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필 대표 “배터리 스타트업, 기술 있어도 자생 어려워” [이코노 인터뷰]
[흔들리는 K-배터리]④
조재필 에스엠랩 대표
단결정 건식 공정…양극재 분야 ‘다크호스’
2030년까지 세계 양극재 시장 30% 이상 점유 목표
[이코노미스트 이건엄 기자] 전기차와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의 급부상으로 전 세계의 중심에 선 K-배터리. 하지만 K-배터리의 풀뿌리라 할 수 있는 스타트업이 자생하는 환경은 너무나도 열악하다. 1월 30일 울산에서 만난 조재필 에스엠랩 대표도 우수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국내 스타트업이 꽃을 피우기 위해선 적절한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조 대표는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독보적인 기술력이 해답이 될 수 있다”면서도 “다만 기술력에 걸맞은 생산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에스엠랩 역시 기술력은 확보돼 있지만 생산능력에서 유력 경쟁사에 크게 밀린다”며 “결국 기술력을 실현할 수 있는 생산능력이 동반돼야만 하고 이는 투자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문제는 기술만 있다고 투자가 자연스레 따라오지 않는다”며 “매출이 발생해야만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데 기술만 가진 스타트업 입장에선 난제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투자 유치액 1000억원에 달하지만 IPO 실패
조재필 울산과학기술원(UNIST) 특훈 교수가 지난 2018년 설립한 에스엠랩은 니켈 함량 98% 이상인 니켈·코발트·망간(NCM) 양극재를 개발해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통상 물로 리튬 불순물을 씻어내는 수세 공정을 통해 제작되는 NCM은 니켈 비중을 94%까지 밖에 끌어올리지 못해 에너지밀도를 높이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특히 양극재 제작 과정에서 다량의 폐수가 발생하는 부작용도 컸다. 에스엠랩은 단결정 건식 공정 도입을 통해 니켈 비중을 크게 끌어 올림과 동시에 폐수 문제까지 해결하며 양극재 시장의 ‘다크호스’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외부 투자가 발목을 잡았다. 기업공개(IPO)에 난항을 겪으며 추가 설비 확보에 차질이 빚어진 것이다. 원가 비중이 높은 양극재의 경우 대량 생산을 통한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지 않으면 생존이 어렵다.
실제 에스엠랩은 창업 후 지금까지 1000억원 정도의 투자 유치에 성공했고, 이를 바탕으로 지난해 7월 거래소에 기술특례제도를 바탕으로 상장 예비심사를 신청하며 IPO를 본격화했다. 하지만 거래소 측이 설비투자를 위한 자금조달 계획이 불안하다는 판단을 내리면서 에스엠랩은 결국 상장 심사를 철회했다.
기술특례상장제도는 전문평가기관으로부터 일정 수준 이상의 기술평가등급을 받거나 상장주관사의 추천을 받은 기술성장기업에 대해 일반상장보다 완화된 재무 관련 요건으로 상장을 허용하는 제도다. 스타트업의 경우 기술 개발 완수까지 장기간의 연구개발(R&D)이 필요하고 이것이 매출과 수익으로 이어지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을 고려해 금융당국이 지난 2005년 특례상장 제도를 도입했다.
K-배터리 경쟁력 여전히 유효
조 대표는 스타트업이 살아남기 위해선 외부 투자와 함께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도 필수라고 봤다. 현재의 지원책에 대해선 까다로운 기준과 좁은 지원 범위가 아쉽다는 의견을 남겼다.
그는 “에스엠랩만 보더라도 3공장을 신설하려면 1000억 단위가 넘어가는 자금이 필요하다”며 “이 경우 정부와 지자체가 협의해 지원금이 어느 정도 나오는 걸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기업에 대한 지원은 상대적으로 기준이 까다롭고 범위도 좁을 수밖에 없다”며 “정부 지원이 확대되면 좋지만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조 대표는 인재 확보에도 어려움이 많다고 지적했다. 정부와 대기업이 주도하는 인재 육성 정책을 스타트업을 비롯한 중소기업이 체감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그는 “정부와 대기업이 주도하고 있는 배터리 인재 육성 정책은 지방과 중소기업 입장에선 체감하기 어렵다”며 “인재 대부분이 대기업을 선호하다 보니 인력난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조 대표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 변수가 많지만 여전히 K-배터리의 경쟁력이 높다고 봤다.
그는 “많은 배터리 업체도 소재 기술력을 키우고 있다”며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K-배터리의 경쟁력은 충분하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기차 배터리의 경우 중국 내에서는 경쟁이 힘들겠지만 유럽과 미국 시장이 워낙 크다 보니 이쪽을 타깃으로 하면 승산이 있다고 본다”며 “전략적으로 잘 접근하면 향후 K-배터리가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중국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는 원자재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공급처 다변화 전략을 써야 한다고 제언했다. 실제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한국은 배터리 분야에서 지난 2020년 기준 무려 93.3%의 대 중국 수입의존도를 기록했다. 이는 일본의 66.1%, 미국의 43.4%에 비해 1.4배~2.2배 높은 수준이다.
조 대표는 “주요 원자재 상당 부분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데 IRA 등 변수를 고려했을 때 다변화가 필요하다”며 “실제 에스엠랩과 거래하고 있는 한 중국 업체의 경우 최근 춘절과 코로나 등 여러 이유로 대응이 어렵다”고 말했다.
끝으로 조 대표는 에스엠랩의 향후 계획을 전했다. 가장 큰 숙제인 IPO 문제를 해결하고 글로벌 양극재 시장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낸다는 설명이다.
그는 “현재 가장 큰 문제는 자금”이라며 “이는 빠른 기업공개와 대규모 자금을 투자받아 해결해야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에스엠랩은 현재 보유하고 있는 생산능력 7200t을 기반으로 매출을 발생시킨 뒤 재상장에 도전할 수 있을 것 같다”며 “현재 진행되고 이는 고객사와 평가를 빨리 받아 시리즈D를 통해 투자받으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또 “2030년까지 세계 양극재 시장의 30% 이상을 점유한다는 목표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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