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기물이 패션이 되는 시대 [이윤정 에코앤로]
소비자는 도덕적 위로 받고
기업은 탄소 줄여 일석이조
아침에 새벽 배송된 식재료들을 정리하고 나면 박스와 비닐 포장재가 현관을 가득 채운다. 어제 마신 생수와 음료수 페트병들도 베란다 한 구석에서 처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 집만 그런 것도 아닌 듯하다. 아파트 재활용품 적치장은 언제나 만원이다. 종이·플라스틱 등 이름표가 붙은 큰 마대 자루들에 이미 물건들이 쌓이고 또 쌓여 거대한 산이 되어 버렸는데, 거기에 또 상자·비닐·페트병들을 보태고 오는, 참으로 미안한 경험… 나에게만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일까? 의류 회사를 경영하는 지인으로부터 선물 받은, 페트병을 재활용해서 만든 반팔 티셔츠를 몇 년째 여름 내내 입고 있다. 얇고, 부드럽고, 시원하다는 실리적인 이유도 있지만, 페트병이 소각되거나 땅에 묻히지 않고 옷이 되어 다시 쓰인다는 대견함이 이 옷을 자주 입는 또 다른 이유인 것 같다.
ESG 시대, 기업에게 폐기물은 귀중한 자원이자 마케팅 도구로서 기능한다. 다 쓴 후에도 다시 순환하여 자원이 될 가능성이 높은 제품이나, 아예 처음부터 폐기물을 원료로 재활용하여 만든 제품을 선호하는 방식으로 소비를 결정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질 것이다. 폐기물을 재활용하여 원료로 사용하는 것은 제품의 ‘탄소발자국’(carbon footprint, 제품의 원료 채취, 생산, 수송·유통, 사용, 폐기 등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발생량을 이산화탄소 배출량으로 환산한 것)을 줄여서 탄소중립 달성에 일조할 수도 있다.
일부 기업들은 이미 이러한 트렌드를 신속하게 포착하여 제품 생산 및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다. 해안에서 회수한 플라스틱을 재활용한 원사로 의류를 제작하여 판매하는 A사, 폐기물로 운동화를 만들어 판매하는 B사 등이 그 예이다. 폐기물을 재활용해서 만든 제품에 대하여 소비자들은 ‘예쁘다’, ‘힙하다’ 반응한다. 바야흐로 폐기물이 패션이 되는 시대다.
폐기물 관련 법령 검토 후 사업 구조 설계해야
먼저, 취급하는 물질이 현재 법적으로 폐기물에 해당하는지 아닌지를 따져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폐기물이라면 폐기물관리법상 허가를 가진 기업만이 수집·운반·가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폐기물관리법에 의하면, 폐기물은 ’쓰레기, 연소재(燃燒滓), 오니(汚泥), 폐유(廢油), 폐산(廢酸), 폐알칼리와 동물의 사체(死體) 등으로서 사람의 생활이나 사업활동에 필요하지 아니하게 된 물질’을 말한다(폐기물관리법 제2조 제1호). 쓰레기·연소재·오니·폐유 등 위에서 예시된 것 이외에도 사람의 생활이나 사업활동에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고 판단되는 것은 모두 폐기물에 해당한다. 이 때 필요한지 아니면 필요하지 않게 되었는지 여부는 해당 물질의 객관적인 상태 및 소유자(혹은 점유자)의 주관적 판단을 기준으로 삼게 된다.
예를 들어서 해안에 버려진 주인 없는 페트병은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 필요하지 않게 된 것이 명백하므로 폐기물이다. 그러므로 이 페트병을 모아서, 운반하고, 가공하여 의류 제조용 원사를 만드는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폐기물관리법상 폐기물재활용업 허가를 받아야 한다. 페트병을 가공하여 재활용 의류를 생산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더라도 페트병이 폐기물이라는 것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판례는 재활용될 수 있는 폐기물이라도 일단 폐기물로 보고 있다(대법원 2001. 6. 1. 2001도70판결).
그러므로 만약 A 사가 해안에 버려진 페트병을 가공하여 원사를 제조하고, 또 이 원사로 의류 제조 사업을 하고자 한다면, 스스로 폐기물재활용업 허가를 받거나 아니면 폐기물재활용업 허가를 가진 페트병 가공 업체로부터 플라스틱 재활용 원사를 공급받아야 한다.
원료가 ‘바로 투입’인지 ‘추가 가공’인지 확인해야
B사 신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 원칙이 적용된다. 폐기물을 가공하여 운동화 제조에 필요한 원료 물질을 만드는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폐기물재활용업 허가가 필요하다. 만약 B사가 폐기물을 직접 가공하지 않고 협력업체로부터 운동화의 원료물질을 공급받는다면 폐기물재활용업 허가를 직접 받을 필요는 없다. 물론 협력업체가 폐기물재활용업 허가를 가지고 있는지 여부를 체크하여야 한다. 또한 원료물질이 의류제조용 원사처럼 완제품 생산을 위하여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원료물질인지 아니면 별도로 추가 가공이 필요한지는 별도 검토가 필요하다. 완제품 생산을 위하여 바로 투입이 가능한 원료물질이면 폐기물이 아니고, 아직 가공이 덜 된 상태이면 여전히 폐기물로 평가될 가능성이 있다.
폐기물을 재활용하여 상품을 만드는 일은 앞으로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소비자들은 재활용 원료로 만든 상품을 구매하면서 도덕적인 위로를 받을 것이고, 이러한 도덕적인 소비가 점점 더 멋있고, 트렌디하고, 힙한 것으로 추앙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의 탄소 저감 목표 달성에도 도움이 된다. 자신만의 브랜드를 아직 가지지 못한 기업들은 폐기물을 재활용 가공하여 원료를 만드는 기술을 발전시켜서 대기업과 콜라보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다만, 법적인 부분은 다시 한 번 돌아보고 따져보아야 한다. 필요한 허가가 무엇인지, 이러한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어떠한 물적, 인적 시설을 갖추어야 하는지 체크할 필요가 있다.
※ 필자는 환경법 전문가로, 현재 김앤장법률사무소의 변호사이다. 환경부 고문 변호사이자 중앙환경분쟁조정회 위원이다. 국가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 법제처 법령해석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다. 2022년 환경의 날 대통령 표창 포상을 수상했다.
이윤정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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