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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성 없는 시장’만 찾던 교육업체, 단숨에 10배 성장한 이유

[인터뷰] 이수인 에누마 대표
CTO부터 개발진 절반이 유력 게임사 출신
현지 와이파이 접근성까지 살피는 ‘진심’도
“교육위기 겪는 공교육에서 비즈니스 봤다”

 
 
이수인 에누마 대표가 지난 20일 서울 성수동 에누마코리아 사무실에서 [이코노미스트]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빈 기자]
국내 에듀테크 기업 ‘에누마’가 이달 말부터 인도네시아 최대 사학재단 산하 초등학교에 디지털교육 솔루션 ‘에누마스쿨’을 공급한다. 지난해 초 코로나19로 등교수업이 어려워지자 재단에서 먼저 이 업체를 찾았다. 인터넷 인프라가 충분치 못한 인도네시아는 현재 라디오·텔레비전 방송으로 수업을 대신하고 있다. 재단과 손잡은 에누마는 지난 1년 반 동안 현지에 맞는 솔루션을 개발해왔다.
 
현지에서 이 업체에 거는 기대감은 예사롭지 않다. 지난 17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기념식엔 부총리급인 인적자원개발·문화조정장관까지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재단 관계자는 “코로나 장기화로 생긴 교육격차 문제를 에누마의 디지털교육 역량으로 해결해 내리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렇게 기대를 거는 덴 이유가 있다. 2012년 창업 때부터 교육위기 해소를 목표로 내건 에누마는 만 4~9세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솔루션에서 인지도를 쌓아왔다. 특히 2019년엔 아동 문맹 퇴치를 위한 글로벌 경진대회인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에서 우승해 상금으로 500만 달러(55억원)를 받았다. 이 대회는 테슬라 CEO인 일론 머스크가 상금 전액을 후원해 이목을 끌었었다.
 
지난 1년 반 동안 이 업체는 실적에서도 성과를 냈다. 이 기간 매출이 20억원에서 10배 뛰면서다. 앞서 인도네시아처럼 코로나로 교육격차가 극심해진 곳에서 먼저 이 업체를 찾았다. 유치원 등원이나 과외가 어려워진 아이의 학부모도 앱 마켓에서 이 업체 앱을 내려받았다. 코로나 전 에누마를 두고 ‘돈이 되겠느냐’라고 말하던 사람들이 이젠 ‘진짜 돈 될 것 같은데’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시장성 없는 시장만 고집하던 이 업체가 이런 실적을 낸 비결이 뭘까. 영·유아 교육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국내 업체들을 떠올리면,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이수인 대표를 만나 에누마 특유의 비즈니스 전략을 물었다.
 
코로나19 이후 인도네시아 상황이 어땠나.
이전엔 가난해도 학교에 못 가진 않았다. 그런데 코로나19 때문에 문제가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멀쩡히 학교에 다니던 아이들이 집에 있게 됐다. 2020년 5월쯤엔 전 세계 아동·청소년의 90%가 학교에 못 갔다. 온라인강의라도 하는 한국은 낫다. 인도네시아에선 라디오나 텔레비전 채널 하나를 급히 비워서 1시간씩 수업했다. 그나마도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은 이런 방식으론 배울 수가 없다.
 
왜 그런가.  
네 살에서 아홉 살까진 ‘배우는 방법’을 배운다. 우리나라로 치면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다. 읽고 쓰는 법, 두 자릿수 수준의 덧셈, 뺄셈을 배운다. 선생님께 귀 기울이고 받아 적는 습관도 이때 갖춘다. 이때 방법을 제대로 배워야 3학년부턴 본격적으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 그런데 교과서에 나오는 지문도 못 읽고 아이들이 어떻게 혼자 공부하겠나. 이때는 선생님이 곁에서 직접 가르쳐야 한다.
 
에누마스쿨도 선생님을 못 만나는 상황에서 쓰지 않나.
그래서 기술의 역할이 중요하다. 에누마는 아이들을 몰입하게 할 방법으로 게임을 택했다. 아이들이 가상현실에서 재화를 모으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또 그 경험을 진짜라고 믿도록 설계했다. 예를 들어 블록을 쌓을 때 진짜 블록을 쌓는 것처럼 실제감을 준다. 물론 인공지능 기술도 들어간다. 이 발음이 이상하다, 혹은 같은 문제를 틀린다고 하면 아이에게 맞게 학습 내용을 조정해준다. 그러나 이런 분석이 의미 있으려면 일단 아이들이 몰입할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다른 교육업체도 게임 형식의 프로그램을 낸다.
다른 업체에서 에누마의 게임 개발능력을 따라잡기 어렵다고 본다. 공동창업자이자 배우자인 이건호 최고기술책임자(CTO)는 게임업체 NC소프트에서 기술 디렉터로 활동했다. 또 미국 UC버클리대에서 컴퓨터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CTO 말고도 개발진의 절반이 유명 게임사 출신이다.  
 
와이파이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을 텐데.
인도네시아 가정에 와이파이 있는 비율이 10%밖에 안 된다. 또 접속비용이 비싸기 때문에 한 번에 대용량의 콘텐트를 내려받기 어렵다. 대신 섬마을이라도 스마트폰 보급률 자체는 꽤 높다. 그래서 노력하면 인터넷을 쓸 수 있지만, 실시간 접속은 어려운 상황을 상정하고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잘 디자인한 서비스는 상용화해도 먹혀”

지난 17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디지털교육 캠페인 런칭 기념식에서 유치원장 및 초등학교장 대표들이 '에누마스쿨'이 탑재된 태블릿을 들고 있다. [사진 에누마코리아]
사용 환경 말고 다른 애로사항은 없었나.
솔루션을 낼 땐 이 나라 언어와 문화 환경까지 모두 고려해야 한다. 지난 1년 반 동안 수천 개 콘텐트를 현지인이 검수하고 필요한 건 새로 만들었다. 이렇게 인프라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단순히 한국에서 쓰던 걸 조금 싸게 제공한다든지, 콘텐트를 번역만 해서 준다든지 해선 현지에서 못 쓴다. 이런 지점을 진심으로 보려고 했단 점에서 저희가 다른 교육업체와 달랐다고 생각한다.
 
큰 시장이 아닌데 그만큼 공들이긴 어렵지 않나.
지역·연령 등 타깃에 잘 맞게 디자인한 서비스는 상용으로 내놔도 인기가 높았다. 예를 들어 에누마글방은 한글 공부가 또래보다 늦은 7세 다문화 아동을 타깃으로 한다. 배우는 낱말은 쉽지만, 콘텐트는 7세에 맞게 만들었다. 국내 한글교재 눈높이가 3세에 맞춰져 있다 보니, 이 아이들이 배울 교재가 없었다. 기저귀나 공갈 젖꼭지 물고 있는 그림으로 배우라고 하면 자존심만 상한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상용 서비스인 ‘토도한글’을 준비하고 있는데, 사용자 반응이 좋다.
 
구체적으로 어떤 반응인가.
아이로니컬하지만 7세에 맞춘 솔루션을 다시 5~6세용으로 찾는다. 형·누나가 배우는 콘텐트라고 하니 아이들도 더 좋아한다고 한다. 학부모로서도 선생님을 집으로 부를 필요가 없고, 아이가 더 재밌어하니 찾는다. 토도수학, 토도영어도 이런 이유로 코로나 상황에서 학부모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코로나 전 투자사들을 설득하기에 어렵진 않았나.
한 투자사 대표가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사회적 기업가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곳에서 비즈니스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우리는 공교육에서 미래 비즈니스를 봤다. 전 세계에서 매해 수백조원을 공교육에 쏟아붓는데, 최소학력에도 못 미치는 아이들이 2017년 기준 6억1700만명이나 된다. 그해 유네스코에서 ‘교육위기’를 선언했을 정도다. 이런 공교육 현장을 바꿀 솔루션을 내면, 큰 시장이 열릴 것으로 봤다. 이런 가능성을 투자사에서도 공감하고 기다려줬다.
 
코로나가 끝나도 에누마를 찾을까.
학습은 아래서부터 지어 올리는 탑과 같다. 1~2학년이 단단해야 올라갈 수 있다. 그런데 지난 1년 반 동안 어떤 아이는 과외를 받고, 어떤 아이는 멍하니 화면만 봤다. 코로나가 끝나면 아이들의 기초학력을 어떻게 단기간에 끌어올릴 건지 전 세계적으로 논의가 이뤄질 거다. 그때 에듀테크가 더 크게 쓰일 것으로 본다.

문상덕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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