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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M 새 대표에 前 현대글로비스 사장…산은의 큰 그림?

정통 ‘현대맨’이자 현대글로비스 성장 이끈 장본인 내정
산은, HMM 지분 매각 앞두고 ‘김경배 역할론’?
현대글로비스, HMM 품에 안을 시 시너지 효과 기대
순환출자 해소, 지배력 확보 위해 인수전 나서나

 
 
네덜란드 로테르담항에서 선적 중인 HMM 그단스크호. [사진 HMM]
 
국내 최대 컨테이너 선사인 HMM의 새 대표이사 사장으로 김경배 전 현대글로비스·현대위아 사장이 내정됐다. 이로써 김 전 사장은 영업이익 7조원이라는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거두며 경영 정상화에 성공한 HMM을 이끄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됐다.  
 
한편 업계에선 김 전 사장 내정이 산업은행 등 채권단의 또 다른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정부가 HMM 지분 매각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잠재적 인수 후보군으로 꼽히는 현대차그룹과 인연이 깊은 김 전 사장을 HMM 수장으로 선택한 탓이다. 향후 매각 과정에서 김 전 사장이 모종의 역할을 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2대 걸쳐 현대가 오너 보좌한 정통 ‘현대맨’

재계에 따르면 HMM 채권단은 지난 9일 경영진추천위원회를 열고 배재훈 사장 후임자로 김 전 사장을 내정했다. 김 전 사장은 다음 달 주주총회 승인 이후 공식 취임할 예정이다. 
 
채권단은 김 전 사장의 경영 능력을 높이 산 것으로 알려진다. 김 전 사장은 현대차그룹의 철강·설비·건설 물류 계열사인 현대글로비스에서 2009년부터 2017년까지 대표이사를 했다. 2018년엔 자동차 부품사인 현대위아 대표이사로 근무했다.  
 
김경배 신임 HMM 사장이 지난 2018년 현대위아 사장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사진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
 
특히 현대글로비스 대표 재임 당시 그룹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사업 다각화에 힘썼다는 평가다. BMW·GM·도요타 등의 완성차를 운송하는 업체인 폴란드 ‘아담폴’을 인수하고, 에쓰오일과 1000만 톤의 원유 수송 계약 체결 등 굵직한 성과는 물론 중고차 경매 사업, 국내 자동차 수출용 터미널 운영 등 다수 사업을 추진했다. 그 결과, 2009년 대표 취임 당시 7조원 수준이었던 현대글로비스의 매출은 2017년 16조원 수준으로 성장했다.    
 
경영 능력만큼 김 전 사장의 이력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1990년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에 입사해 현대그룹을 창업한 고(故) 아산 정주영 명예회장을 10년 동안 보좌했다. 이후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 비서실장을 거쳐 현대모비스 인사실장, 현대자동차 경영지원실장 등을 지냈다. 2대에 걸쳐 현대가 오너를 보좌한 정통 ‘현대맨’이다.
 

HMM 인수 유력 후보군으로 떠오르는 현대차그룹  

업계에선 이 같은 그의 이력이 HMM 대표 선임 배경 중 하나가 아니었겠느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현재 HMM 주요 주주는 산은 20.69%, 해양진흥공사(해진공) 19.96%, 신용보증기금 5.02%, 국민연금 4.36% 등이다. 이 가운데 산은은 HMM 지분 매각을 검토 중이다.  
 
지난달 27일 열린 산업은행 신년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사진 산업은행]
 
이동걸 산은 회장은 지난달 27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시장 여건을 감안해서 원활한 M&A 추진을 위해 필요한 만큼은 중간에 단계적으로 매각해야 한다는 생각”이라며 “70%를 다 가지고 있으면 안 되고, 30~35% 매각한 후 나머지는 남겨놔야 매각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이 회장이 언급한 ‘70%’는 산은과 해진공의 지분에 두 기관이 보유한 2조6800억원에 달하는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포함한 지분을 뜻한다.  
 
산은 입장에서는 지난해 매출 13조7941억원, 영업이익 7조3775억원을 기록하며 부활에 성공한 HMM을 더 이상 품에 안고 있을 이유가 없다. 지분 매각을 통해 자금을 회수할 시점이 점점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재계에서는 HMM 민영화 후보군으로 포스코그룹과 함께 현대차그룹을 인수 대상자로 거론하고 있다. 사업 특성과 자금 동원력을 고려하면 두 회사가 인수전에 뛰어들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HMM 품에 안고 현대글로비스 기업가치 끌어올리나

현대차그룹이 HMM 인수를 시도한다면 현대글로비스를 내세울 전망이다. 현재 현대글로비스는 크게 종합물류업과 유통판매업, 해운업을 한다. 이 가운데 해운업 비중은 14.49% 수준이다. 해운업 가운데 현대글로비스는 벌크선과 자동차운반선 사업이 대부분이고, HMM은 컨테이너 사업 비중이 80%가 넘는다. 
 
사업 영역에서 중복되는 부분이 크지 않아 시너지 효과가 클 것이라는 예상이다. 현대글로비스의 몸집도 크게 불어날 수 있다. 두 회사의 지난해 실적을 단순 합산할 경우 매출은 36조7273억원, 영업이익은 8조5037억원에 달한다.  
 
HMM 인수는 사업적 시너지와 함께 현대차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구조 개편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현대차그룹은 10대 대기업집단 가운데 유일하게 순환출자 구조(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를 유지하고 있는 그룹이다. 지배구조 개선 요구가 끊임없는 이유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달 4일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 호텔에서 열린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실질적 그룹 지주사인 현대모비스의 정의선 회장 지분은 0.32%에 그친다. 재계에서는 정 회장의 현대모비스 지분 매입을 위한 재원 마련 방안 중 하나로 지분 23.29%를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활용을 거론하고 있다. 그러려면 현대글로비스의 기업가치를 끌어올려야 하는데 HMM 인수만큼 매력적인 매물이 시장에선 없는 상황이다. 
 
순환출자 해소와 정 회장의 지배력 확보라는 총수 일가의 당면 과제 때문에 자금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현대차가 인수전에 뛰어들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업계에서는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김 전 사장을 HMM 대표로 내정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흘러나오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이 HMM 지분 인수에 뛰어들 경우를 고려해 채권단이 김 전 사장의 가교 역할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예상을 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현대차그룹은 2013년 이후 위기에 처하기 시작한 당시 현대상선(현 HMM)의 인수 후보로 꾸준히 거론됐다. 
 
2016년에도 정부가 현대차에 현대상선 인수를 제의한 바 있지만 “현대글로비스가 해운업을 겸영하지만, 자동차운반선만 운영할 뿐 컨테이너선 등 현대상선의 사업 분야와는 무관해 인수 시 사업성이 없다”는 그간의 입장을 되풀이해왔다.  
 
2020년 현대차는 20년 넘게 보유해온 HMM(구 현대상선)의 지분을 모두 처분했다. 현대차는 1999년 당시 유동성 위기에 닥친 현대상선에 5600억원 규모의 지급보증에 나서며 현대상선 지분 0.55%도 확보했다. 이후 지분율은 점차 줄어 2017년 0.03%까지 떨어졌다. 그러다 현대상선의 사명이 HMM이 바뀌자 나머지 지분도 처분했다. HMM과의 마지막 끈을 놓은 셈이다.

허인회 기자 heo.inho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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