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차가 지나던 길, 차가 달리게끔…”
[김홍일의 혁신우혁신⑳ 정규돈 카카오뱅크 CTO]
한국 1등 모바일뱅크 만든 기술 주도한 업계 최초의 기술 임원
개인 역량에 맡긴 자유로운 소통 문화 조성해 페인 포인트 찾아
지루한 업무에도 몰입할 수 있고 기획도 하는 좋은 개발자 돼야
“몇 년 만에 연매출 수백억 신화”, “고졸이 대박집 사장이 되기까지”, “유명 대기업에 수백억 투자받은 비결”, “스타트업, 나처럼 하면 성공한다”…. 창업 관련 기사를 수놓는 미디어의 헤드라인이다. 가시밭길을 밟아온 창업가의 역경 드라마를 소개하고, 앞으로 얼마나 성장할지 장밋빛 전망을 늘어놓는 식이다. 스타트업의 숱한 곡절을 생생하게 목격한 김홍일 케이유니콘인베스트먼트 대표(전 디캠프 센터장)는 창업 시장이 일률적으로만 묘사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창업가의 성공에 손뼉만 치고 끝낼 게 아니라, 그들의 혁신 비법을 우리 사회가 함께 공유하자.” [이코노미스트]가 ‘김홍일의 혁신우혁신’을 연재하는 이유다. 창업 요람의 리더 역할을 하던 VC 대표가 스타트업 CEO를 만나 진중한 질문부터 가볍고 짓궂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침체에 빠진 한국 경제를 살릴 새 성장 동력을 찾을지도 모를 일이라서다. 스무 번째로 만난 경영인은 정규돈 카카오뱅크 최고기술책임자(CTO)였다. 창업가는 아니지만 카카오뱅크의 기술 혁신을 주도하고 금융산업의 변화를 이끌어 낸 혁신 스토리를 들어보기 위해서였다. [편집자]
누적 고객 수 1917만명, MAU(월간활성사용자수) 1542만명, 경제활동인구 침투율 65%. 3년간 매출 증가율 평균 98%, 턴어라운드 달성 기간 1년 반…. 출범 5년 차에 인터넷전문은행 카카오뱅크가 거둔 성과다. 이 회사의 주가와 기업가치를 둘러싼 논란은 현재진행형이지만, 복잡다단한 금융을 간결하게 만든 업적을 폄훼하는 목소리는 적다.
2015년 카카오가 인터넷전문은행을 설립한다고 했을 때완 분위기가 달라졌다. 당시 금융업계는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규제 강도가 높기로 유명한 은행업에 테크기업이 뛰어들면 생존하기 어려울 거란 분석 때문이었다. 영업점 하나 없이 모바일 하나로만 승부를 보는 것도 무모한 도전처럼 보였다. 기존 은행이 쌓아온 현장 영업의 역량을 뛰어넘는 게 가능하겠냐는 비관이었다.
하지만 업계의 전망은 카카오뱅크의 출범과 함께 보기 좋게 빗나갔다. 카카오뱅크 서비스 시작 하루 만에 30만명의 고객이 계좌를 열었고, 출범 13일 차에는 계좌 개설 고객이 200만명을 넘어섰다. 이후로도 ▶26주적금 ▶모임통장 ▶제휴사대출추천서비스 ▶중신용대출 ▶저금통 ▶카카오미니 등 기존 은행의 모바일뱅킹과는 차별화한 상품을 내놓고 흥행에 성공했다.
과거 카카오뱅크를 깔보던 국내 은행도 지금은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하나의 앱 안에서 모든 은행업무가 가능한 카카오뱅크의 ‘슈퍼앱’ 모델을 벤치마킹해 흩어져있던 여러 앱을 하나로 모으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렇듯 카카오뱅크는 “새로운 규칙이 등장했는데, 언제까지 기존 규칙을 고수할 지”를 국내 금융산업에 집요하게 물었다. [이코노미스트]와 김홍일 케이유니콘인베스트먼트 대표가 금융산업의 기술 혁신을 주도하는 정규돈 카카오뱅크 최고기술책임자(CTO)를 판교 카카오뱅크 사무실에서 만났다.
김홍일 케이유니콘인베스트먼트 대표(김홍일 대표) : 여러 금융회사에 몸을 담아봤는데, 카카오뱅크 사무실은 확실히 다르네요. 그 흔한 ‘수트맨’을 찾기 어려워요.
정규돈 카카오뱅크 CTO(정규돈 CTO) : 다른 회사가 어떤 조직문화를 갖고 있는지 속속들이 알진 못해요. 그래도 카카오뱅크의 차별화한 요소가 있다면,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회사가 회의하는 걸 와서 보면 깜짝 놀랄 겁니다. 본인의 의견을 정말 가감 없이 얘기하거든요.
김홍일 대표 : 많은 기업이 자유로운 회의 시간을 강조합니다. 막상 회의를 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던데요.
정규돈 CTO : 개발자 영역에선 정말 그래요. 각자의 기술 역량을 기반으로 재량권을 충분히 부여합니다. 제가 임원이라고 어렵게 대하는 직원도 없어요. 그냥 ‘GD’로 불립니다. GD는 90년대 초에 PC통신 시절에 쓰던 아이디거든요. 직원들 모두 CEO를 두고도 대니얼이라고 부르고요.
김홍일 대표 : 직급을 없애고 호칭을 달리해도 자율적이고 유연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말처럼 쉽진 않습니다. 그만큼 조직문화라는 게 실체가 참 모호한데, 카카오뱅크엔 좋은 문화가 안착했군요.
정규돈 CTO : 조직문화의 본질은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카카오뱅크는 처음부터 기술은행을 목표로 조직했죠. 수십 년간 규제 환경에 놓여있던 금융회사보단 소통에 훨씬 유리한 환경이었을 겁니다. 소비자의 금융 라이프를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를 대하는 마음은 카카오뱅크가 확실히 남달랐습니다.
김홍일 대표 : 골드만삭스의 전임 CEO인 로이드 블랭크페인이 떠오르네요. 그가 2015년에 “골드만삭스는 기술 기업이며, 플랫폼 기업”이라고 주창했죠. 트레이더를 해고하고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빈자리를 채웠습니다.
정규돈 CTO : 카카오뱅크도 마찬가지로 기술기업입니다. 전체 직원의 40%가 기술 관련 인력입니다.
기술로 은행의 얼굴을 바꾼 카카오뱅크
골드만삭스가 고액 자산가를 주요 고객으로 두고 있는 콧대 높은 투자은행이란 점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변화였다. 실리콘밸리에서 유능한 개발자를 속속 영입했고, 지원 부서 역할에 머물던 IT 직원들을 핵심 인력으로 끌어올렸다. 로이드 블랭크페인은 “골드만삭스 IT부문 직원이 페이스북 IT 직원보다 많다”면서 마커스를 통해 개인 온라인 대출 사업에 발을 내딛었다.
당시 월가는 골드만삭스의 변신을 두고 “기술의 발전이 은행의 얼굴을 바꾸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의 금융기업도 이런 흐름에 올라탔다. 산업 간 경계를 허물고 기술기업으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김홍일 대표 : 요샌 모든 금융회사가 테크를 강조하고 있어요. 카카오뱅크가 처음 출범했을 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요.
정규돈 CTO : 격세지감이죠. 그때만 해도 금융업계에 개발자 임원이 없었어요. CTO 대신 최고정보책임자(CIO)가 많았고요.
김홍일 대표 : 카카오뱅크는 출범한지 얼마 안됐는데도 참 많은 국민이 쓰고 있죠. 기술 혁신을 주도한 입장에서 보면 소회가 어떤가요.
정규돈 CTO : 카카오뱅크의 등장 배경엔 스마트폰이 있습니다. 스마트폰은 세상을 뒤흔들었죠. 마차를 끌던 인류가 차를 몰게 된 것 같은 수준의 혁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차가 대중화하면서 기동성이 좋아지면서 활동 반경이 넓어졌고 교통 인프라가 도시 개발을 주도했죠. 지금은 손안에 스마트폰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핵심 디바이스가 됐습니다. 기업도 디지털 인프라가 없인 살아남기 어렵게 됐죠. 카카오뱅크도 기술 기반으로 모바일 세상에서 좀 더 편한 금융을 제공하려고 시작하게 됐습니다.
김홍일 대표 : 디지털 투자는 다른 금융회사도 많이 합니다. 기존의 금융 역량에 디지털 기술을 더하면 금세 카카오뱅크를 압도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정규돈 CTO : 마차에서 차로 이동수단이 변할 때를 한번 볼까요. 마차 산업을 하던 사람이 자동차 산업에 뛰어든 게 아니거든요. 금융의 혁신을 꼭 전통의 회사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죠.
김홍일 대표 : 기술 투자를 늘리는 기존 금융회사와 카카오뱅크는 어떻게 다른 거죠.
정규돈 CTO : 기술 분야에선 개발자가 회사에 어떤 위치에 놓이느냐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카카오뱅크의 조직도를 볼까요. 전반적인 서비스 개발을 담당하는 플랫폼금융기술, 신기술을 연구하는 IC 기술그룹, 보안을 담당하는 신뢰기술그룹으로 나뉩니다. 개발자가 전면에 나와 있죠.
김홍일 대표 : 기존 금융회사는 전산부라고 불렀죠.
정규돈 CTO : 지금은 좀 분위기가 바뀌긴 했지만, 전산은 후방 지원조직에 가깝습니다. 기술 영역을 SI에 아웃소싱하는 경우도 많았고요. 기존 금융권에선 오프라인 영업점이 굉장히 중요한 부서였거든요. 고객과 직접 만나 영업을 할 수 있으니까요. 카카오뱅크도 영업점이 가장 중요한 건 마찬가지에요. 그런데 그 영업점이 모바일 앱이라는 점이 달랐죠.
김홍일 대표 : 시중은행인데 전국의 영업점이 딱 하나 있는 거네요.
정규돈 CTO : 맞습니다. 우리는 이 하나의 영업점에 모든 역량과 정성을 쏟을 수 있죠. 그리고 이 영업점을 만드는 사람이 개발자인거에요.
정규돈 CTO는 윤호영 현 카카오뱅크 대표가 조직한 카카오 모바일뱅크 TF팀의 초기멤버였다. 당시 금융산업을 둘러싼 이해가 낮았던 정 CTO의 시선에선 금융산업의 모든 게 불합리해보였다. 여기선 인터넷을 못 쓰게 하고, 저기선 노트북 같은 무선을 못 쓰게 하고, 이 프로그램을 반드시 깔아야 하는 규제들이 특히 그랬다. 카카오에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구현하던 정규돈 CTO의 입장에선 답답한 게 당연했다. “지금 주변에선 차를 타고 씽씽 달리는데, 사고가 날지도 모르니까 걸어 다니라고 얘기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전통 금융과 IT가 점차 융합하면서 기존에 없던 혁신 서비스가 시장을 변화시키고, 겹겹의 거미줄 규제가 조금씩 사라지자 정규돈 CTO가 받는 질문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불과 몇 년 전엔 금융권 고위 개발자와 만날 때마다 개발과 관련한 하드웨어적인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문화에 대한 질문을 많이 하더라고요. 개발자 환경을 어떻게 구성해야 더 우수한 개발자를 모을 수 있는지 같은 얘기요. 그만큼 기존 금융에도 디지털 전환이 필요한 환경이 늘었고, 우수한 개발자를 회사 전면에 놓으려고 노력하는 거겠죠.”
금융업계에 부는 개발자 채용 바람
개발자가 선망의 직업으로 떠오르면서 조기 코딩 교육 바람까지 불고 있는 개발자 시대가 도래했다. 카카오뱅크의 비즈니스 전략을 기술에 녹여내는 중추 역할을 해온 정규돈 CTO는 이런 시대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김홍일 대표 : 너도나도 개발자를 꿈꾸는 시대입니다. 정규돈 CTO는 국내 최고 모바일뱅크의 톱의 자리에 올랐죠. 정 CTO처럼 좋은 개발자는 어떤 개발자에요.
정규돈 CTO : 개발자는 비즈니스의 IT 요건을 구현하는 사람입니다. 좋은 개발자는 그런 구현을 잘하는 사람이겠죠.
김홍일 대표 : 원론적인 얘기네요. 좋은 개발자가 되려면 뭘 잘해야 해요.
정규돈 CTO : 저는 몰입이라고 생각해요. 머리가 똑똑한 것과는 다른 개념이에요. 오히려 지구력과 집중력에 가깝죠. 굉장히 꼼꼼하고 치밀한 분이 좋은 개발자가 되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개발자는 보이는 것만큼 화려한 직업이 아닙니다. 성공한 개발자는 개인 생활과 업무 시간에 구분이 없을 만큼 몰입하죠.
김홍일 대표 : 아이디어를 코딩으로 현실에 구현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낭만적이고 멋있는 일 아닌가요.
정규돈 CTO : 그런 순간도 있지만, 아닌 순간도 있거든요. 새벽에 전화 받아서 장애나 오류 처리하는 일이 80%는 될 겁니다. 이런 일은 재미없어요. 당장 코딩만 떼놓고 봐도 그래요. 아이들한테 그런 구조를 교육한다고 해도 정말 재미없거든요. 오히려 지루한 몰입 속에서도 즐길 수 있는 성향이 중요한데, 조기 코딩교육이 어릴 때부터 개발자를 어렵게 대하게 되는 계기가 될지도 몰라요.
김홍일 대표 : 그 지루한 몰입을 즐길 수 있는 비결은 뭡니까.
정규돈 CTO : 변화에요. 가량 품이 많이 들어갈 것 같은 변화를 시도해야 할 때, 개발자는 망설이게 되거든요. 만약에 도전했다가 예상과는 다른 결과를 얻게 되면 어떻게 하지. 그럴 때 저는 동료들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1년 뒤에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때를 봐라. 기존에 하던 대로 해서 성공해도 우리가 과연 만족할 수 있을까. 바뀌고 변화하면서 얻는 보람이 지루함을 이기는 원동력인거죠.
김홍일 대표 : 그런 변화가 없이 머물러 있으면 혁신의 대상이 되겠군요. 카카오뱅크도 지금은 금융산업에 변화의 바람을 주도하고 있지만, 더 놀랄 만한 기술과 혁신을 갖춘 기업이 나타나면 반대의 입장이 될지도 모릅니다.
정규돈 CTO : 맞습니다. 기존 금융산업도 라이센스로 보호받고 있었던 터라 변화가 늦었거든요. 인터넷전문은행이 모습을 드러낸 지금은 아니죠. 카카오뱅크도 머물러있다가 혁신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경계할 것입니다.
김다린 기자 quill@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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