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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 투기, 안 잡나? 못 잡나?] 정쟁 파고에 표류하는 부동산투기 조사

[LH 투기, 안 잡나? 못 잡나?] 정쟁 파고에 표류하는 부동산투기 조사

농지 현장 정보 파악 어려운 행정체계… 전담기관·통합시스템 마련 필요
사진:연합뉴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사건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지만 정부의 허술한 대응이 국민 공분을 키우고 있다. 국회의원들의 던지기식 무더기 입법 발의, 선거를 염두에 둔 여·야 주도권 싸움, 진상 파악보다 사건 확대를 경계하는 국토교통부 등의 행태가 기름을 붓고 있다. 그러는 사이 모래가 빠져나간 빈 주먹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회에선 국회의원들의 과잉 입법 발의가 쏟아지고 있다. 대부분은 LH를 겨냥해 투기이익 몰수, 벌금 증액, 실수요 외 부동산 거래 금지, 토지거래신고제 도입, 공공기관 직원 토지거래 정기검사 등이다. 이는 공공주택특별법·공직자윤리법·부패방지법·자본시장법·한국토지주택공사법의 일부를 개정하거나 처벌수위를 높인 것뿐이어서 여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LH와 함께 투기 혐의를 받고 있는 국토부가 최근 법안 수립에 신중해 달라는 의견서를 국회에 제출해 눈총을 사고 있다.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토지 계약을 무효화하거나 실거주 외 부동산 취득을 금지하는 등의 법안은 선의의 피해자를 낳을 수 있다”며 “취득 제한 범위를 토지에 한정할 것”을 주문했다.

국토교통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LH 내부엔 안 걸리면 된다라는 생각이 만연해 있다”며 “현행법이 투기 금지를 명시하고 있지만 혐의자의 개인정보공개 거부에 대한 대응, 공무원의 내부 정보 오남용 방지엔 한계가 있어 부동산을 매입하지 못하게 사전 심사제·신고제 같은 원천 차단 쪽으로 방안을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당·정이 간과하는 법 개정 중 하나가 농지법이다. 시민단체는 LH 사태의 주 원인을 농지법 완화 탓으로 보고 있다. 헌법과 농지법엔 경자유전(耕者有田·농업인·농업법인만 농지 소유 가능) 원칙과 소작제도 금지를 준수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비농업인이 농업경영계획서를 제출하면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발급받아 농지를 취득, 자작농을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농지 취득자격 풀었더니 투기수요 유입
하지만 그동안 농촌경기 활성화를 위해 규제를 완화해오면서 비농업인이 농지를 취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는데 그 예외 조항이 약 16개에 이른다. 예를 들어 1000㎡ 미만 주말농장·체험농장은 농지취득자격증명이 없어도, 비농업인이 이농·증여·상속을 통해서도 각각 농지를 취득할 수 있도록 했다. 농사를 중단해도 농지를 계속 보유할 수 있게 했다.

이는 임대차를 통해 다른 농업인에게 관리를 맡기고 땅값이 오를 때까지 기다리거나, 농지에서 대지로 형질을 전환해 땅값을 끌어올리는 등 시세차익을 노리도록 멍석을 깔아주는 꼴이 됐다. LH 직원과 공무원이 농업경영계획서를 허위로 작성해 농지를 취득하고 보상기준에 맞춰 면적과 지분을 쪼갠 점이 농지법의 허점을 악용했다고 시민단체들이 판단하는 이유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분석에서도 이를 짐작할 수 있다. 농지의 소유와 이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 경지면적 중 농업인이 소유하는 면적 비율이 1995년 약 67%에서 해마다 감소해 2015년 약 56%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44% 정도가 비농업인 소유인데 대부분 임대차경작과 주말체험 농장이다. 임대차 농지는 계속 증가해 2017년에 50%를 넘은 상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채광석 연구위원은 “국내 전체 농지원부 등록률(임대차 포함)이 70%에 불과해 실태 파악이 곤란한 상황”이라며 “사후에 이용실태를 조사해 처분명령·이행강제를 부과해도 실효성이 낮아 비농업인의 농지소유 면적이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전국농민회총연맹·한국농업법학회·경제정의 실천시민연합 등 시민단체들은 농지법 예외 조항이 투기심리를 부추기는 독소 조항으로 변질됐다고 판단해 대안을 마련 중이다. 그 중 하나가 마을단위 농지관리위원회 설립이다. 지역 농민들이 농지를 누가 어떻게 실사용하는지 상시 점검·심사토록 하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농림축산식품부·한국농어촌공사 등 관청은 지역 실정을 잘 몰라 자격심사와 사후점검이 허술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어서다. 또 다른 대안은 농지전담관리기구 설립과 농지정보통합관리시스템 구축이다. 이번 LH 사태 조사에서 농지에 대한 행정정보와 현장정보가 일치하지 않고 주무 부서가 모호해 사건 파악에 애를 먹고 있어서다.
 여야·검경 신경전에 수사체계도 흔들
전국농민회총연맹 이무진 정책위원장은 “농림축산식품부나 한국농어촌공사 농지은행은 단순한 농지 중개에 그쳐 체계적인 전담관리기구가 절실하다”며 “유럽국가들의 농지관리청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정부는 또한 LH 사태 대응에서 조사지휘체계를 일원화하지 못하고 당쟁에 휘둘리고 있다. 정부는 정부부처들로 구성된 합동조사단을 꾸렸지만 수사권이 없어 위법행위 규명에 한계가 드러나자 경찰이 주도하는 합동수사단으로 강화했다. 15일부터 투기신고센터도 열었지만 그 사이 제보 접수가 지자체·경찰·시민단체·정당 등으로 분산되고 이를 제때 공유하지 못해 수사도 진척되지 못했다. 심지어 여·야가 뒤늦게 특검 도입에 합의해 정부가 힘을 실어줬던 경찰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투기 조사범위를 아직도 못 정한 점도 걸림돌이다. 정부는 마지막 승부수인 3기 신도시 국책사업이 무산될 위기에 처해 빠른 시간 안에 모든 혐의자들을 발본색원하는 저인망식 초동조사가 절실한 상황이다. 최근엔 LH 직원이 배우자와 친인척들을 동원해 광명 땅에 투기하고, LH 퇴직자들이 민간건설업체에 입사해 정부사업을 독식하는 등 내부 정보를 활용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어서 하지만 정부는 여·야 주도권 싸움에 치여 조사부지를 신도시 후보지에서 주변지역으로, 조사대상을 부처 공무원에서 퇴직공무원과 직계존비속·친인척으로 확대하지 못해 난항을 겪고 있다.

지난 15일 LH 규탄 2030 촛불시위를 진행한 한국청년연대 김식 대표는 “전수조사를 즉각 실시해 차명 투기도 근절하고 주택 노예에서 벗어나는 주거불평등 해소 정책 마련이 국민의 바람”이라고 말했다.

- 박정식 기자 park.jeongsi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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