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수 앞세우더니” …잘나가던 ‘명품 플랫폼’, 발란에 무슨 일이
자금경색 우려 커진 발란, 선급금 받고도 물품 지급 안해
명품 플랫폼 적자행보 이어져 투자시장 몸값도 하락세
[이코노미스트 김서현 기자] 최근 고물가에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명품 카테고리 매출 증가율이 둔화한 가운데 이를 전문으로 판매하는 온라인 명품플랫폼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 적자가 지속되고 투자시장까지 얼어붙으면서 3사 발트머(발란, 트렌비, 머스트잇)가 자금경색에 빠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피해 사업자 10여 곳, 피해 금액 4억원에 달해
가장 심각한 곳은 발란이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병행수입업체와 해외 부티크를 연결해주는 ‘기업 간 거래’(B2B)사업을 진행하는 발란은 지난해 말부터 일부 국내 바이어에게 선급금을 받고도 주문받은 물품을 제공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까지 파악된 피해 사업자는 10여 곳, 피해 금액은 4억여 원에 달한다.
발란과 B2B거래를 진행했다는 한 업주는 “최근 시즌 오더를 넣고 1억5000만원을 모두 입금했지만 2~3주 안에 와야 할 제품이 두달하고도 보름이 지났는데도 오지 않는다”며 “담당 MD에게 전화해봐도 연락이 두절되거나 ‘부서를 옮겨 드릴 답변이 없다’는 식으로 응수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발란과 거래관계 중인 또 다른 업주도 “실명 공개는 어렵지만, 발란에서 물건을 팔고 돈을 못 받아서 이미 소송을 들어간 판매자도 있다”며 “발란을 통해 해외 명품을 구매하려고 미리 돈을 넣었는데 물건도, 돈도 주지 않은 채로 몇 주에서 길게는 몇 개월간 연락도 안 되고, 담당자는 계속 바뀌고 모른다고 하면서 질질 끌고 있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이와 관련해 발란 측은 “발란과 B2B거래를 하는 40여 개 업체 중 일부 업체에서 선입금 후 잔금 납부를 미루며 불거진 문제”라며 “연락두절이 된 것은 사실이며 현재는 업체와 합의를 완료한 상태”라고 해명했다. 이어 “발란으로부터 돈을 받지 못해 소송에 들어갔다는 점은 사실무근"이라고 덧붙였다.
발란의 이같은 위기는 예견된 수순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는 발란의 자산 건전성에 대한 우려를 꾸준히 제기한 바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발란은 지난 2021년 광고비선전비만으로 190억9589만원을 사용했다. 영업손실은 전년동기대비 1.9배 늘어난 185억5037만원으로 집계됐다.
발란 내부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발란이 최근 사내복지까지 모두 없애고 긴축기조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지난해 유치한 투자 역시 기존 투자자 중심으로 이뤄져, 실질적으로 신규 투자자를 끌어왔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해에는 명품브랜드로부터 물건을 들여오는 병행수입단체에게 제때 대금을 지불하지 않아 논란이 됐던 바 있다”고 덧붙였다.
통상 명품업체들은 3분의 2가량의 물량을 직접 팔고, 약 33%에 달하는 나머지를 홀세일러(도매업자)나 부티크 등 외부 업체에 판다. 그중 3분의 1이 병행수입이라는 이름으로 온라인에 팔린다. 관계자에 따르면 발란의 경우 명품 판매 매출의 약 70% 정도가 병행수입 제품에서 나온다. 병행수입을 책임지는 업체들에게 발란이 대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것이다.
이용자 줄고 투자 막히고…명품 플랫폼 수난시대
다른 명품플랫폼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트렌비 역시 동기간 약 33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이는 약 100억원 수준이던 전년 대비 3배가 넘는 수치다. 광고선전비로 290억원을 사용했다. 지난 2020년까지만 해도 흑자였던 머스트잇도 약 10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그동안 발란을 비롯한 트렌비, 머스트잇 등 명품 플랫폼은 외부 자금 수혈을 생각하고 광고선전비 등에 많은 지출을 하며 출혈경쟁을 펼쳐왔다. 따라서 수익성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지만 엔데믹으로 인한 온라인 시장 정체에 경기 침체까지 맞물리면서 시장이 난관에 봉착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명품플랫폼 앱의 사용자 수는 최근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다. 빅데이터 플랫폼 모바일인덱스 추정치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평균 월간활성이용자수(MAU)는 트렌비 72만명, 발란 58만명, 머스트잇 29만명 순이었다. 그러나 올해 1~2월 평균 MAU는 각각 35만명, 36만명, 18만명 정도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오프라인 매장 활성화로 온라인 시장이 주춤한 데다 명품 카테고리를 확장한 이커머스 업체가 증가한 탓이다.
꽁꽁 언 투자시장에 몸값까지 낮아졌다. 올해 투자 유치 사례가 전무한 데다가 정부 정책 사업인 바우처 프로젝트까지 축소되면서 극복이 쉽지 않으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해 발란은 250억원 규모 시리즈C 투자 유치 과정에서 몸값을 기존 8000억원에서 3000억원대 수준으로 대폭 낮췄다. 트렌비 역시 당초 4000억원으로 설정했던 기업가치를 2800억원으로 낮춰 투자 유치를 완료했다.
특히 발란의 경우 소비자들 사이에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일명 ‘네고왕 사태’까지 신뢰도 하락에 한 몫했다. 발란은 지난해 4월 유튜브 채널 ‘네고왕’에서 17% 할인을 약속했다. 하지만 방송 후 할인 쿠폰을 제공하기 직전 제품 가격을 큰 폭으로 올렸고, 사실상 할인 효과 없이 물건을 판매한 사실이 발각됐다. 이어 과다 반품비 논란, 개인정보 유출 건까지 겹쳐 기업 이미지가 크게 훼손됐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업계에서는 라이브커머스 쇼핑 플랫폼 ‘보고’ 운영사 ‘보고플레이’ 사태가 재발할 수 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고플레이 사태는 지난 1월 보고를 둘러싼 연락두절, 미배송 등 불편신고 사례가 20건 가까이 접수되면서 시작됐다. 논란 끝에 지난 3일 결국 기업회생을 신청하며 파문이 일었다. 소비자연맹에 따르면 보고플레이는 누적 부채(2022년말 기준)가 526억원 규모에 달하는 와중에 입점사에게 지급하지 못한 물품 판매 대금만 336억원에 달했다.
이런 보고플레이가 경영난에 빠지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계속 손해를 보면서 회사의 규모를 키우고 플랫폼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전략이 한계를 보였다는 점이다. 경기침체로 인해 마케팅비는 늘어났지만 이익은 감소했고, 투자심리가 위축돼 투자처를 구하지 못하면서 운영 중단에 이른 것이다. 이에 발란을 비롯한 명품 플랫폼 업체들도 이와 유사한 경로를 걷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금리, 고물가에 경기침체 징조까지 겹치는 상황이기 때문에 사치품을 취급하는 명품 플랫폼에게는 악재로 다가올 수 밖에 없는 시기”라며 “해당 산업의 피해가 여타 업계로 연결돼 추가적인 문제를 낳을 정도로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이렇다 할 외부적인 도움을 기대하긴 어렵다”고 진단했다. 이어 “앞으로 경기가 단기간 내에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소비자의 수요가 줄어들 수 밖에 없는 시기임을 인지하고, 업체 내부적으로 긴축을 이어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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