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석유 파동에 항공기 도입’…조중훈 창업자를 아시나요

[‘중꺾마’로 위기 극복…장신(長新) 기업을 찾아서]⑨-대한항공
“위기 때마다 투자”…50년 기틀 닦은 고 조중훈‧조양호 父子
‘사상 최대’ 실적 이끈 조원태 회장 재계 주목

이코노미스트 데이터랩(Data Lab)은 지난 2월 '111클럽' 기획을 발표한 바 있다. 데이터랩의 두 번째 기획은 국내 매출 상위 2000대 상장사 중 올해 기준으로 60년 전통을 가진 기업 177곳 중 (2021년 기준) 연 매출 5000억원, 영업이익 500억원 이상을 기록한 상위 10%의 기업을 선정하는 것이다. 총 46곳의 기업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변화와 도전을 멈추지 않은 한국경제의 주역들이다. 이코노미스트 데이터랩은 이 기업을 '장수(長壽) 기업' 대신 '장신(長新)' 기업이라 이름 붙였다. [편집자]

고 조중훈 창업자가 1979년 미국 뉴욕 존F케네디공항에서 첫 취항식 행사를 하고 있다. [사진 대한항공]

[이코노미스트 이창훈 기자] 국적 1위 항공사 대한항공이 ‘이코노미스트’가 선정한 장신(長新) 기업에 포함됐다.

1962년 정부 소유의 대한항공공사로 시작한 대한항공은 1969년 한진그룹이 인수한 후 글로벌 항공사로 성장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항공 산업을 둘러싼 여러 번의 위기에도 과감한 투자를 감행, 글로벌 항공사들의 합종연횡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외연을 확장했다. 

‘석유 파동에 항공기 도입’…조중훈 창업자를 아시나요

대한항공의 역사는 위기와 투자의 반복으로 요약된다. 고(故)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자는 1969년 만성 적자에 시달리던 대한항공공사 인수를 추진했다. 당시 임직원의 극심한 반대에도, 고 조중훈 창업자는 “대한항공공사 인수가 국익과 공익을 위한 소명”이라며 인수를 강행했다.

고 조중훈 창업자의 결단으로 국내 첫 민영 항공사인 대한항공이 출범했다. 하지만 시작부터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국영 기업 특유의 비효율을 비롯해 누적된 적자로 악화한 재무 상황을 개선해야 했다. 주목할 점은 고 조중훈 창업자가 적자 기업 회생을 위해 구조조정 대신 투자를 택했다는 것이다. 인력을 감축하지 않고 임직원 급여를 인상했고, 기존에 보유 중인 프로펠러기 대신 제트기를 도입했다. 위기일수록 과감한 투자를 시도하는 경영 전략을 꾀한 것이다. 

고 조중훈 창업자가 1972년 9월 보잉747 점보기 도입 계약을 체결한 것도 ‘위기 때 투자’로 묘사되는 경영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당시 항공 여객 수요는 미미한 수준이라 무모한 결정이란 평가가 많았는데, 선제적 투자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투자를 결정한 것이다.


1969년 대한항공 출범 모습. [사진 대한항공]

1973년과 1978년에 각각 발생한 1‧2차 석유 파동 때 시설과 장비 가동률을 높인 일화도 유명하다. 항공사 운영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유류비가 폭등했음에도 가동률 상승을 꾀했고, 계획대로 항공기를 구매했다. 당시 유류비 급등에 수천 명의 직원을 감원한 미국의 팬아메리칸월드항공, 유나이티드항공 등과 비교하면, 정반대의 길을 걸은 셈이다. 결과적으로 위기에도 투자를 이어온 고 조중훈 창업자의 결단은 대한항공이 글로벌 항공사로 도약하기 위한 초석이 됐다. 

고 조중훈 창업자의 아들인 고 조양호 한진그룹 전 회장 역시 과감한 투자로 위기를 돌파한 경영인이란 평가다. 고 조양호 전 회장은 항공기 임차 비중을 줄이고 자체 소유 항공기를 늘렸다. 항공기 구매 비용 부담이 가중됐으나, 중장기적 관점에서 항공기 임차로 인한 위험 요소를 제거한 것이다. 통상 항공기 임차 비용은 달러로 지불하기 때문에 원 달러 환율 흐름에 따라 비용 규모가 달라진다. 이 같은 투자 전략은 1997년 외환위기를 돌파하는 구심점이 됐다. 당시 대한항공이 운용한 항공기 112대 중에 임차한 항공기는 14대에 불과해, 고환율 여파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고 조양호 전 회장은 외환위기가 이어졌던 1998년에도 항공기 27대에 대한 구매 계약 체결했다. 

항공 전문가들은 “투자로 위기를 돌파해온 조중훈‧조양호 부자(父子)가 글로벌 항공사 대한항공의 기틀을 만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미국, 일본 등의 글로벌 항공사들이 대내외 악재를 버티지 못하고 불가피하게 인수합병에 나선 것과 달리, 미래를 대비해 투자 전략을 유지한 대한항공은 대내외 위기를 돌파하고 규모의 경제를 실현했다”며 “오너가(家) 갑질 논란 등과 별개로 글로벌 항공사들의 성장 역사를 보면, 대한항공은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인식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항공업계 관계자는 “최근 대한항공의 코로나19 사태 극복, 사상 최대 실적의 밑거름은 조중훈‧조양호 부자의 과감한 투자 결단일 것”이라고 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사진 한진그룹]

역발상에 ‘사상 최대’ 실적…100년 항로 만든다 

고 조양호 전 회장의 아들인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도 위기에도 투자하는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당시에 여객기를 화물기로 개조, 항공 화물 사업 호황을 적극 활용한 것이 대표적이다. 대한항공은 항공 화물 사업 호황 땐 여객기를 화물기로 개조하고, 여객 사업 회복 조짐에 개조한 항공기를 여객기로 원상 복구했다. 이른바 ‘역발상 전략’으로 불린 이 전략은 조 회장의 제안에서 출발했다.

코로나19 사태로 경영 위기에 내몰린 글로벌 항공사와 달리, 역발상 전략을 시도한 대한항공은 지난해 2조8000억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기록,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코로나19 사태도 고유가‧고환율도 대한항공의 성장세를 꺾지 못한 것이다. 

국내 사모펀드 KCGI가 일으킨 경영권 분쟁에 마침표를 찍은 대한항공 앞에는 아시아나항공과의 인수합병을 마무리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에서 기업 결합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승인 과정에서 이른바 ‘알짜 노선’을 포기하고 있어 경쟁력 약화에 대한 우려가 많다.

마일리지 개편 논란으로 흠집 난 신뢰도도 회복시켜야 한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대내외 악재에도 꾸준히 이익을 낼 수 있을 정도의 규모의 경제를 실현한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과의 통합을 마무리해 초대형 국적 항공사로 도약할지 주목된다”며 “통합 항공사가 시장에 안착하면, ‘100년 비행’도 순항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공공기관장 평균 연봉 1.8억...상위권 '국책은행' 집중

2도입 10년 넘었는데...가족돌봄휴가, 직장인 대부분 못쓴다

3'합정역~동대문역' 오가는 심야 자율주행버스, 7월부터 유료화

4LH "출범 이후 최대 규모 청년주택 공급 예정"

5'뉴진스님' 윤성호가 해외 비판 여론에 보인 반응

6여전업계, 2000억원 규모 ‘여전업권 PF 정상화 지원 2호 펀드’ 조성

7강남 아파트 방음벽으로 돌진한 SUV...무슨 일?

8머스크 "슈퍼 충전소 확대 위해 5억 달러 이상 투자"

9티백·동전·비건…세계로 뻗어나가는 ‘K-조미료’

실시간 뉴스

1공공기관장 평균 연봉 1.8억...상위권 '국책은행' 집중

2도입 10년 넘었는데...가족돌봄휴가, 직장인 대부분 못쓴다

3'합정역~동대문역' 오가는 심야 자율주행버스, 7월부터 유료화

4LH "출범 이후 최대 규모 청년주택 공급 예정"

5'뉴진스님' 윤성호가 해외 비판 여론에 보인 반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