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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는 무너졌는데 웹 3.0은 괜찮나요?’ 테라 사태에서 배워야 할 것들

[벼랑 끝 웹 3.0 ①] 테라 보유 비트코인 8만여 개, 사측 임의로 처분
거래내역 투명성 핵심인 블록체인 역할에 의구심 나와
반복되는 업계 거짓말에 美 당국 규제 강화 나서
“웹 3.0 언젠간 오지만…주도권 예전만 못할 것”

 
 
한국산 코인 루나와 테라USD(UST) 폭락으로 전 세계 암호화폐 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비트코인은 9개월여 만에 4000만원 아래로 떨어졌다. [연합뉴스]
하룻밤 새 코인판이 뒤집혔다. 루나 가격은 99% 떨어졌고, ‘한국의 머스크’라던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는 경찰에 신변 보호를 받는 신세가 됐다.  
 
문제는 가격 폭락에서 그치지 않는다. 권 대표가 테라 프로젝트와 함께 들고 나왔던 비전인 ‘탈중앙화 경제’도 함께 위기에 처했다. 권 대표와 몇몇 투자자만 알고 진행했던 일들이 드러나고 있어서다. 정작 중요한 의사결정은 일반 투자자가 모르는 새 이뤄졌다. 일부 투자사는 이런 문제를 인지하고도 테라를 “이더리움 다음으로 혁신적인 금융 생태계”라며 칭송하기 바빴다.  
 
탈중앙화란 중앙 통제기관 없이도 개인 간 금융거래나 빠른 의사결정을 가능케 하는 인터넷 가치를 말한다. 모든 사람이 거래 내역을 확인할 수 있는 디지털 장부(블록체인)를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더리움 공동 창시자인 개빈 우드는 탈중앙화 인터넷을 ‘웹 3.0’으로 이름 짓기도 했다.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 [사진 야후파이낸스]

폰지로 전락한 ‘탈중앙화 금융 서비스’

탈중화 경제가 의구심을 사는 이유는 테라폼랩스가 갖고 있던 비트코인의 행방을 투자자가 전혀 몰랐던 것이다. 사측은 유사시 테라USD(UST) 가격을 방어하겠단 명목으로 지난 3월부터 비트코인을 사들였다. 유사시 비트코인을 팔고 UST를 사서 가격을 끌어올리겠단 것이다. 권 대표는 당시 “3분기까지 100억 달러(12조6750억원)어치를 사들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달 초까지 확보한 물량은 약 35억 달러어치였다.
 
그런데 정작 사태가 터지자 비트코인의 행방은 묘연해졌다. 블룸버그는 15일(현지시간) “비트코인이 들어있던 사측의 전자지갑이 지난 10일 비워졌다”며 “암호화폐 거래소 계좌로 이체됐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거래소 계좌에서 비트코인을 팔았는지, 다른 지갑으로 옮겼는지 추적할 수 없다”며 “이들이 비트코인을 어디에 썼는지는 미스터리”라고 지적했다.
 
사측은 뒤늦게 사용내역을 밝혔다. 16일 트위터를 통해 “지난 8일 (비트코인) 5만2189개를 팔았고, 12일에도 3만3206개를 매각했지만, 소용이 없었다”며 “남은 가상화폐는 피해자 보상에 활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진짜 탈중앙화 금융 생태계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일반 투자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의 장부(블록체인)에 코인 거래내역이 남기 때문이다. 권 대표는 테라 블록체인 바깥에서 비트코인을 사고팔면서 불신을 자초했다. 가격 방어가 어려워지자 남은 자산을 빼돌린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돌았다. 한 블록체인업계 관계자는 “자금 추적이 가능한 기존 금융 시스템에서 벌어진 일이었다면 다들 권 대표의 입만 바라보진 않아도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속 가능성을 검증받지 못한 서비스가 최근까지 ‘혁신의 상징’처럼 여겨져 온 것도 탈중앙화 경제의 한계를 보여준단 지적이 나온다. 금융위원회 등이 규율하는 시장이었다면 허가받지 못했을 상품이 버젓이 유통됐단 것이다.
 
UST를 예치(스테이킹)하면 연 20% 이자를 확정보장한다던 상품(‘앵커 프로토콜’)이 그랬다. 투자자가 지닌 UST를 예치하거나 이더리움·루나를 담보로 UST를 예치하면 이자를 받을 수 있다. 투자자 사이에선 다른 코인 가격이 크게 흔들릴 때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투자처로 여겨졌다. 사측으로선 UST 수요를 늘릴 수 있어 이득이었다.
 
명분도 있었다. 예·적금으로 대표되는 시중은행의 금융 서비스를 탈중앙화 생태계에서도 누릴 수 있게 하겠단 것이었다. 업계에선 ‘탈중앙화 금융(디파이) 서비스’라고 부른다. 테라폼랩스에 초기 투자했던 블록체인 투자기업 해시드의 김서준 대표는 앵커 프로토콜을 두고 “테라가 이더리움 다음으로 혁신적인 디파이 생태계를 만들며 빛의 속도로 진화 중”이라고 추켜 세웠다.
 
그러나 앵커 프로토콜은 지속 가능하지 않았다. 예치 이자를 받으려는 수요가 대출 수요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테라는 준비금을 헐어 이자를 지급해야 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부터 지난 2월까지 약 2개월 만에 사측의 준비금은 7000만 달러에서 650만 달러로 빠르게 줄었다. 준비금만으로도 이자 지급이 어려우니, 결국 새 예치금을 받아야 이자를 지급할 수 있는 구조가 됐다. ‘폰지(다단계)’ 사기와 다를 바 없단 지적이 여기서 나왔다.
 
앞선 관계자는 “루나를 산 다음, 담보로 잡고 UST를 예치하면 이자 수익을 얻으면서 루나 가격이 오르면 차익도 기대할 수 있는 구조”라며 “결국 루나 가격 부양이 본래 목적 아니었는지 의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영국 파운드, 미국 달러, 유로 등 각국 화폐. 코인 업체가 투자자를 기만하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안팎의 시선이 차가워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성숙한 업계, 중앙기관 개입 자초해

이렇게 개발사가 약속했던 내용이 사실과 다른 일은 테라 사태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UST처럼 개당 가격을 1달러에 고정하는 코인(스테이블 코인)인 테더(Tether)도 시장의 의심을 받아왔다. 테더는 발행하는 코인(USDT)만큼 법정통화인 달러를 예치해 가치를 보장하는데, 실제론 예치한 달러보다 많은 양의 코인을 발행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의심은 사실로 드러났다. 테더를 조사한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에 따르면, 2017년 6월부터 9월까지 USDT 준비금은 6160만 달러였다. 하지만 당시 시장에는 4억4200만 달러어치 USDT가 유통되고 있었다. 예치한 달러 규모가 유통되는 코인의 7분의 1에 그쳤던 것이다. 테더는 지난해 10월 준비금 규모를 속인 것과 관련해 투자자들에게 4100만 달러를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UST·루나 같은 폭락은 없었지만, 얼마든지 가능했던 셈이다.  
 
비슷한 사례가 이어지자 미국 금융당국도 코인 규제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게리 겐슬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은 16일(현지시간) 금융산업규제국 연례회의에 참석해 “암호화폐는 매우 투기적”이라며 “투자자들은 더 많은 보호를 받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겐슬러 위원장은  특히 코인이 다른 자산과 달리 공시가 충분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겐슬러 위원장은 “일반 투자자들이 자신이 감수할 리스크를 선택할 수 있고, 완전하고 공정한 공시가 있어야 하며, 투자자에게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기본 가정”이라고 말했다.  
 
국내 당국의 움직임은 강도가 더 세다. 금융위원회를 담당 부처로 둔 국회 정무위원회에선 올 하반기 테라 사태 관련 청문회를 열고 권 대표와 가상자산 거래소 관계자를 증인으로 부르자는 의견이 나왔다. 정무위 소속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위원장과 다른 의원들도 찬성하는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또 검찰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은 첫 수사 대상으로 테라 사태를 지목했다. 결국 시장의 미성숙함 탓에 중앙의 개입을 자초한 셈이다.
 
물론 앞으로도 웹 3.0 트렌드가 사라지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다양한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기 때문이다. 탈중앙화 애플리케이션을 뜻하는 ‘디앱’을 통해서 보통 제공되는데, 지난 2월 기준으로 3925개 서비스가 등록돼 있다. 최근 3년간 359% 늘었다. 금융(562개)과 소셜(411개), 게임(673개) 분야가 전체의 41%를 차지했다.  
 
다만 주도권은 일정 부분 정부와 기존 기업에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시스템 보안을 강화할 목적으로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하거나 중앙은행이 직접 블록체인을 바탕으로 한 전자화폐(CDBC)를 발행하는 식이다. 박주영 포스코기술투자 심사역은 “코인 시장이 주춤하면 블록체인 기업의 성장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면서도 “다만 (대기업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보안이나 유통, 은행 시스템 등에 접목하는 시도는 활발하게 이어질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문상덕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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