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이슈
“부산은 더 이상 ‘제2의 도시’가 아니다”…글로벌 허브로 가는 부산의 실험 [이코노 인터뷰]
- [국가균형성장, 지자체장에게 듣다] ① 박형준 부산광역시장
서울·수도권을 따르지 않는 성장, 지역 균형 발전의 새 모델
글로벌 해양 허브·초광역 협력으로 남부권 성장축 구축
'5극 3특' 전략 방향성 공감…"권한·재정 자율성 보장돼야"
오랫동안 ‘제2의 도시’라는 이름으로 불려 온 부산은 지금 스스로를 전혀 다른 좌표 위에 올려놓고 있다. 서울·수도권을 따라잡는 도시가 아니라, 서울·수도권과는 다른 축으로 대한민국의 성장을 견인하는 도시. 박형준 부산시장이 그리는 부산의 미래상이다. 그는 이를 '글로벌 해양 허브 도시'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이재명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는 '지역 균형 발전' 기조 속에서, 부산은 단순한 수혜 지역이 아니라 성공 모델을 만들어야 할 시험대에 올라와 있다. 박형준 시장은 지역 균형 발전을 "대한민국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하는 국가 생존 전략"이라고 규정한다.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박 시장에게서 부산이 구상하는 지역 균형 발전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그 전략의 핵심을 들었다.
균형 발전, 대한민국 전체의 성장판 넓히는 전략
박형준 시장은 '성공한 지역 균형 발전'의 기준을 묻는 질문에 주저 없이 '혁신거점의 다극화'를 제시했다. 그는 "전국에 복수의 혁신 거점을 만들고, 이를 중심으로 주변 지역이 함께 성장하는 구조가 진정한 균형 발전"이라고 말했다.그가 말하는 혁신 거점은 단순한 기관 이전이나 단기적 재정 지원과는 거리가 멀다. 산업과 인재, 자본과 기술이 자생적으로 집적되고 확산할 수 있는 구조를 의미한다. 박 시장은 이를 '혁신균형발전'이라고 정의했다. 세계 주요 국가들의 사례를 보더라도, 혁신역량을 특정 수도 하나에 집중시키기보다 다수의 혁신 거점을 보유한 국가들이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박 시장은 "대한민국은 지금 서울·수도권에 거의 모든 성장동력을 의존하고 있다"며 "이 구조가 유지되는 한 지역 소멸은 피할 수 없고, 국가 전체의 성장 잠재력 역시 빠르게 소진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지역 균형 발전은 지방을 배려하는 정책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을 재설계하는 전략이라는 인식이다.
그는 부산이 이러한 혁신 거점 역할을 수행하기에 가장 적합한 도시라고 강조한다. 세계 2위 환적항인 부산항을 중심으로 이미 글로벌 해양 물류 네트워크가 구축돼 있고, 울산·경남·전남 등 인접 지역과의 산업적 연계 가능성도 크다는 점에서다.
박 시장은 "부산의 성장은 부산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며 "부산이 혁신 거점으로 기능하면 그 파급효과는 남부권 전역으로 자연스럽게 확산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서울·수도권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형 성장'이 아니라, 주변 지역과 함께 성장하는 '확산형 성장 모델'이라는 것이다.
박 시장은 "지역 균형 발전은 특정 지역을 살리는 정책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성장판을 넓히는 전략"이라며 "부산이 가장 먼저 성공적인 혁신 거점 모델을 만들어 보이겠다"고 말했다.
수도권 따라잡기 아닌 전혀 다른 길 가야
'지방은 서울·수도권을 따라잡아야 할 대상인가'라는 질문에 박형준 시장은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그는 “서울·수도권을 기준으로 따라잡겠다는 정책은 오히려 격차를 더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산업 구조와 인구 구조가 전혀 다른 수도권 모델을 그대로 복제하려는 접근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설명이다.박 시장은 “지속 가능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각 지역이 가진 비교우위를 바탕으로 전략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며 “그래야 대한민국이라는 운동장을 넓게 쓸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대한민국은 서울·수도권 초집중으로 인해 ▲성장 잠재력 저하 ▲초저출생 ▲지역 격차 확대라는 복합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인식이다.
이런 관점에서 부산이 선택한 길은 '해양'이다. ▲해양 물류 ▲해양 금융 ▲해양 신산업을 결합한 글로벌 해양 허브 도시 전략은 수도권이 대체하거나 모방하기 어려운 영역이라는 설명이다. 박 시장은 "부산은 서울·수도권의 대안이 아니라, 수도권과는 다른 역할을 수행하는 도시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형준 시장은 부산을 오랫동안 따라다녔던 '제2의 도시'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산업화 시대 서울·수도권 중심 사고가 만들어낸 평가"라며 "'제2'라는 표현은 늘 비교와 종속을 전제로 한다"고 말했다.
부산시는 이 프레임을 넘어서기 위해 도시 체질 개선에 집중해 왔다. 해양·금융·첨단 산업을 중심으로 역대 최대 규모인 19조원의 투자 유치에 성공했고, 미래 모빌리티·스마트 물류·조선해양 R&D 분야에서 국내외 기업들의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박 시장은 “투자 규모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도시의 방향성과 신뢰를 보여주는 신호”라고 말했다. 실제로 부산의 상용 근로자 수는 100만명을 돌파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산업 전환의 성과가 고용으로 연결되기 시작했다는 평가다.
인구 감소와 청년 유출 문제에 대해 박 시장은 원인을 구조에서 찾았다. 그는 “청년들이 부산을 떠나는 이유는 개인의 선택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라고 강조했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서울·수도권으로 유입되는 인구의 78.5%가 청년층이며, 비수도권 인구 감소 역시 청년 유출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서울·수도권으로 이동한 청년들의 소득 상승 가능성이 더 크다는 분석도 있다. 박 시장은 “이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어떤 지역 정책도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부산을 동남권 혁신 거점으로 육성하는 것이 인구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라고 설명했다. 지역 내에 양질의 일자리와 성장 기회가 형성돼야 청년들이 머물고,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인식이다.
해양 허브도시, 남부권 성장의 축
박형준 시장이 구상하는 '글로벌 해양 허브 도시'는 부산 하나의 발전 전략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이 구상은 수도권 일극 체제를 해소하고 남부권 전체를 성장 거점으로 만드는 국가 전략”이라고 말했다.
▲해양수산부 이전 ▲해사법원 신설 ▲해운기업과 금융기관 집적은 개별 사업이 아니라 하나의 큰 그림 속에 있다. 행정·사법·금융·산업 기능이 동시에 집적될 때 해양 산업 경쟁력이 완성된다는 논리다. 여기에 북극항로 개척과 환동해권 연계를 더해 글로벌 해양 경제를 주도하는 슈퍼 클러스터로 도약하겠다는 구상도 포함돼 있다.
박 시장이 이를 '국가 해양 전략'으로 규정한 이유는 분명하다. 서울·수도권 초집중은 단순한 지역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성장 구조 자체를 취약하게 만드는 요인이라는 것이다. 인구와 자본, 일자리가 한 지역에 과도하게 몰리면서 수도권 내부에서도 주거비 상승, 교통 혼잡, 삶의 질 저하가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
박 시장은 “균형 발전은 지방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수도권까지 포함한 국가 전체의 비용을 줄이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하나의 엔진에만 의존하는 국가는 외부 충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다.
박형준 시장은 현 정부가 추진 중인 '5극 3특' 전략에 대해 방향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실효성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현재 논의되는 특별자치단체 수준의 권한으로는 수도권 일극 체제를 극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부산·울산·경남 특별연합이 중단된 배경 역시 실질적인 권한과 재정 자율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 시장은 "초광역 협력이 성공하려면 준연방제 수준의 권한과 책임이 필요하다"며 "지방정부가 스스로 전략을 설계하고 추진할 수 있어야 균형 발전이 공허한 구호에 그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부산이 추진하는 글로벌 해양 허브 도시 전략은 하나의 도시를 넘어선 국가적 실험이다. 이 실험이 성공한다면 대한민국은 수도권 일극 구조에서 벗어나 새로운 성장 축을 확보할 수 있다. 실패한다면 지역 균형 발전은 다시 선언적 구호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박형준 시장은 "지금 부산에서 벌어지는 일은 특정 지역의 이해관계 문제가 아니라 중앙정부가 진정으로 권한을 내려놓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시험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부산이 그 첫 번째 시험대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는 설명이다.
박 시장이 말하는 글로벌 해양 허브 도시는 개별 도시 발전 계획이 아니라 국가 공간 구조를 재편하는 개념에 가깝다. 그는 이를 '해양수도권'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수도권이 정치·행정·내수 중심의 축이라면, 해양수도권은 수출·물류·해양 산업을 기반으로 한 또 하나의 국가 핵심 축이라는 의미다.
박 시장은 “대한민국은 대륙과 해양을 동시에 품은 국가”라며 “그동안 대륙 중심 사고에 치우쳐 있었다면, 이제는 해양을 통한 성장 전략을 확장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부산은 이 해양수도권 전략의 출발점이자 실험 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중앙정부, '지원자'에서 '동반자'로
박형준 시장이 반복적으로 강조한 키워드는 ‘신뢰’였다. 그는 중앙정부가 지방정부를 단순한 집행 기관이 아니라, 전략적 파트너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시장은 “지방정부에 책임만 묻고 결정 권한은 중앙이 쥐는 구조로는 어떤 혁신도 어렵다”며 “권한과 책임이 함께 가야 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허브도시 특별법과 산업은행 이전 역시 부산만의 요구가 아니라 중앙–지방 관계 전환의 시험대라는 의미다.
부산의 실험이 성공할 경우, 다음 질문은 자연스럽게 '그다음은 어디인가'로 이어진다. 박형준 시장은 “부산만 잘되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부산이 혁신 거점으로 안착하면, 대구·광주·대전 등 다른 광역 도시들도 각자의 비교우위를 바탕으로 새로운 성장 전략을 설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하나의 성공 사례는 다른 지역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힘”이라며 “부산이 그 첫 사례가 된다면 지역 균형 발전은 더 이상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현실적인 모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형준 시장은 인터뷰 말미에 부산이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부산이 글로벌 허브 도시로 자리 잡는 순간, 지역 균형 발전은 선언이 아니라 현실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 과정은 부산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미래를 시험하는 일”이라며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의 역량을 믿고 권한을 이양할 때 비로소 새로운 성장의 길이 열린다”고 강조했다.
박 시장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대한민국은 하나의 바퀴로만 굴러갈 수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부산은 두 바퀴로 굴러가는 국가를 만드는 데 앞장설 준비가 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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