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 영입 전쟁] 빅테크 뛰쳐나온 개발자가 말하는 ‘개발자 전성시대’ 명과 암
[Interview] 이동욱 인프랩 CTO, 이주현 반려생활 CTO
“개발자 몸값 금값된 건 사실”…채용 시장 불균형 해결해야
인식 나쁘던 시기에 성장한 개발자 숫자 턱없이 부족
“‘어쩌다 개발자’로 살기보다, 기술로 기여하고 싶은 인재가 개발자 했으면…”
“본격 세계 최초 DEV(개발자) 엔터테인먼트 토크쇼. 두 스타트업 개발자의 요절복통 이야기.” 올해 1월 유튜브 채널 ‘개발바닥’이 개설됐다. ‘향로’, ‘호돌맨’이란 닉네임으로 등장하는 두 명의 청년 개발자가 화상채팅 솔루션 줌으로 대화를 주고받을 뿐인데도 1년 만에 1만7400명의 구독자를 끌어모았다.
섬네일을 보면 솔깃한 제목이 많다. “배민 개발자가 스타트업으로 이직한 이유”, “평범한 개발자가 기업 대표가 되기까지”, “주니어 개발자에게 추천하는 회사는”, “비전공, 지방대, 국비 출신 개발자의 첫 취업썰” 등 개발자를 꿈꾸는 이들의 흥미를 끌어내는 주제들이다.
개발바닥이 인기를 끄는 것은 선망의 직업으로 떠오른 개발자의 스토리를 경험담을 곁들여 슬기롭게 풀어냈기 때문이다. 각종 서비스 장애를 책임져야 하는 개발자의 애환도 느낄 수 있다. 김범준 우아한형제들 대표, 토스의 테크리드, 카카오 개발자 등 화려한 게스트를 섭외해 노하우를 듣기도 한다. 덕분에 개발자 커뮤니티에선 ‘진짜 개발자를 위한 유튜브 콘텐트’란 평가를 받고 있다.
개발바닥은 IT 교육 플랫폼 인프런(인프랩)의 이동욱 최고기술책임자(CTO)와 반려동물 종합 플랫폼 기업 반려생활의 이주현 CTO가 운영하고 있다. 이동욱 CTO는 줌 인터넷,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등 이름난 IT 기업에서 경력을 쌓은 8년차 개발자다. 이주현 CTO 역시 우아한형제들에서 지난해 말까지 머물다 올해부턴 스타트업 ‘반려생활’에 새 둥지를 틀었다.
잔뼈 굵은 경력의 두 개발자를 본지가 만났다. 유망직업으로 꼽히는 개발자 세계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듣기 위해서다. 인터뷰가 낯선 현직 개발자인 만큼 그들의 닉네임을 앞세워 글을 풀었다.
개발자의 위상이 높아졌습니다. 체감하고 있습니까.
이주현 반려생활 CTO(개발자 닉네임 ‘호돌맨’) :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 속에서 코딩 관련 용어가 나올 때 문득 놀랍니다. 지하철이나 옥외 광고, 유튜브 같은 데서 코딩 교육이나 개발자 교육이 나올 때도 그렇고요. 이직할 때 사이닝 보너스를 받고 연봉을 대폭 올리는 주변 개발자를 볼 때도 마찬가집니다. “이런 세상이 올 것”이라고 10년 전에 얘기했다면, 주변 친구들은 코웃음 쳤을 겁니다.
이동욱 인프랩 CTO(개발자 닉네임 ‘향로’) : 일단 연봉 지표로도 잘 드러나죠. 2010년대 초반만 해도 빅테크로 꼽히는 기업의 개발자 초봉이 3000만원 초반에 머물렀습니다. 지금은 6000만원을 훨씬 웃돌고 있어요.
이런 세상이 온 건 언제부터였나요. 미디어에선 코로나19로 언택트가 확산한 올해 초부터 주목하기 시작했는데요.
향로 : 2017년 여름, 네카라쿠배 중 한 기업이 ‘개발자 초봉 5000만원’을 책정했습니다. 개발자 수요가 폭증하면서 연봉이 슬금슬금 오르곤 있었는데, 5000만원은 꽤 파격적인 숫자였죠. 그때부터 기업마다 연봉 경쟁이 붙었습니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게 올해일 뿐, 개발자 몸값은 팬데믹 이전부터 ‘금값’이었습니다.
호돌맨 : 아이폰이 등장하고, 스마트폰이 모바일 대세로 자리매김하면서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는 걸 감지했습니다. 컴퓨터공학과를 다니던 2000년 중반만 해도 개발자는 ‘3D 직종’으로 통했습니다. 그 이미지를 해소한 게 스마트폰 앱을 만드는 개발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던 때였거든요.
십수 년 전엔 “개발자의 미래는 치킨집에 있다”는 자조 섞인 농담이 익숙했는데요.
향로 : 그땐 컴퓨터공학과 교수마저도 “한국에선 소프트웨어 개발로 돈 벌기 어려우니 기계공학도 함께 전공하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녔습니다. 저만 해도 동기 절반은 아예 다른 업종으로 취업했으니까요.
그런데도 일부 기업은 개발자를 구할 수 없다고 호소합니다. 아무리 좋은 조건을 늘어놔도요.
향로 : 수요와 공급이 불균형하기 때문입니다. 5년차 미만의 주니어 개발자만 쏟아지듯 양산하고 있는 가운데 기업들은 숙련된 개발자를 원합니다. 시장이 워낙 빠르게 바뀌다 보니 주니어 개발자를 교육하는데 투자할 시간이 없어서죠. 문제는 숙련된 개발자가 시장에 원체 없다는 점입니다. 특히 7~10년차 사이 경력을 갖춘 개발자의 숫자가 너무 적어요. 7~10년 전엔 개발자는 유망 직업이 아니었습니다. 연봉도 낮고, 업무도 고되고, 이미지도 나쁘다 보니 개발자로 진로를 정하는 이들이 적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의 ‘닷컴버블’과 요즘의 ‘플랫폼 전성시대’ 사이에 틈이 생긴 거죠.
요새 시장에 뛰어든 주니어 개발자가 성장할 때까진 지금의 구인난을 해소하긴 어렵겠군요.
호돌맨 : 경력을 쌓는다고 모두가 숙련된 개발자가 되는 건 아닙니다. 방향이 중요한데, 이를 잡아주는 것도 결국 시니어 개발자의 몫이거든요. 그런데 또 시니어 개발자의 숫자는 부족한 상황이고….
향로 : 그래서 ‘네카라쿠배, 당토직야’에 사람이 몰리는 겁니다. 그 기업에 소위 난다 긴다 하는 유명 개발자가 몰려있거든요. 그만큼 개발 역량을 늘릴 기회가 많죠. 단순히 좋은 처우 때문만이 아닙니다.
배민 나와 스타트업으로 향한 이유는…
두 분은 그런 선망의 기업 ‘네카라쿠배’를 다니다가 스타트업으로 이직했습니다. 다들 가고 싶어 하는 기업인데요.
호돌맨 : 싫어서 뛰쳐나온 건 아닙니다. 배운 게 참 많은 고마운 회사였죠. 다만 더 다이내믹한 개발자 라이프를 원했습니다. 계속 새로운 걸 추구해야 하는 직업인 만큼, 한 곳에만 오래 머물러 있는 게 불안하기도 했고요.
향로 : 여러 회사에 다녔는데 제 커리어에 스타트업만 없었습니다. 회사가 기반이 잡힌 상황에서 개발하는 것과 맨땅에서 처음부터 쌓아가는 개발은 완전히 다른 경험이거든요. 기업과 개발 실력이 함께 성장하는 미래를 그리면서 이직하게 됐습니다.
그만큼 이직한 스타트업의 비전이 뚜렷했군요.
호돌맨 : 반려생활은 반려인이면 누구나 사용하는 필수 앱이 되는 게 목표입니다. 반려동물과 생활할 때 불편함 없이 지낼 수 있는 다양한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죠. 가령 카페를 방문할 때, 견종과 몸무게 등 조건에 따라 입장이 허용되는지 아닌지를 미리 판단해줍니다. 기술을 통해 반려인-반려동물이 일상을 즐기며 서로에게 소중한 가족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하게 보조하는 플랫폼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향로 : 인프랩이 운영하는 인프런은 IT 교육 영상을 제공하는 플랫폼입니다. 지금은 교육에 한정하고 있지만, 채용‧커뮤니티 등 IT 직무 종사자라면 한 번쯤은 접해볼 수밖에 없는 데이터 기반의 종합 플랫폼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한 기업의 기술을 주도하는 잔뼈 굵은 청년 개발자가 됐습니다. 이렇게 성장할 때까지 곡절은 없었는지요.
향로 : 첫 직장은 ‘개발자의 무덤’으로 불리는 시스템통합(SI) 회사였습니다. 첫 월급으로 144만원을 받았는데, 그 무덤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계속 개발 공부만 했죠. 주말도 없고, 휴가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차근차근 실력을 인정받아 회사를 옮겨 다녔고, 지금은 스타트업이지만 어찌 됐든 개발리더로 성장했습니다.
호돌맨 : 저는 첫 직장에선 외주 프로젝트를 주로 담당했는데 주인의식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게 어려웠습니다. 쳇바퀴만 돌 듯 소모되는 느낌이었죠. 과감히 사직서를 냈고, 수많은 기업에 이력서를 넣었는데 번번이 탈락했습니다. 그때가 2016년 무렵이었습니다.
그땐 개발자를 원하는 수요가 없었나요.
호돌맨 : 있었죠. 다만 그땐 주니어 개발자이기도 했고, 시장이 원하는 역량이 뭔지도 잘 몰랐기 때문에 외면을 받은 것 같습니다. 마침 친한 친구가 가락시장에서 과일 도매업 하던 게 생각났습니다. 한 자리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고, 흔쾌히 좋다고 얘기했습니다. 과일 장사를 준비할 때쯤 이력서를 넣었던 회사가 우아한형제들이었는데, 덜컥 붙어버렸죠.
이런 흥미로운 경험을 유튜브 채널 ‘개발바닥’에 공유하고 있습니다. CTO 업무만으로도 적잖게 피곤할 텐데, 따로 시간을 내서 콘텐트를 만드는 이유는 뭔가요.
향로 : 코딩학원에선 교육하지 않는 현직 개발자의 고충과 애환을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교육 방향을 찾기가 어려운 주니어 개발자나 취업준비생에겐 어떤 역량이 필요하다는 걸 강조하고 싶기도 했고요.
호돌맨 : 얼마 전엔 빅테크의 기술면접 팁을 공유했는데, 이를 참고해 네카라쿠배에 합격했단 댓글을 봤습니다. 참 뿌듯했죠.
개발자로 일할 땐 언제가 가장 뿌듯합니까.
향로 : 어렸을 땐 스스로 짠 코드가 주변에서 칭찬을 받을 때가 가장 기뻤습니다. 지금은 역시 제가 내놓은 제품과 서비스가 잘 팔릴 때죠.
호돌맨 : 기술로 사회에 기여하고 있단 감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고객들의 진심 어린 칭찬과 피드백이 올 때가 그렇죠. 그땐 진짜 개발자 하길 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스타트업, 그것도 제가 서비스를 책임지는 위치에 있다 보니 고객 반응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더라고요.
개인별·기업별로 급여 격차 큰 시장임을 유념해야
다행히 두 분이 있는 CTO로 있는 스타트업은 개발 인력 걱정은 없을 것 같은데, 다른 스타트업은 그렇지 않습니다. 구인난이 심각한데요. 어떤 점을 어필해야 우수한 개발자를 끌어들일 수 있을까요.
향로 : 저는 스타트업이라면 스스로 기술 회사임을 어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들 기술 회사라곤 하는데, 들여다보면 말만 그럴 때가 많습니다. 실력 있는 개발자는 그런 걸 금방 파악합니다. 가령 자사의 기술 콘텐트를 공유하는 기술 블로그를 운영 중인 회사가 있고 또 아닌 회사가 있는데, 아무래도 기술 블로그를 운영하는 회사에 더 눈이 갈 수밖에 없죠.
호돌맨 : 연봉과 복지도 물론 중요하지만 저를 포함한 주변의 얘길 들어보면 의외로 1순위는 아닙니다. 개발자를 위한 문화가 잘 정립됐는지가 중요하죠.
개발자를 위한 문화가 뭔지 궁금합니다.
향로 : 자극을 줄 수 있는 동료가 있는 문화입니다. 조직원이 짠 코딩을 다른 구성원과 돌려보는 ‘코드리뷰’를 하는 회사가 대표적이죠.
호돌맨 : 제품과 서비스를 잘 팔기 위해 기술적인 부분을 다 같이 고민하는 회사가 아닐까요. 코딩만 짜는 게 아니라, 고객이 원하는 걸 구현해내는 게 진짜 개발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개발자를 꿈꾸는 청년들이 많습니다. 이것만큼은 꼭 유념했으면 하는 게 있다면요.
향로 : 여전히 빅테크와 중소‧스타트업의 연봉 차이가 극심합니다. 그래서 많은 취준생이 네카라쿠배 같은 탑티어 회사에 채용될 때까지 공부만 하고 있는데요. 저는 그러지 말라고 말리고 싶습니다. 일단 업계에 뛰어들고, 실무 역량을 기르는 게 시급하다고요. 실력만 있다면 기회는 얼마든지 생깁니다. 그 실력을 부트캠프나 코딩학원에선 기르는 데는 한계가 있어요.
호돌맨 : 개발은 지독한 지식 노동입니다. 계속 새로운 개발언어나 기술을 습득해야 생활을 이어갈 수 있죠. 일부 기업의 파격적인 근무 조건만 보고 적성에도 안 맞는데 시장에서 버티는 분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진심으로 개발을 좋아하고, 기술을 좋아하는 분이 개발자가 됐으면 좋겠어요. 누구나 개발자를 꿈꾼단 이유로 ‘어쩌다 개발자’가 되진 말아 주세요. 자칫 그 삶은 행복하지 않을 수 있거든요.
김다린 기자 kim.dar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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