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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대통령도 신은 ‘왕자표 고무신’…40년 전통 ‘K-스포츠’ 운동화 [브랜도피아]

고무신 회사에서 국산화 브랜드로 명맥 이어온 ‘프로스펙스’
법정관리까지 간 위기 딛고, 2000년대 ‘워킹화’ 카테고리 개척
2007년 LS그룹이 인수, 2013년 ‘연아라인’ 출시해 누적 100만족 판매

기능성을 강조한 프로스펙스의 초기 광고 모습. [사진 LS네트웍스]
[이코노미스트 김채영 기자] 2023 한국프로야구 개막전에서 시구를 한 윤석열 대통령은 국산 브랜드 운동화를 신고 마운드에 섰다. 윤 대통령 부부의 커플 신발로 다시 한번 주목 받은 이 브랜드의 시작은 고무신 회사였다. ‘왕자표’ 고무신으로 시작해 40년 전통의 토종 국산화 브랜드로 성장한 ‘프로스펙스(PROSPECS)’ 이야기다. 프로스펙스는 한때 침체의 늪에 빠지기도 했지만 2000년대 ‘워킹화’ 카테고리를 개척하며 국내 스포츠업계의 선두주자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왕자표’ 고무신으로 시작, ‘나이키’ 대항해 자체브랜드 ‘프로스펙스’ 론칭

프로스펙스를 만든 국제상사는 1947년 정미소를 경영하던 양태진 사장과 아들 양정모 상무가 부산에 설립한 고무신 제조회사 국제고무와 국제화학주식회사가 그 전신이다. 양태진 사장은 아들 양정모가 장사에 소질을 보이자 정미소 가게 한편에서 고무신 사업을 해보도록 했다. ‘국제고무공업사’라는 이름으로 ‘왕자표’ 고무신을 만들며 손님들이 늘기 시작했고, 1949년엔 국제화학주식회사를 설립했다.

국제화학은 6.25 전쟁 중에도 군수품 제조공장을 운영하며 생산 기술을 발전시켰고, 1950년대 삼화고무, 태화고무, 동양고무(현 르까프) 등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했다. 1962년부터 국내 신발 기업 최초로 미국에 운동화를 수출하면서 1970년대 총 수출액 10억달러를 넘기는 기염을 토했고 1972년엔 부산에 세계 최대 규모의 신발 공장을 짓기도 했다. 이후 아버지 양태진 회장을 떠나보내고 회사를 물려받은 양정모 회장은 1976년 국제상사로 상호를 변경하며 새 출발을 알렸다.

1980년대 프로스펙스 광고 캠페인. [사진 LS네트웍스]
이후 공격적인 경영을 펼치며 국내 신발 산업의 전성기와 함께 호시절을 보내던 국제상사는 1980년대에 나이키 등 외국 스포츠 브랜드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양정모 회장은 국제상사의 운동화를 납품받아온 해외 브랜드들이 한국으로 진출하려고 하자 이에 맞서기 위해 1981년 자체 브랜드 ‘프로스펙스’를 론칭했다.

프로스펙스는 ‘전문가’(Professional)와 ‘성능·사양’(Specification)을 뜻하는 영어 단어를 합쳐 줄인 말로, 프로 선수들이 착용할 정도로 성능이 뛰어나다는 점을 내세운 브랜드다. 국제상사가 3년 전 인수한 미국 브랜드 ‘스펙스’(Specs)에 ‘프로’(Pro)가 덧붙여진 의미도 있다. ‘우수한 국산품, 프로스펙스’라는 광고 문구를 내세우며 1981년 지금의 롯데백화점 본점인 서울 소공동 롯데쇼핑센터에 1호 매장을 열면서 국산 스포츠 브랜드의 시작을 알렸다.

학의 날개를 형상화한 ‘F’ 모양의 로고를 달고 탄생한 프로스펙스는 수출을 통해 이미 다져진 기술력 덕분에 미국 내 6대 스포츠화로 선정되고 세계적 스포츠 잡지 ‘러너스월드(Runners World)’로부터 5성급 등급을 받으면서 빠르게 운동화 시장을 접수했다. 토종 스포츠 브랜드라는 점을 강조하며 고급화 전략을 고수한 덕에 수입 브랜드와의 경쟁에서 버틸 수 있었다.

1997년 외환위기 맞아 법정관리까지…LS그룹에 안기고 ‘워킹화’로 대박

프로스펙스는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 후 나이키와의 계약이 만료된 ‘피겨여왕’ 김연아를 모셔오는 데 성공했다. [사진 LS네트웍스]
양 회장이 이끌던 국제그룹은 재계 7위까지 올라갔지만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로 부채가 늘어나 1985년 전두환 정권 시절에 부실기업 정리대상으로 지목돼 강제 해체됐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직후 프로스펙스는 ‘국산 스포츠 브랜드’라는 프리미엄으로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 올림픽의 공식 후원업체로 선정되면서 전성기를 맞는다. 프랑스를 시작으로 국내 브랜드 최초로 해외 진출을 이뤄내며 화려한 전성기를 보냈다. 

프로스펙스의 진짜 위기는 1997년 외환위기와 함께 왔다. 점차 나이키와 리복 등에 밀리며 국내에서의 인기도 줄기 시작한 프로스펙스는 부도를 피할 수 없었고, 1999년부터 법정관리에 들어가며 시련의 시간을 보냈다. 

2007년 법정관리 8년 만에 국제상사는 LS그룹에 인수되면서 재도약에 나섰다. 프로스펙스는 대표 상품인 운동화로 승부수를 던졌고, 걷기 열풍을 반영해 기존의 러닝화와 차별화된 ‘워킹화’라는 답을 찾고 걷기에 특화된 제품 개발에 들어갔다. 그렇게 2009년 9월 워킹 토탈 브랜드 ‘W’를 론칭했다.

패션모델 이선진에 이어 배우 김혜수를 등장시킨 광고로 대중에게 워킹화를 알린 프로스펙스는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 후 나이키와의 계약이 만료된 ‘피겨여왕’ 김연아를 모셔오는데 성공했다. 프로스펙스의 전개를 맡은 LS그룹 산하 LS네트웍스는 국제상사 인수 후 ‘프로’와 ‘스펙스’ 사이의 하이픈(-)을 없앤 ‘PROSPECS’로 브랜드 이름을 정리하고, ‘F’ 심볼마크 대신 곡선형 모티브로 모습을 바꿨다.

2011년 모던한 로고체와 유선형 심볼마크로 재단장한 프로스펙스는 김연아를 브랜드의 얼굴로 내세워 적극적으로 스타 마케팅을 펼치면서 국민적 관심을 이끌어 냈다. 2013년엔 ‘연아라인’을 출시하며 누적 100만 족 판매 신화를 썼다. 프로스펙스는 후발주자들을 멀찌감치 따돌리며 워킹화 부문 압도적인 1위 브랜드로 또 한 번의 전성기를 맞게 됐다.

‘나이키’ ‘리복’ 공세에 주춤…‘뉴트로’ 열풍 타고 다시 날까

2018년 9월 선보인 뉴트로 대표 라인 어글리 슈즈 ‘스택스’는 10대 학생들의 호응에 힘입어 지난해 10만족을 판매했다. [사진 LS네트웍스]
2015년엔 신발제품 분야에선 국내 최초로 KAS 인증마크를 획득해 품질을 인정받으며 워킹화 시장을 주도했지만, 김연아 선수와 계약이 만료되고 후발주자들의 공격적인 도전으로 기세가 꺾이기 시작했다. 

이후 주춤했던 프로스펙스는 최근 뉴트로 열풍을 타고 재기를 노리고 있다. 2018년 9월 선보인 뉴트로 대표 라인 어글리 슈즈 ‘스택스’는 10대 학생들의 호응에 힘입어 지난해 10만족을 판매했다. 중·장년층 위주였던 고객 연령층이 10~20대까지 넓어졌다. 최근엔 올해 39주년을 맞아 81년 출시 당시 썼던 ‘F’ 모양으로 브랜드 로고를 통합했다. 앞서 2017년 뉴트로 트렌드에 발맞춰 재출시한 프로스펙스 오리지널 라인에 F 모양 로고를 다시 선보인 바 있다.

프로스펙스가 브랜드 40년의 역사와 디자인 철학을 담은 아트북을 발간했다. [신인섭 기자]
최근엔 프로스펙스의 40년 역사와 향후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담은 책 ‘우리의 레이스는 끝나지 않았다’를 펴냈다. 책은 각각 글과 이미지로 풀어낸 텍스트북, 이미지북 총 2권으로 구성됐다. 먼저 텍스트북은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신, 패션 칼럼니스트 박세진, 스포츠 마케팅 전문가 김도균의 글을 수록했다. 또 40년의 브랜드 역사와 함께한 주역들과 현재 구성원의 인터뷰를 담았다. 이미지북에는 프로스펙스의 사진 아카이브 자료를 수록했다.

프로스펙스 관계자는 “40년이라는 시간 동안 대한민국의 브랜드이기에 가능한 일들을 해오며 쌓아온 역사를 공유하는 것은 물론 프로스펙스가 앞으로 만들어 나갈 새로운 기록에 대한 선언이 될 책”이라며 “스포츠에 대한 사회적 관점의 변화를 보여줌과 동시에 프로스펙스가 지켜온 스포츠에 대한 믿음과 가치는 변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며 새로운 브랜드 역사를 써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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