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혁신 기술로 '탄소중립' 달성…차별화 아닌 생존 문제 [RE100 초읽기①]
RE100 가입, 신환경영전략 발표
1992년, 삼성환경선언 이후 다시 친환경 강조
EU, 탄소국경세 등 무역장벽 넘기 위한 고육지책 해석도
‘친환경’ 전략이 기업의 생존을 좌우하는 현실로 다가왔다. 재생에너지를 100% 사용하겠다고 약속하는 캠페인 ‘RE100′ 가입 등 글로벌 기업들의 친환경 움직임은 더 이상 다른 기업과의 차별화를 위한 전략이 아니라는 뜻이다. 현대‧SK‧LG 등 국내 주요 기업이 모두 RE100에 가입한 가운데 유일하게 가입 선언을 미뤄왔던 삼성전자도 글로벌 기업들의 친환경 움직임에 발을 맞추기로 했다.
삼성, 30년 만에 다시 ‘환경선언’
‘탄소중립’은 기업이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양만큼 이를 흡수하는 대책을 세워 실질 배출량을 제로(0)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화석연료가 아닌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를 사용하거나, 재활용 확대, 나무를 심는 방법 등이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700만여톤의 탄소를 배출했는데, 탄소 중립을 달성하면 소나무 20억 그루가 흡수하는 이산화탄소량 혹은 자동차 800만대 운행을 중단하는 효과와 맞먹는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TV·가전 등 연간 5억대의 전자 제품을 생산하는 글로벌 기업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전력을 사용하는 기업(25.8TWh·2021년 기준) 중 한 곳으로 꼽힌다. 비용 부담과 충분하지 않은 국내 재생에너지 공급량 문제 등이 친환경 전략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란 우려가 곳곳에서 나왔지만 그럼에도 체질 개선을 약속한 것이다.
특히 막대한 전력이 필요한 반도체 분야에서 초저전력 기술을 확보하겠다는 게 삼성전자의 방침이다. 2025년 데이터센터와 모바일 기기에서 사용하는 메모리의 전력 소비량을 대폭 절감한다. TV,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PC, 모니터 등 7대 전자제품 대표 모델에 저전력 기술을 적용한다. 이를 통해 오는 2030년까지 전력 소비량을 2019년 기준 같은 성능 모델보다 평균 30% 낮출 계획이다.
고효율 부품(압축기, 열교환기, 반도체) 적용과 인공지능(AI) 절약 모드를 도입해 제품의 작동 알고리즘을 개선하는 방식으로 에너지를 절감하는 기술도 개발할 방침이다. 2027년까지 모든 업무용 자동차(1500여대)를 100% 무공해차(전기·수소차)로 전환하는 계획도 추진한다.
원료부터 폐기·재활용까지 전자제품의 모든 주기에 걸쳐 자원순환성을 높이는 프로젝트를 통해 궁극적으로 제품의 모든 소재를 재활용 소재로 대체하려는 목표도 세웠다. 2030년까지 제품에 사용하는 플라스틱 부품의 50%, 2050년까지 모든 플라스틱 부품에 재생 레진을 적용한다는 게 핵심이다. 폐배터리의 경우 2030년까지 삼성전자가 수거한 모든 폐배터리에서 광물을 추출해 재활용하는 체제를 구축한다.
이를 위해 2030년까지 총 7조원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다, 한종희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은 “기후 위기 극복과 순환 경제 구축은 기업, 정부, 시민 모두의 참여가 필요한 우리 시대 최대의 도전”이라며 “삼성전자는 혁신기술과 제품을 통해 밸류체인 전반에 걸쳐 친환경 생태계 구축을 가속화하는 촉매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무역장벽 친환경
RE100을 주도하는 비영리 환경단체 더클라이밋그룹(The Climate Group)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RE100에 가입한 기업은 400여개에 이른다. 한국에서는 삼성‧현대‧SK‧LG‧네이버 등 20여개 기업이 RE100 가입을 완료했다. 미국(96곳), 일본(72곳), 영국(48곳) 다음이다.
우리 기업들이 발빠르게 움직이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미국과 유럽 등 주요 수출국의 압박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KDI 정책대학원과 에너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기업이 2040년까지 RE100에 가입하지 않을 경우 반도체 수출이 30%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유럽연합(EU)의 경우 내년부터 ‘탄소국경세’를 적용해 수입 품목에 대한 장벽을 높일 계획이다. 탄소국경세란 수입 품목의 탄소 함유량을 조사해 세금을 매기는 것을 말한다. 제품 생산 과정에서 탄소를 많이 배출한 제품에 대해 더 높은 세금을 물리겠다는 것인데 기업 입장에서는 높은 ‘관세’로 받아들 수 밖에 없다. 미국도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상장기업에 ‘기후 리스크’ 공시를 의무화할 예정이어서 기업의 탄소배출에 대한 부담은 커질 전망이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태양광 패널 등을 설치해 직접 재생에너지를 생산하거나 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구매하고 전력거래계약(PPA)을 통해 재생에너지 사용 비중을 높이는 전략을 고민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는 재생에너지 총량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해 국내에서 생산된 재생에너지는 4만3000GWh 수준이었다. 전체 전력 생산량의 7.5% 정도다.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력이 부족하면 기업은 탄소중립을 위해 REC 구매로 몰리면 단가가 올라 기업 부담이 가중될 가능성도 있다.
실제 지난 7월 산업통상자원부는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개최한 국내 RE100 참여 기업들과의 간담회에서 현대차, SK하이닉스, 삼성전자, LG에너지솔루션 주요 기업 관계자들은 “재생에너지 사용을 확대할 계획”이라면서도 “해외 주요국과 비교해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 비용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호소했다.
이런 우려에 정부도 재생에너지 공급을 확대하고, 기업의 비용 부담 완화를 위해 각종 인센티브와 컨설팅 지원 등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이날 간담회에서 장영진 차관은 “장기적으로 RE100이 국제적인 투자 장벽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며 “우리 기업이 원활하게 RE100을 이행할 수 있도록 기업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구체적인 정책 방향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이병희 기자 leoybh@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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