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OK 특별기획] 실리콘밸리 K스타트업이 오하이오 간 까닭은
서영호 잡스오하이오 한국사무소 대표 인터뷰
“내수시장 벗어나 새 기회 창출 가능”
“중기도 기술력 갖췄다면 경쟁력 있어”
“미중 무역갈등은 위기 아닌 기회”
한국의 중소·중견 기업의 미국 진출에 도움을 주는 대표적인 기관이 주한미국주정부대표부협회(ASOK)이다. 주마다 다른 세금 체계와 규제 등으로 미국 진출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중견기업을 위해 이코노미스트가 ASOK과 함께 ‘한국 중소·중견기업, 아메리카 드림 어게인’을 연재한다. [편집자]
서영호 잡스오하이오 한국사무소 대표는 25년간 해외 투자 컨설팅을 해온 전문가다. 미국 오하이오 경제개발청이 세운 한국사무소 대표를 맡은 이유다. 보통 해외 지방정부나 기관은 지역경제 발전을 위해 세계 각국에 사무소를 만드는데, 목적은 그 지역 기업의 현지 진출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한국에 사무소를 차린 오하이오 역시 우리나라 기업의 현지 투자를 강력히 바라고 있다. 특히 중소·중견기업들의 생소한 제품이나 인지도가 낮은 브랜드가 깃발을 꽂길 원한다. 서영호 대표는 “오하이오는 작은 기업도 크게 성장할 수 있는 비즈니스 환경을 갖춘 매력적인 도시”라고 조언했다. 서 대표의 말을 더 자세히 들어보자.
자본과 인력이 부족한 우리 중소기업이 왜 미국에 진출해야 하는가.
한국 중소기업의 해외 진출은 필수다. 대기업에 치우친 경제 구조를 탈피해 견실한 중소기업을 육성하는 게 한국 경제의 난제로 꼽히지 않나. 수출도 마찬가지다. 몇몇 대기업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중소기업의 해외 진출은 장기화하고 있는 내수 시장 침체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미국은 세계 최대 소비시장 중 하나다.
국내 기업이 오하이오에 진출하는 데 매력이 무엇인가.
미국 오하이오는 외국 기업이 새 비즈니스를 꾀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숫자가 이를 증명한다. 50여 개국 1000개가 넘는 외국 법인이 오하이오에 둥지를 틀었다.
미국 진출이 시의적절한지 의문이다. 미·중 무역 분쟁과 보호무역주의 시그널이 이어지고 있는데.
미국으로 수입되는 중국산 부품의 관세가 오르거나 아예 판로가 끊길 위험은 있다. 그렇다 해서 미·중 갈등을 꼭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한국 중소기업 입장에선 업종에 따라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
어떻게 기회가 되는가.
중국 기업의 미국 비즈니스가 중단되거나 철수하는 상황이다. 그 빈틈을 한국 기업이 메울 수 있다. 실제로 중국 부품을 수입하던 미국의 한 회사는 지난해 한국 중견기업 제품으로 수입 루트를 다변화했다. 대미 수출 물량이 부쩍 늘어난 이 기업은 현재 오하이오 현지에 공장 설립을 고려 중이다.
코로나19가 좀처럼 잠잠해지지 않는 현실도 문제다.
팬데믹으로 물리적인 장벽이 높아진 건 사실이다. 다만 진출 의지만 뚜렷하면 큰 걸림돌은 아니다. 정부 부처에 미리 시급한 비즈니스라는 점을 어필하면 자가격리를 면제받을 수도 있다. 올해 초 격리 없이 오하이오를 다녀온 한국기업이 실제로 있었다. 격리 면제가 어렵더라도 화상 컨설팅이 꽤 자리를 잡았다. 현지 공공기관·기업과의 네트워킹은 막힘없이 가능하다.
중소기업 입장에선 현지법인까지 세워가면서 진출하는 게 요란해 보인다.
현지법인 대신 한국지사를 세우는 게 비용도 덜 들고 간편하긴 하다. 다만 경험에 근거해보면 여러모로 현지법인 설립이 더 낫다. 가령 법적인 책임을 질 때, 한국지사는 한국에 있는 모회사가 책임을 져야 한다. 반면 현지법인을 세울 경우, 그 법인에만 법적 책임이 국한된다. 현지 기업과 협업을 할 때도 더 신뢰감을 주는 장점도 있다.
진출해서 성과가 나기까지 보통 얼마나 걸리나.
우리 기업들은 투자금을 빨리 회수하려 하는 경향이 강한데, 거기서 사달이 나는 경우가 많다. 해외 진출은 기본적으로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다. 제대로 자리를 잡을 때까지 못해도 3년은 필요하다.
3년은 너무 긴 것 아닌가.
우리 중소기업 중엔 제조업이 많으니, 제조업을 사례로 풀어보겠다. 해외 진출의 첫 번째 단계는 ‘사이트 셀렉션(Site Selection)’이다. 진출 부지를 선정하는 작업인데, 최소 6개월에서 1년이 걸린다. 부지를 정하면 공장 설계를 해야 하고, 공장을 지어야 하고, 테스트 생산도 마쳐야 한다. 여기에 쏟는 시간이 아무리 짧아봤자 3년이다. 내실 있는 현지화 전략, 즉 생존력이 성공의 관건이다.
“해외 진출 전략엔 장기적인 안목 필요”
한국 중소기업이 난관에 부딪히는 요소는 또 뭐가 있나.
양국의 기업 문화가 전혀 다른데, 이를 이해하지 못할 때 곤란을 겪는다. 과정보다 업무의 결과를 더 중시하는 미국식 스타일에 한국 경영진이 적응하지 못할 때가 많다. 현지인을 고용한 뒤 평가나 승진 시스템에서 엇박자를 내는 모습도 종종 봤다. 기업 문화도 현지화할 필요가 있다.
한국식 경영 스타일은 다 버려야 하나.
문제가 터졌을 때 신속하게 대응하는 건 우리나라 기업이 가장 잘하는 것 같다. 이런 장점들을 안고 가면 현지의 좋은 평가가 뒤따를 것이다. 현지에 이미 진출한 한국 대기업과 네트워킹도 우리 문화 특유의 ‘정(情)’으로 볼 수 있지만, 실제로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오하이오에 진출할 땐 어떤 업종이 유리할까.
포드, 혼다, 지프 등의 완성차 생산시설이 오하이오에 있다. 자동차 부품 관련 기업들의 진출이 가장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오하이오가 미국 동부와 서부를 연결하는 건널목 역할을 해온 만큼 물류 기업의 투자 문의도 환영한다. 개인적으론 국내 식품업체의 진출을 기대하고 있다. 한국 음식문화에 관심이 부쩍 늘어나는 추세이고, 물류 시스템이 잘 갖춰진 지역인 만큼 배송 걱정을 덜 해도 된다.
다른 추천 업종이 있다면.
바이오 관련 기업이 눈독을 들이기에 좋다. 의료기기는 허가를 얻는 과정이 복잡한데, 이는 조인트벤처 설립을 통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오하이오 경제개발청에서 이런 파트너십을 적극 주선하고 있다. 장기적으론 신재생에너지, 전기차 등 친환경 관련 산업의 성장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다들 알다시피 GM과 LG의 전기차 배터리 합작법인이 오하이오 로즈타운에 들어선다.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첨단 업종에도 매력적인 지역이다.
GM·LG 합작법인 로즈타운에 새 공장
진출 성공 사례가 있나.
자율주행 솔루션을 개발하는 한국 스타트업 토르드라이버는 최근 실리콘밸리에 있던 미국 법인을 오하이오로 옮겼다(토르드라이버는 지난해 4월 프리시리즈 A로 84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누적 투자 유치 금액은 114억원 정도다). 오하이오의 재정 지원이나 기술 지원이 훌륭했기 때문인데, 현재 오하이오에 있는 공항의 화물 자율주행 사업을 맡고 있다.
잡스오하이오 한국사무소는 한국 기업 진출에 정확히 무슨 역할을 하나.
평균 임금, 세금 비교 및 산업분포 등의 디테일한 정보를 주는 게 첫 번째다. 사업구상 단계에서부터 진출 실행, 진출 이후까지 다양한 지원을 제공한다. 현지 정부와 기업과 네트워킹 기회도 주어진다. 대부분의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오하이오 진출을 희망하는 중소기업에 조언한다면.
한국 기업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오히이오는 미국 내에서 정치적, 경제적으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오하이오를 교두보로 삼아 미국 전역으로 진출을 모색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교포가 많아서 현지화 전략도 손쉽게 해낼 것이다. K브랜드를 향한 좋은 이미지가 미국에 많이 쌓였다. 공격적으로 투자해도 괜찮다.
김다린 기자 kim.dar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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