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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정부의 과학기술 리더십, MB 정부 닮아간다

MB 국가과기위 장관급 위원장 뒀지만…R&D예산 기획·편성 기재부 주도
윤 정부 ‘과학기술혁신위원회’…정책조정, 예산편성 기능 분리하면 성공 어려워

 
 
지난 2월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가 강남구 역삼동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과학기술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새 정부 과학기술 리더십이 MB정부를 닮아가고 있다. 인수위에서 나온 구상을 모아 보면, MB정부의 국가과학기술위원회와 윤곽이 다르지 않다.
 
인수위는 3일 ‘국가 과학기술 시스템 재설계’를 국정과제 중 하나로 정하고, 그 아래 실천과제로 ‘민관 과학기술혁신위원회’(이하 위원회)를 담았다.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약으로 밝혔던 ‘대통령 직속 위원회’를 반영한 것이다.
 
위원회는 부처별 과학기술정책을 조정하는 역할을 맡는다. 각 부처에서 낸 연구개발 계획서를 모아 다음 해 정부 연구개발 투자 방향을 정한다. 그다음 부처에서 예산요구서를 내면, 부처별 사업이 겹치지 않도록 예산 배분·조정안을 낸다. 기획재정부는 위원회가 낸 조정안을 갖고 예산안을 확정한다.
 
문재인정부에선 이런 조정 역할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아래 있는 과학기술혁신본부에서 맡았다. 하지만 과학기술계에선 조정이 원활하지 못하단 지적이 많았다. 본부장이 차관급인 데다, 역시 정책을 내고 예산을 받아야 하는 과기부가 직접 심판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타 부처의 반발을 사기 쉬웠다.
 

과학기술혁신위원회 힘 받으려면 대통령 과학기술수석비서관 필요  

조정 기능을 대통령 직속에 두면 이런 지적을 피해 갈 수 있다. 특정 부처 아래 소속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MB정부가 처음으로 조정 기능을 청와대로 가져온 건 이런 이유에서였다. 인수위가 국정과제에서 위원회 설치를 통해 ‘부처 협업·조정 강화’를 기대하는 건 이런 배경에서다.
 
하지만 위원회는 대통령 관심 없인 속 빈 강정에 그친다. 위원장이 장·차관 급이라도 실제 권한은 부처에 비해 많지 않기 때문이다. 현행법에서 예산을 요구·편성하고 집행하는 권한은 각 부처에만 있다. 문재인정부에서 선수가 심판으로 뛴다는 비판에도 조정 기능을 과기부 산하에 둔 건 이 때문이다.
 
과학기술계에선 위원회가 힘을 받기 위해서라도 대통령 과학기술수석비서관이 필요하다고 요구해왔다. 수석보좌관회의 등에서 대통령에게 직접 정책을 조언할 수 있는 데다, 편제에 따라선 과학기술수석이 위원회 총괄 간사 역할을 맡을 수도 있다. MB정부 당시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그랬다. 그러나 지난 1일 나온 대통령실 직제에서 과학기술수석은 없었다.
 
여지는 남겼다.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은 1일 직제를 발표하면서 “과학기술 수석 필요성을 인정한다”며 “과학기술수석이 필요하다는 국민 요구가 많아지면 수석 신설을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수위 측 관계자는 “2~3개월 후 추가 인선을 낼 때 과학기술수석을 적극 검토할 것”이라고도 했다.
 
지난달 호소문을 내고 과학기술수석 신설을 강력하게 건의해온 이우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장은 “6·1지방선거 이후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밖에 위원회에 민간 참여를 대폭 늘리는 방안도 MB정부 때 시도했던 것이다. 당시 MB정부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산하에 분야별로 5개 전문위원회를 두고 소속 위원 전원인 80명을 민간 전문가로 채웠다.  
 
이번 위원회도 구성은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안두현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분야별로 소위원회를 만들고 민간기업 최고기술책임자(CTO)를 소위원장 등으로 두는 것이 취지에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1년 4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 종로구 신문로 에스타워에서 열린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첫 회의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MB정부의 교훈, 기재부에 답이 있다

관건은 MB정부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의 결말이다. 조정 기능은 기대에 못 미쳤고, 위원회는 다음 정부에서 다시 미래창조과학부 아래 과학기술혁신본부로 돌아갔다. 한 과학기술계 관계자는 “정책목표 수립부터 예산편성까지, 정책결정 과정의 시작과 끝에 기획재정부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라며 “연구개발에 한해서라도 권한을 넘겨받지 않는 한 실패는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서 다음 해 정부 연구개발 투자 방향을 정할 때 기재부에서 만든 5년 단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바탕으로 했다. 또 위원회에서 예산 배분·조정안을 의결했어도 기재부에서 번복할 수 있다. 시행령으로 정한 주요 연구개발 사업을 제외하면 위원회에서 검토할 수도 없다. MB정부 연간 연구개발 예산에서 주요 사업비 비중은 66% 수준이었다.  
 
앞선 관계자는 정책조정과 예산편성 기능을 분리하는 것이 역대 정부에서 실패를 반복하는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미국은 백악관 산하에 과학기술위원회 격인 과학기술정책국(OSTP)과 함께 예산관리국(OMB)을 두고 있다. 두 기관이 협의해 연구개발 예산까지 편성한다. 이 관계자는 “갑작스러운 개편이 어렵다면 기재부 밑에 과학기술혁신본부를 두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방식으론 위원회가 권한은 없으면서 문제가 생기면 비난을 뒤집어쓸 것”이라며 “권한과 책임이 일치하지 않는 상황이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문상덕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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