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브, K/DA도 못한 ‘인식 변화’ 이룰까…기술이 만든 장르
[가상 인간 트렌드, 미풍서 열풍으로]①
팬덤 형성한 메이브, 공중파 방송도 진출…영상 인기
카카오·넷마블 협업, 기술에 스토리 입혀 차별화
[이코노미스트 정두용 기자] “이제 지하철에서 봐도 좀 덜 창피해요.”
MAVE:(메이브)의 팬임을 자처한 20대 남성의 말이다. 그는 지난 2018년 라이엇 게임즈의 K-팝(POP) 가상 걸그룹 K/DA 데뷔 때부터 ‘버추얼’(가상·Virtual) 콘텐츠에 관심을 기울였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K/DA 영상을 ‘밖에서 보기엔 창피한’ 느낌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유튜브로 K/DA를 보는 모습을 이상하게 여기는 시선이 많아서다. 그는 이 같은 분위기가 메이브의 등장 후에는 체감이 가능할 정도로 긍정적으로 바뀌어 “팬 입장에선 뿌듯하다”며 웃었다.
메이브로 대변되는 가상 인간 콘텐츠의 인기가 뜨겁다. 가상 인간 콘텐츠는 그간 분명 주류가 되지 못한 영역에 머물렀다. 마이너(Minor)·서브컬처(하위문화·Subculture)·마니아(Mania) 등의 수식어가 늘 따라다녔다. 메이브의 등장으로 이 같은 인식이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주류 아이돌 못지않은 메이브 인기
K/DA는 세계적 인기를 끄는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롤)를 기반으로 한데다 실제 가수와 가상의 캐릭터를 조합한 콘셉트로 기획됐다. K/DA의 노래(POP/STARS)는 각 가상 캐릭터에 대응해 국내 걸그룹 (여자)아이들의 미연·소연과 미국 가수 매디슨 비어(Madison Beer)·자이라 번스(Jaira Burns)가 불렀다. 이들은 라이엇 게임즈가 마련한 무대에서 가상 캐릭터와 함께 서기도 했다. 그런데도 국내에서 가상 인간 콘텐츠의 부정적 인식을 완전히 바꾸는 데엔 부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엔터업계 관계자는 “K/DA 뮤직비디오는 유튜브 누적 조회수가 5억회를 넘어설 만큼 큰 인기를 끌었지만, 팬들은 가상 캐릭터에 완전한 몰입을 이루지 못했다”며 “K/DA는 롤 세계 대회인 ‘월드 챔피언십’에 맞춰 프로젝트로 기획된 측면이 강해 일회성 이벤트로 인식하는 팬들도 많았다”고 말했다. 실제 가수들의 팬덤 유입이 흥행의 주된 요인으로 작용한 데다 지속성을 팬들에게 보여줄 수 없어 확장성 측면에서 한계를 보였단 설명이다.
반면 메이브는 K/DA가 이루지 못한 ‘인식 변화’를 차근히 진행하고 있다고 봤다. 그는 “메이브의 경우 멤버 모두 외형은 물론 이야기까지 가상을 중심으로 진행돼 몰입도가 높고,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실제 K-팝 아이돌의 접근 방식을 답습하고 있다”며 “가상 인간에 대한 비교적 부정적 인식을 적어도 국내에선 K/DA 등장 때보다 더 확실하게 바꾸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메이브는 지난 1월 25일 첫 싱글 앨범 ‘판도라의 상자’(PANDORA'S BOX)의 타이틀 곡 ‘판도라’(PANDORA)를 발매한 뒤 K-팝 주류 아이돌이 낼법한 성과를 써냈다. 뮤직비디오는 유튜브에서 공개 일주일 만에 550만 조회수를 기록하더니, 최근에는 1900만회를 넘어섰다. 공중파 음악방송 무대에도 올랐다. MBC ‘쇼! 음악중심’에 1월과 2월에 각 한 번씩 총 두 번의 무대를 선보였다. 2월 두 번째 무대에선 데뷔 때와 달리 실시간으로 이미지를 생성하는 리얼 타임 렌더링 기술을 적용하기도 했다. 메이브와 관련된 영상은 유튜브에서만 3000만회를 넘어섰다는 집계도 나온다.
팬덤도 생겨났다. 메이브와 비슷하면서도 미로처럼 서로에게 빠져 헤어 나올 수 없는 사이를 의미하는 MAZE:(메이즈)가 공식 팬덤 이름으로 정해졌다. 틱톡·유튜브·인스타그램·트위터 등 메이브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구독자 수는 80만명에 달한다.
메이브는 메이즈에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토크 쇼에도 출연하기도 했다. 지난 2월 멜론 스테이션 ‘오늘음악’에 나와 취미·스트레스 해소법·매력 포인트 등을 풀어냈다.
기술로 문턱 낮추고 스토리로 몰입감↑
‘미풍’에 해당하던 가상 인간 콘텐츠를 ‘열풍’으로 끌어올린 메이브는 두 전문 집단의 기획력·기술력이 결합해 탄생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이하 카카오엔터)가 메이브의 기획을, 넷마블 개발 자회사 넷마블에프앤씨가 설립한 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가 구현을 각각 담당했다. 카카오엔터는 2021년 10월 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에 지분을 투자하고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은 바 있다. 메이브의 가상 아이돌 제작 절차가 시작된 배경이다. 구체적으로 카카오엔터가 음악 기획·프로듀싱·아티스트 매니지먼트를, 넷마블에프앤씨가 디자인 연구개발(R&D) 등을 맡았다.
카카오엔터 관계자는 “다양한 K-팝 아티스트들과 협업을 통해 새로운 음원을 기획·제작·유통해왔고, 신인 아티스트들을 발굴해 막강한 글로벌 팬덤을 가진 아이돌 그룹으로 육성하는 등 음악 사업 전반에 걸쳐 탄탄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며 “여기에 ‘불쾌한 골짜기’를 넘을 수 있는 넷마블의 기술력이 더해지면서 메이브가 인기를 끌게 된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카카오엔터는 스타쉽·IST엔터·안테나 등 산하 멀티 레이블 시스템을 통해 다양한 K-팝 성공 사례를 썼고, 이 과정에서 축적한 역량을 메이브에 고스란히 반영했다는 설명이다.
양사는 앞서 ‘반짝스타’에 그쳤던 가상 아이돌의 절차를 밟지 않기 위해 기획부터 실제 그룹을 제작하는 방식을 그대로 메이브에 적용했다. 통상적으로 가상 아이돌이 먼저 기획·제작된 후 엔터사가 메니지먼트를 하는 구조였다면, 메이브는 처음부터 카카오엔터가 함께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신인 아이돌 그룹 개발과 크게 다르지 않은 프로세스를 통해 ▲콘셉트 비주얼 기획 ▲음반 및 뮤직비디오 제작 ▲마케팅 등이 진행됐다.
메이브 외형을 구현한 기술력 역시 차별화를 이룬다. 그간 가상 아이돌이 딥러닝·딥페이크 기술이 적용됐다. 반면 메이브는 풀 3D로 제작이 이뤄졌다. 또 캐릭터의 머리카락과 옷의 움직임은 시뮬레이션 기술인 CFX를 통해 사실감을 더했다. 댄스 등의 액션은 모션 캡처를 통해 실제 사람의 움직임을 반영했다. 메이브를 두고 ‘실사 같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목소리에도 인공지능(AI) 기술이 접목됐다. 넷마블 관계자는 “언어와 관계없이 화자의 목소리를 캐릭터의 것으로 변환해 주는 기능을 사용했다”며 “가상 아이돌 그룹으로 노래하고 팬들과 소통하는 게 중요한 만큼 멤버들의 색과 톤에 맞는 목소리를 별도로 구현했다”고 설명했다.
기술이 만든 장르 ‘가상 인간’…활용도 높아진 아이돌 IP
메이브의 등장으로 K-팝 아이돌의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K-팝 아이돌 IP를 기반으로 웹소설·웹툰·영상 등 2차 창작물을 만들어 사업적 성과를 내는 ‘원 소스 멀티 유즈(OSMU)’ 전략은 ▲방탄소년단(BTS) IP를 활용한 웹툰 착호(7FATES: CHAKHO) ▲르세라핌 IP 기반의 웹툰·웹소설 ‘크림슨 하트’ ▲엔하이픈과 협업 방식으로 만들어진 웹툰 ‘다크 문: 달의 제단’ 등을 통해 경쟁력이 이미 입증됐다. 아이돌 IP를 활용할 수 있는 장르에 기술의 발전으로 ‘가상 인간’이 추가됐다는 견해가 나온다.
실제로 메이브의 세계관을 활용해 새로운 서사를 꾸린 웹툰 'MAVE: 또 다른 세계’가 지난 2월 20일 카카오페이지·카카오웹툰에 동시 공개된 바 있다. 카카오엔터는 해당 작품을 올 상반기 중 북미·태국·인도네시아·대만 등 글로벌 지역에 순차적으로 선보일 계획이다.
기존 아이돌이 버추얼 아이돌로 재탄생하는 시도도 진행된 바 있다. 카카오엔터가 기획한 아이돌 데뷔 서바이벌 ‘소녀 리버스’는 현실 세계 K-팝 걸그룹 멤버 30명이 가상의 세계에서 데뷔할 기회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을 펼친 서바이벌 예능이다.
회사 측은 “참가자들은 현실 세계에서의 정체를 완벽히 숨긴 채 새로운 버추얼 캐릭터를 통해 춤과 노래 실력을 선보이며 최종 5명의 데뷔 멤버가 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며 “K-팝과 버추얼이 만난 새로운 포맷의 예능 프로그램으로, 가상 세계 ‘W’에 접속한 소녀들의 무대를 관전하는 등 이제껏 보지 못한 이색적 접근으로 눈길을 끌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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