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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국가부도 위기…최대 투자 한국 협력사업 먹구름

경제위기·치안불안으로 비상사태·통행금지 선포
JP모건·피치, 스리랑카 부채 부실채권으로 간주
“한국 기업·정부 협력사업들에도 파장 있을 듯”

 
 
시위대가 3월 31일 스리랑카 콜롬보에 있는 대통령 집 앞에서 버스에 불을 지른 후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한국이 최대 투자국인 스리랑카가 극심한 경제난으로 국가 부도 위기에 몰렸다. 스리랑카에 진출한 한국기업들과 한국과의 협력사업에도 난항이 예상된다.  
 
스리랑카는 현재 보유 외화 부족, 전력난과 단전, 물가 급등, 주유 공급난 등을 겪고 있다. 심지어 식품·의약품·종이 등 생활 필수품 공급난까지 발생해 민심을 성나게 만들고 있다. 이 때문에 학교에선 학생들이 종이가 없어 시험을 치르지 못하고 병원에선 마취약이 없어 수술을 미룰 정도다.  
 
스리랑카 시민들이 3월 31일 콜롬보에 있는 스리랑카 석유가스기업 실론석유공사(Ceylon Petroleum Corporation) 관할 주유소 앞에서 디젤을 사기 위해 장시간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AFP=연합뉴스]
 

에너지·생필품 공급난에 마취약 없어 수술 보류

외신에 따르면 스리랑카는 일부 화력·수력 발전소 가동을 일부 중단해 전력 생산이 급감했다. 하루 순환단전 시간을 1~5시간에서 최근엔 13시간까지 늘렸다. 발전소 가동이 끊기면 각 가정에 물 공급도 끊어질 위기에 처했다.  
 
보유 외화가 부족해 석유·석탄 등 에너지 구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주유소마다 기름을 사려는 사람들이 장시간 줄을 서고 있다. 도심엔 민간업체가 운영하는 버스의 약 25%만 운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가로등도 꺼진 지 오래다.  
 
의료계도 마비됐다. 기본 상비약은 차치하고 마취약조차 없어 병원에선 수술을 미루고 있을 정도다. 종이 공급난으로 학교에선 시험을 연기했으며 현지 신문 매체인 아일랜드와 디바이나는 토요일자 발생을 중단했다. 용지뿐만 아니라 잉크 등 인쇄 관련 소모제품도 부족해 다른 매체들도 발행 간격을 늘리고 있다.  
 
스리랑카 정부가 비상사태를 선포한 가운데 스리랑카 특수부대가 4월 3일 스리랑카 콜롬보 도심에서 반정부 시위에 대응하기 위해 검문소를 세우고 경계를 서고 있다. [EPA=연합뉴스]
 

곳곳서 시위 격화, 내각 총사퇴로 성난 민심 달래기

대통령 퇴진 시위가 연일 이어지는 등 민심이 폭발하고 치안이 불안해지자 스리랑카 정부는 시위가 빈발하는 주요 도심에 군인들을 배치하고, 비상사태 선포, 통행금지 강화, 소셜미디어(SNS) 접속 차단 등으로 억압하고 있다. 최근엔 내각 총사퇴로 사태 수습과 민심 달래기에도 나섰다.  
 
스리랑카 내각의 장관 26명 전원이 3일(현지 시간) 밤 사임 의사를 밝혔다. 디네시 구나와르데나 교육부 장관은 “경제 위기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 논의한 뒤 대통령이 새로운 내각을 구성할 수 있도록 모든 장관들이 사직하기로 결정했다”며 밝혔다. 아지트 카브랄 중앙은행 총재도 다음날 자리에서 물러났다.  
 
일부 야권 정치인들과 성난 수천 명의 시민들이 대통령 관저 앞으로 몰려가고 시위하고 군경 차량에 불을 지르는 등 스리랑카 정부는 내각 사퇴라는 카드로 민심 수습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고타바야 스리랑카 대통령은 야권 인사들을 포함한 연립 내각 구성 등의 방안을 제안한 상황이다.  
 
스리랑카 시위대가 4월 4일 콜롬보에서 가격 급등, 연료와 필수품 부족에 반대하는 현수막과 플래카드를 들고 정부에 항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신용평가등급 하락, 국가 부도 위기에 내몰려

스리랑카는 대외적으로 현재 국제 채무불이행(디폴트)이 불가피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스리랑카의 올해 총부채 상환 예정액은 70억 달러(약 8조5000억원)이지만, 외화보유액은 20억 달러(2조4000억원)에 불과해 부도 위기에 처했다. 주요 신용평가사는 지난해 말부터 이미 스리랑카의 국가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한 상태다.  
 
JP모건체이스 분석에 따르면 미국과 스리랑카 간의 국채 수익률 격차는 28.36%포인트까지 벌어졌다. 간격이 통상 10%포인트만 초과해도 부실채권으로 간주되는데, 이미 2배 이상 초과한 것이다.  
 
스리랑카의 국채 7월 만기는 10억 달러(약 1조2143억원)에 이른다. 국제신용평가업체 피치 분석 결과 스리랑카가 갚아야 할 대외 부채는 올해 70억달러(약 8조5001억원)에 달한다. 스리랑카의 무역적자는 지난해 12월 11억 달러(약 1조30357억원)로 2배 증가했으나, 외화보유액은 2월 기준 23억 달러(약 2조7928억원)에 불과하다.  
 
스리랑카 정부는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을 비롯해 인도·중국 등에 지원의 손길을 요청하고 있다. 인도는 스리랑카에 여신 한도를 늘려 10억 달러(약 1조2000억원)를 긴급 지원하고 있다. 중국도 25억 달러(약 3조원) 규모의 지원안을 검토 중이다.  
 
스리랑카 정부가 비상사태를 선포한 가운데 시민들이 4월 4일 콜롬보에서 경제 위기를 해결하지 못한 대통령에 사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기반시설·도시건설 등 한국 협력 사업 난항 전망

한국은 스리랑카에서 최대 투자국으로 꼽힌다. 스리랑카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 중 20% 정도가 한국 기업들로 스리랑카에서 가장 큰 투자·고용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스리랑카의 연간 수출액 중 약 10% 전후는 스리랑카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에게서 나온다.  
 
한국이 경제개발5개년 계획을 밟으며 2차산업-경공업-중화학공업으로 변화를 꾀할 때 스리랑카는 여전히 전형적인 농수산업 중심 국가로 머물러 있었다. 1990년대에 국내 인건비가 가파르게 치솟자 인력 중심의 제조 기업들은 중국·인도 등 인건비가 저렴한 해외로 눈을 돌렸다.
 
이 때 경남기업·한진해운·오션뮤직·삼양랑카 같은 일부 한국 기업들은 스리랑카로 진출했다. 한국 제조기업들의 진출과 생산에 힘입어 스리랑카의 경제구조는 제조업 비중이 크게 높아졌다. 농수산 국가이자 사회주의 국가였던 스리랑카 정부도 자유시장경제 체제로 전환하면서 세금 면제, 외환 송금 자유 등 외국인 투자제도를 정비하고 한국기업들의 안착을 지원했다.  
 
한국의 대 스리랑카 수출은 지난해엔 플러스로 전환하면서 큰 폭으로 증가했다. 한국무역협회 자료에 따르면 대 스리랑카 수출은 2021년 2분기 193.4%로 급증했으며 전년 같은 기간 대비 67% 넘는 무역수지 흑자도 기록했다. 한국산 합성고무·정밀화학제품·농약·의약품 등의 수출이 수출 증가를 이끌었다.  
 
대 스리랑카 수입도 크게 늘어 지난해엔 1억4000만 달러(약 1699억원)를 기록했다. 특히 건설광산기계의 증가폭이 크게 증가했다.  
 
한국기업들은 최근엔 스리랑카 정부의 스마트시티 구축 사업 진행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KT는 스리랑카 스마트시티 구축 사업협력을 맺고 스리랑카 콜롬보 인근에 과학기술신도시를 개발하는 사업에 인공지능·사물인터넷·빅데이터 등 KT 기술을 접목한다. 국토부도 스리랑카의 수도권 9개 신도시 개발에 참여, 과학기술신도시와 공항배후도시 조성에 교통·스마트홈 등 스마트시티 건설 노하우를 전수하는 역할을 맡았다.  
 
한국무역협회 관계자는 “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스리랑카 역시 온라인 상거래와 소셜미디어 사용이 급증하고 있는데다 최근엔 온라인 학습 사이트, 스마트폰 생중계 시청, 스마트폰으로 세금 납부 등 새로운 시도들이 늘어나고 있어 소비 성향도 변화가 일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국가 개발의 상당부분을 국제 원조에 의존하고 있는 스리랑카가 2025년까지 거액의 외채 상환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어서 기반시설·신도시 개발 등 한국 기업들과 맺은 다양한 협력사업들이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박정식 기자 park.jeongsi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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