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붕괴 작전과 러시아 제재의 닮은꼴과 차이점 [조원경 글로벌 인사이드]
과거 소련 경제 제재 수단들
오늘날 압박 효과 발휘 못해
러-우크라 평화 해법 찾아야
생각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오래 지속되고 있다. 세월을 거슬러 레이건 정부가 어떻게 소련경제를 파탄으로 몰고갔는지를 생각해 본다. 첨단기술의 수출 통제, 국제유가 하락 유도와 함께 ‘별들의 전쟁(Star Wars)’으로 불리는 군비경쟁 촉발이 우선 생각난다. 레이건 행정부의 대 소련 정책과 바이든 행정부의 대 러시아 정책은 닮았다. 바이든은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후 석유 증산을 유도하지 못했다. 미국이 과거 소련을 어떻게 파멸로 이끌었을까?
우선, 별들의 전쟁이다. 1983년 3월 적의 전략탄도미사일이 미국 영토에 닿기 전에 우주에서 포착해 요격하는 전략방위구상 (SDI: Strategic Defense Initiative)인 별들의 전쟁(Star Wars)을 발표한다. 미국과 맞선 미사일 방어기술을 개발하고 배치하려면 소련의 경제력과 과학기술을 집중해야 하는데, 그러다가 국가 재정이 망가지고 다른 부문의 무기개발에 들어갈 돈까지 전용해야 했다. 미국의 당대 기술로는 완벽한 핵미사일 방어망을 만든다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으나 레이건은 계획을 밀어 붙였다. 당시 레이건이 마가렛 대처 총리에게 한 말을 들어 보자.
“우리가 계획을 밀고 나간다면 소련경제에 큰 압박을 가하게 될 것이다. 소련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 인민들의 생활수준을 희생시키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결국 소련은 미국의 도전에 굴복하고 말 것이다. 군비경쟁을 포기할 것이다. 결국 미국에 대한 소련의 군사적 우위를 포기하는 것이다.”
문득 이 대목에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토마스 쉘링의 조언이 생각난다. 그는 동등하지 않은 군비상황은 오히려 전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위험으로 몰아갈 수 있다고 보았다. 쉘링에 따르면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고, 그 강도는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 레이건은 쉘링의 이론을 잘 간파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과거엔 석유·가스 수출 막아 소련 자금줄 차단했는데
대통령이 된 레이건은 소련 힘의 원천이 고유가라는 것을 간파하였다. 서구 자유진영 국가들과 연대해 소련의 석유와 천연가스 수입을 줄여 나갔다. 서방 국가들의 불편을 없애기 위해 노르웨이의 북해산 유전을 활용하는 대안도 마련했다. 친(親) 미국 성향의 사우디아라비아를 부추겨 대대적인 석유 증산에 나서게 만들었다.
미국이 중부군을 주둔시키고 우방국에도 절대 팔지 않는 최신예 F-15 C/D 기종의 전투기를 공급하면서까지 얻어낸 카드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유 생산을 최대한 늘린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40달러하던 유가는 1980년대 중반 18달러까지 떨어졌다. 저유가로 그전까지 1·2차 오일쇼크로 막대한 달러를 벌어들였던 최대의 산유국이자 석유수출국인 소련의 돈줄을 말려버렸다.
소련 붕괴의 시작점은 1985년 9월 13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석유정책을 급선회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6개월간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 생산량은 네 배 증가했고, 석유 가격은 4분의 1로 폭락했다. 소련은 연간 약 200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셋째,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군의 공격용 헬기를 백발백중 격추시켜 철군을 유도한다. 레이건은 아프가니스탄 게릴라들에게 스팅어 미사일을 제공, 소련군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고르바초프는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 12만 명의 소련군대를 철수함으로써 소련 붕괴의 단초를 연다. 소련군은 아프가니스탄 전선에서 1만6000명이 전사하였고, 3만 명이 부상했다.
지금은 무역지위 박탈 기술 고립에도 제재 효과 미비
올해 미국 등 주요 7개국(G7) 정상들은 공동성명을 통해 러시아를 SWIFT에서 배제했다. 6개 주요 러시아 은행에 대한 미국 내 자산을 동결했고, 주요 동맹국과 ‘러시아와의 항구적 정상 무역관계(PNTR, Permanent Normal Trade Relations) 지위 중단’ 절차에 착수했다. PNTR은 미국이 정상적인 무역 관계를 맺은 외국에 부여하는 법적 지위로서 국제적으로 통칭하는 ‘최혜국’(Most Favored Nation) 대우와 동일하다.
PNTR 지위 박탈로 러시아는 WTO 회원국 일반에 허용하는 관세 혜택과 비관세 장벽 등 비차별적 대우에서 제외되었다. 5월에는 미 상무부가 러시아의 ‘시장경제 지위’(Market Economy Status) 박탈에 착수했다. 비(非)시장경제국으로 지정되면 미국 상무부는 강화된 무역규제(반덤핑·상계관세)를 적용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서방의 대(對)러시아 경제제재가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국제유가가 높게 유지되는 상황도 지속되고 있다. EU 지역에서 수입을 줄이더라도 인도, 중국 등으로 에너지 수출을 대체할 수 있으며,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가을철로 접어들면서 EU가 에너지난으로 동요할 수 있다. 에너지 제재도 과거 같은 효과는 멀어 보인다.
EU 집행위는 2027년까지 러시아산 원유·가스 수입을 중단할 것을 발표했다. 미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응해 對러시아 수출통제를 강화해 미국과 우방국의 첨단 기술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여 러시아를 기술적으로 고립시켜 군사적 역량을 저하시키려 했다. 2022년 미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2월 수출통제규정을 개정하고 대(對)러시아 수출통제 강화조치를 발표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결말을 아직까지 알기 어렵다. 과거 미국이 소련에 한 것을 러시아에도 적용하려고 하고 있으나 블록화 전략이 일사분란하지 못해 효과가 불분명하다. 언제 우리는 평화를 얻게 될까? 그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 필자는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이자 글로벌산학협력센터장이다. 국제경제 전문가로 대한민국 OECD정책센터 조세본부장, 기획재정부 대외경제협력관·국제금융심의관, 울산 경제부시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 [앞으로 10년 빅테크 수업] [넥스트 그린 레볼루션] [한 권으로 읽는 디지털 혁명 4.0] [식탁 위의 경제학자들] [명작의 경제] [법정에 선 경제학자들] 등이 있다.
조원경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글로벌산학협력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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