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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태영의 서소문 오락실] 여론 뭇매 맞는 '강제적 셧다운제’…그럼에도 게임규제는 계속된다?

2011년 셧다운제 도입 이후 게임업계 양극화 심해져
계속되는 게임규제…오는 2025년 질병코드마저 도입 예정
전문가들 “게임산업 진흥 위한 전담 기구 필요”

 
 
서울 시내 한 PC방 모습. [사진 연합뉴스]
 
“청와대에서도 어린이날 홍보에 활용한 게임인 ‘마인크래프트`가 셧다운제 적용을 위해 12세 이용가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성인 인증’을 도입하게 되는 촌극이 벌어졌다.”
 
얼마 전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이 게임 셧다운제 폐지 관련 세미나에서 한 말입니다. 최근 ‘마인크래프트’ 미성년자 이용 불가 사태로 ‘강제적 셧다운제’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습니다.  
 
강제적 셧다운제가 뭐길래, 이런 상황이 벌어진 걸까요? 
 
강제적 셧다운제는 오전 0시부터 오전 6시까지 만 16세 미만 청소년의 인터넷 게임 이용을 전면 제한하는 법을 말합니다. 여성가족부 주도로 지난 2011년부터 시행돼 왔습니다.
 
게임업계 관계자들은 최근 셧다운제가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는 이 상황이 너무 신기하다고 말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 게임산업의 역사는 ‘규제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국내 게임산업에 대해 우리나라 정부는 규제 일변도의 정책을 그동안 펼쳐왔습니다.
 

국내 게임산업의 역사 = ‘규제의 역사’

게임산업은 정부의 큰 도움 없이 스스로 성장한 몇 안 되는 산업중 하나입니다. 특히 한국 콘텐트산업 수출의 50% 정도를 차지할 만큼 수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여러 이유를 내세우며 게임규제 강도를 점차 높여 왔습니다. 다양한 규제 도입 후 게임산업의 양극화는 점점 더 심해졌습니다. 자본과 인력이 부족한 중소 게임사들에게 규제 하나하나가 굉장히 치명적이기 때문입니다.
 
전체 게임시장 규모는 매년 커졌지만, 그 속을 자세히 살펴보면, 매출의 대부분이 일부 대형 게임사에 집중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게임규제의 역사는 약 1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010년 청소년 관련 업무가 보건복지부에서 여성가족부로 이관되면서 다양한 규제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규제가 앞서 소개한 ‘강제적 셧다운제’입니다.  
 
여기에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의 ‘게임시간 선택제’까지 시행되며, 게임업계는 현재 중복 규제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게임시간 선택제는 만 18세 미만 청소년의 게임 접속시간을 본인이나 부모의 요청에 의해 제한하는 ‘선택적 셧다운제’를 의미합니다.
 
한 중소게임사 개발자는 “셧다운제 때문에 게임사는 시스템에 많은 수정을 해야만 했다. 규모가 큰 기업은 하나의 프로세스를 만들어 다른 곳에 적용하면 된다”며 “그러나 중소 개발사들에게는 그러한 여력이 없다. 결국 셧다운제 도입 직후인 2012년을 기점으로 대형 게임사와 중소 게임사간 격차가 크게 벌어지기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
 
게임사들이 셧다운제 적용이 되지 않는 모바일게임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한 시기도 2012년부터입니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인 규제 하나가 미친 파장이 생각보다 큰 셈이죠. 외국 게임사들도 한국에만 있는 셧다운제를 위해 시스템 수정을 하기보다는 그냥 게임 자체를 ‘19금’으로 만드는 게 작금의 현실입니다.  
 
이후에도 게임규제는 계속됐습니다. 2013년에는 손인춘 의원이 ‘인터넷게임중독 치유지원에 관한 법률안’과 ‘인터넷게임중독 예방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습니다. 인터넷게임중독 치유지원에 관한 법률안은 인터넷게임중독치유센터를 두고, 인터넷게임중독 치유기금을 설치하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문제는 게임사 매출의 1% 이하를 여성가족부에서 징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입니다. 인터넷게임중독 예방에 관한 법률안은 중독유발지수를 측정해 수치가 높은 게임의 국내 유통을 전면 금지하고 강제적 셧다운제의 적용 시간 확대를 골자로 합니다.  
 
여기에 더 나아가 2014년에는 신의진 의원이 중독 예방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4대 중독법)을 발의했습니다. 이 법안은 게임을 술, 마약, 도박과 같은 ‘4대 중독유발물질’로 규정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세 법안 모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진 못했지만 게임업계에 큰 충격을 안겨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게임은 술·마약·도박과 같다”...당시 많은 개발자 업계 떠나

당시를 회상하며 한 개발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게임 개발자라는 직업 자체에 회의를 느꼈던 시절이다. 밖에서 ‘뭐 하는 사람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그냥 얼버무렸다.” 실제로 당시 많은 게임 개발자들이 게임을 마약 취급하는 모습에 환멸을 느끼고 업계를 떠나기도 했습니다.
 
이후 문체부는 2014년 2월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통해 고스톱, 포커 등 웹보드게임 이용자의 사용 금액·시간을 제한하는 규제를 시행하기도 했습니다. 월 결제 한도를 30만원, 1회 베팅 한도를 3만원으로 제한하고, 하루 손실액 10만원 초과 시 24시간 접속을 차단하는 것이 주요 골자였습니다.
 
웹보드게임 업체들은 규제 시행 후 매출액이 크게는 70% 가까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후 규제에 대한 업계의 불만이 계속되자, 결국 문체부는 월 결제 한도를 30만원에서 50만원으로 높이고 1회 베팅 한도를 5만원으로 올리는 완화된 개정안을 내놨습니다.
 
게임규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에 질병코드를 부여, 내년 1월부터 시행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한국 정부가 이를 그대로 받아들일 경우, 빠르면 오는 2025년부터 해당 내용이 반영될 예정입니다. 특히 보건복지부는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겠단 입장입니다. 게임업계는 질병코드 도입 시 ‘게임=질병’이라는 낙인 효과로 산업 전반의 침체가 불가피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확률형 아이템’ 확률 표시 의무화를 골자로 한 게임법 개정안 발의, 블록체인 게임 등급분류 거부 등 게임산업을 둘러싼 여러 규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양극화로 무너져버린 게임산업 생태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규제 일변도였던 정부 정책을 진흥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게임산업 진흥을 위한 전담 기구가 필요하다는 의견입니다. 한 게임사 관계자는 “게임산업진흥법의 경우, 말이 진흥법이지 규제법에 가깝다”고 지적했습니다.

원태영 기자 won.tae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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