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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스권 장세, 내년까지 이어질 수도 [이종우 증시 맥짚기]

수요부진에 반도체 주가 하락, 삼성전자 당분간 5만원대 횡보
2030년엔 2차전지 시장 메모리 반도체 시장보다 커질 듯

 
 
2030년엔 2차전지 시장이 메모리반도체 시장보다 커질 전망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시가총액 1위와 2위 기업의 주가가 엇갈리고 있다. 1위인 삼성전자는 주가가 전저점을 깨고 5만5000원대로 내려왔다, 반면 2위인 LG에너지솔루션은 계속 상승해 50만원을 넘었다. 삼성전자는 코스피가 2300 밑으로 떨어졌던 7월 초와 주가가 비슷했지만, LG에너지솔루션은 그때보다 50% 높아졌다. 
 
두 회사의 주가가 극명하게 갈린 건 업종이 처해있는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지난 2년간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코로나19로 인한 특수를 누려왔다. 정부가 가계에 재난지원금을 지급하자 이 돈의 상당 부분이 전자제품을 비롯한 내구소비재에 사용됐다. 지금은 지원금에 의한 대규모 수요가 끝나서 수요가 뜸해진 상태다. 
 
TV를 한번 사면 최소 5년 이상 사용하기 때문에 중간에 수요가 줄어드는 기간이 있는 걸 생각하면 지금 상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전자제품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면 부품으로 사용되는 반도체의 수요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 영향으로 올해 1분기에 세계 반도체 시장이 공급 초과로 바뀌었고 시간이 갈수록 그 정도가 심해지고 있다.  
 
지난해 4분기 이후 반도체 업황 부진으로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의 재고가 늘었다. 2분기 말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4.8주와 3.7주간 생산할 수 있는 물량을 재고로 가지고 있었는데, 지난해 말 해당 수치는 2.3주에 지나지 않았다. 두 회사의 반도체 재고가 2018년 말과 유사한 수준까지 올라온 건데, 당시는 반도체 호황이 끝나고 불황으로 넘어오던 때여서 D램 가격이 2019년 한 해에만 48%나 떨어질 정도였다.
 

2024년 반도체 경기 회복될 듯 

 
시장에서는 내년 하반기에 이번 반도체 경기 둔화가 끝날 거로 전망하고 있다. 내년 1분기에 반도체 초과 공급이 정점을 지난 후 2~3분기 동안 바닥 다지기를 거쳐 업황이 안정될 거로 기대하고 있다. 2019년 이후 반도체 가격에 큰 변동이 없었다. 코로나19 발생 직후 반도체 수요가 늘어났지만, 가격이 급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품 가격 상승 폭이 30%를 넘지 못했지만 주가는 코로나19 발생 직전 4만5000원대였던 삼성전자 주가가 최고 9만6000원이 될 정도로 크게 올랐다. 최근에 주가가 5만원대 중반으로 내려왔지만, 그중 상당 부분은 업황보다 주가가 더 많이 오른 부분이 사라지는 거로 봐야 한다. 당분간 반도체 업황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주가가 빠른 시간에 상승으로 돌아서기 힘들다.  
 
반도체는 변동이 큰 업종이다. 한번 상승하면 주가가 3~4배 정도 오르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반대로 한번 떨어지면 고점에서 40~50% 정도 떨어진다. 지난 2년동안 PC, 스마트폰, TV 등 전자제품 수요가 늘었기 때문에 내년에는 수요 증가가 크지 않을 것이다. 가전을 비롯한 내구소비재는 경기에 대한 민감도가 대단히 높다. 최근에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고 있고, 가전제품의 성능 개선 정도도 빠르지 않은 걸 감안하면 반도체의 부진이 한동안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2차전지는 아직 큰 이익을 내지는 못하고 있다. 그래서 주가는 현재 이익보다 성장성에 의해 좌우된다. 2분기 이익 기준으로 LG에너지솔류션의 주당순이익배율(PER)이 840배, 삼성SDI가 28배를 기록하고 있는데, 삼성전자와 현대차의 해당 수치가 각각 8.5배와 8.9배인 걸 감안하면 대단히 높은 수준이다. 성장성이 주가에 크게 반영된 결과다.  
 
전기차가 2차전지의 가장 핵심적인 수요처이기 때문에 2차전지의 성장성은 전기차와 맞물려 있다. 전기차 시장이 매년 30% 가까이 늘어날 거로 전망되는 상황을 2차 전지에 대입해 보면, 2030년이 되기 전에 전 세계 2차전지 시장이 메모리반도체 시장보다 커질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2차전지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이 2021년 297GWh에서 2025년에는 1,400GWh로 연평균 28%씩 성장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세계 2차전지 시장은 중국이 가격과 소재 경쟁력에서 가장 앞서있다. 제조 경쟁력은 우리나라가 강하고, 원천기술과 품질경쟁력은 일본이 더 낫다. 이렇게 한·중·일 3국이 각축전을 벌이던 2차전지 시장에서 큰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 내에서 생산하지 않은 전기차에 대해서는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중국의 2차 전지업체가 미국시장에 참여하는 길도 봉쇄해 버렸다. 유럽 자동차회사들도 전기차 배터리 수급 문제와 전기차 산업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배터리를 자동차회사가 직접 생산하는 쪽으로 방침을 정했다.
 
이런 변화는 국내 2차전지 회사에 큰 기회가 될 것이다. 중국 2차전지 업체들이 미국 전기차 시장에 진출할 수 없게 됨에 따라 미국시장이 한국, 일본 2차전지 업체들의 각축장이 됐기 때문이다. 일본 업체들이 소극적인 증설로 일관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업체들이 미국시장에서 좀 더 유리한 고지를 점유할 가능성이 높다.  
  

당분간 성장주 중심으로 움직일 전망

 
코스피가 한계를 드러냈다. 코스피가 2500을 넘은 후 힘이 급격하게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위로 올라가지도, 그렇다고 밑으로 크게 내려가지도 않는 상태가 상당 기간 계속될 거로 보인다. 올해 연말까지는 기본이고, 길면 내년도 상반기, 혹은 내년 전체도 지금 같은 움직임을 계속할 가능성이 높다.  
 
주식시장이 정체돼도 투자는 쉬지 않는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시장은 다양한 시험을 계속한다. 그 과정을 통해 앞으로 어떤 종목을 주력으로 삼을 건지가 결정된다. 이번 2차전지 상승도 그 과정 중 하나다. 올해와 내년 국내외 경제가 좋지 못할 거로 예상됨에 따라 이익에 대한 기대를 줄였다. 대신 투자자들이 장기간에 걸친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첫 번째 주자로 2차전지가 선정돼 LG에너지솔루션이 크게 상승한 것이다. 앞으로 전기차가 자동차 시장의 대세가 될 거란 사실을 모두 인정하고 있는 이상 이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성장주에 대한 시장의 편애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주식시장이 큰 상승과 하락을 끝낸 후 성장주로 모이는 건 과거에도 많이 일어났던 일이다. 오래전인 1995년이 그랬고, 2019년에 바이오 주가 상승도 그 과정의 하나였다. 그런 면에서 앞으로 주가가 상승할지는 제2, 제3의 성장주가 나올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주자가 계속 나오면 주가가 추가로 상승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정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아쉬운 건 계속 출현 여부를 판단하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성장주는 시장이 선택하고 시장이 버린다. 어떤 업종이 다음 성장주로 선택될지, 아니면 아예 어떤 주식도 선택받지 못할지는 시장이 결정한다. 시장이 결정하는 걸 사람이 사전에 예측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최대는 성장주가 부상하는 초기에 해당 종목을 알아보는 정도다. 


※필자는 경제 및 주식시장 전문 칼럼니스트로, 오랜 기간 증권사 리서치센터에서 해당 분석 업무를 담당했다. 자본시장이 모두에게 유익한 곳이 될 수 있도록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기본에 충실한 주식투자의 원칙] 등 주식분석 기본서를 썼다.   

이종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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