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크셰이크 이론 유효한가’ 세계 경제 멱살 잡은 달러 강세 [조원경 글로벌 인사이드]
미국 시장 위기 처해도 달러 선호
코로나19 대유행 후 달러 집중화
피해는 경제 취약한 신흥국 부담
금융위기도 아닌데 환율이 1달러 당 1300원선을 넘나들고 있다. 달러가 주요 통화에 대해 강세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주식 시장도 크게 하락했고 변동성은 여전하다. 모든 통화에 대하여 달러가 강세이니 우리나라 통화만의 문제라고 치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로버트 트리핀(Robert Triffin) 교수의 이름을 딴 ‘트리핀의 딜레마(Triffin’s Dilemma)’는 지금도 유효한가 보다. 금본위제가 폐지된 후 달러가 기축통화로서의 역할을 한 지도 오래다. 기축통화는 신뢰할 수 있고 공급도 충분해야 하는데 현실에서 이 두 가지 목표는 상충한다.
예를 들어 미국이 무역적자를 내야만 기축통화인 달러가 충분히 공급된다. 그런데 미국이 지속적으로 무역적자를 내면 미국 경제에 대한 회의감이 커지면서 달러에 대한 신뢰가 깨지고 기축통화의 지위가 흔들린다.
반대로 미국이 무역흑자를 낸다면 다른 나라들이 무역적자에 대한 부담을 져야 하고, 세계 경제는 달러 부족으로 자금이 돌지 않게 되어 불황이 될 수 있다. 이 딜레마가 심화되면 위기의 요인이 될 수 있다. 거시경제학에 ‘삼위일체 불가능 이론(Impossible Trinity)’이라는 것이 있다. 이론적으로 어떤 나라에서도 자유로운 자본 이동, 고정 환율제(환율 안정성), 독립적인 금융 정책, 이 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들 사이에는 갈등 관계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자유로운 자본 이동이 보장된 상황에서 독립적으로 금리를 올려보자. 그러면 금리 인상으로 자본이 유입되면서 환율이 절상되고 환율 안정성이 훼손된다. 자국 환율의 안정성 유지를 원한다면 자본 통제(Capital Control) 정책을 써야 하는데 이는 국제통화기금(IMF)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추구하는 자유로운 자본 이동의 목표를 훼손한다.
통상 자본 통제는 한 나라의 정부가 자본 계정을 통해 자본의 유·출입을 규제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조치다. 이에 비해 IMF는 자본 유·출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고안된 모든 조치를 자본 유출입 관리 조치(Capital flow management measures; CFMs)로 정의한다.
미국 고강도 금리 인상에 신흥국 자본 유출 우려
역사는 재현되는가. 코로나19로 늘어난 유동성을 흡수하기 위해 미국은 2022년 베이비스텝, 빅스텝, 자이언트 스텝을 차례로 단행했다. IMF는 미국의 금리 인상은 결국 환율의 흐름과 연동되기 때문에 신흥국은 자본 유출과 하락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왜 끊임없이 달러를 찍어내는데 달러 가치가 상승할까?
미국의 투자가인 브렌트 존슨(Brent Johnson)은 연준이 금리를 인상할 경우 달러화 가치가 상승하고, 달러 강세는 전 세계의 투자 자금을 미국으로 빨아들일 것이라 예상한다. 그 동안 미 연준은 유동성이라는 밀크셰이크를 과도하게 공급했다.
이제 인플레이션이란 괴물 앞에서 미국 연방준비위원회가 큰 빨대를 꽂아 밀크셰이크를 흡수하고자 한다. 연준이 금리를 인하하고 양적완화(QE)를 시행하면 신선한 우유가 밀크셰이크 병에 주입된다. 그 결과 글로벌 유동성이 이머징 마켓과 고위험 채권 그리고 주식시장으로 몰려간다.
미국 긴축 정책에 세계 경제 흐름에 먹구름
달러 강세가 계속된다고 생각해 보자. 우선, 전 세계 달러 기반의 부채총액을 감안할 때 이에 대한 이자만을 지불하기 위해 필요한 부담은 그만큼 늘어난다. 나아가 여전히 달러는 전세계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유로·엔·위안화 등을 모두 합쳐도 달러의 3분의 1도 안될 정도이다.
이 와중에 미국 국채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높다. 미국 국채의 이자율이 지속 상승하면 그 매력은 더욱 증가할 수 있다. 미국이 전 세계 자본에 빨대를 꽂아 흡수한다고 하니 섬뜩한 생각이 든다. 미 달러화는 세계의 기축통화다. 미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은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완화적 통화정책을 실시한 준 기축통화국의 화폐보다 미 달러화가 그나마 제일 덜 더러운 셔츠라고 세계가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그 셔츠를 입고자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달러화의 위상은 점점 약해지고 있지만 세계 각국의 외환보유고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도 60%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세계 무역에서 달러화의 비중은 점점 줄어들고 있으나 여전이 약 40-45%를 차지한다. 채권시장에서도 전체의 60%다. 이래저래 달러 밀크셰이크의 주입과 흡입에 세상은 흔들리고 있다. 미국 주식시장이 좋을 때 달러 밀크셰이크 이론이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지금 미국 시장이 흔들리는데도 달러 밀크셰이크 이론이 여전히 유효한 것은 믿을 건 달러뿐이라는 안전자산 선호 심리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 불이 난 곳은 미국이었다. 이후 희생은 구조조정에 더딘 신흥국의 몫이었다. 이번 팬데믹 이후는 어떤가? 가끔 억울해서 미국의 특권은 영원할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
※ 필자는 울산과학기술원(UNIST) 산학협력특임교수다. 국제경제 전문가로 대한민국 OECD정책센터 조세본부장, 기획재정부 대외경제협력관·국제금융심의관, 울산 경제부시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 [앞으로 10년 빅테크 수업] [넥스트 그린 레볼루션] [한 권으로 읽는 디지털 혁명 4.0] [식탁 위의 경제학자들] [명작의 경제] [법정에 선 경제학자들] 등이 있다.
조원경 울산과학기술원(UNIST) 산학협력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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