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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여파, 자동차 칩 부족 사태를 불러오다

[김국현 IT 사회학]
반도체업계 첨단 반도체에 집중…레거시 칩 생산 부족
전 세계 자동차업계, 반도체 파운드리 눈치 보고 있어

 
 
지난 4월 13일 반도체 수급난에 멈춰선 현대차 아산공장의 모습. [연합뉴스]
한국의 고도성장기, 제철보국(製鐵報國)을 내건 포항제철(현 포스코)의 성장무용담에는 어떻게 이 '산업의 쌀'을 확보하기 위해 분투했는지가 뜨겁게 기록되어 있다. 21세기에도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것이 있으니 그건 반도체다. 코로나19 덕에 등 떠밀려 각 산업에서는 디지털 전환(DT, DX)이 화두가 되었는데 지금 정작 산업의 쌀이 부족해서 상을 못 차린다고 한다. 칩 부족 사태다.
 
다른 코모디티처럼 사이클의 부침은 늘 있었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산업이 멈추고 있다. 특히 자동차 업계가 타격을 입었다. 
 
GM은 올해 최대 2조 원가량의 손실이 벌어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었는데 다시 보니 이는 낙관이었다. 전 자동차 업계 손실액이 60조 원가량일 것이라는 연초 추산과는 달리, 5월 현재 110조 원으로 불어날 것이라고 예측치가 갱신됐다. 차를 아예 못 만들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포드는 이사분기 물량의 50%를 날리게 생겼다고 울상이다. 
 
전기차나 자율주행차 같은 첨단 차량이 아니더라도 신차에는 다양한 칩이 들어간다. 계기판에도 엔진제어시스템에도 반도체가 들어있다. 그런데 차에는 내구성이나 안정성을 고려해 검증된 백전노장의 칩을 주로 쓰기에 이들을 '레거시 칩’이라고 부른다. 
 
스마트폰용이나 PC용에 비하면 별것 없어도, 그 흔하다면 흔한 부품들 빼놓고는 조립할 수 없으니 공장은 멈춘다. 갑작스러운 설계 변경이나 대체품을 투입할 수도 없다. 호환품 목록을 유지하며 공급선을 다변화하지만 그렇게 안 되는 칩도 있다. 또 섣불리 대체품을 쓴다면 공급 부족시기 생산품에는 후일 이해 불가능한 결함 발생의 가능성도 적지 않아 이 또한 리스크다. 재고는 떨어졌고 주문할 수도 없다. 조업 정지다.  
 

미국과 일본과 중국의 사정

사태는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미국에서 시작한다. 
 
확진자 속출로 공장이 봉쇄되고 소비마저 위축됐다. 집에만 있는데 신차는 무슨 신차. 차량 판매량이 40% 가까이 폭락했던 작년 이맘때였다. 대신 집에만 있다 보니 가전 수요가 급증했다. 줌 수업하느라 암호 화폐 하느라 다들 PC가 필요했다. 자동차 업계에 납품하던 각 반도체 공정은 살기 위해 판로를 조정한다. 
 
그런데 백신이 등장했고, 자동차 수요가 급회복한다. 생산 재개에 기분이 좋아 부품 주문을 넣어 보지만 고개를 저었다. 갑자기 이러시면 안 된다며.
 
이미 반도체 공장은 어디나 완전가동 상태. 단가를 높여 받을 수 있는 첨단 반도체에 집중하느라, 누구라도 만들 수 있는 평범한 레거시 칩 생산은 뒷전이 되어버렸다. 도요타의 저스트 인타임 경영은 이제 자동차 업계에서 상식. 어디나 재고를 쌓아두지 않았다. 창고에서도 매대에서도 차량용 칩들이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차량용 반도체 [블룸버그]
그렇다면 급한 대로 더 높은 가격을 불러 이미 만들던 것 일단 만드신 후 만들어 달라면 될 줄 알았다. 그렇게 알아서 보이지 않는 손이 조절하면 그만이었을 터이지만, 문제는 복잡했다.
 
웨이퍼도 모자랐다. 웨이퍼 물량이 첨단 제품 쪽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반도체는 모래에서 실리콘을 추출해 덩어리를 만든 후 얇게 썬 웨이퍼 위에 회로를 새겨 넣어 만든다. 문제는 그 웨이퍼가 단 1㎜의 굴곡도 용서되지 않는 축구장을 만드는 것 같은 첨단 공예품이라는 점이다. 웨이퍼는 일본이 절반 이상을 만들어 내고 있었고 고품질 웨이퍼일수록 일제 의존도가 높았다. 모래를 퍼다 생산량을 늘리면 좋겠지만 일본 기업들은 섣불리 욕심을 내지 않았다. 슈퍼 사이클이 온다고 좋아하며 설비 투자를 늘렸다가 리만 쇼크 때 큰 타격을 입은 아픈 기억 탓이다. 특히 5나노급 웨이퍼 등은 일제가 선호되는 상황이니 일본 입장에서는 가격이 오르기를 기다리는 편이 합리적이다.
 
그 와중에 자동차용 반도체에서 20~30%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일본 르네사스 전자의 반도체 생산 공장에서 화재마저 발생했다. 르네사스로서는 대만 TSMC에 외주줬던 물량까지 다시 가져오며 기회를 살려 보려던 때였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때도 바로 이 르네사스의 공장이 멈추면서 도요타는 큰 타격을 받았다. 그 교훈 덕에 정작 저스트 인타임의 도요타는 칩 재고만은 4개월분이나 확보해 둔 덕에 화를 면했다. 지난겨울 텍사스 강추위로 인한 전력 차단 여파로 NXP 등 다른 차량 반도체 기업마저 정상 가동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자동차 업계는 넋을 잃었다. 
 
그런데 재고가 쌓여 있던 곳은 따로 있었다. 바로 중국이다. 트럼프 정권의 중국 제재는 많은 중국 기업들에 부품과 원자재 사재기를 권장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미국의 제재에 민감해진 중국 기업들은 살 수 있을 때 사자며 필요 이상으로 이것저것 주문을 내고 있었다. 생산에 필요한 단 한 종류라도 씨가 마르면 라인의 조립은 멈춘다. 반도체 품귀는 코로나19와 무역전쟁의 콜라보였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하지만 언젠가는 끝날 위기

수급 균형이 무너지면서 반도체 가격은 전반적으로 상승 중이다. 각국 파운드리에서 조업 단가가 오르기 시작했다. 가격을 올리지 않더라도 고객 우대 디스카운트가 사라져 사실상 인상 효과를 내고 있다. 생산해야 할 품목이 밀려드니 인지상정 큰 고객을 우대하게 된다.
 
예컨대 똑같이 TSMC에서 외주 생산해도 애플 칩은 부족하지 않아 호실적을 낼 수 있었다. 우선순위에서 밀린 그래픽 카드와 게임 콘솔 등은 신제품 효과를 보지도 못하고 계속 품절 사태다. 그러나 애플마저도 올해 발표될 신제품 일정이 꼬이기 시작했다는 풍문이다. 소니의 경우 품절 상태인 신상품 플레이스테이션5를 이례적으로 설계 변경해 6나노급 최신 칩으로 조율할 것이라는 소문이다.
 
모두 파운드리의 눈치를 보고 있다. TSMC는 그래픽 카드보다 차량용 반도체를 우선시하겠다고 했는데, 그 발표를 대만 당국이 했다. 차량 칩은 작년 기준 전체 TSMC 물량의 3%에 불과하지만, 자동차 산업이 멈춘다는 것은 글로벌한 분업 체계의 기능 부전을 상징하는 일이라 신경이 쓰이는 듯하다.
 
일국에 마치 철강 같은 전략물자가 부족한 것 같은 이해하기 쉬운 위기감을 불러오니 신경 쓰일만하다. 미국은 TSMC에서 40조 원짜리 인텔에서 20조 원짜리 공장 설립 계획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이제 삼성의 발표를 바라보고 있다. 독일 보쉬도 드레스덴의 첨단 반도체 공장을 6월에 개장하며 기술자립을 선언하는 등 산업의 쌀 확보에 진지하다.
 
전 산업이 디지털 전환이라며 소프트웨어라는 밥을 차리려 하니 당장 쌀이 모자란다. 그런데 이 또한 스쳐 지나갈 일이다. 고도성장이 완화되자 철은 남아돌고, 가격은 내려갔다. 철강업은 붕괴하고 러스트 벨트는 정말 녹슬기도 했다. 지각 위에 실리콘은 철보다도 훨씬 더 많다.
 
※ 필자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겸 IT 평론가다. IBM, 마이크로소프트를 거쳐 IT 자문 기업 에디토이를 설립해 대표로 있다. 정치·경제·사회가 당면한 변화를 주로 해설한다. 저서로 [IT레볼루션], [오프라인의 귀환], [우리에게 IT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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