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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경쟁력’이라더니 이젠 비용 취급?...금융맨들 “아 옛날이여”

한국씨티銀, 고비용 인력구조가 매각 걸림돌
시중은행들, 공채 없이 IT·데이터 수시 채용
“WM·IB·무역금융 등 인력 재배치 서둘러야”

 
 
2017년 영업을 끝으로 폐점된 서울 강남구 역삼동 지점의 간판. [연합뉴스]
   
금융 경쟁력은 곧 ‘사람’에서 비롯된다는 수십년 불문율에 균열이 가고 있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사람이 곧 금융’이라는 말까지 나오면서 은행·증권·보험사를 막론한 인력 쟁탈전은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었지만, 지금의 금융권에서는 ‘사람은 곧 비용’이라는 인식이 금융권을 지배하는 분위기다. 일부 은행의 경우 ‘인력감축’이 생존을 위한 숙원 과제로까지 등장했다.  
 

한국씨티은행 매각 걸림돌은 인력?

최근 수년간 국내은행의 전국 영업점 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해 왔다. 소비활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유통·물류 서비스의 비대면·디지털 수요가 금융 서비스로까지 확장하면서 영업점 이용률이 급격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2015년까지 증가세를 보였던 국내은행(시중은행+지방은행)의 영업점 수(출장소 포함)는 5300여개를 고점으로 지난 3월말 기준 4300여개까지 20% 가까이 줄었다. 같은기간 총임직원 수도 8만6000여명을 고점으로 7만8000명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 같은 인력 감소세는 인터넷전문은행인 카카오·케이뱅크 등장으로 더욱 가팔라지는 모습이다.  
 
사실 은행권의 인력감축은 비단 국내 시장에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웰스파고·씨티그룹·JP모건 등 미국 대형은행들이 올 상반기동안 폐쇄한 점포만 300여 곳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미국 내 은행 영업점은 2034년께 완전히 소멸할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미국 내 점포 폐쇄는 고스란히 인력감축으로 이어지며 올 상반기동안 BoA에서 줄어든 직원만 2500명에 달했다. 이로 인해 미국 대형은행들은 직원들의 반발과 함께 정치권으로부터도 거센 비판에 직면해 있는 상황이다.  
 
다만 국내은행의 경우 감원보다는 ‘점포 효율화’에 방점이 찍혀 있어 당장 노사갈등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금융 매각이 추진되는 한국씨티은행의 경우 매각 방식을 놓고 내홍을 겪고 있다. 당초 씨티은행은 소비자금융의 전체 매각을 추진했지만, 인수를 희망하는 금융사들이 인건비 부담을 이유로 자산관리(WM), 신용카드 부문에 대한 분리 인수 의향을 내비치면서 대규모 구조조정이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씨티은행의 전체 임직원 3500여 명 중 소비자금융 부문 임직원은 2500여 명에 달한다.  
 
일단 씨티은행은 오는 26일 정기 이사회에서 매각 방식을 결정한다는 방침이지만, 분리매각이나 단계적 폐지로 결론날 경우 극렬한 노사대치는 불가피해 보인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과거 외환은행 인수를 비롯해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금융사 간 인수합병 이슈가 불거지면 대규모 인력 유출을 막기 위해 위로금을 주는 게 관행처럼 여겨져 왔다”며 “금융 인력이 경쟁력이 아닌 비용 요인으로 인식되는 현실이 씁쓸하다”고 토로했다.
 
[연합뉴스]
 

‘파죽지세’ 카뱅의 핵심 경쟁력은 ‘비용 효율성’

‘인력은 곧 비용’이라는 인식은 최근 주식시장에서 무서운 기세를 이어가는 카카오뱅크 사례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카뱅은 지난 8월 6일 상장 직후 보름만에 공모가(3만9000원)의 두 배를 훌쩍 뛰어넘는 9만원 안팎에서 거래되고 있다. 공모가 산정 당시 고평가 논란에도 불구하고, 국내 최대 금융지주사인 KB금융지주와 신한금융지주의 시총을 합쳐놓은 것보다 높은 몸값을 자랑하고 있다.  
 
이와 관련 증권가에서는 가치 산정이 무의미할 정도로 ‘비싼 가격’이라는 시각이 팽배하지만, ‘무점포 전략’를 표방한 카뱅의 비용 효율성이 최대 경쟁력으로 인식되는 분위기다. 실제 지난 6월말 기준 카뱅의 직원 1인당 순이익은 1억1400만원으로 국내 은행 가운데 최고 수준을 나타냈다. 전체 순이익의 경우 KB국민은행의 1/10에도 못 미치지만직원수가 1000여명에 불과하다 보니 생산성 측면에서 압도적 우위를 나타내고 있는 셈이다.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낮다보니 비용 효율성을 나타내는 지표인 영업이익경비율(CIR) 역시 은행권 최고 수준으로 개선됐고, 이 같은 추세는 앞으로도 지속할 것이라는 전망이 카뱅의 몸값을 끌어올리는 형국이다. 이 같은 카뱅의 파죽지세에 시중은행들도 비용 효율성 개선으로 대응하고 있다. 다만 노사갈등 및 정치권 이슈로 번질 수 있는 인위적 인력감축 대신 채용 축소 카드로 맞서는 분위기다.
 
지난 2018년까지 매년 500~800명 가까이 신규채용에 나서왔던 시중은행들은 갈수록 규모를 축소하더니 급기야 공개채용 대신 수시채용만 진행하는 곳도 생겨나고 있다. 올 하반기 공채 역시 기업·산업·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만 소규모의 채용 계획을 확정했을 뿐 KB국민·신한·우리·하나·농협은행 등 대다수 대형은행들은 채용 계획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일부 은행의 경우 IT·데이터 부문에 한해서만 수시채용을 진행했다.
 
이와 반대로 은행권의 희망퇴직 규모는 갈수록 규모가 커지고 있다. 매년 2000여명 안팎이었던 희망퇴직 규모는 지난해 2500여명까지 늘었고, 하나은행 등 일부은행은 희망퇴직 대상을 40대까지 낮춘 ‘준정년 특별퇴직’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부 지원을 등에 업은 빅테크·핀테크에 대응하기 위한 시중은행의 대책은 사실상 인력감축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과거처럼 정부 압박에 못이겨 채용을 늘릴 경우 자칫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해진 분위기”라고 전했다.
 

디지털 전환은 시대적 흐름….“인력 재배치 방안 찾아야”

금융산업의 디지털 전환은 피할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는 점에서 유지비 부담이 큰 영업점과 인력 축소는 불가피한 현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적절한 인력 재배치가 동반되지 않을 경우, 씨티은행 매각 사례처럼 극단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결국 은행들로서는 차별화 차원에서의 적극적인 해외진출과 함께 대면 서비스가 필수적인 사업부문으로의 인력 재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소매금융에서 강점을 보이는 카카오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이 접근하기 어려운 자산관리(WM) 및 IB(투자은행) 부문 경쟁력 강화와 함께, 기존 영업점의 경우 고객 민원 해결 및 디지털 소외계층을 위한 채널로 활용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한국금융연구원은 ‘디지털 금융의 확산과 은행의 대응’ 보고서를 통해 “향후에는 기존 은행과 빅테크가 은행업의 일부 또는 전부를 양분해 영위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며 “시중은행의 경우 빅테크의 접근이 어려운 WM, IB, 무역금융 등의 영역에서 경쟁력이 높은 은행들이 디지털 충격을 덜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도 내다봤다.

공인호 기자 kong.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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