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큼성큼’ 걷는 美 연준…불붙은 기준금리 인상 경쟁 [슬로플레이션 공포②]
올해 4번 남은 한은 금통위…쉬지 않고 금리 올릴 수도
美 연준은 ‘자이언트 스텝’ 결정
이자 더미 깔린 서민들 희생 속 ‘물가 정상화’ 추진
‘고금리 시대’의 막이 열렸다. 여지없이 고점을 깨고 오르는 물가를 잡기 위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자이언트 스텝(한 번에 0.75%포인트 인상)을 밟았고, 전 세계 중앙은행들도 금리 인상 속도를 높이고 있다. 한국은행은 ‘인플레이션 파이터’를 자처하고 나섰다. 물가를 이대로 놔두다간 취약계층의 실질소득 감소와 저성장·양극화 심화가 우려된다는 게 한은의 입장이다.
“한은 기준금리, 연말 2.75%도 합리적이다“
한은은 이에 그치지 않고 올해 남은 4번의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연속적인 금리 인상도 예고했다. 나머지 모든 금통위에서 기준금리 인상을 발표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박종석 한국은행 부총재보는 지난 9일 ‘2022년 6월 통화정책보고서’ 설명회에서 기준금리가 연말 2.50~2.75% 수준까지 오를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 “지금 형성돼 있는 기준금리 기대가 합리적”이라고 평가했다. 빅스텝은 배제할 수 없지만 베이비스텝(0.25%포인트 인상)이 적절하다고도 말했다.
한은의 현 기준금리는 1.75%다. 0.25%포인트씩 올려 2.75%까지 가려면 연말까지 모든 금통위에서 금리를 다 올려야 가능하다. 이번 발언은 5월 26일 이창용 한은 총재가 금통위 정례회의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연말에는 기준금리가 연 2.25∼2.50%에 달할 것이라는 시장의 전망이 “합리적”이라고 말한 것에 이어 나온 발언이다.
한은의 발언 수위가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이 되는 이유는 물가 상승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총재는 5월 기준금리 인상 이유에 대해서 “(경기보다) 물가 위험이 더 크다고 판단한다”며 “현재 상황에서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보다는 물가 상방 압력을 걱정해야 한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또 그는 6월 10일 한은 창립 72주년 기념사에서 더 강경한 발언으로 “자칫 시기를 놓쳐 인플레이션이 확산되면 그 피해는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며 “‘인플레이션 파이터’로서의 중앙은행 본연의 역할이 다시 중요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 총재는 지금까지 미국 등의 통화정책보다는 우선적으로 국내 물가와 경기 상황에 따라 금리를 조정해야 한다고 밝혀왔지만, 최근엔 다른 국가의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정책과도 비교하기 시작했다. 그는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정상화 속도와 강도를 높여가고 있는 현시점에서는 더 이상 우리가 선제적으로 완화 정도를 조정해 나가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다른 나라의 금리 인상 속도에 한은도 맞추겠다는 설명과도 맞닿은 부분이다.
美 연준의 자이언트 스텝, 불가능하지 않은 이유
미 연준은 15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마친 뒤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한다고 밝혔다. 이번 연준의 자이언트 스텝 결정은 1994년 11월 이후 처음이다. 연준은 5월 4일에도 FOMC 정례회의를 마친 뒤 0.25∼0.5%인 기준금리를 0.75~1.0% 수준으로 한 번에 0.5%포인트 인상한 바 있다. 당시 빅스텝도 2000년 이후 22년 만의 일이었다.
시장에서는 6월만 아니라 7월에도 자이언트 스텝이 나올 것으로 전망한다. 이번 FOMC 위원들의 금리 전망을 보여주는 지표인 점도표(dot plot)에 따르면 올해 말 금리 수준은 3.4%로 전망됐다.
연준이 강력한 금리 정책을 내놓는 이유 역시 물가 상승 때문이다. 미국의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8.6% 상승했다. 이는 1981년 12월(8.9%) 이후 41년 5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미국의 소비자들이 예상하는 향후 1년 간 인플레이션 기대치는 6.6%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물가가 잡히지 않으면서 연준이 빅스텝에 그치지 않고 자이언트 스텝 처방을 내놓은 상황이다.
미 연준과 마찬가지로 다른 국가들도 발빠르게 금리를 올리고 있다. 캐나다 중앙은행인 캐나다은행은 6월 1일(현지시간) 4월에 이어 두 번째 빅스텝을 단행했고, 뉴질랜드 중앙은행(RBNZ)도 5월 25일 마찬가지로 두 번째 빅스텝을 결정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7월에 가서 11년 만에 기준금리를 인상하겠다고 밝혔고, 9월 추가 인상도 시사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리 조절에는 조심스러워 할 때와 적당히 과감해야 할 때가 있다”며 “미국 연준도 기준금리를 조금씩 올리면 고물가가 해결이 안 된다는 인식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그는 “시장에 빅스텝이 없다는 신호를 주는 것은 한은의 입지를 악화시킬 수 있고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안 된다”며 “한은이 시장과 충분히 소통해서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서민들 ‘이자’ 부담 증폭
부채 총액만 아니라 국가 경제 규모를 고려한 가계 빚 비중도 세계 36개 주요국(유로 지역은 단일 통계) 가운데 가장 높았다. 6월 6일 국제금융협회(IIF)가 내놓은 세계부채(Global Debt)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으로 세계 36개 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한국이 104.3%로 가장 높았다. 홍콩(95.3%), 영국(83.9%), 미국(76.1%), 일본(59.7%), 유로 지역(59.6%) 등과 비교해 월등히 높았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가 상승하며 이자 부담도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이 5월 31일 발표한 ‘2022년 4월 금융기관 가중평균 금리(잠정)’ 자료에 따르면 4월 예금은행의 신규취급액 기준 가계대출 금리는 연 4.05%를 기록하며 8년 1개월 만에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고정형 금리는 5월 말 최고 6.39%를 기록하며 고공행진 중이다.
이 총재는 지난 26일 금융통화위원회 정례회의 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오를 때마다 가계 부담이 3조원, 기업 부담은 2조700억원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이 국내외 금융·경제 전문가 8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올해 상반기 금융시스템의 가장 큰 위험 요인으로 ‘가계의 높은 부채 수준’을 꼽은 비중(복수선택)이 43.8%로 가장 많았다.
양 교수는 “가계 취약차주가 늘어나고 자영업자 대출과 다중채무자 비중도 높아졌기 때문에 생계형 취약계층에 대한 관리와 대응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이용우 기자 ywle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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