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지금 할까, 기다릴까’…주가 누르기 규제에 기업들 복잡해진 셈법
- [세제개편안 후폭풍...셈법 복잡해진 기업들]②
규제 재검토에 IPO·EB·승계 전략 셈법 복잡
세제 불확실성에 기업 ‘최적의 경영 타이밍’ 흔들
당초 정부안보다 적용 대상과 기준이 강화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승계를 준비하는 기업뿐 아니라 자회사 기업공개(IPO), 교환사채(EB) 발행, 지분 매각·증여 등을 검토하는 기업도 거래 시점을 다시 따져야 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기업들의 대응 방향은 엇갈릴 수 있다. 새로운 규제가 자신의 거래에 어떤 영향을 줄지 불분명한 기업은 최종안이 나올 때까지 의사결정을 미룰 수 있다. 반대로 새 제도가 적용되면 세 부담이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은 현행 제도가 적용되는 기간에 거래를 앞당길 가능성도 있다. 세제개편이 기업의 거래 여부를 넘어 거래의 ‘타이밍’까지 흔들 수 있다는 분석이다.
승계 넘어 IPO·EB까지 다시 계산
정부가 지난 8월 3일 발표한 주가 누르기 방지책은 장기간 주가순자산비율(PBR)이 업종별 하위권에 있거나 중복상장·EB 발행 이후 주가가 크게 떨어진 기업 등에 기존보다 높은 주식 평가액을 적용하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적용 대상이 지나치게 좁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이재명 대통령은 해당 방안을 전면 재검토하라고 주문했다. 이에 시장에서는 적용 대상이나 요건이 당초안보다 강화될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제도 변화의 영향은 승계를 준비하는 기업에만 그치지 않는다. 정부안이 중복상장과 EB 발행 등을 주가 누르기 판단과 연결하고 있어서다.
EB는 투자·인수합병(M&A) 등을 위한 자금조달 수단이고, 자회사 IPO 역시 성장자금 확보 등을 목적으로 추진된다. 정상적인 경영상 결정이지만 앞으로는 주가에 미치는 영향과 함께 향후 대주주의 상속·증여 과정에서 발생할 세무 문제까지 추가로 따져야 할 가능성이 있다. 지분 매각·증여 등 오너 일가의 지분거래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에 새로운 규제가 자신의 거래에 적용될지 불분명한 기업이라면 최종적인 법안이 나올 때까지 주요 의사결정을 늦추는 것이 위험을 줄이는 선택이 될 수 있다. 반대로의 상황이면 오히려 제도 시행 전에 거래를 앞당길 유인이 생길 수 있다.
한 세무업계 관계자는 “현재 예측 가능한 법령 아래에서 할 수 있는 거래라면 올해 안에 조금 빨리 움직이는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정부가 제도 재검토에 나섰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섣불리 미리 움직이기도 힘든 상황”이라며 “만약 경영권이나 승계 과정에서 증여세 문제가 있는 기업이라면 새 제도가 시행되기 전에 거래를 검토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경영계에서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결국 세제 불확실성 때문에 보수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영계 한 관계자는 “기업의 투자나 자금조달, 사업재편은 시장 상황과 사업 필요성을 보고 적절한 시점에 결정해야 하는데 세제상 불확실성까지 고려해야 한다면 의사결정이 보수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물론 상장기업은 이해관계자가 많기 때문에 최대주주의 의지만으로 배당이나 주요 의사결정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구조는 아니다”라면서도 “그렇지만 PBR과 상속·증여세라는 변수를 하나 더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 기업들의 판단은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또한 세제 예측성이 떨어지는 점도 기업 입장에서는 불리한 부분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강오 한국세무사회 조세제도연구위원장은 “세제에서 중요한 것이 법적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인데 평가기간이 지나치게 길어지면 이 부분이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주식은 매일 가격이 변하는 만큼 장기간의 가격을 평가에 반영하면 납세자가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상적인 기업활동까지 위축될까
제도 자체의 판단 기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도 나온다. PBR이 낮다는 사실만으로 기업가치가 인위적으로 억눌렸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주가는 현재 자산뿐 아니라 업황과 미래 성장성, 수익성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한다. 같은 순자산을 보유한 기업이라도 성장산업과 사양산업의 시장가치는 다르게 형성될 수 있다.
한 증권사 세무 담당자는 “개별 기업의 특수성을 보지 않고 재산가치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시장을 단편적으로 보는 측면이 있다”며 “장부상 자산가치가 높다는 이유만으로 시장에서 형성된 주가가 인위적으로 눌렸다고 볼 근거가 항상 명확한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정부 입장에서도 딜레마다. 적용 대상을 좁게 잡으면 주가 누르기를 제대로 차단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지만 규제 범위를 지나치게 넓히면 정상적인 자금조달이나 사업재편까지 위축시킬 수 있어서다.
경영계 한 관계자는 “결국 향후 제도 보완 과정에서는 실제 조세회피 목적의 주가 관리와 정상적인 기업활동 사이에 얼마나 명확한 선을 긋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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