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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태윤 브랜드 스토리] ‘비비고 만두’·‘불닭볶음면’의 글로벌 인사이트

[허태윤 브랜드 스토리] ‘비비고 만두’·‘불닭볶음면’의 글로벌 인사이트

성공한 K푸드 브랜딩… ‘안 되는 이유’ 아닌 ‘될 가능성’을 보다
프랑스의 한 대형마트에서 진행한 비비고 만두 시식행사. / 사진:CJ제일제당
'비비고’의 만두가 ‘Mandu’라는 이름으로 1년에 1조원 넘게 미국을 비롯한 세계에 팔리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손톱 크기의 반도체를 개당 수십 달러에 팔아 분기에 수십조 원의 이익을 내는 시대에 그게 뭔 대수인가 하는 시선도 있겠지만, 그렇지가 않다. 한국의 대표적인 농식품을 해외에 마케팅하는 공기업은 수십 년 동안 많은 투자를 했지만 역대 최고라는 지난해 수출액이 1300억원이었다. 식품의 글로벌 브랜딩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그래서 비비고의 만두가 얼마나 많이 팔린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또 몇 년 전부터 한국의 매운맛을 세계에 전파하며 누적 매출 1조원을 돌파한 라면 브랜드가 있다.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이다. 해외 유튜버들이 소위 ‘파이어 누들 챌린지(fire noodle challenge)’라는 동영상을 20만개가 넘게 만들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20만개 동영상은 대부분이 UGC(User Generated Content)로 조회 수가 1억 건에 이르는 영상부터 보통은 1000만 뷰, 대부분 10만 뷰를 넘는다.

1998년부터 10여년 동안 광고대행사의 현지 주재원으로 해외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 필자는 이러한 한국 식품 브랜드의 성공이 얼마나 어렵고 의미 있는 일인지 안다. 그래서 호들갑으로 보는 시선이 있음을 알지만 큰 박수를 쳐 주고 싶다.
 비비고 만두, 글로벌 시장 향한 ‘린치핀’
식품은 다른 제품과 달리 문화를 파는 것이다. 확장성의 측면에서 보면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CJ는 비비고를 처음부터 한식을 세계에 알리는 대표 글로벌 브랜드로 만들기 위해 개발했다. 2010년 론칭 당시, 비빔밥을 주 메뉴로 한 한식 외식 체인을 기반으로 비빔밥의 주재료인 고추장을 세계화하겠다는 발상이었다. 그러나 짜장면을 좋아한다고 집집마다 냉장고에 춘장을 두고 먹지 않는다는 내부 반론이 거셌다. 그 대신 세계인이 보편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만두를 첫 상품으로 선정했다. 물론 만두는 오리진이 중국이고 한식이 아니라는 반론이 있었다.

그러나 만두를 ‘교자’로 발전시켜 일본화를 한 일본의 케이스가 참고 됐다. 또 중국식 ‘덤플링’이 피가 두껍고 돼지고기의 지방을 주로 사용해 건강에 좋지 않은데 반해 한국식 만두는 살코기를 주로 쓰고 야채와 두부를 조화롭게 사용한다는 차별성을 부각시키기로 정했다. 이러한 근거를 바탕으로 만두를 ‘비비고’의 첫 번째 전략상품인 ‘린치핀(마차나 수레, 자동차의 바퀴가 빠지지 않도록 축에 꽂는 핀으로, 핵심축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음. 외교적으로는 동반자라는 의미로 사용)’으로 상정했다. 글로벌 브랜드를 목표한 만큼 이 만두 제품은 처음부터 ‘본 글로벌’ 전략을 선택했다.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비비고 만두를 론칭한 것이다.

세계에서 냉동식품 시장규모가 가장 큰 미국은 간편식품이 이미 보편화된 상태. 마침 ‘에스닉푸드’라 불리는 인도 음식, 아시아 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시장이었다. 게다가 경쟁 업체인 일본 ‘아지노모도’사 계열의 ‘링링’ 브랜드는 수십 년간 노후 설비로 단일 제품만을 생산하고 있었고, 중국인들이 운영하는 기업들은 손으로 만두를 빚어 판매하는 수준이어서 해볼 만 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비비고의 미국 시장 진출 전략은 한마디로 ‘글로컬리제이션(glocalization)’이다. 브랜드 오리진인 한국의 정체성을 담으면서 현지 문화에 맞도록 제품부터 메시지 개발까지 고려한 것이다. 당시 경쟁사 제품들은 주류시장이 아닌, 아시아인을 타깃으로 판매하다 보니 중국인들의 입맛에 맞춘 레시피를 그대로 사용했다.

비비고는 미국에 불고 있던 건강식 열풍을 고려해 돼지고기 대신 칼로리가 낮은 닭고기를 만두소에 넣는가 하면, 히스패닉문화의 영향으로 실란트로(고수)에 익숙한 미국인의 입맛을 고려했다. 사이즈도 한입 크기로 줄여 누구나 부담 없이 먹을 수 있고, 샐러드나 전체요리 등에 응용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메시지 측면에서는 두 가지를 강조했다. 우선 한국식(Korean Flavor)라는 것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를 위해 ‘만두’라는 한국식 이름을 새로운 카테고리 대명사로 인식시키려고 시도했다. 비비고의 만두는 기존의 중국식 ‘덤플링’(중국식 만두)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인식시키고자 함이다. 그 배경에는 CJ가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K팝과 K콘텐트를 통해 얻은 우리 문화에 대한 자신감도 존재했을 것이다. 두 번째는 한국식 만두를 질 높고 신선한 재료만을 사용하는 레스토랑 컬리티의 건강식으로 포지셔닝 했다.

이러한 한국식 ‘글로컬리제이션’은 미국 시장에서 2017년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25년 동안 미국 시장에서 1위 자리를 차지했던 ‘링링’을 제치고 1위 브랜드가 된 것이다. 이후 비비고는 동남아·유럽·러시아·중국 등의 시장으로 확대하면서 만두 단일 품목만으로 연 1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글로벌 브랜드로 우뚝 섰다.

농심과 오뚜기의 아성에 밀려 부진을 거듭하던 삼양이 존재감을 되찾은 것은 물론이고 글로벌 시장에서도 브랜드 가치를 높인 배경엔 ‘불닭볶음면’이 있다.

이 제품은 매운 찜닭집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을 보고 중독성이 강한 매운 맛을 라면에 적용해 보자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국물 라면을 벗어난 볶음면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의 신선한 제품이었지만 매운 맛을 좋아하는 일부 마니아들을 위한 니치(틈새)시장용 제품으로 소량만을 생산했다. 광고를 진행하지 않아 매출이 저조했던 이 제품이 단종의 위기에 몰린 건 당연한 결과였다.
 ‘불닭’의 성공비결은 광고하지 않은 것
유튜브 채널 ‘영국 남자’에서 볼 수 있는 불닭볶음면 도전 콘텐트 한 장면. / 사진:유튜브 캡쳐
그런데 이 불닭볶음면이 시장에서 보이지 않자 ‘중고나라’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귀하게 대접을 받았다. 매운맛을 좋아하는 소수의 마니아층에 의해 사랑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단종과 생산의 기로에서 소수의 팬층을 주목한 삼양은 이후 제품 개선에 나섰다. 매운맛을 중화시키기 위해 제공했던 계란 블록을 없애고 사용이 편리한 김과 깨로 만든 플레이크를 추가했다. 2012년 본격적으로 생산이 재개된 이후 기존 라면과 차원이 다른 매운맛으로 조금씩 마니아층을 넓혀 갔다.

그러던 중 2014년, 유튜브에서 엄청난 사건이 일어난다. ‘영국 남자’로 알려진 유튜브 스타 영국인 조쉬가 불닭볶음면에 도전하는 영상 ‘파이어 누들 챌린지(fire noodle challenge)’를 선보였는데, 엄청난 조회 수(현재까지 1200만회)를 기록하며 관심을 모은 것이다. 눈물, 콧물을 흘리며 불닭을 먹고, 심지어 딸꾹질하면서도 매운맛에 도전하는 영국인의 모습이 너무 재미있고 신기한 나머지 다른 나라 유튜버들도 파이어 누들 챌린지를 찍어 올리기 시작했다.

불닭볶음면 도전은 경쟁적으로 영상으로 제작되어 지금까지 관련 동영상이 20만개에 이를 정도가 됐다. 챌린지가 하나의 콘텐트 포맷으로 자리 잡은 셈이다. 당연하게 불닭볶음면은 해외에서 판매기록을 갈아 치웠다. 전 세계 80개국에서 수입요청이 들어오고, 수출하는 라면 2개 중 하나가 불닭볶음면이 됐다. 지난 2018년에는 누적 판매액 1조원을 넘었고, 내수보다 수출이 더 큰 기현상이 일어났다. 첫 제품 판매 후 10년이 지났지만, 후속 제품 역시 새로운 기록을 세우고 있다. 전 세계에 강력한 팬덤을 가진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는 반증이다.

불닭볶음면이 광고 하나 제대 만들지 않았음에도 이처럼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광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품이 좋다고 스스로 말하지 않고 고객이 경험해보고 공유하게 하는 ‘극강의 매운맛’이라는 독특한 제품 컨셉트에 있다 할 수 있다.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 MZ세대가 좋아하는 ‘공유하고 싶은 음식’으로 만든 것이다.

BTS를 필두로 한 K팝의 열기와 영화 ‘기생충’이 촉발하고 있는 K컨텐트의 힘이 점점 더 강력해지고 있다. 이(異)문화로서 한국문화를 바라보는 세계인의 거부감이 확연히 사라지고 있다. ‘비비고 만두’와 ‘불닭볶음면’ 사례에서 우리 식문화가 세계인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될 날이 머지않았음을 느끼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기시감은 아닐 것이다.

※ 필자는 제일기획과 공기업에서 30년간 광고와 마케팅을 경험했다. 제일기획 인도법인을 설립했으며, 미주총괄 임원을 역임했고 이후 공기업의 마케팅본부장을 맡아 공공부문에 민간의 마케팅 역량과 글로벌 역량을 접목시키는데 기여했다. 한국외대에서 광고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한신대 평화교양대학 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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