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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투기 병 걸린 LH ‘수술방안’, LH 직원들이 더 좋아합니다

‘지주사-자회사’ 정부 혁신안 두 차례 퇴짜 놓은 민주당 “주거복지만 떼낸다”
토지·주택 부문 남기고 주거·복지를 ‘주거복지공단’으로 분리하는 안으로 가닥
심교언 교수 “정치인·공무원의 보여주기식 속전속결 처리, 결국 국민만 피해”
박진 교수 “내부 통폐합, 교차보조 금지, 본부별 구분 회계로 책임 명확하게”

경제민주화·양극화해소를 위한 99% 상생연대 관계자들이 지난 1일 오후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문재인 정부 재벌개혁 후퇴 및 민생외면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한국토지주택공사(LH) 혁신안의 가닥이 잡혀가는 모양새다. LH의 토지와 주택 부문은 그대로 남겨두고 주거·복지 부문을 주거복지공단(가칭)으로 별도로 분리하는 방안에 힘이 실리고 있다.  
 

정부 고수한 ‘지주사 안’, 민주당 “내부 통제 해결책 아냐”

 
당·정은 지난 2일, LH 혁신안을 마련하기 위해 두 차례 협의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정부는 3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LH를 과거처럼 토지공사와 주택공사로 분리하는 수평분할 방안(1안) ▶LH에 토지·주택 공급 업무를 그대로 두고 주거복지 업무만 떼어 내 주거복지공단(가칭)을 신설하는 안(2안) ▶지주회사 주거복지공단을 만들고 LH를 여러 자회사로 축소하는 안(3안) 등이다.  
 
이 가운데 정부는 3안이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냉담했다. 민주당 국토위 간사인 조응천 의원은 이날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내부 정보를 이용한 투기가 LH 사태인데 지주회사가 내부 통제의 해결책이 되느냐에 대한 논의가 계속 있었다”며 “LH 사태의 원인, 진단과 해법으로서 이게 맞는지에 대한 격론이 있었고 의견 일치를 못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민주당은 3일, 논의 끝에 ‘지주회사-자회사’ 안을 추진하지 않기로 결론 냈다. 고용진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여·야 위원들이 반대하는데 지주회사 안은 추진하지 못한다”고 밝힌 것. 민주당은 토지공사와 주택공사로 수평 분할하는 안과 LH에 토지 및 주택 공급 업무를 그대로 맡겨두고 주거복지 기능만 떼어내는 두 가지 방안 중 한 가지를 공청회 등을 통해 결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분위기는 ‘주거복지공단’ 신설 쪽으로 기우는 모습이다. 고 대변인은 “(수평 분할 방안은) 다시 옛날로 돌아가는 셈인데 낭비적 요인이 크다”며 “주거복지만 별도로 떼어내는 안이 더 유력하지 않을까 싶다. 더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조응천 국회 국토위 간사가 지난 2일 국회에서 열린 ‘LH개혁방안 당정협의’에 참석하고 있다. [중앙포토]

“적자 주범 주거복지 부문 떼내면 LH는 더 이득”

 
우여곡절 끝에 LH 혁신안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부동산학과)는 [이코노미스트]와 통화에서 “공공임대주택 같은 주거복지 기능 부문을 분리하는 게 LH 규모를 줄이기에 가장 편리하다”며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주거복지 부문을 지원하려면 세금을 계속 투입해야 하는데 그게 효율적일지는 모르겠다”고 밝혔다.
 
LH의 공공임대사업은 지난해 1조7396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그동안 LH는 택지조성과 주택공급으로 번 돈을 교차 보조 형식으로 공공임대사업에 투입해왔다. 주거복지공단이 만들어진다면 세금을 투입해 공공임대주택 사업에 나서야 한다는 얘기다.  
 
익명을 요구한 수도권 소재 대학의 A 교수는 “주거복지 부문이 떨어져 나간다면 LH 입장에선 오히려 더 이득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택지 조성과 주택 공급 업무는 수익성이 좋지만, 도시재생과 주거복지는 그렇지 않다”며 “LH 직원들 사이에서는 돈이 안 되는 주거복지사업을 수행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컸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적자 혹은 수익을 내지 않는 사업 때문에 회사 전체의 수익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A 교수는 “눈엣가시였던 주거복지 부문을 정부가 알아서 분리해주면 LH의 수익성이 더욱 개선될 수 있다”며 “3기 신도시 사업이 끝나는 시점에는 LH 규모를 축소해야 하는데 명분이 약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LH 조직 개편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지적도 있다. 심교언 교수는 “토공·주공 통합도 논의를 시작한 것까지 따지면 10년 가까이 걸렸다”며 “적어도 1년 정도 전문가와 시민단체까지 참여하는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여러 시나리오를 검토하는 작업을 거쳐야 하는데 대선이 다가오니 정치권에서 많이 서두르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자산 규모 185조원의 거대 조직 개편을 몇 명의 정치인과 공무원이 결정하면 나중에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보게 된다”고 말했다.  
 
노형욱 국토부 장관(오른쪽)이 지난 2일 국회에서 열린 ‘LH개혁방안 당정협의’에 참석하고 있다. [중앙포토]

“내부 통폐합과 구분 회계 도입이 더 바람직”

 
현재 논의되고 있는 조직 분리가 LH 개혁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이코노미스트]와 통화에서 “조직을 분리하면 오히려 자리를 더 만들어주게 된다”며 “LH 직원들은 좋아할 일”이라고 꼬집었다.
 
박 교수는 지주사 설립 안과 주거복지공단 설립 안 모두 문제라고 봤다. 그는 “일단 지주사든 공단이든 새롭게 조직이 만들어지면 사장 자리도 생기고 경영지원실·기획관리실 등 별도 조직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일단 한번 조직이 만들어지면 없애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라고 지적했다.  
 
주거복지공단 설립도 불필요하다는 것이 박 교수의 의견이다. 그는 “공공임대주택 사업의 경우 사업 자체는 민간에 넘기고 저소득층에게 주택 바우처 제도를 확대하는 방식으로 가는 게 맞다”고 말했다. 민간 주도로 임대주택을 짓도록 하고 바우처 제도로 저소득층이 입주하는 데 도움을 줘야 한다는 얘기다.  
 
박 교수에 따르면 현재 공공임대주택 입주민의 소득은 약 4.5분위다. 저소득층에게 싼 임대료로 거주지를 제공한다는 공공임대주택의 취지에 어긋나고 있는 셈이다. 박 교수는 주택 바우처 제도로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것이 임대주택 사업을 위해 소요되는 예산보다 덜 들어간다고 말하고 있다.  
 
1998년 주공·토공 통합 논의가 처음 나왔을 당시 정부 기획예산처에서 통합 추진 실무를 맡았던 박 교수는 조직 분리 대신 내부 통폐합을 통해 기능을 축소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다. 그는 “내부 조직을 통폐합하되 그간 있어왔던 교차보조를 금지해야 한다”며 “본부별로 ‘구분 회계’를 도입해 성과와 책임을 명확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단순히 국민에게 보여주기 위해 조직을 뗐다 붙였다 새로 만들기보다는 민간과 지자체에 기능과 업무를 이관하면서 몸집을 축소해야 한다”며 “주공·토공 통합 당시 내걸었던 업무 효율성이라는 목표를 지금이라도 이행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당·정은 오는 6일 고위 당·정·청 협의회를 통해 막판 조율을 마친 뒤 이르면 7일 LH 혁신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허인회 기자 heo.inho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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