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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능적으로 끌리는 위험한 놀이터 [장근영 팝콘 심리학]

생존 위해 위험을 이해하고 다루는 법부터 익혀야
위드 코로나 시대 대비하는 도전적 정신 필요

 
 
죽음을 각오하고 펼쳐지는 오징어게임의 운동장 모습. [사진 넷플릭스]
 
남자아이들을 위한 미술교육을 표방하는 곳을 살펴볼 일이 있었다. 그곳에는 자동차나 로봇뿐 아니라 각종 공작 도구와 이를 마음껏 이용할 수 있게 해주는 선생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남자아이들이 정신을 잃고 빠져들기 딱 좋은 것들이었다. 물론 그런 물건을 남자아이들만 좋아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남자아이가 거의 본능적으로 그런 공간에 매혹될 것임은 확실하다. 어린아이들에게 있어 최고의 감정은 박진감 혹은 두근거림이다. 그런데 이런 감정은 모두 위험성에 대한 반응이다. 아이들이 경탄하는 순간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면 대부분이 “와 죽을 뻔했다”에 해당한다. 위험성, 죽음을 아슬아슬하게 비껴가는 순간의 느낌. 그것이 아이를 매혹한다.
 
사실은 상당히 오래전부터 전문가들은 아이들의 놀이에서 위험이 가지는 가치에 주목해왔다. [미국인의 놀이터] [놀이의 과학] 등으로 잘 알려진 놀이터 역사학자 수전 G 솔로몬(Susan G. Solomon)은 ‘놀이터는 위험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슷한 주장은 독일과 일본 놀이터 전문가들에게서도 들을 수 있다. 그들이 공통으로 지적한 것은 ‘싸우지 말고 안전하게 놀아야 한다’는 어른들의 생각이 오히려 아이들의 본성을 억누르고 건강한 성장을 막는다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미국이나 유럽, 심지어 일본에서도 아이들을 위험에 노출하는 놀이터들이 존재해왔다. 그곳에는 정말 공사판이 펼쳐져 있다. 모서리가 다듬어지지 않은 각목이나 합판 같은 건축자재들, 심지어 어떤 곳에는 망치나 톱까지 있다. 물론 정말 위험한 물건을 다룰 때는 전문 가이드가 지켜보고 있고 대부분은 기초적인 안전장비는 갖추어져 있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뭔가에 조금 찔리거나 약간 다치는 일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아이들은 그걸 즐긴다.
 
인간은 천성적으로 위험성에 끌린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위험추구 성향이라고 한다. 물론 이 성향은 많은 이를 실제로 각종 위험에 빠트린다. 이 성향이 높은 아이들은 자전거나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로 감당할 수 없는 속도를 내고, 어른이 돼서는 손실의 가능성이 높은 주식을 구매하기도 한다.  
 

어른이 돼도 멈추지 않는 위험성의 끌림 

위험성을 알면서도 게임에 참여하는 오징어게임의 주인공 모습. [사진 넷플릭스]
 
하지만 위험성 속에는 성장의 가능성도 담겨있다. 인류는 위험을 기피하기보다 달려들던 구성원들 덕분에 이전보다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었다. 위험 경험은 인간 정서의 내구력을 키워주는 요소이기도 하다. 누구든 과거에 죽을 뻔했던 경험이 한두 개 이상은 있을 것이다. 그 기억은 공포에 대한 면역력의 기반이다.  
 
말콤 글래드웰(M.Gladwell)은 [다윗과 골리앗]에서 니체의 유명한 말 “너를 죽이지 못하는 고난은 너를 더 강하게 만들어준다”에 해당하는 각종 사례를 제시한다. 2차 대전 중에 독일의 공습에 시달리던 런던의 시민 중 폭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한 사람들 대부분은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겁이 없어졌다. 폭탄에 직격당하면 죽거나 다치지만, 그 폭탄에 맞지 않으면 다음 폭격에는 더 대담해지고 침착해진 것이다. 위험한 환경의 효과도 역설적이다. 19세기 초부터 2차 대전 직전까지 영국 총리를 지낸 사람 67%가 16세 이전에 양친 중 하나 이상을 잃었다. 마찬가지로 미국 대통령 44명 중 12명이 친아버지 없이 자라났다. 이런 ‘결손’ 가정환경은 분명히 ‘위험한’ 환경이다. 범죄자나 비행청소년 중에서 이와 같은 가정배경을 가진 사례들의 비율은 보통 집단에서보다 더 높다. 하지만 그 위험한 환경을 이겨낸 일부는 보통사람보다 더 뛰어난 무엇인가를 가지게 된다.  
 
위험의 가치를 생각하면 아동이나 청소년들에게 어떤 환경을 제공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많은 부모가 자녀들이 유해한 환경에 노출될 가능성을 최소화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이 세상에 태어나 겪을 수 있는 모든 유해하고 위험한 요소를 차단할 수는 없다.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 실제 세상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안전은 위험을 전제로 한다. 정말로 청소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위험을 이해하고 다루는 법을 배울 기회도 제공해야 한다. 아무런 위험요소도 겪어보지 못한 아이가 세상에서 어떻게 생존할 수 있겠나. 물론 아이들의 삶과 건강을 삼켜버릴 정도로 거대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겪어내고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의 위험이어야 한다. 요컨대 청소년을 보호하려면 우리는 청소년들에게 위험을 삭제한 환경이 아니라 ‘통제된 위험’이 실재하는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놀이터 전문가들의 주장처럼.
 
대부분의 청소년 활동 이론가들은 청소년 활동의 중요한 특성으로 모험·도전적 요소를 지적한다.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새로운 상황과 어려운 과제에 도전해봄으로써 용기와 자신감을 키울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청소년활동이라는 것이다. 그 자신감과 용기는 청소년들의 이후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자산으로 사용된다. 넘어져서 다치는 순간 우리는 넘어지면 아프다는 사실과 함께, 그 정도 아픔은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는 사실도 배운다. 세상은 험악하고, 실패와 실수는 피할 수 없다.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실패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실패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시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인간의 능력으로 막을 수 없는 사고도 벌어진다. 하지만 그 사고 앞에서 우리가 최선을 다해 제 역할을 해냈다면, 살아남은 이들은 다시 성장할 것이다.
 
지금 우리도 위험 앞에 서 있다. 많은 국가의 선택인 위드 코로나(With-Corona), 즉 코로나와 함께 산다는 건 결국 이 질병의 감염과 사망이 일상의 일부가 된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위드 코로나로 전환 시) 백신 덕분에 중증 진행과 사망의 위험성은 상당히 낮아지겠지만 감염자 숫자는 지금보다 몇 배 심지어 수십 배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이 길을 피할 수도 없다. 산업이나 경제적인 이유 때문만이 아니다. 인간의 사회적 본능을 거스르는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인위적 제한이 지속 가능하지 않아서다. 결국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통제된 위험을 겪어야 하는 상황이다. 이렇게 닥쳐올 생물학적 위험 세상 속에서 이 위험 추구의 본능이 우리를 지탱하는 힘이 되어주길 바란다. 
 
※ 필자는 심리학 박사이자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다. 연세대에서 발달심리학으로 석사를, 온라인게임 유저 한·일 비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시험인간] [심리학오디세이] [팝콘심리학] [무심한 고양이와 소심한 심리학자] 등을 썼고 [심리원리] [시간의 심리학] [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 등을 번역했다.
  

장근영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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