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판 당근마켓’ 품은 네이버…16년 전 구글을 떠올리다
네이버, 포쉬마크 2.3조에 인수 화제
시장 우려·주가 하락에도 성장 자신
2006년 구글의 유튜브 M&A 오버랩
시장 판도 바꾸는 M&A 투자에 주목
네이버가 잠잠하던 인수합병(M&A) 시장에 깜짝 빅딜을 발표하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른바 ‘미국판 당근마켓’으로 불리는 포쉬마크를 2조원 넘는 가격에 인수하는 화끈한 투자를 단행한 것이다.
네이버의 통 큰 베팅을 두고 시장에서는 기대와 우려의 시각을 동시에 내놓고 있다. 증시 침체 장기화로 주가 방어가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공격적인 투자 대신 몸을 사렸어야 했던 것 아니냐’는 시각이 적지 않다. 그러나 네이버는 지금의 투자가 훗날 더 큰 수익으로 돌아올 것에 조 단위 자금을 베팅했다. 공격적인 M&A로 회사 가치를 끌어 올리려는 네이버의 승부수가 어떤 결론을 맺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단일 최대 규모 M&A…잠재자산 ‘트래픽’ 주목
네이버는 지난 4일 미국 포쉬마크의 주식 9127만2609주를 2조3441억원에 취득한다고 공시했다. 인수가는 주당 17.9달러(약 2만5800원)로, 주식 취득 뒤 지분율은 100%가 된다. 주식 취득 예정일은 내년 4월 4일이다.
2011년 설립한 포쉬마크는 지역 단위 소셜·커뮤니티 기능을 내세워 개인 간 거래(C2C)를 하는 한 중고 패션 플랫폼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당근마켓’과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는 업체다. 지역 단위 거래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도 포쉬마크와 당근마켓의 공통점으로 꼽히기도 한다.
포쉬마크는 총 사용자 수가 8000만명을 웃돌며 C2C(소비자간 거래) 분야에서는 북미 지역에서 독보적인 1위다. 매일 50만 건 이상의 새로운 판매 글이 게시되고, ‘좋아요’와 ‘공유하기’ 등도 10억 건 이상 발생하고 있다. 국내외 IT기업들이 ‘잠재 자산’으로 꼽는 트래픽(회사와 고객간 발생 테이터)과 사용자 규모 등을 따졌을 때,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매력적인 매물로 판단했다는 게 자본시장의 관측이다.
네이버는 포쉬마크 인수에 대해 “버티컬 플랫폼(특정 상품군에 특화한 플랫폼)으로의 진화가 거세지는 글로벌 C2C 시장에서 장기적인 커머스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인수를 추진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번 M&A에 대해 관련 업계는 물론 자본시장에서도 깜짝 놀란 모습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잠잠하던 국내 M&A 시장에 모처럼 터진 빅딜인데다 네이버가 진행한 M&A로는 역대 최대 규모를 새로 썼기 때문이다. 더욱이 금리 상승 여파로 모두가 투자를 주저하던 시기 나온 대형 M&A다 보니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시장에서는 네이버의 포쉬마크 인수를 두고 여러 견해를 쏟아내고 있다. 네이버의 포쉬마크 인수 소식이 전해진 4일 주가가 8% 가까이 급락한 데 이어 일부 외국계 증권사를 중심으로 ‘포쉬마크의 높은 인수가가 결국 발목을 잡을 것’이란 전망이 잇따라 나오기도 했다.
일부 우려의 시선에도 최수연 네이버 대표는 향후 성장 잠재력을 자신하고 있다. 최 대표는 포쉬마크 인수 이후 이뤄진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리셀, 중고패션 시장이 오는 2026년 2190억 달러(312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을 보면 아직은 (시장이) 태동하는 시기고, 큰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구글의 유튜브 인수 회자…‘리스크 없는 투자는 없다’
규모나 업종은 다르지만, 최근 미국 M&A 시장에서도 이와 유사한 빅딜이 있었다. 지난달 ‘포토샵’으로 유명한 미국의 대표적 소프트웨어 업체 어도비가 그래픽 편집 플랫폼 스타트업 ‘피그마’를 200억 달러(28조원)에 인수했다.
어도비가 피그마 인수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베팅한 것을 두고 시장에서는 ‘너무 비싸게 샀다’는 우려가 빗발쳤다. 이 때문에 어도비 주가는 피그마 인수가 발표된 15일 하루 동안 17% 가까이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어도비는 급증하는 실적과 시장 점유율을 봤을 때 피그마 인수에 확신하는 모습이다.
샨타누 나라옌 어도비 최고경영자(CEO)는 “어도비와 피그마의 조합은 혁신적이며 우리의 비전을 가속화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중장기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거액을 아끼지 않았다는 점에서 어도비와 네이버의 의사 결정은 여러 모로 닮아 있다.
어도비와 네이버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하는 사건이 지난 2006년 이뤄진 구글의 유튜브(Youtube) 인수다. 구글은 그해 10월 16억5000만달러(약 2조3000억원)를 들여 유튜브를 인수했다.
당시 구글이 자본시장에 베팅한 역대 최고 금액에 자본시장 전체가 술렁였다. 온라인 비디오 시장에 대한 잠재력은 인정하지만, 이 정도 금액을 내고 인수하는 게 맞느냐는 시각도 있었다.
시장의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유튜브 모회사인 알파벳이 지난 2월 발표한 실적에 따르면 지난해 유튜브 광고매출은 288억 달러(36조8000억원)를 기록했다. 인수 15년 만에 광고 매출로만 인수가의 17배 넘는 매출을 올린 셈이다.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점치는 유튜브의 밸류에이션(몸값)은 200조를 넘어선 지 오래다. 국내외 IT 기업들의 공격적인 M&A에 불씨를 지피게 된 역사적인 이벤트라고 봐도 무방하다.
역사에 남을 ‘구글의 유튜브 인수’ 이후 글로벌 IT 기업들의 공격적인 M&A는 어느덧 ‘상수’(常數)로 자리 잡았다. 유망 기업 인수로 단기간에 시장을 장악하는 전례가 증명된 상황에서 이런 흐름에 가속도가 붙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는 평가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을 떠올린다면 네이버의 포쉬마크 인수는 글로벌 시장에서 도약하려는 투자라고 보는 게 맞다고 봐야 한다.
세간의 평가처럼 네이버의 포쉬마크 인수가 지금 당장 ‘옳다, 그르다’로 평가하기엔 아직 이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들의 결정이 구글을 뛰어넘을 ‘신의 한 수’가 될지, 역사적인 ‘판단 미스’로 남을지는 네이버의 향후 운영 전략에 달렸다고 봐도 무방하다. 앞으로 몇 년 후, 길게는 수십 년 후 지금의 결정이 어떤 평가를 받을지가 자못 궁금해지는 이유다.
김성훈 이데일리 기자 sk4h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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