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목도 잘 골랐다"..3년간 치밀하게 이뤄진 주가조작
[증시 흔드는 작전세력]①
우량한 재무구조 갖춘 ‘저평가 가치주’만 골라
유통주식 수 적은 품절주로 시세조종 용이
CFD 거래로 레버리지 투자, 장기 프로젝트로 진행
[이코노미스트 마켓in 이승훈 기자]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 주가조작사태 관련 의혹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과거 단기간 주가를 올려서 차익을 노렸던 주가조작과는 달랐다. 아주 긴 시간 동안 꾸준히 치밀하게 주가를 끌어올리면서 금융당국의 감시망을 피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번 주가조작의 핵심으로 지목된 H사는 미등록 투자자문업체로 알려졌다. 이들은 다단계 방식으로 투자자들을 모집해 3년여에 걸쳐 불특정한 종목을 대상으로 광범위하게 주가를 끌어올린 것으로 파악된다. 연예인, 의사, 기업인 등 고소득층에 접근해 고수익을 약속하는 한편, 새로운 투자자를 데려오면 그에 따른 추가 수익을 공유해주는 방식이다.
이번 주가조작이 3년 간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던 것은 과거의 작전 세력들과는 다른 형태로 주가조작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보통 작전세력들은 단타로 단기간 주가를 올리고 빠지는 식, 상한가 따라잡기, 하한가 풀기 등의 수법을 썼다.
CFD계좌 이용 자금규모 키워…3년여간 치밀하게 계획
하지만 이번 사태의 주범들은 타깃으로 삼은 8개 종목의 주가를 3년여에 걸쳐 서서히 상승시키는 수법으로 감시망을 피해갔다. 8개 종목의 주가가 지난 3년간 최소 두 배에서 최대 12배 올랐는데도 한 번도 한국거래소의 조회 공시 요구를 받지 않았던 것이다.
주가조작 세력들은 특히 차액결제거래(CFD)계좌를 활용해 자금 규모를 키웠다. CFD는 증거금을 내고 증권사가 대신 주식을 매매해 차익은 투자자에게 주고 증권사는 수수료를 가져가는 파생금융상품이다. 40%의 증거금만으로 최대 2.5배 레버리지를 일으켜 투자할 수 있다.
가령 시드머니 40억원이 있다고 가정할 경우 최대 100억원 어치의 주식을 매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주가가 오르면 큰 수익을 얻지만 반대로 주가가 하락하면 원금을 넘어선 손실, 즉 빚까지 발생하는 전형적인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상품이다. CFD는 주가가 25%만 내려도 반대매매를 당할 수 있다. 이에 CFD는 전문투자자 요건에 해당하는 투자자만 이용할 수 있다
3년 전과 비교해 CFD 투자자는 8배 증가했다. 최근 5년 중 1년 이상 금융투자 상품의 월말 평균잔고가 5억원 이상을 유지해야 되는 필수조건이 2019년 11월 규제완화로 인해 잔고 기준 5000만원으로 낮아졌기 때문이다. 이런 필수조건과 소득·자산·전문가 조건 중 하나의 선택조건을 갖춘 전문투자자들이 개설할 수 있는 CFD 거래를 통해 이번 주가조작이 장기 프로젝트로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 문제가 된 종목들은 신용융자를 통한 거래가 용이했다. 대부분 위탁증거금률이 30~40% 수준으로 신용거래융자를 통한 추가 투자가 손쉬웠고, 주식담보대출도 가능했다. 주가가 오를 경우 주식담보대출을 실행해 자금 규모를 계속해서 키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3년여 간 12배씩 오르는 등 주가가 오른 상태에서 결국 트리거가 발생했다.
해당 종목들은 지난달 24일 SG증권 창구에서 대규모 매도 물량이 나오며 폭락이 시작됐다. 시장에서는 주가 급락이 CFD 반대매매에서 촉발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8개 종목을 담은 CFD 계좌가 손실 구간에 들어가면서 SG증권이 고객 주식을 강제로 처분했다는 것이다.
현재 주가조작이 이뤄진 것으로 추정되는 종목은 다올투자증권, 다우데이타, 대성홀딩스, 삼천리, 서울가스, 선광, 세방, 하림지주 등 8개다. 이들 종목은 최대 4거래일 연속 하한가를 기록했다. 나흘간 하락 폭은 42~76%에 달했다. 4거래일 연속 하한가 종목이 나온 것은 2015년 6월 가격제한폭이 15%에서 30%로 확대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주가 폭락이 시작되기 직전 12조원을 웃돌았던 8개 종목의 합산 시가총액은 나흘 만에 4조원 아래로 떨어졌다. 약 8조2000억원이 증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종목들은 지난달 28일 기준 일제히 반등에 성공했지만 현재도 상황이 종료됐다고 단언할 수 없는 실정이다.
문제가 된 8개 종목의 대부분은 우량한 재무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들 종목은 3년 간 주가가 오르는 과정에서 ‘소형 가치주’로 입소문 나기도 했다. 이에 더욱 의심을 피해 갈 수 있던 것으로 보인다. 과거 주가조작 세력들은 경영권이 불안한 기업이나 재무 건전성이 취약한 기업 등을 대상으로 호재성 재료를 붙이는 방식으로 주가를 띄우곤 했지만 이들이 타깃으로 삼은 종목들은 그 반대였다.
공통점은 모두 유통주식 비율이 50% 미만으로 적었다는 점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SG증권의 매물 폭탄으로 최근 하한가를 기록했던 8개 종목들의 평균 유동주식 비율은 40.55%로 집계됐다. 유동비율이란 발행주식수 중에서 실제 시장에서 거래 가능한 주식수의 비중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유통주식수가 적을수록 거래량이 적어 적은 호가로도 시세가 쉽게 움직여 시세조종의 표적이 됐다는 분석이다. 이에 매수자와 매도자가 사전에 가격과 시간을 정해놓고 주식을 매매하는 ‘통정매매’도 용이했을 것이란 시각이 나온다. 통정매매는 불법 시세 조정 행위다.
‘소형 가치주’로 입소문…유통주식수 적어 시세조정 표적
통정매매를 통해 3년여 간 매일 상승률 1% 넘지 않게 조금씩 올려서 코스피200이나 코스닥150 종목에 포함되면 패시브 자금이 들어올 거고, 그때 팔고 나가겠다는 치밀한 계획이 있었을 것으로 업계는 추측하고 있다.
그러나 김익래 다우키움 그룹 회장이 상속을 이유로 다우데이터 주식을 매도하면서 계획은 틀어졌다. 김 회장은 본인이 최대주주로 있는 다우데이터 주식 140만 주, 약 600억원어치를 주가 폭락 직전인 지난달 20일 시간외 대량매매로 매도했다. 이 매도가 주가하락의 트리거가 되면서 CFD 등에서 반대매매가 쏟아졌고, 결국 다우데이타 주가는 김 회장이 주식을 팔기 전보다 60% 이상 하락했다. 이어 H투자자문 일당 중 한명이 매도물량을 던지면서 주가는 급전직하했다.
이 가운데 주가조작 의혹의 핵심 인물로 지목된 투자컨설팅업체 H사 라덕연 대표가 주가조작을 사실상 주도하고 그 구조를 자신이 직접 설계했다는 취지로 말하는 음성 녹취파일이 공개되면서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고 있다.
해당 녹취록에는 본인이 차명 휴대전화, 이른바 ‘대포폰’으로 주식 매매를 지시하면 지시를 받은 일당이 정상적인 주식 거래로 보이도록 투자자 명의의 휴대전화를 들고 전국 곳곳으로 움직인다는 내용도 나온다. 앞서 “통정매매나 시세조종은 없었다”며 주가조작 의혹을 전면 부인했던 라 대표의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발언들이다.
투자자를 모집하는 폰지 사기(다단계 금융사기) 정황이 드러난 데 이어 라 전 대표 본인이 지분을 투자한 S골프연습장은 물론 갤러리·방송제작사까지 자금 세탁 창구로 이용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의혹은 점점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김 회장과 키움증권이 최근 불거진 SG증권발 주가폭락 사태의 핵심 인물인 라 대표를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라 대표는 “일련의 하락으로 인해서 수익이 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범인”이라며 김 회장의 거래를 지목해 왔다.
금융당국의 책임론도 제기됐다.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는 “2020년 코스피 지수가 1457까지 흘러내릴 때 이미 CFD 부작용을 우려됐고, 2021년에는 빌황 사태로 다시 CFD가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여론이 있었다”며 “이미 두 번의 큰 비상벨이 울렸음에도 사고 예방을 위한 근본적 대책을 수립하지 않고 유야무야 넘긴 것이 이번 사태를 불러왔다”고 설명했다.
연기금에 대한 조사와 CFD 완전 중단도 검토해야한다는 지적이다. 한투연은 “결과적으로 일부 종목의 주가 폭등에 기여했고, 일반 투자자들도 매수 대열에 동참하게 한 원인이 된 연기금의 과매수 의혹도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거래량 대비 매수 비중이 높았고 장기간 매수 일변도였다는 것은 지수 추종 패시브 자금의 기계적 투입만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며 “이상 징후를 걸러내지 못한 연기금 운용시스템의 문제 내지 운용역들의 개입 여부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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