 뇌종양으로 46세에 세상을 떠났다. 바이든은 견디기 쉽지 않은 어려움을 극복하며 살아왔다. 그런 과정에서 고통 받는 타인에 대한 연대감을 보여왔다. 고통과 불행이 그를 인간적으로 성숙시킨 셈이다. 바이든은 평생 2남 2녀를 뒀지만 그 중 장남과 장녀 1남 1녀를 하늘나라로 먼저 보냈다. 그는 대선을 맞아 고향에 있는 장남의 묘지를 찾기도 했다. 자식에 대한 애절한 사랑의 표시다. 5명의 손주까지 둔 할아버지인 바이든은 전형적인 ‘패밀리맨’이다. 이는 아일랜드계의 전통이기도 하다.
바이든의 건강, 특히 인지장애를 문제로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다. 바이든은 1988년 뇌동맥류 파열에 의한 지주막하 출혈로 13시간 동안 수술을 받았으며, 몇 달 뒤 두 번째 수술까지 받았지만 후유증 없이 회복했다. 잦은 말실수는 이로인한 뇌혈류 문제가 원인이라는 주장과 그 정도 나이면 흔히 있을 수 있는 ‘애교있는’ 실수라는 주장이 교차한다.
실제로 바이든은 잦은 말실수로 자주 구설에 올랐다. 영국의 여성 총리인 마가렛 대처와 테리사 메이를 헛갈리기도 했으며, 이미 1997년 세상을 떠난 중국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을 2016년 파리기후협정에서 만났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미 민주당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연방하원을 다음 선거에서 되찾겠다는 말실수도 했다.
하지만 선거 과정, 특히 토론회에서 보인 바이든은 트럼프 못지 않은 기억력과 활기로 정확하게 현안을 다루고 상대의 허점을 지적했다. 두 차례 토론회에서 바이든은 합격점을 받았다. 더 이상 인지장애를 거론하기 힘든 상황이다.
풍부한 외교경험 갖춰 오바마 정권서 러닝메이트로 활약
바이든은 정치인으로서 전공이 두 가지다. 바이든은 상원에서 법률가 경력을 살려 1987~95년 상원 법사위원장을 지냈지만 외교위원회로 옮겨 2000년대에 세 차례에 걸쳐 미국 정계의 노른자위인 상원 외교위원장을 지냈다.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소련과 러시아, 유럽 국가들을 상대하면서 그는 풍부한 외교경험을 쌓았다. 러시아와 전략핵무기 감축협정(SALT2)도 주도했다. 버락 오바마가 오랫동안 공을 들여 바이든을 러닝메이트로 삼은 것도 자신에게 부족한 외교정책 분야에서 바이든의 경력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상원 외교위원장을 맡으면서 바이든은 특유의 인간적인 친화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인권을 무시하는 독재국가에 대해서는 단호한 자세를 보여왔다.
바이든은 동맹·중국·북한·기후온난화·국제협력 등 외교 안보와 국제관계에서 트럼프와 시각차가 극명하다. 대북정책에서 바이든은 트럼프와 대놓고 대립각을 세워왔다. 미국의소리(VOA) 방송은 바이든이 지난해 중순 선거 유세에서 “우리가 블라디미르 푸틴이나 김정은 같은 독재자와 폭군을 포용하는 국민이냐”며 트럼프의 정상외교를 비판했음을 지적했다.
라디오자유아시아(RFA)는 바이든이 트럼프와 김 위원장 간에 이뤄진 어떤 합의도 신뢰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북 접근방식에서도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열며 극적 타결을 노려왔던 트럼프와 달리, 바이든은 국무부 관리를 앞세워 실무협상을 계속하는 전통적인 외교방식으로 비핵화를 추구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은 선거캠프에 ‘2021 민주당’이라는 이름의 외교안보팀을 가동하고 있다. 크리스 머피 연방 상원의원과 국무부 출신의 토니 블링큰 부장관과 니컬러스 번스 전 정무차관 등이 외교안보분야 자문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든은 한미동맹,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미일동맹 등 동맹 강화를 중시한다. 나토 회원국들과는 방위비 지출 의무비율(국내총생산(GDP)의 2%) 준수 여부를 두고 갈등하고, 한국과 일본에는 미군 주둔비의 과도한 인상을 요구해온 트럼프와는 사뭇 다른 길을 추구한다. 군사력 투입에 대해서는 미국의 사활이 걸린 사안에 대해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정 국가의 체제 전환을 위해 군사력을 사용하는 데는 반대 입장이다.
국제협력·상호합의 중시, 트럼프 규제 정책과 대조
바이든이 트럼프와 상반된 입장을 보이는 대표적인 분야가 국제협력이다. 하지만 환경이나 보건 분야에서는 미국이 국제협력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트럼프가 파리 기후변화협정에서 탈퇴하고 세계보건기구(WHO)에 대한 재정지원을 중단한 것과 대조적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대에 나온 이란핵합의에 대해서도 바이든은 트럼프와 상반된 입장이다. 트럼프는 이란핵합의에서 탈퇴하고 경제제재를 부활했지만 바이든은 오히려 합의를 확대하고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런 정책을 펼 경우 한국이 맡고 있는 이란 석유수출대금 70억 달러를 순차적으로 이란으로 송금하는 길이 트일 수도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은 이란과 경제 관계를 돈독히 하고 기회를 열어갈 수 있다. 건설 수주를 하려고 해도 금융 제재로 어려운 상황이다. 바이든이 한국에 기회를 줄 수도 있다.
인간적인 친화력과 가족 중시의 바이든이 미국을 맡으면 그의 인간적인 매력이 더욱 돋보일 전망이다. 트럼프와는 사뭇 다른 대통령상을 보일 수밖에 없다. 바이든의 인간성과 ‘트럼프 빼고 무엇이든(Anything But Trump)’ 정책이 결합하는 미국은 새로운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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