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中에선 변호사보험·택배반송보험 인기라는데…우리는 왜 없나
'미니보험의 날' 제정…보험 대중화된 일본
규제 문턱 낮추고 IT플랫폼 혁신 더해진 日·中, 미니보험 전성기
걸음마 시작한 한국, 이웃나라 사례에서 배워야 할 점은
2015년 3월 2일. 일본에서 이날은 '미니보험의 날'로 불린다. 미니보험은 가입기간이 1년 미만으로 짧은 소액 보험료 보험을 말한다. 일본소액단기보험협회는 미니보험 인지도 향상을 위해 이날만 되면 고독사 현황 등 다양한 보고서를 발표한다. 초고령화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는 '고독사'가 유독 많아 고독사보험이 인기다. 협회는 '미니보험의 날'에 맞춰 관련 보고서를 발표해 보험의 필요성을 고취시킨다. 일본에서 미니보험이 꾸준한 성장세를 보여준 것은 이러한 협회의 노력이 한몫했다.
2005년부터 소액단기보험 제도를 도입한 일본은 '미니보험의 천국'이다. 미니보험사만 100곳이 넘고 보험 종류도 수백가지가 넘는다. 텐센트, 알리바바 등 공룡 IT기업이 뒤를 받치는 중국은 IT플랫폼과 연계한 미니보험이 큰 인기를 끈다. 이제 막 '미니보험 걸음마'를 시작한 우리의 입장에서는 인접한 이웃나라들이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16년 역사, 미니보험 천국된 일본
2019년 일본소액단기보험협회가 발표한 결산자료에 따르면 2015년 84곳이던 일본의 미니보험사는 2019년 103곳까지 증가했다. 일본 전체 보험사가 약 200곳임을 감안하면 전체 절반 정도가 미니보험사인 셈이다. 같은 기간 보험사가 거둬들인 수입보험료는 8000억원대에서 1조2000억원까지 늘었다.
보험사가 많은 만큼 상품 종류도 다양하다. 1인 세입자가 사망했을 때 집주인에게 유품 정리나 임대료 수입 등을 보장하는 고독사보험, 각종 분쟁에 휘말렸을 때 변호사 비용을 보장해주는 변호사보험, 휴가 때 폭우가 쏟아져 여행을 망치거나 업체가 준비한 행사를 하지 못했을 때 가입하는 날씨보험 등은 대표적인 일본의 미니보험 상품이다.
이밖에도 공연에 참석하지 못해 티켓 대금을 환불받는 티켓보험, 천장이나 벽에서 발생하는 누수를 보장하는 누수보험, 억울한 성추행 누명을 입었을 때를 보장하는 치한보험, 애완동물의 입원, 수술비 등을 보상하는 펫보험, 결혼식 취소 비용을 보장하는 결혼식종합보험 등이 있다.
중국에서도 반송보험, 항공도착지연보험, 카드사기보험, 드론보험 등 다양한 미니보험이 출시되며 인기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중국 10대 보험사로 성장한 중안보험이 있다.
중안보험은 지난 2013년 텐센트, 알리바바, 핑안보험이 공동 투자해 설립한 중국 최초의 디지털 보험사다. 사업 초기 월 보험료가 300원대에 불과한 반송보험(쇼핑몰서 반품택배비 보상)을 내놨고 1년만에 가입자수가 2억명을 돌파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후 중안보험은 알리바바와 텐센트의 IT플랫폼을 활용해 다양한 미니보험을 판매하며 중국 10대 보험사에 진입했다. 지난해 거둔 수입보험료는 우리 돈으로 약 3조원에 달한다.
국내에서도 수년전부터 미니보험 활성화 목소리가 커지자 금융당국은 논의 끝에 지난 6월, '소액단기전문 보험업'을 골자로 한 보험업법 시행령 개정안을 시행했다. 기존 300억원에 달하는 보험사 설립 자본을 20억원까지 줄여준 것이 주요 골자다. 자본금을 줄여준 만큼 일부 보험사와 핀테크사들이 미니보험사 설립에 관심을 보였고 8월 중순, 업체 10곳이 당국의 보험사 설립 컨설팅을 받았다. 내년정도면 미니보험 상품만을 출시하는 미니보험사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성공 여부는 미지수다. 소액 보험료를 수령하는 미니보험은 수익성 자체가 낮다. 월 300원 반송보험을 선보인 중안보험도 적자를 털어내는 데 7년이 걸렸다. 국내 보험사들이 미니스마트폰보험, 미니암보험 등을 내놓고 있지만 수익 때문이 아닌 MZ세대 가입자 유치 확보의 이유가 더 크다. 애초에 돈되는 시장이 아니란 얘기다.
일본·중국 미니보험 왜 인기 높을까
어떻게 일본과 중국에서는 돈 안되는 상품인 미니보험이 인기를 끌고 있을까. 일본은 가입문턱이 워낙 낮아 다양한 미니보험사들이 설립되며 시장 자체가 커진 케이스다. 일본에서 미니보험사 설립 기본 자본금 요건은 1억원에 불과하다. 이에 미니보험사가 100곳이나 생겼고 관련 상품도 많아지며 시장이 자연스럽게 커졌다. 하지만 국내는 자본금 요건이 20억원이며 취급종목도 생명(생명), 손해(책임, 비용, 날씨, 도난, 동물, 유리), 제3보험(질병, 상해)으로 제한됐다. 취급종목에 '항공'이 없어 항공기 지연시 보상받는 항공보험은 국내에서 출시가 어렵다.
일본 국민들의 보험에 대한 인식도 나쁘지 않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일본은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된 만큼 보험 필요성이 소비자들에게 비교적 빠르게 스며든 나라"라며 "인구도 1억명을 넘고 보험에 대한 인식 자체가 나쁘지 않은 편이다. 보험사가 200곳이나 될 정도로 우리와 시장 규모 자체가 다르다"고 밝혔다.
중안보험은 알리바바와 텐센트의 인기 플랫폼에서 상품을 판매해 초기 가입자를 대거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의무적으로 상품의 약관을 확인하고 개인인증과 결재정보를 입력하는 국내와 달리 중안보험은 별도의 인증절차를 없애고 계약자가 원하는 경우에만 약관을 확인하도록 했다. 보험금 청구도 자동화다. IT혁신기술로 모든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며 보험가입과 청구 과정을 간편하게 한 것이 성공요인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 미니보험이 성공하려면 출시상품의 다양화와 함께 출시 초기 상품 홍보를 위해 대형 플랫폼들과 협업이 필요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자본금 요건이나 취급종목도 장기적으로 완화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정훈 기자 kim.junghoo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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