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래 농협은행 부행장 “모바일브랜치로 디지털 속도전”
[금융그룹 디지털패권 전쟁] ⑤ 농협금융
삼성맨에서 은행 디지털부문 임원으로
“농협은행 약점을 강점으로 바꿔 나갈 것”
※ ‘디지털 혁신’이 금융그룹의 생존 키워드가 됐다. 디지털 플랫폼 구축과 특화 서비스 경쟁이 치열하다. 5대 금융지주사의 디지털 부문 리더를 만나 ‘디지털금융’의 오늘과 내일을 들어본다. 마지막은 농협금융이다. [편집자]
농협은행에는 1122개 점포가 있다. 시중은행과 비교해 많게는 두 배 가까이 된다. 쉽사리 점포를 줄이지도 못한다. 설립 목적이 주주 환원과 수익 확대에만 있지 않기 때문이다. 농업협동조합법 116조 2항에는 농협은행의 존립 이유가 나온다.
법은 ‘농어촌자금 등 농업인 및 조합에게 필요한 자금의 대출’을 농협은행의 제1 업무로 명시했다. 점포 방문이 편하고 연령이 다소 높은 농업인을 상대로 영업해야 하는 입장인 것이다. 그만큼 농협은행의 비대면 금융 전환은 다른 은행보다 어려운 숙제다. 그렇다고 변화의 기류를 타지 않으면 어디까지 뒤처질지 모른다.
11일 [이코노미스트]와 만난 이상래 농협은행 디지털금융부문 부행장도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다. 이 부행장은 “농협은행의 강점이 무엇이냐를 고민해야 했다”며 “디지털금융이 멀게 느껴질 고객을 어떻게 챙겨나갈 것이냐를 다른 은행보다 더 신경 쓸 수밖에 없다. 어려운 숙제이나 농협은행이 해야 할 숙제임에 분명하다”고 말했다.
이 부행장은 삼성에서 영입된 IT 전문 인재다. 지난해 7월 농협은행은 이 전 삼성SDS 상무를 디지털부문 부행장으로 선임했다. 이 부행장은 삼성SDS에 입사해 30여 년 간 솔루션컨설팅팀장, 데이터분석사업팀장, 디지털마케팅 팀장 등을 거친 디지털 및 데이터 전문가다.
이 부행장의 영입은 비금융권 인사가 은행 부행장 직에 오른 첫 사례였다. 업계에선 은행의 ‘순혈주의’를 깬 인사로 봤다. 보통은 지점에서 잔뼈가 굵은 영업맨들이 은행의 요직에 오르기 때문이다. 그만큼 농협은행에는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민간 은행처럼 대면 영업을 줄이면서 디지털을 도입할 수 없다는 현실 때문에 새로운 시각을 가진 인사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 부행장의 존재가 여전히 업계의 관심을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은행장까지 디지털금융 전환에 관심 높아 놀랐다”
은행에 온지 10개월 정도 됐다. 어떻게 지내고 있나.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삼성에서는 디지털 전환을 위한 계획 수립과 실행을 지원하는 역할을 주로 했다. 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이었다. 지금은 조금 다르다. 제가 직접 디지털 전환의 주체가 돼 디지털 전환에 대한 방향 수립, 과제 도출, 실행까지 수행한다. 비즈니스 성과까지 창출하는 ‘End–To-End’ 업무를 한다. 디지털 전환의 결과까지 볼 수 있는 것이다. 그 맛에, 그 역할에 만족하고 있다.
대기업과 은행 문화가 달라 적응이 어려웠을 것 같다.
가령 새로운 일을 추진할 경우 이전 직장에선 상황을 빨리 분석해 서비스를 내줄 수 있었다. 현재는 금융의 특성상 신뢰를 먹고 사는 업종이다 보니 신중한 부분이 있다. 은행장님이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돌다리를 천 번 두드리는 것이 은행이다.” 저는 사업의 성격에 따라 추진 전략을 달리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줄일 것은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 변화가 필요해서 영입된 것 아닐까.
‘왜 나를 영입했을까’를 생각해 보면, 은행이 새로운 시각을 요구한 것이라고 본다. 20~30년간 은행 일만 하면 새로운 시각을 갖기 어려울 텐데, 제가 다른 분야에서 온 만큼 새로운 시각을 도입해 달라는 요구가 있다고 본다. 임원 면접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다. 은행장(현재 손병환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이 1시간 동안 디지털 부분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답변하면 그에 따른 새로운 질문을 하는 것을 보며 디지털금융 지식이 깊다고 생각했다. 제가 생각한 은행장의 모습이 아니었다. 디지털의 관심이 굉장하구나를 생각했다.
직원의 보고 방식도 바꿨다고 들었다.
디지털 전환은 은행이 가보지 않은 길이다. 지금까지 은행은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된 절차대로 움직였다. 보고서를 쓰더라도 98점짜리 보고서를 썼다. 그래야 일이 진행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저는 ‘그렇게 하지 말자’고 했다. 어차피 디지털금융은 안 해본 일 아닌가. 보고서가 51% 정도 완성됐다고 생각하면 일단 공유하자. 그럼 함께 고민할 수 있다. 혼자 힘으로는 새로운 것을 하기 힘들다. 51% 됐을 때 테이블에 꺼내 놓으면 그때부터 대화가 시작된다. 50%에서 1%만 더 해오면 된다.
“지점 가서야 직원들의 어려움 알게 돼”
은행원 출신이 아니다 보니 지점 분위기와 문화를 모를 수 있다. 지점에 나가보는지?
작년에는 그러지 못했다. 올해는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마다 가능하면 지점에 간다. 지점에 나가보니 직원 개인이 봐야 할 (본사에서 내려온) 지도가 100건이 넘었다. 직원들이 문서의 용어와 내용조차 이해하기 어려워하고 있었다. 그것을 어떻게 바꿀 수 없을까 고민했다. 그래서 디지털 부분만큼은 가능한 한 쉽게, 동영상 형태로도 만들어 전달하고 있다. 지점에 가보고 안 것이다.
농협은행 지점을 찾는 고객은 연령대가 높다. 디지털 전환에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저희는 비대면 고객 확대만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농협은행만의 색깔을 찾으려고 한다. 농협은행은 젊은층만 아니라 고령층 고객까지 은행을 이용하는 연령층이 다양하다. 그래서 인터넷전문은행처럼 꼭 비대면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지점을 찾는 고객이 저희의 강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NH모바일브랜치’를 도입했다. 직원의 명함 뒤에 큐알(QR) 코드를 넣고 앱 또는 인증서 없이 스마트폰으로 찍어서 상품가입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 서비스도 점차 고도화되고 있다. 차후 모바일브랜치를 통해 지점 간의 특색도 살릴 수 있다. 예를 들어 세종시 지점에서 큐알코드를 찍으면 우선 공무원을 위한 특약 상품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NH모바일브랜치를 개인화하는 것이다. 농협은행만의 특색을 살려 디지털화하자는 게 기본적인 계획이다.
마이데이터 사업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고객의 일상생활 속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꼼꼼하게 컨설팅해주는 생활금융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첫 번째로 금융일정 안내 및 지급결제를 도와 연체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금융 플래너 서비스’, 두 번째는 13월의 보너스를 위한 ‘고객 맞춤형 연말정산 컨설팅 서비스’, 세 번째는 차량 및 운전정보를 한눈에 조회하는 ‘내차관리 서비스’, 네 번째는 고객이 몰라서 못 받는 혜택이 없도록 ‘맞춤 정부혜택 서비스’를 내놓을 예정이다. 기존에 금융사는 고객의 단편적 정보만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고객 정보를 완벽하게 분석할 수 없었다. 마이데이터는 이것을 해결해주는 시스템이다. 금융의 판이 바뀌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본다.
은행에 온 후로 금융 공부를 따로 하는지?
저는 금융 공부를 고객에 대한 공부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은행과 관련해 공부했다. 이후로는 여·수신, 자산관리, 디지털, 블록체인 등 금융의 각 분야별로 전문가들을 만나고 있다. 지식이란 살아있어야 한다고 본다.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앞으로도 그렇게 금융을 알아갈 생각이다. 비대면 디지털금융에 꼭 필요한 부분도 결국 사람이다. 인재 영입에서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인재 영입과 인재 양성을 위해 단기적으로는 전문 인력을 수시채용하고 있다. 외부업체와 파트너십을 통해 디지털 역량을 확보해나가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서울대(빅데이터), 국민대(인공지능) 등과 디지털 핵심인재 양성을 위한 산학협력 교육과정을 통해 지속적으로 인재를 양성해 나갈 예정이다.
이용우 기자 lee.yongwo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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