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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 경제 재건 ‘물음표’ [채인택 글로벌 인사이트]

석유‧광물 등 자원 풍부해도 자원 개발 시스템 구축 요원
주민‧군 통제 위한 자금 절실한데…달러 기근 등 바닥난 금고

 
 
아프가니스탄의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이 지난 15일 국민을 버리고 우즈베키스탄으로 도피한 뒤 대통령궁을 접수한 무장 탈레반 대원들이 집무실을 차지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극단적 이슬람주의 무장조직인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아프간)을 장악하면서 전 세계의 관심이 쏟아진다. 종교·군사 집단인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할 수 있을까? 이 나라의 국세를 살펴보자. 면적을 보면 65만2864㎢로 한반도(22만748㎢)의 약 3배다. 인구는 2020년 아프간 통계청 자료로 3139만명이다.  
 
경제력을 보면 약체 중에서도 약체다. 아프간은 국제통화기금(IMF) 명목 금액 기준 2021년 전망치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592달러 수준이다. 세계 204위로 최빈국으로 분류된다. GDP가 199억 달러로 119위다. 하루 1.9달러 이하로 생활하는 빈곤층이 인구의 54.5%에 이른다.
 
미국이 아프간에 지난 20년 동안 1조 달러를 쏟아 부었다는데 그 돈이 어디로 갔는지 고개가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물론 미군 병력과 장비 유지·운용 비용, 군사비 등에 상당수가 갔겠지만 성적표는 초라해도 너무도 초라하다. 아프간의 최대 문제는 경제라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자원 개발·교통 허브 도약 가능성 ‘희박’

지난 7월 8일 미국 백악관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오는 8월 말까지 아프간 주둔 미군이 완전히 철수할 것이라고 발표하고 있다. [UPI=연합뉴스]
 
그렇다면 아프간의 미래는 가능성이 있을까? 석유나 가스 같은 자원이 있으니 미국이 점령했을 것으로 생각하기도 하는데, 실제 존재하는 것은 가능성뿐이다. 2006년 미국의 지질조사 결과 아프간에는 35조 평방피트의 천연가스와 36억 배럴의 석유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석유 매장량을 보면 세계 30위권인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와 비슷하다.  

 
여기에 눈독을 들인 나라가 중국이다. 경제발전을 위한 에너지원 확보에 전력투구하고 있는 중국의 석유천연가스 공사는 2011년 아프간 정부와 계약을 맺고 북부 지역 세 군데에서 석유 시추에 들어갔다.  
 
2007년 추정에 따르면 아프간에는 석유 외의 광물 매장량도 상당하다. 전기자동차 시대를 맞아 수요가 늘고 있는 전지 원료인 리튬을 비롯해 구리·금·철광석·석탄 등 다양한 지하자원이 묻혀 있다. 에메랄드·루비·사파이어·석류석·청금석 등 보석도 풍부하게 매장됐다. 일부 희토류도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는 2011년 아프간이 지하자원을 충분히 개발한다면 매년 100억 달러의 수입을 올려 GDP와 1인당 GDP를 당시의 두 배로 늘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이는 아프간의 경제가 워낙 바닥이기 때문에 ‘두 배’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일 뿐이다. 국제 투자를 받고 자원을 개발하고 이를 수출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다른 차원의 과제다. 과연 이를 능숙하게 추진할 수 있는 정부 역량을 확보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라는 이야기다.
 
또 다른 가능성은 지정학적 이점을 살려 국제 교통허브로서 기능하는 일이다. 특히 내륙국가인 아프간은 파키스탄(2670㎞)·타지키스탄(1357㎞)·이란(921㎞)·투르크메니스탄(804㎞)·우즈베키스탄(144㎞)·중국(91㎞) 등 6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 않다. 중국과의 국경은 지나치게 오지에 있는 데다 오래 전에 폐쇄됐다. 아프간 정부가 무역을 위해 국경을 열어달라고 요청해도 중국은 요지부동이었다. 국경을 넘으면 예민한 신장위구르 지역이기 때문이다. 2010년 미국까지 나서 국경 개방을 요청했지만 중국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권위주의 체제인 투르크메니스탄은 나라 자체가 쇄국정책을 쓰고 있다. 파키스탄과 많은 인적·물적 교류를 하지만 경제력이 강하지 않은 실정이다.
 
국제적으로 아프간에서 투르크메니스탄과 카스피해를 지나 아제르바이잔·조지아 등 캅카스 지역을 관통, 흑해를 거쳐 유럽으로 연결하는 교통로를 뚫자는 프로젝트가 논의되기도 했다. ‘청금석 프로젝트’로 불린 이 아이디어는 지역의 불안 등의 문제로 사실상 사장되고 있다.  
 
외부와의 교통로 이전에 아프간 국내의 교통도 문제다. 아프간은 ‘링 로드(환상도로)’로 불리는 동그란 도로가 전국을 한 바퀴 돌고 있다. 카불에서 출발해 시계방향으로 마이단·가즈니·칸다하르·델라람·헤라트·마라르이샤리프·풀리쿰리를 거쳐 다시 카불로 돌아오는 도로다. 이 도로에서 파키스탄으로 이어지는 잘랄라바드, 북쪽의 바이·고 쿤두즈 등으로 연결된다. 이 도로는 아시아 전체를 고속도로로 연결하자는 아시안 하이웨이의 일부이기도 하다.  
 
국가고속도로 1번(NH01)으로 불리는 이 도로는 아프간의 급소다. 이 도로를 장악하는 것은 아프간과 관련한 군사 작전의 핵심이다. 1979년 소련이 그랬고 2001년 미국이 그랬다. 미국이 점령한 뒤 1번 고속도로는 탈레반의 공격에도 수리를 계속해 어느 정도 연결이 이뤄졌다. 지난 4월 미국이 아프간 철수를 발표하자 5월 공세를 시작한 탈레반은 외려 이 도로를 이용해 진격의 속도를 가속했을 가능성이 크다. 탈레반은 정부군으로부터 노획한 장갑차나 험비 외에는 중기관총을 장착한 도요타 트럭과 모터사이클, 자전거가 기동력의 전부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국가 인프라 사업이 탈레반의 공격 루트로 이용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경제는 탈레반이 아프간을 통치하는 핵심이다. 자금 없이 나라를 통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탈레반이 접수한 것은 지독하게 가난한 나라일 뿐이다. 그들은 당장 어떻게 나라를 통치할까도 관심사다. 과거 회귀일지, 탈레반 2.0일지는 지켜볼 일이다. 

 

아프간 통치 당시 악명 떨쳤던 탈레반   

16일 아프가니스탄의 대통령이 망명하고 탈레반의 집권이 확실해지자 카불공항은 몰려든 탈출인파로 혼잡을 이루고 있다. [AFP=연합뉴스]

 

탈레반은 1998~2001년 아프간을 통치하면서 극단적인 행동으로 악명을 떨쳤다. 카불에 입성하기도 전부터 유일신 신앙을 해치는 우상숭배라며 국립박물관 소장품 10만 점 중 70%를 파괴했다. 중동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가 이라크 북부의 유서 깊은 다민족 종교·문화 도시 모술과 고대 앗시리아 제국의 수도인 니네베, 시리아의 고대 통상도시 팔미라를 점령한 뒤 박물관의 전시물과 유적의 고대 조각을 마구 파괴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탈레반은 2001년 3월 8~9일 지도자 물라 무함마드 오마르의 지시로 1500년 역사의 바미안 석불을 로켓과 폭약으로 파괴했다. 6세기 아프간 북부의 힌두쿠시 산맥 절벽을 파서 그레코박트리아 양식으로 새긴 거대한 바미얀 석불은 유네스코 인류유산에 등재된 귀중한 문화재다. 630년 불경을 구하기 위해 천축을 오가면서 이곳을 지나간 현장법사가 대당서역기에 그 기록을 남겼다. 그런 유적을 신성모욕이고 일신교에 대한 도전이라며 파괴한 것이다.  
 
탈레반의 기괴한 행동은 끝이 없었다. 유일신 신앙에 방해가 된다며 음악·영화·방송은 물론 인터넷도 금지했다. 사진과 그림을 걸어두는 것도 막았다. 지도자의 사진을 사무실 벽에 걸어두는 일도 우상숭배라며 막았다. 참고로 이란에선 초대 최고지도자인 루홀라 호메이니와 후계자이자 현역인 알리 하메네이의 사진을 공직 사무실마다 걸어두고 있다. 극단적인 이슬람주의자이지만 서로 다른 점도 많다. 게다가 이슬람 시아파의 맹주인 이란과 수니파를 신봉하며 시아파를 적이자 신성모독 범죄자로 비난하는 탈레반은 다른 점이 너무도 많다.  
 
탈레반은 축구와 체스를 포함한 스포츠와 오락, 심지어 연날리기나 애완동물 사육도 못 하게 했다. 특히 여성들의 교육과 사회활동은 일절 금지했다. 현대 이슬람은 서구 문물 등에 오염됐으니, 중세 초기 이슬람 시대로 돌아가자는 이런 조치들은 국내에선 물론 국제적으로도 탈레반에 대한 거부감을 확산하는 요인이 됐다.  
 
탈레반은 이 같은 이슬람 복고주의는 물론 남성은 턱수염을 기르고 여성은 손발을 제외한 전신을 가리는 부르카를 착용하도록 하는 파슈툰족의 풍습인 파슈툰왈리도 강요했다. 탈레반이 아프간 인구의 42%를 차지하는 파슈툰족의 무장단체이자 정치운동에 머문 이유의 하나다. 아프간 인구의 58%를 차지하는 소수민족의 반감이 거세질 수밖에 없다. 파슈툰족이라고 해도 모두 탈레반을 지지하는 것도 아니다. 탈레반은 주로 발상지인 남부 칸다하르와 농촌 지역을 토대로 한다. 지식인이나 상인이 많은 도시에선 탈레반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이 높은 편으로 알려졌다.  
 
더구나 서북부의 헤라트나 마자르이샤리프처럼 아프간 인구의 9.7%를 차지하는 이슬람의 종파적 소수파인 시아파와 탈레반은 물과 기름과 같은 관계다. 아니, 견원지간이라고 해야 오히려 정확할 정도다. 탈레반은 1998~2001년 통치 시절 이 지역에서 단지 시아파라는 이유로 주민 처형을 일삼았다.  
 
무자비한 처형은 탈레반의 트레이드마크다. 탈레반은 1996년 카불을 점령하자마자 소련이 벌인 아프간 침공(1979~1989년) 당시 괴뢰 정권에서 마지막 대통령을 지낸 무함마드 나지불라를 잔혹하게 공개 처형해 악명을 높였다. 의사 출신인 나지불라는 1992년 군벌과 무자히딘(이슬람 전사)이 카불을 점령하자 인도로 탈출하려다 실패했다. 그 뒤 군벌들이 처리를 놓고 이견을 해소하지 못해 유엔 컴파운드에 계속 지냈다.  
 
그러다 1996년 탈레반이 군벌 세력을 무력으로 누르고 카불에 입성하면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탈레반은 나지불라를 자동차 뒤에 매달아 온 도시를 달리면서 고통을 주고 조리돌림을 한 다음, 공개 거세를 했다. 그런 다음 대통령궁 앞에 크레인을 끌고 와 바지가 온통 피에 젖은 그를 교수해 처형했다. 그런 다음 한참을 걸어두면서 시민들에게 겁을 줬다. 당시 상황이 생생한 사진으로 남아있다.  
 
아슈라프 가니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 대통령이 15일 황급히 도피한 배경일 것이다. 가니가 돈다발을 들고 나갔다는 이야기는 러시아 국영방송인 스푸트니크(과거 니아노보스티)의 영어 뉴스가 발신지다. 평소 프로파간다와 가짜뉴스로 악명 높아 신뢰도에서 문제가 지적되기 때문에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 가니는 미국이 만들다시피 한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의 대통령이다. 러시아 입장에선 악인으로 몰아갈 이유가 많다.  
 
게다가 가니가 떠난 아프간의 국고에는 여전히 70억 달러 이상의 외환보유고가 있다. 탈레반이 이를 차지하게 될 경우 병사들에게 보상금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탈레반의 소중한 통치자금이다.  
 

카불서 달러 기근 등 자금 줄 막힌 탈레반  

카불에선 아마 달러 기근 현상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미국이 카불 대사관에 보관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수백만 달러의 현찰은 매뉴얼대로 항공기에 실어나갔거나 소각했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1975년 사이공에서 철수하면서 대사관 금고에 보관 중이던 600만 달러의 달러뭉치를 소각로에 태우고 베트남을 떠났다. 아프간 정부기관에서 보관 중이던 현찰은 공무원들이 들고 나갔을 가능성이 크다. 금융기관의 외환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찾아갔다.  
 
카불을 점령한 탈레반은 현재 자금이 절실할 것이다. 탈레반의 병력은 6만명 정도라는 게 서방 측의 추산이다. 이들을 유지하는 것부터가 큰일이다. 제대로 보급하고 보상하지 않으면 민간인을 상대로 무슨 일을 벌일지 알 수 없는 병력이다. 탈레반 지휘부가 이미지를 위해(본심은 아니더라도) 보복과 잔학행위와 줄이고 여성의 활동을 일시 허용하려고 해도 여성 차별과 학대에 익숙한 탈레반 대원들이 총기를 들고 진입한 도시에서 무슨 일을 벌일지 알 수 없다.  
 
탈레반 지도부는 카불 장악 뒤 대변인을 내세워 여성 공무원들에게 계속 일할 것을 요청하고 여성들의 권리를 보호하겠다고 립 서비스를 하고 있다. 지난번 통치 당시 국제사회로부터 가장 큰 비난을 당하고 미국의 아프간 침공과 주둔의 명분 중 하나가 여성 권리 보호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놓고 여성 학대를 하는 무장대원이나 부대가 나오고 아직 카불에 남아있는 해외 미디어가 이를 촬영하고 전 세계에 타전하면 시작부터 일이 꼬일 수밖에 없게 된다.  
 
게다가 탈레반이 대오와 지휘 체계가 통일된 단일 조직이 아니라 다양한 민병대나 게릴라, 반군 세력이 느슨하게 연결된 일종의 ‘프랜차이즈’ 체제라는 추정도 강하다. 아프간 전역을 장악한 탈레반 최고지도부가 이들을 자신의 뜻대로 탈레반 병력으로 통제하기 위해서도 거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탈레반은 오랜 세월 함께 싸우다 숨진 사망자와 그 가족을 위한 보훈 자금도 필요하다. 아프간에선 오랫동안 많은 피가 흘렀다. 미국 브라운대 웟슨연구소 연구에 따르면 2011년 미국의 침공으로 시작한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철군을 발표한 지난 4월까지 엄청난 사망자를 냈다. 아프간 측에서 4만7245명의 민간인, 6만6000~6만9000명의 아프간 군경, 5만1000명 이상의 탈레반 무장대원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합쳐서 17만1000~17만4000명에 이른다. 질병, 굶주림, 식수문제, 인프라 부족 등으로 숨진 간접 사망자를 포함하면 피해자는 최대 36만 명이 추가될 것으로 왓슨 연구소는 추정했다. 그 대부분이 탈레반이 보훈하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할 대상이다.  
 
앞서 1979~1989년 소련의 아프간 침공 때는 소련군에 맞서 무자헤딘(이슬람 전사) 5만6000명 이상이 숨졌다는 것이 파키스탄 정보당국의 추산이다. 일부 연구에선 15만~18만명의 무자헤딘이 숨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민간인 피해는 더욱 크다. 연구자에 따라 56만2000명에서 200만명까지 숨진 것으로 추정한다. 500만명의 난민과 200만명의 국내 이주자들이 발생했다.  
 
이런 상황에서 서방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탈레반을 견제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 정부 보유 외환을 동결할 가능성이 크다. 이 외환은 현찰로 아프간 정부기관이나 국내 은행에 쌓인 게 아니라 글로벌 금융기관에 예치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를 군자금과 점령 초기 안정화 자금, 그리고 재건 자금으로 써야 할 탈레반은 이를 차지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을 것이다. 서방은 여성 인권 보호 등 가책을 조금 덜어주는 대가로 이 자금을 탈레반에 넘길 수도 있다. 사실 78억 달러는 아프간 경제 규모로 보면 엄청난 규모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탈레반이 재건과 경제 운용 능력이 있느냐이다. 그들이 전문인 종교로 이 문제를 풀 수는 없다.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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