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러시아 제재 여파로 현지 한국 기업 생산 차질 가시화
삼성·현대기아·LG·KT&G·팔도 러시아에 진출
원자재·부품 조달망과 육·해상 물류망 차단에
자재 수급난으로 현지 생산시설 일시 중단해
미국·유럽 등이 대 러시아 제재 수위를 높이면서 한국 기업들도 제재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게 됐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반도체 등 첨단 제품 제조 소재, 천연가스 등 에너지, 산업용 금속·곡물 등을 공급하는 주요 수출국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충돌이 확산하고 있고 러시아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러시아 시장에 진출했거나 현지에서 생산시설을 운영하는 한국 기업들을 중심으로 적지 않은 파장을 미칠 거라는 전망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글로벌공급망분석센터의 ‘글로벌 공급망 인사이트’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수출을 이끌고 있는 국내 대기업들이 러시아에 진출해 있다. 삼성전자는 모스크바 인근 칼루가 지역에서 TV를, LG전자는 모스크바 외곽 루자 지역에서 가전·TV를, 현대·기아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자동차를 각각 생산하고 있다. KT&G와 팔도는 모스크바 인근에 거점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 기업들은 한국 외 지역에서 완제품을 들여오거나 한국에서 원자재나 부품들을 수입해 현지에서 생산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과 유럽의 대 러시아 제재로 원자재·부품 조달망과 육·해상 물류망이 차단될까 봐 걱정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이 러시아로 들어가는 물류·자금 등 경제 흐름을 차단하자 중국을 통한 흐름이 급증하고 있어서다. 미국이 대 러시아 제재를 시작하자, 유럽에서 러시아로 들어가는 트럭킹(trucking 화주와 차주 간 화물운송거래)이 공식적으로 차단되진 않았으나 운송업체들이 트럭킹을 꺼리면서 물류 적체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때문에 중국횡단철도(TCR)을 통해 러시아로 유입하는 물동량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 글로벌공급망분석센터의 분석이다.
해상 운송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머스크·MSC 등 세계 시장점유 1·2위 선사들이 러시아 운항을 잠정 중단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악화된 물류망 마비 현상이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현대차의 러시아 공장 중단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현대차는 지난 1일 “국제 물류 공급 차질에 따른 부품 부족으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 가동을 1~5일 일시 중단한다”며 “대 러시아 제재와는 상관 없으며 지난해부터 이어진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도요타자동차도 3일 “부품 공급 문제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을 4일부터 당분간 가동을 중단한다”며 “완성차의 러시아 수출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도요타자동차 측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서 사업을 하는 기업으로서 우리가 우선시하는 것은 모든 종업원, 판매 직원들, 부품 공급업체 여러분의 안심과 안전”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태로 부품 조달이 지연되자 정상 조업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도요타는 러시아가 침공을 시작하자 우크라이나에 있는 37개 판매·서비스 거점 등 대부분의 현지 사업을 중단했다.
혼다도 결제와 자금 회수에 차질을 빚을 것을 우려해 자동차·오토바이 러시아 수출을 일시 중단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마쓰다도 자동차 부품 러시아 수출을 중단할 계획이다. 미쓰비시자동차도 모스크바 근교에서 운영 중인 합작공장도 생산 중단을 검토 중이다.
미국이 발효한 대 러시아 수출통제 조치인 해외직접제품규제(FDPR)의 면제 대상국에 한국이 포함되지 않은 점도 러시아 내 한국 기업들이 처한 불안한 상황을 부채질하고 있다.
FDPR은 미국 밖의 외국 기업이 만든 제품이라도 미국산 기술과 소재를 사용한 경우 수출을 금지하는 제재다. 반도체·컴퓨터 등 7개 분야 57개 하위 기술이 FDPR 적용 대상이다. 미국 상무부는 독자 제재에 나선 유럽연합(EU) 27개국을 비롯해 뉴질랜드·영국·일본·캐나다·호주 등 32개국을 이 규정 적용 대상에서 제외했지만, 한국은 포함하지 않았다.
글로벌공급망분석센터는 “이번 미국·유럽의 러시아 경제 제재로 러시아 주요 은행들은 수출대금 회수와 수입대금 제불 등 해외거래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며 “이는 장기적으로 러시아 수출입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우크라이나 사태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로부터 수입비중이 높은 에너지·원자재 등의 가격 상승과 수급 불안을 부채질하고 있다”며 “이는 러시아와의 교역에서 한국 수출입 비중이 높은 자동차·자동차부품·나프타·원유·유연탄 등과 관련된 기업과 산업분야의 생산 차질이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이와 함께 “루블화 평가절하에 따른 수출입 환차손도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박정식 기자 park.jeongsi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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