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물가격 오를 땐 식료품株 투자 피해야 [이종우 증시 맥짚기]
우크라이나 사태로 곡물가 안정은 빨라야 내년 예상
곡물가격 오르고 원화 약세 겹쳐 식료품 업종 피해 커져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올해 전 세계에서 27억913만t의 곡물이 생산돼, 28억96만t이 소비될 거라 전망했다. 생산이 조금 부족하긴 하지만 재고나 대체식품을 고려하면 문제 될 게 없는 수준이다. 이런 전망이 무색하게 최근 국제곡물가격이 급등했다. 지난 3월 유엔식량농업기구 식량가격지수가 2월보다 12.6% 상승했다. 해당 지수가 만들어진 1990년 이후 최대치로, 2월에 이어 두 달 연속 최고치를 경신한 것이다.
식량 수급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다. 지난 20년간 곡물 수요 증가는 중국을 포함한 신흥국과 바이어 연료가 담당하고 있었다. 중국의 경제 성장으로 식량 소비가 연평균 6%씩 늘었고, 바이오 에너지 사용량이 8%씩 증가한 것이 곡물 가격을 끌어올린 원인이었다. 앞으로 10년간 두 수요는 크게 늘지 않을 것이다. 주요 신흥국이 식량 소비가 늘어나는 단계를 지난 데다, 인센티브가 줄면서 바이오 연료 생산 증가가 둔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황 부진에 대한 우려로 국제 곡물 가격 급등
우선 작황 부진에 대한 우려가 작동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전 세계 옥수수 수출의 50%, 밀 수출의 30%를 담당하고 있는 나라다. 많은 국가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산 밀과 옥수수를 쓰고 있다는 얘기인데, 이런 지역에서 분쟁이 터졌기 때문에 공급 차질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 기후도 좋지 않다. 재작년 하반기부터 세계 평균 기온이 예년을 밑돌아 냉해로 인한 경작 부진이 예상되고 있다.
수출제한 조치 우려도 곡물 가격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석유, 철강 등 대부분 원자재는 가격이 급등하거나, 수급이 불안해지면 수출 제한 조치가 내려진다. 곡물은 그 정도가 더 심해 자국 내 소비가 조금이라도 차질을 빚을 조짐을 보이면 곧바로 수출 제한에 들어간다. 그만큼 제한이 빈번하게 내려지고 영향력도 크다. 실제로 2006년에 미국, 중국, 러시아, 아르헨티나, 우크라이나 등이 다양한 농산물에 수출 금지 조치를 취한 사례가 있다. 코로나19 발생 이후에도 비슷한 조치가 시행돼 그 영향으로 곡물 가격이 단기에 50% 이상 급등했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사태가 더해졌다. 국제사회의 비난에 직면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러시아를 적대시하는 국가들에 대해 식량 수출을 계속할지 말지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러시아의 힘을 보여주겠다는 의도다. 2010년에 가뭄으로 식량 공급이 좋지 않았을 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곡물 수출을 제한한 적이 있다. 그해 8월 한 달 동안 국제 밀 가격이 54%, 대두와 옥수수 가격이 10%와 23% 급등했다. 이런 경험 때문에 세계는 최근 러시아의 행보를 불안하게 바라보고 있다.
식량의 무기화 시도도 부담이 된다. 식량을 무기화하려는 시도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2009년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과 함께 ‘흑해 곡물 블록’을 만들려 했던 게 대표적인 사례로 곡물 시장에서 석유수출국기구(OPEC) 같은 역할을 하겠다는 의도였다. 곡물 수출을 담당하는 러시아 국영 곡물회사 설립도 계획했었다. 국영석유회사 가스프롬 같이 곡물 수출의 40~50%를 담당하는 기구를 만들어 국제 곡물 시장의 공급을 쥐락펴락하겠다는 생각이었다. 대부분 시도가 미국의 견제에 막혀 무산됐지만, 식량 무기화는 언제든지 제기될 수 있는 문제가 됐고, 우크라이나 사태로 그 가능성이 더 커졌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올해 흑해 지역의 밀과 옥수수 수출량이 각각 700만t과 600만t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올해 봄 작물 생산량과 하계작물 재배 면적이 각각 30%씩 감소하기 때문이다. 그 영향으로 내년까지 국제 밀과 옥수수 가격이 10~20% 추가 상승할 가능성이 있으며,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그 추세가 더 강해질 거로 보인다.
농업은 대표적인 수요 비탄력 산업이다. 농지가 한정돼 있어서 수요가 늘어도 빠르게 대처하기 힘들다. 한번 파종하면 반년 이상이 지나야 생산물을 얻을 수 있는 점도 다른 산업이 가지고 있지 않은 약점이다. 그래서 곡물 가격이 한번 오르면 제자리로 돌아올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과거 경험으로 보면 최소 2년, 길면 3년까지 높은 가격이 유지됐었다. 이를 현재 시장에 적용하면 내년이나 내후년이 돼야 국제 곡물 가격이 안정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곡물 가격 상승으로 사료 관련주 급등
국제 곡물 가격 상승은 주가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준다. 직접적인 영향은 비료와 사료 관련주, 그리고 음식료 업종에서 주로 나타난다. 국제적으로 비료가 품귀현상을 보임에 따라 관련 기업의 주가가 급등했다. 제품 가격 상승만큼 수익성이 개선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는 움직임이다. 문제는 상승 정도인데, 연일 상한가를 기록하는 건 맞지 않는다.
시장이 정체에 빠질수록 호재를 가지고 있는 소수 종목에 대한 쏠림 현상이 심해진다. 4월 초 코스피지수가 하락하는 와중에 조선주가 두드리진 상승을 기록한 게 그 사례다. 비료와 사료 관련주 상승도 비슷한 형태로 이해할 수 있다. 남다른 호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주가가 급등한 건데 시장에서 인기가 식으면 주가의 방향이 바뀔 수 있다.
식료품은 원자재 가격 상승 때문에 피해를 볼 수 있는 업종이다. 최근에 곡물 가격 상승에 원화 약세가 겹치고 있기 때문에 피해 정도가 더 심해질 수 있다. 제품가격을 올리면 원자재 가격 상승 부담의 상당 부분을 소비자에게 떠넘길 수 있지만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있는 회사가 많지 않다. 식료품 업종은 악재의 한복판에 처해있는 만큼 투자를 피하는 게 좋다.
간접적인 영향은 인플레이션 때문에 발생한다. 국제 곡물 가격 상승은 식료품 가격 상승을 통해 삶에 영향을 준다. 다른 어떤 상품보다 인플레이션을 쉽게 체감할 수 있는 구도여서 곡물 가격 상승이 물가 상승을 초래하는 애그플레이션(agflation)으로 연결될 수 있다. 금융위기 직전에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가뭄으로 인한 작황 부진에 신흥국의 수요 증가가 겹치면서 곡물 가격이 상승해 선진국이 3% 넘는 인플레이션에 시달렸다.
지금 전 세계는 인플레이션에 직면해 있다. 3월 미국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이 8.5%까지 상승했다. 1980년대 초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우리나라 소비자물가도 3%를 넘어 4%를 넘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곡물 가격 상승은 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며, 중앙은행의 긴축을 강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것이다. 2월 주가 하락으로 시장에서는 긴축 영향의 상당 부분이 주가에 반영됐다고 얘기되고 있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0.75%포인트 금리 인상을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 후 주가가 급락했다. 여전히 긴축은 두려운 존재인 것이다. 곡물 가격이 상승하고 8개월 정도 지나면 식료품 가격이 오르는 게 일반적이다. 코로나19 발생 직후 곡물 가격 상승이 시작됐으니까 이제는 곡물 가격 상승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본격화될 때가 됐다.
※필자는 경제 및 주식시장 전문 칼럼니스트로, 오랜 기간 증권사 리서치센터에서 해당 분석 업무를 담당했다. 자본시장이 모두에게 유익한 곳이 될 수 있도록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기본에 충실한 주식투자의 원칙] 등 주식분석 기본서를 썼다.
이종우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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